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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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남자 작가들의 책을 두 권 내리 읽다가 이 책을 읽으니, 와, 세상에 그렇게 잘 읽히는 거다. 걸리적 거리는 게 없이 술술 넘어가는 게 너무 좋은데,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우냐 하면 그렇지가 않아. 가스라이팅에 자기 중심 잃은 여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걸 읽어가는 건 정말 힘들었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이 여자야, 중심 잡어! 나는 얼마나 그렇게 속으로 외쳤던지.



마당이 있는 좋은 집에 사는 여자와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던 가난한 여자의 이야기가 교대로 펼쳐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이 얽히고.

그리고 이 이야기는 가난한 여자가 폭력적인 가난한 남편을 죽이면서 시작한다.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로워서 다음장이 어떤 장면이 나올지 한 장 한 장 넘기는 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 여성혐오의 현실을 세련되게 박아두었다. 아마 주인공은, 나중에, 그러니까 책이 끝나고 나서도 훨씬 나중이 되어서야, '아, 그 때 내가 멍청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겠지. 나 역시 현실에서 '그들이 멍청했다'고 깨닫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으니까.



이 소설의 가장 큰 교훈은 악을 응징하는 데 있다 하겠다. 책 처음부터 나오지만, 이 책의 결론이라고 내 나름대로 부여한 것은 이것이다.



'쓰레기 같은 남(자)편은 죽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겠다.




제약 회사 영업직이던 남자는 유머 수준은 최악이었지만 잘생긴데다 성실해 보였다. 나는 허영이 가득한 동료와 사귀는 남자가 불쌍했고 연민을 느꼈다. 여자를 잘못 만나 당장 패가망신이라도 당할 것 같아 불쌍히 여겼던 것 같다. 나는 남자를 동정했다. 내가 구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자 역시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화장을 안 한 내가 다른 여자들과 달리 검소해 보였다고 했다.
남자느느 자신의 무능을 성실함으로 포장했을 뿐이고, 나는 검소한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돈이 없어서 궁색하게 살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못된 환상을 키우며 연애를 시작하여 일 년이 안 돼서 결혼에 골인했다. (p.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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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5-25 13: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주 재미있게 읽은 한국소설이었습니다!! 우리가 읽어야할 건 유명인의 신혼일기가 아니라(!) 바로 이런 소설인 것 같아요. 후훗.

moonnight 2018-05-2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게 좋아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욧!@_@;;;

다락방 2018-05-25 13:34   좋아요 0 | URL
지루할 틈없이 팍팍 넘어가요, 문나잇님!!

단발머리 2018-05-25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루할 틈이 없다는 거죠? 팍팍!!!
나도 찾아봐야겠어요.
믿고 읽는 다락방님 추천 도서*^^*

다락방 2018-05-25 17:0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그렇습니다!
지루할 틈없이 팍팍 넘어갑니다.
아, 그래서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이러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가지로 살짝 아쉬운 점이 있긴하지만, 재미있는 소설인 것입니다!!! ㅎㅎ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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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에 회사 여직원이 노메이크업으로 출근을 해서는 사무실에 도착해 화장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남자 상사가 그 모습을 보고는 크게 혼냈다. '화장은 아빠도, 오빠도 모르게 하는거다!'는게 이유였다. 여직원은 이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만약 그 여직원이 집에서 화장을 하고 왔다면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서 화장을 마치고 나와야겠지. 그랬다면 같은 회사, 같은 거리에 있는 남자직원보다 좀 더 수면 시간이 짧았을 것이다. 남자는 잘 시간에 여자는 화장을 해야 하는 이 부조리함(또 퇴근하면 지우기도 해야한다). 게다가 화장을 하는 게 예의라고, 화장한 모습으로 대부분의 여성을 출근하게 만드는 이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데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고? 이건 너무나 혼란스러운 지점 아닌가. 말 자체가 모순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나. 이건 중학교 시절의 브래지어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여중을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반드시 브래지어를 착용하게 했고, 그런데 브래지어 끈이 보이면 안된다고 그 위에 셔츠를 더입게 했다. 더운 여름날 교복 하복을 입기 위해서는 그 안에 런닝셔츠도, 브래지어도 있어야 했던 것.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 젖꼭지를 가리기 위해 브래지어를 하고, 브래지어를 감추기 위해 셔츠를 더입고 그 위에 교복을 입고... 왜 우리는 뭔가를 감춰야 하고, 감춘 걸 또 티내지 않아야 하는거야? 브래지어도, 런닝셔츠도 안입고 교복 하나만 슝- 입으면 되는 남학생들에 비해 확실히 효율이 떨어지잖아?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우리 회사 상사뿐만은 아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을 욕하는 글들은 인터넷에 얼마나 많이 올라왔던가. 그들도 그들이 왜 비난하는지는 모르고, 그런데 비난은 해야겠고, 그래서 파우더 가루가 흩날린다..같은 얘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닌가. 베이비 파우더 바르는 것도 아닌데 무슨 가루가 날려... 그러면서 자기 여자 친구나 여자 동료가 화장을 하지 않으면, '그래도 여자가 화장은 하고 다녀야지'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장을 하긴 해야하는데, 이동 시간 중에 짬을 내면 안되고, 항상 너보다 먼저 일어나서 잠을 줄여가며 화장을 하고, 그리고 완벽하게 셋팅된 모습으로 너를 만나야 한다는거지? 니가 애인이든, 상사든, 친구든..그게 뭐든?



대학때는 화장을 잘 하지 않고 다니긴 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사례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면에서나 준비된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도 오래 그렇게 살아와서 이제는 화장하는 시간이 처음보다 확 짧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시간은 걸린다. 머리가 길고 웨이브졌다면 말리고 고데를 하고 에센스를 바르는 시간도 걸린다. 시간만 걸리나, 돈도 들여야 한다. 돈만 들이나, 에너지와 신경도 그 쪽으로 당연히 쏠린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피부 당기지 않게 스킨로면만 촵촵 발라주고 옷만 입고 휙- 나오면 삶은 간단할텐데, 거기에 여자들은 화장이 끼어든다.




티비에서도 잡지에서도 어딜 봐도 날씬하고 화려하게 화장한 여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다. 어쩌다 한 장면, 어쩌다 한 명의 그런 여자를 본다면 심드렁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세상이 하나 되어 그 여자들이 진리인 것처럼 말해버리면,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아, 저렇게 예뻐져야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예뻐져야 사랑받겠지, 저렇게 예뻐져야 손가락질 당하지 않겠지. 사회가 정해놓은 미의 기준, 그리고 여자는 아름다워야 인정받는다는 강한 메세지 때문에, 여자들은 먹는 양을 줄이고, 꾸역꾸역 운동을 하고, 좋은 화장품을 여러개 사고, 긴 머리에 바를 좋은 헤어제품을 산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으면 당연히 행동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느라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들인다. 이 책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텔레비젼에 잔뜩 나오는 저체중 여성은 전체 미국 성인 여자의 3프로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3프로가 되어야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여자들이 애를 쓰는 거다. 아무리 해봤자 자신이 완벽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될순 없는데!



다이어트는 식이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은 도울 뿐, 먹는 양을 줄이는 것, 먹는 양보다 활동량이 많아야 체중 감량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방이 쌓이지 않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아야 한다. 세상 맛있는 게 탄수화물에 얼마나 많은데! 그러다보면 식사는 즐거울 수 없다.


나는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맛있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친근한 사람들과 만나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만약 내가 탄수화물을, 술을 끊어버린다면, 그건 내 인간관계도 끊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 두번은 만나서 더 적게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해 살 순 없다. 나는 저체중의 몸대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해나는 음식을 적으로 보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녀는 "엄마는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어요. 엄마는 지나치게 말랐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의 모범을 보이셨죠. 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나는 가족들과 이 음식을 즐겁게 먹을 거야. 칼로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폭식도 하지 않으셨죠."
"음식을 즐겨도 된다고 배운 거군요?" 나는 물었다.
"맞아요."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엄마 덕분이에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음식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어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요."
"그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해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요리를 하고 빵을 구워서 사랑을 전하셨어요."
해나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은 만성적인 허기에 동반되는 감정적인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강화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진다. (p.302-303)



당연히 나에게도 외모 강박이 있다.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외모강박 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남자랑 여행간다고 가기 전에 겨드랑이에 왁싱을 받고서는, 그 아픔에 놀라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해야되지?'라고 스스로 물었더랬다. 남동생의 결혼을 앞두고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하지?'라고 자꾸 되묻게 된다. 어쩌면 나는 외모강박이 심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 태클을 걸어대서, 사실 내가 그렇게 해야만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래서 번번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다이어트를 할 굳은 의지 같은 것이 없어. 왜냐하면, 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살아도 행복하니까.




일전에 마른 몸과 성형수술을 원하는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계속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나 역시 납작한 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 운동의 목적 중에 다이어트도 있었던 사람으로서(실패중이지만..), 왜 나도 이러면서 저 친구가 저러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질까..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나도 이러면서 누군가 저러는 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것은 내 스스로의 모순을 증명하는 꼴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사람과 나의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랐던 거다. 외모 강박의 크기가 달랐던 거다. 그 친구는 애인의 첫째 조건도 외모였다. 그러니 자신이 갖추어야 할 첫째 조건도 외모였던 거다. 그런데 나는, 외모가 아닌 다른 것에 더 신경쓰는 사람이고 싶고 또 그런 사람과 친구 혹은 애인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분명히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그 중요한 목표가 외모였던 거다. 우리가 각자 생각하는 중요한 목표가 달라서, 그래서 나는 그것이 불편하고 어색했구나.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p.335)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어릴 때부터 아름답다 혹은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예쁘다'는 말이기 때문에 칭찬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예뻐지고 싶고 못생긴 곳은 어디인지, 자꾸만 자기의 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 자꾸만 생각하다보면 신경과 에너지는 당연히 그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고 얘기한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나 불평을 언급해 그것을 화제에 오르게 하고 또 그래서 자기 외모를 들여다보게 만들기보다는, 외모 이외의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자고. 그런 식으로 이 책에서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몸에 대해 편지쓰기도 시킨다. 그러니까 순전히 '기능적인' 측면에서. 손이 하는 역할, 발이 하는 역할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또한, 트레이너들한테도 '더 날씬한 몸, 비키니를 입기 위한 몸'으로 격려하는 대신, 우리 몸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걸로 격려하라고 설득한다. 그 편이 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더 동기부여가 된다는 거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요가를 시작했지만, 당연히 거기에 다이어트도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요가를 했다고 해서 살이 빠지거나 배가 납작해지진 않았다. 그러나 요가를 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요가쌤이 앞에서 계속 코어에 힘을, 코어에 힘을..하고 얘기하는 바람에, 처음 시작할 때보다 코어에 힘이 더 생겼다. 안되는 자세들이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되는 걸 느끼면서, 아, 내 몸에 힘이 더 생겼구나, 하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어찌나 신나는 일인지! 그래서 요가로 납작한 배를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요가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내 몸에 힘을 키우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니까. 안되는 자세들을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가 결국 해내고 났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을 살면서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예뻐지고 싶다, 저체중이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기 보다는, 건강해지고 싶고 근육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더 몰두하고 싶다. 또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싶다. 저자도 이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들이 내게는 아주 많다. 할 일도 많고.



최근에는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 그러니까 나랑 비슷한 사람들을 곁에 남겨두자는 생각이 좀 더 강해졌다. 인생 가장 중요한 목표가 나와 너무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 하면서 불편함을 느낀것처럼, 비슷한 사람과는 이야기하는 게 참 행복하다. 어제 책 읽는 남자사람친구가 책을 읽다 좋은 소식을 전해준 것처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고 또 책을 읽는 것들이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걸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혹은 애인으로 두고 싶다. 그간 못!생!긴! 남!자!들!만! 사귀었던 것은  (남자들이 다 못생겼기 때문이다...)아마도 이런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는 외모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게 많았어.


더불어 조카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외모품평 해대는 프로그램들이 수두룩하게 나와 저절로 예쁘고 미운 걸 파악하고 언급하는 조카에게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누구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는 등으로 얘기해왔었는데, 이제는 그보다는 다른 중요한 것을 언급하고 싶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어떤 일을 할 때 재미있어? 어떤 게 즐거워? 등등. 외모 강박에 벌써부터 둘러쌓인 조카에게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의 중요성, 삶의 재미 같은 것들에 대해 언급하며,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조카야, 니가 예쁠 필요도 없고 날씬하기 위해 고통스러울 필요도 없어.



끝으로,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해 꼭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아, 책을 읽는 것은 너무나 좋다' 하고 또 생각하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가졌던 미묘한 불편함의 정체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하는 것도 책이지만,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도 시야를 더 넓혀주고 사고를 확장해주는 게 책이다. 도움을 받기 위해 읽은 게 아닌데, 읽고나면 어떻게든 도움을 받는다. 누군가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토론을 하고 생각을 해서 고심해 쓴 글을 이렇게 편하게 앉아 읽는 것만으로 이 큰 도움을 받는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책을 읽고 그 후의 감상을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몹시 흡족하다. 또한 내가 이렇게 글을 남김으로써 나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엄마는 ‘모든 걸 할 시간은 없단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겉모습에 신경 쓰다 보면 내면의 발전에 신경 쓸 수 없다고 하셨어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요." 가브리엘은 어머니의 말을 골똘히 생각하며 먼 곳을 응시했다. 이제야 그 말에 담긴 진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여성이 외모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면 그 시간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다른 일에 쏟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직장에서의 지위나 동등한 임금, 아니면 더 나은 교육 같은 것에요." (p.54)

대상화는 당신이 생각과 느낌, 목표와 욕망을 지닌 진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대신, 당신은 그저 몸 또는 신체 부위의 총합으로 취급받는다. 심하게는 당신의 몸은 그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로 취급받는다. (p.63)

몸이 성숙해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때론 그 몸을 감춰야 안전하다는 것을 딸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생식을 위해 성숙해진 몸이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고 동시에 성인 남성을 유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딸에게 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건강한 태도를 가르칠 수 있을까. 이는 모두 미지의 영역이다. (p.68)

에린은 지하철 안에서 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 한 남성이 에린에게 그녀가 얼마나 섹시한지 이야기했다. 이에 에린은 재미없다고 대꾸했다. 그리고 "제발 꺼져줄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른 칸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남성은 계속 "넌 정말 못생긴 X야. 아주 토 나오게 못생겼어. 이런 못생긴 X에게 말을 걸었다니 말도 안돼."라는 말을 했다. 정말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 남성은 그녀가 섹시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접근했다. 그런데 거부당하자 그녀를 못생겼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젊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외모라고 교육한다면 당연히 남성(그리고 여성)은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싶을 때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p.76)

내가 스물네 살의 대학원생 강사였던 시절 첫 교수 평가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중에는 "교수님, 파란 스커트를 자주 입으세요. 예뻐 보여요."라는 코멘트가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교수 평가는 익명으로 이뤄졌지만, 누가 썼는지 알아내기 위해 출석부를 계쏙 훑어보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동안 내 다리만 생각했던 학생은 누구였을까? 심지어 그 수업은 ‘젠더 심리학‘ 이었다. 그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학생은 여전히 그런 식의 코멘트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p.87)

사춘기 이후 에린은 자신이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극도로 신경 쓰게 됐다. 에린은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녀와 쌍둥이 여동생은 성숙한 몸을 감추기 위해 남자처럼 옷을 입으면서 어린 시절을 연장했다. 나는 에린이 소년과 같은 외모로 살기로 결심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했다.
에린은 자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제 몸을 사용하는 것이 좀 더 편안하게 느껴졌어요."라고 설명했다.
"남자들은 그런 신체적 자유를 계속 누린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물었다.
에린은 화가 나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바로 제가 남자 친구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예요. 지하철에 앉아 있는 남자들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들은 자신의 몸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남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지, 남의 신체에 접촉하고 있는지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리고 그게 부러워요." (p.101)

몇 년 전 나는 강의실을 가득 채운 심리학자들 앞에서 자기 대상화에 관해 발표했다. 여성의 자기 대상화가 어떻게 신체 혐오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토론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심리학자가 질문을 던지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어쩌면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혐오를 느끼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요? 몸무게가 늘어나서 기분이 나빠지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비만을 막아줄 테니까요."
그날 이후 비슷한 질문을 여러차례 들었다. 대부분은 무례한 말투였다. (p.105)

최근에는 《뉴욕 타임스》페이스북이 ‘살찐 느낌‘이라는 이모티콘을 없애고 한 결정에 관해 쓴 글이었다. 분노에 찬 이메일을 보낸 사람들은 모두 남성으로 신체 혐오는 옳지 않다는 나의 주장을 몹시 비난했다. 이들은 신체 혐오는 비만을 방지하는 훌륭한 예방책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프랑스 여성은 모두 날씬하다면서(어쨌든 이는 진실이 아니다) 그 이유는 프랑스 문화가 효과적으로 살찐 여성에게 창피를 주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미국의 미래가 밝다고 했다. 나는 여성이 자신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내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p.105-106)

M.K. 는 심리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죄책감‘ 대문에 지금도 계속 부모님과 연락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증의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최근 아버지는 그녀가 너무 짧게 머물다 간다고 화를 냈다. M.K.는 아버지에게 용서해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그녀는 평정심을 잃었다.
"나는 다 용서했다고요!" 그녀가 소리 질렀다.
"뭐?" 아버지는 딸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용서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M.K.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10대였을 대 제게 뚱뚱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녀는 울었다.
"뚱뚱했잖니."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말 한마디로 M.K. 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2주 동안 폭식을 했고 5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아빠의 말 한마디가 절 그 지경으로 만들었죠." 그녀가 말했다. (p.110-111)

최근 몇 년간 여성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이상은 크기, 키, 머리 색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러나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날씬함이다. 이상적인 ‘풍만한‘ 몸매를 가졌다고 손꼽히는 여성들조차 배는 납작하고 셀룰라이트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적인 날씬함에서 이탈할 경우 종종 적대감이나 조롱을 마주하게 된다. (p.111)

‘건강‘을 위해 강조되는 것들은 대부분 ‘건강‘의 가면을 쓴 ‘아름다움에 대한 우려‘인 경우가 종종 있다. 2015년 애팔래치안주립대학교와 켄트주립대학교 연구팀은 2006년부터 2011년 사이에 발간된 잡지 《위민즈 헬스Women‘s Health》와 《맨즈 헬스Men‘s Healte》의 표지 108장에 실린 제목을 분석했다. 《위민즈 헬스》표지에 쓰인 가장 큰 제목중 83퍼센트는 외모나 다이어트의 관점에서 작성됐다. 《위민즈 헬스》의 기사 타이틀 역시 《맨즈 헬스》에 비해 외모를 강조하는 경향이 더욱 높았다. 두 잡지 모두 건강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춘 제목은 없었다. 잡지명에 ‘건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도 말이다.
몸무게에 따른 차별은 증가하고 있지만 차별이 비만을 방지할 것이라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p.117)

여성의 건강을 걱정하기 때문에 비만을 혐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여성의 건강을 향상시킬 다른 방법을 정중히 제안하려 한다.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자.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부하자.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연구와 법률 제정을 지원하자.
잔인함은 건강에 개입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는 그저 자신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기 위한 독선적이고 그릇된 시도일 뿐이다. 왜 몸을 걱정하고 존중하는 대신 몸을 한탄하고 건강을 방해하는가. 왜 여성이 자신의 사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미워하기 바라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몸을 돌보는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p.117-118)

외모 강박은 단순히 여성의 정신적·정서적 건강만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도둑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돈과 시간을 너무도 자주 앗아가 버린다. (p.121)

내 시선은 설문 참여자의 성별을 가장 정확하게 구분 지어주는 항목으로 향했다. "무슨 옷을 입을지 한 시간 이상 고민한다"라는 항목이었다. 여성은 대체로 남성보다 이 문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걸 봐봐. 네가 흥미를 가질 거라 생각했어." 그가 말했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모든 심리적 특성과 관심사 가운데 무슨 옷을 입을지를 고민하는 시간만큼 두드러진 특징도 드물다. 이는 여성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움에 대한 걱정으로 이뤄지는지를 밝혀줄 강력한 증거가 된다.
나는 결과물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재미있네. 그리고 좀 화도 나고."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외모 강박의 대가에 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체적 자유와 인지적 자원의 감소, 그리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저해 외에 여성은 외모 강박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또 치르게 된다. (p.122-123)

분명히 말해두자면, 나는 여성이 아름다움을 위한 비용과 행위를 포기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언어학 교수인 친구가 눈썹을 다듬어주는 동네 가게에 학생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햇다. 이는 단합을 도모하는 행사였고 학생들은 여자 교수가 함께한다는 것에 기뻐했다. 친구는 모임을 함께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나는 고마웠지만 초대를 거절했다. "‘미모관리용‘ 뭔가를 또 늘리고 싶지 않거든." 나는 설명했다. 이후 우리 테이블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이 만남을 무척 기대하고 있어. 눈썹 다듬기를 강요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비싸지도 않아. 겨우 10달러라고." 친구는 말했다.
(중략)
당시 나는 눈썹을 다듬기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그걸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됐다. 눈썹을 다듬은 후 더 예뻐 보인다고 느낀다면, 그때부터 눈썹 다듬기는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로 추가됐을 것이다. 나는 기종의 ‘해야 할 일‘ 목록에 그 어떤 것도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방식으로 내 외모를 감시하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부추기고 싶지 않았다. (p.128)

내가 이 책을 위해 인터뷰했던 성인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출근길에 화장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행동은 전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이는 여성이 매일 아름다움을 위해 당연히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압박의 상징이었다. NBC의 뉴스 프로그램인 <투데이Today>는 외모에 들이는 시간적 비용을 추정하기 위해 비공식적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 여성은 하루 평균 55분을 외출 준비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으로 치면 2주나 되는 시간이다. 영국의 한 마케팅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여성은 평생 거의 2년의 세월을 화장하는 데 쓴다고 한다. (p.142-143)

‘아름다움의 심리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아름다움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계산하게 한 뒤 다시 일주이란 외모에 쓰는 시간을 모두 계산해보게 했다. 여학생과 남학생 간의 차이가 일주일에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까지 벌어지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남는 시간에는 뭘 하나요?" 나는 남학생들에게 물었다.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잔다는 것이 가장 흔한 대답이었다. 수업을 함께 듣는 여학생들은 부러워했다. (p.143)

지난 몇십 년간 여성의 평균 몸무게가 증가하는 동안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 플레이보이 화보 등에 등장하는 여성은 더욱 날씬해졌다. TV 에 나오는 장면도 다를 바 없다.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되는 시트콤 열여덟 편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분석한 결과, 76퍼센트는 저체중이었다. 56개 프로그램의 275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1,000명 이상의 주요 등장인물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 여주인공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저체중이었다. 참고로 미국 성인 여성 중 저체중이 차지하는 비율은 3퍼센트 미만이다. (p.155-156)

불행히도 비판적 논쟁이 여성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수준이 높다 해도 외모 강박에 대해 아무런 면역력도 생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마지막 유형(광고주는 여성을 괴롭힌다)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여성은 낮은 점수의 여성보다 자신의 외모에 덜 만족스러워한다는 점이다. 내가 의심하는 부분은 이런 이미지에 맞서 여성이 만들어내는 주장은 대개 이미 심리적 손상을 입은 후에야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이미지에 한 방 맞은 후에야 응전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p.206)

(도브의 ‘아름다움을 선택하세요 Choose Beautiful‘광고를 언급하며) 오히려 이 캠페인은 여성이 외모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한다. 광고주들의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런 광고들은 실질적으로 신체 모니터링과 자기 대상화를 부추긴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신체 모니터링의 영향력은 반反직관적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를 칭찬하면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느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외모에 대한 칭찬은 여성의 관심이 외모로 옮겨가게 하거나 자신의 몸이 평가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여 심하면 신체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와! 이 남자가 날 섹시하다고 생각하네!"라는 생각에서 "잠깐, 이 남자가 내 배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이 셔츠를 입었을 때 내 배가 납잡해 보이던가? 그럼 내 다리는 어떻게 보이지? 내 머리는?"이라는 생각으로 옮겨간다.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미를 기준으로 자신의 몸을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p.223)

나는 베스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여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주었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외적인 아름다움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물었다.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어요. 엄마는 옷을 찾거나 유행을 좇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거든요. 그런 엄마를 존중하는 ㅐ도나 엄마한테 외모의 기준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에서 아버지가 외모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베스 아버지의 행동은 "당신은 아름다워요"라는 메시지보다 훨씬 강력했던 것이다. (p.224-225)

아름다움에 무관심하려는 베스의 노력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녀에게 SNS를 하냐고 물었다. 베스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했다. "SNS에서 다른 여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나요?" 나는 물었다.
"제 친구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이것저것 바꿔요.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앱을 사용하죠. 저는 그런 걸 하지 않아요. 제 SNS 를 보여드릴게요. 저도 제 사진을 올리기는 해요. 하지만 제가 웃기게 나온 사진이나 제 성격이 드러나는 사진을 올려요." 베스가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SNS 사진을 둘러보고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환한 웃음과 바보 같은 표정이 가득한 사진이었다. (p.225)

머리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려는 청소년기와 20대에 접어들 무렵에는 화장을 했었다. "일을 시작할 때 ‘화장을 해야겠구나. 왜냐하면 프로답게 보여야 하니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화장을 조금 했죠. 그러다 화장이 지겨워졌고 그만뒀어요. 그러니까…그래요. 화장을 하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결정한다는 게 뭔지 알아요. 외모에 대한 규범의 일부를 어기는 거죠.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거 알아? 사람들은 내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일을 잘한다는 걸 알아. 그러니 그만해! 라고요." 그녀는 말했다.
머리나는 화장을 재미있어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화장은 예술이 되거나 개인적인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여성들은 자신을 결점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얼굴의 얼룩덜룩한 부분을 화장으로 감추지 않으면 창피해서 밖에 나가지 못하죠." 라고 했다. 그리고 "여성이 화장을 하는 데엔 수많은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저는 휘둘리지 않을 거예요." 라고 재차 강조했다. (p.242)

행복 연구가 에드 디너Ed Diener는 대학생 200명을 조사한 결과, 가장 행복한 학생이 평균 수준의 행복 지수를 보인 학생보다 반드시 매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신체적 매력은 전반적인 행복과는 낮은 상관관계를 보엿다. 그러나 이를 해석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보다 스스로를 신체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실 외모와 행복 간의 약하고 일관된 연관성은 일상생활에서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신체적 아름다움보다 더 강력한 행복의 예측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나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대할 때, 외모의 영향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은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당신을 파괴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마법의 총알이 아니다. (p.245)

우리가 우리 몸을 비하하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내 몸을 비하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된다. 부정적인 보디 토크는 여성이 항상 외모에 대해 걱정해야 하고 자신의 몸을 싫어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러나 우리의 말은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외모 강박적인 문화에 맞서는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는 외모에 대한 대화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외모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가장 좋은 것은 주제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는 매우 많다. 굳이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p.270-271)

대학을 졸업하고 2년이 지난 어느날 에이미는 세일 제품이 쌓여 있는 상점 앞을 지나게 됏다. 그녀는 100퍼센트 순면이라는 여성 속옷에 주목했다. 전환점이라 말하기에는 이상한 장소였지만 중요한 순간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다. 그리고 그날은 그녀가 성인이 되어서 직접 속옷을 사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종식을 고하는 날이 되었다. 그동안은 그녀의 어머니가 속옷을 사다 주셨다. "항상 잘못된 사이즈에 작고 불편한" 속옷이었다. 에이미는 순면 속옷을 두 장 구입했다. 그리고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그 순간의 즐거움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으로 저에게 맞는 커다란 할머니 속옷을 입었어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나는 그녀의 말에 희한하게 기쁜 마음이 들엇다.
"정말 좋았어요! 정말 편안했거든요. 그동안 속옷이 불편해서 내가 까칠하게 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속옷은 언제나 약간 작았어요. 하지만 그 검은색 할머니 팬티를 입었더니 정말 편안했어요." 에이미는 그날을 떠올리며 쓰러질 정도로 웃었다. (p.291-292)

"계속 그 옷을 입었나요?" 나는 물었다.
"와, 당연하죠." 에이미가 대답했다. "계속 입어요. 그건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거였어요. 제 몸을 받아들이는 행위였죠. 다시는 제게 맞지 않는 옷에 제 몸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을 거예요." (p.292)

해나는 음식을 적으로 보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녀는 "엄마는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어요. 엄마는 지나치게 말랐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의 모범을 보이셨죠. 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나는 가족들과 이 음식을 즐겁게 먹을 거야. 칼로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폭식도 하지 않으셨죠."
"음식을 즐겨도 된다고 배운 거군요?" 나는 물었다.
"맞아요."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엄마 덕분이에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음식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어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요."
"그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해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요리를 하고 빵을 구워서 사랑을 전하셨어요."
해나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은 만성적인 허기에 동반되는 감정적인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강화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진다. (p.302-303)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지닌 여성들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p.303)

해나는 성인이 되어 앞서 말한 그 캠프에서 상담사로 5년간 일했다. 그녀는 "여자애들이 계속 저를 찾아와서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질까요? 누군가가 저를 사랑하게 될까요?‘라고 물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주나요?" 나는 물었다.
"저는 ‘네 모습을 모두 살펴봐! 네 모든 면을 봐봐!라고 해요. 너 자신이 되라고 이야기하죠.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를 매력적이라고 느낄 땐 그의 본래 모습 자체에서 편안함을 느끼거든요." (p.314-315)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p.335)

대부분의 소녀에게는 옷을 차려입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학교 댄스파티에 가는 재미임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소녀들이 입은 드레스는 너무 짧아서 편안히 저녁을 먹을 수조차 없었다는 것을. 옷이 단 몇 센티미터만 길어져도 뇌 공간의 상당한 부분을 되찾을 수 있고 소녀들도 예뻐 보일 수 있다. 분명 행복한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 우리가 매력적이라 느기면서도 옷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지점 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우리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옷을 굳이 선택함으로써 더 많은 난관을 만들 필요는 없다. (p.338)

외모 강박적인 문화가 수천 번 할퀴고 지나간 작은 상처가 소녀나 여성을 무너뜨릴 수 있듯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수천 번의 작은 걸음이 소녀와 여성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여성의 외모에 집중하지 않는 자세를 갖추고 다른 이들도 이에 동참하도록 격려함으로써 의미 있는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대상화하는 행동이나 광고에 앞장서는 조직을 저지함으로써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자신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정의해야 한다. 우리의 돈과 시간을 다르게 써야 한다. 우리의 몸은 더 건강해져야 한다. 우울증과 분노가 흔한 것이 되어서도, 심각한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여성은 시선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저 럽은 세상에는 봐야 할 것이 아주 많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p.34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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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6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6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6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리브 2018-05-17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런 글이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어린 아가 키우는 중인데 아기 잠자는 시간에 다락방님 글 야금야금 보는 게 얼마나 큰 낙인지! 많이 읽고 또 많이 써보며 언젠가는 저도 다락방님처럼 저만의 글도 써보고 싶어융- 맨날 읽기만 하고 가다가 오늘은 흔적도 살짝 남겨요! 아줌마되고 살도 찌고 화장도 잘 안하게 되면서 괜히 주눅들도 마음 불편했는데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제 느낌의 실체? 를 파헤치고싶네요.ㅋㅋ

다락방 2018-05-17 10:22   좋아요 0 | URL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어마어마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그 사람에게 한결같이 날씬하고 예쁜 모습을 기대하고 바란다는 것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쵸? 왜 그 어마어마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변함없이 꾸밈노동에 몰두해야 하나요? 일단 몸을 추스리고 돌보는 게 먼저지요. 앞으로 아이랑 함께 지내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하는데, 괜한 죄책감으로 건강 해치지 마세요, 배유미님.

지금처럼 아가 잠든 시간에 읽고 싶은 글 읽고 생각도 하고 글도 쓰면서 그 날 그 날의 감정을 정리하고 돌보는 게 훨씬 유익할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도요. 그리고 앞으로 아가랑 함께할 날들을 생각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럽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요. 건강하자고, 행복하자고, 즐겁자고 하는 거니까요.


천천히 책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거예요.
그리고 배유미님께 읽는 재미를 드릴 수 있는 글을 쓴 제가 참 자랑스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흔적 남겨주셔서 더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종종 봬요!
 
[eBook] 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로맨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례인지, 어떤 식의 대화와 행동이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로맨스 소설이야말로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남자들은 사랑을 포르노로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로맨스 소설을 읽음으로써 좀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포르노 까지는 아니지만  '19금 성인영화'라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그 안에서 여자가 얼마나 성적대상화 되는지에 당황했었다. 그러니까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사랑을 느끼고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게 아니라, 여자는 애초에 성적대상일 뿐인거다. <옥수수>에만 들어가도 그런 영화가 널려있는데, 남자들...이런 영화 보면서 그동안 살았던건가... 여자를 성적대상화 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구나. 그 안에서 성적대상화 하지 않고 하나의 사람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겠어. 맙소사..



그래서 '주드 데브루'의 이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게 유감이었다. 물론 중반을 넘어서면 괜찮긴 하지만, 남자 주인공 '테이트'가 얼마나 매력적인 영화배우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자 주인공 '케이시'가 얼마나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여자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주드 데브루는 대부분의 여성을 다 골빈여자 취급해 버린다. 연극 <오만과 편견>의 여자주인공 오디션을 보는데, 상대인 테이트 앞에서 아무도 제대로 대사하지도, 연기하지도 못하고 그저 침만 흘리는 걸로 묘사하는 거다. 물론, 전문 배우들이 아니고 마을 주민들 중에서 뽑는 오디션이니 연기가 어설프고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야 당연하달 수 있지만, 어쩌면 다들 그렇게 남자 배우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게 만드는가. 여자들이란 잘생긴 남자 앞에서는 제대로 사고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의 여주인공 케이시가, 테이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케이시가, 편견으로 인해 테이트에게 매력을 1도 못느끼는 케이시가, 요리사이며 연기에는 관심이 1도 없던 케이시가, 우리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을 맡게 되면서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다. 너무..좀 너무하지 않냐...


너무도 전형적인 패턴이라서 나는 주드 데브루와 나 사이에 세대차이를 느꼈다. 로맨스 소설을 현대를 사는 여성이 현대를 보는 기준으로 써야할 필요를 느꼈다. 모든 여자들이 선망하는 남성을 나는 싫어하면서 생기는 로맨스라니. 게다가 그 남자는 잘생기고 섹시하고 인기도 많은데 돈도 캡 많어....


아무튼 연기나 연극에 대해 주드 데브루는 얼마나 알고 이걸 쓴걸까. 테이트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다아시를 미워하는 엘리자베스 역을 잘한다는 설정이라니, 좀 .. 너무하지 않냐...


게다가 하비 웨인스타인...이라니....





내가 로맨스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전형적인 패턴-환상적인 남주와 그를 심드렁하게 보는 여자-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어. 전형적인 패턴보다 더 싫은 건, '특별한 여자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다른 여자들을 모두 똥멍청이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이러지 마세요, 진짜...



아마도 그간 로맨스 소설을 줄기차게 써온 작가인지라 이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세대차이를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그저 나쁜 로맨스 소설이었냐 하면 그건 그렇지가 않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만과 편견>소설 속에서 미성년자와 성인 남자가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장면이 있었는가 본데, 그 장면에 대해 현대적 연극에서 재해석을 한다. 미성년자를 꼬이는 건 범죄이며, 그것이 그 당시 미성년자의 '선택'이었다 해도 결코 여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 이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주드 데브루는 '여자'와 '남자'의 성역할이 있는 것처럼 시종일관 얘기하지만, 어떤 것이 나쁘고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를 헷갈리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케이시 스스로가 말한 이 뜨거운 여름의 불장난에 대해, 케이시가 느끼고 결심하고 선택하는 것들이 와닿는다. 한 남자에 대해 오해를 하고 그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에게 처음부터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의 말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를 판단했던 것, 거기에 이른 후회까지. 또한, 자신이 그에게 정식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저 이 여름의 불장난으로 취급되어질까봐 걱정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까지. 한 사람에게 '당당한 옆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거라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갈등까지. 사랑에 빠지고 내가 그에게 '내가 생각하는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는 건 대부분 다 겪어보는 감정의 흐름이 아닌가. 또한, '상처받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자존감 높은 사람이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나' 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나' 하는 것까지, 연애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맞닥뜨리는 감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과 연애의 시작에 있어서 디테일을 아주 잘 살렸다고 생각한 건, 케이시와 사랑에 빠지게 된 '테이트'의 생각 때문이었는데, 테이트가 케이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건,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과 웃음 포인트가 같았다는 데 있었다. 자신이 웃는 부분에서 케이시도 웃는다는 것. 나는 이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그걸 표현해준 작가도 좋았고. 또한 육체적으로 어마어마한 성적 매력을 서로 풍기도 또 성관계도 만족했던 그들인데, 케이시가 그 육체적 결합도 좋지만, 대화를 나눈 후에 관계가 더 단단하고 안정적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점들도 좋았고.



나 역시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연애를 시작하면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는 건, 대화가 아닌 다른 것들이어도 가능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하다. 어떤 모습에도 사랑에 빠지다가 질려버릴 수 있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데에야 뭐 버릴 게 없다. 나는 사람이란 본디 외로운 존재라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외로운 영혼을 달래주고 채워줄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혼자인 게 편한 사람도 있고 또 혼자인 게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랑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런 사람을 얻기란 너무나 힘든 법이고, 그렇기 때문에 만났다면 그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뿐만 아니라 상대 역시도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 여길 수 있다. 쭉쭉빵빵하거나 근육이 불룩불룩한 몸을 최우선으로 칠 수도 있고,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최우선으로 칠 수도 있다. 이성을 볼 때 돈을 가장 먼저 볼 수도 있고, 얼굴을 가장 먼저 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맞춤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상대를 만났어도, 시간이 흐르면 헤어지게 되는 이유는 결국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이다. 여기에서 대화라는 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어도, 어느 방향을 어떻게, 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로에게 말하고 또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나중엔 엄청 열중해서 읽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 그래서 상처 받을까 두려운 마음,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상황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내것 같아서 엄청 열중해서 읽었어.


이래서 로맨스 소설을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 어느 부분에서 여자가 혹은 남자가 괴로운지, 어떤 지점들에서 사랑하는 상대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지또 행복해 하는지를 이런 식으로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집중하는 건 육체와 육체로 맺는 관계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내밀하고 더 친밀한 무엇이 있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니까. 심지어 툭하면 팬티를 찢어버리던, '크리스티나 로런'의 《잘생긴 개자식》에서도, '이야기를 나누니까 참 좋다'고 말한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우리를 얼마나 가깝게 이어주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케이시가 이 여름의 불장난으로 상처 받지 않게 되어서 나는 너무 좋으다...

그래, 당신이라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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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5-0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북 활용 잘 하고 계시군요. 저도, 요즘 이북 시즌^^
사랑과 연애의 시작을 아주 잘 그려낸 소설이라고 칭찬하시니, 이 책도 제 스타일이예요.
전, 연애의 꽃은 썸이라고 생각하는 1인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5-08 11:20   좋아요 0 | URL
이북은 밑줄긋기가 연동이 되어서 세상 편합니다.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이 처음에 여자들을 멍청하다고 후려치기 해서 짜증이 났지만, 막판에 상처받기 싫은 마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거라는 두려운 마음을 잘 그려내서, 그 부분에서는 공감이 많이 됐어요. 사랑은 너무 어렵고, 해도 해도 계속 모르는 게 나오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사랑에 대해서도 계속 공부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어쨌든 이북 만세! ㅋㅋㅋㅋㅋ
 
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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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나는 여러가지로 의욕을 상실해서 축 늘어져 있었다. 젖은 휴지처럼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 있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달이 다 되어가던 즈음. '아 이대로는 안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바닥을 기고 있는 내 자신이 못마땅했는데, 도무지 의욕을 살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이러다가는 더, 더 바닥으로 내려가겠다 싶어 해결방벙을 찾아낸 게 운동이었다.


그간 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헬쓰장에도 등록해 다녔었고 기체조에도 등록해 다녔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가지 않을 핑계들을 수십개씩 만들어 가지 않았고, 가서도 열심히 운동한다기 보다는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와서는 '운동을 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집에서 운동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3년쯤 전이었나,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집에서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그 때 내 몸의 변화는 그전에 다녔던 헬쓰장이나 기체조보다 더 보기 좋게 찾아왔었다. 그러나 홈트는 오래가지 못했고, 내 몸은 다시 제멋대로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작년 5월, 도무지 집에서 운동할 의욕도 생기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을 받자'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상한 고집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운동하고 싶진 않았는데, 할거면 혼자 제대로 해야지!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작년 이맘때는 나 혼자서 아무것도 시작할 수도 없었던 거다. 그래, 이럴 때는 도움을 받는거야. 그렇게 생각한 게 개인피티였고 요가였다. 둘 중 어떤 걸 할까 고민하는데 내 고민에 어떤 친구는 피티를 하라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요가를 하라고 했다. 어쩔까, 생각하다가, 나는 지금 마음도 시끄러우니(이별을 했고, 선거 결과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가만한 명상으로 나를 다스리자, 로 결론을 내리게 됐고, 그래서 나는 '가만한 명상'을 하기 위해 요가에 등록했다. 마음을 먼저 다스리고 나야 의욕이 생길테고 그래야 몸을 움직일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한 거다. 아, 얼마나 나는 요가에 대해 무지했던가!



그렇게 요가에 등록하고 제일 처음 들어간 수업은 '빈야사' 시간이었다. 양반다리 하고 손을 합장하고 조용한 음악에 맞춰 흐음~ 하며 명상하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강도높은 근육운동에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아니, 사실은 그 강도 높은 근육운동에 놀랐다기 보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비루한 육체에 당황했다는 게 더 정확할테다. 내 몸은 쭉 펴는 것도 접는 것도 하지 못했고 균형 잡는 데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간 나는 내 몸이 남들보다 유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요가를 시작하면서도 '회원님은 요가가 처음이라면서 엄청 잘하시는데요?!'라는 말을 들을거라고 당연히 기대한 거다. 그러나 내 몸은 한 쪽 다리로 서라고 하면 피식피식 쓰러졌고, 조금이라도 힘든 동작을 하면 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빨개졌고 온 몸에 열이 올랐으며, 트위스트 동작들을 할 때마다 허리가 요란하게 울어댔고, 심지어 런지 자세에서도 버티지 못했다. 빈야사 시간에 가장 기본적인 동작인 다운독은 어찌나 힘들던지, 빈야사로 한 시간 동안 요가를 하고난 뒤의 나는 곧 쓰러질 것 처럼 되었고, 내 옆에서 운동하시던 분은 그 때 나를 보며 '처음부터 힘든 수업 들으셨네' 하셨다. 아, 이게 유독 힘든거였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다른 수업이라고 쉽지 않았다. 온도를 높여놓고 하는 비크람 수업 시간을 맞닥뜨리고서는 다음날이 토요일이기에 망정이지,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펠비스는 골반 운동인데, 이건 숫제 눈물을 참아야 했다. '요가 그거 그냥 스트레칭이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요가의 y 도 모르는 거'라고 대꾸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근육통이 무언지 경험해본 적이 많았지만, 요가를 시작하고난 뒤의 근육통은 그간 내가 알아온 근육통과는 차원이 달랐다. 허벅지 근육통 배 근육통 따위가 아니었다. 이건 '온 몸의 근육통' 이었다. 나는 온 몸이 동시에 근육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요가를 시작하고 얼마동안은, 요가를 마치고 집에 와 미친듯이 밥을 먹어야 했다. 밥을 많이 먹어야 했어. 안그러면 버틸 수가 없었지.



이 책, 《아무튼, 피트니스》의 '류은숙'은 비만한 몸을 갖고 있었고 육체적으로 위험신호가 와 피티를 받게 된다. 그전에 류은숙도 나처럼 헬쓰장에 설렁설렁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자기가 피티를 받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었던 류은숙은 피티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나이 오십이 다 된 시점에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거다. 남들이 보기에 있어보이는 멋진 근육운동을 하고 싶지만, 그걸 하기에 앞서 일단 자기 몸을 그렇게 운동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게 먼저였고, 그렇게 처음에는 팔벌려 뛰기부터 시작해서 기초적인 동작들을 해 나간다. 피티는 결코 싼 가격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몸을 만들기에 또 그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비싼 금액도 아니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돈을 주고...'라고 말하지만, 하는 사람들은 '이 돈을 주고 해야했다'. 나에게 요가도 그랬다. 3개월을 등록하면서 아아, 이 돈이면...하는 생각을 안한 게 아니었지만, 필요하므로 나는 카드를 건넸다. 그렇게 나의 요가가 시작됐고 류은숙의 헬쓰가 시작됐다.



기초적인 동작들을 만들고 피티와 대화를 하면서 운동에 점점 재미를 붙여가는 류은숙은, 데드 리프트를 몇 번의 실패끝에 성공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가슴운동을 하면서는 큰 해방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엄마는 늘 나에게 여자애가 왜 그렇게 가슴을 떡 젖히고 다니느냐며, '얌전하게 숙이고 다녀!'라고 타박했다. 얌전하지 못하다는 말, 몸가짐이 조심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영 싫었다. 가슴을 마음껏 젖힐 수 있다는 해방감, 내가 체스트프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다.

체스트프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내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체스트프레스를 하면서 '힘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그 말이 그러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같은 힘을 쓰더라도 무거운 바벨을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데드리프트와 누워서 번쩍 밀어 올리는 체스트프레스는 그 기분이 다르다.

체스트프레스를 하다 보면 하늘을 떠받친 헤라클레스가 된 느낌이다. (p.58)



'체스트프레스'라는 용어는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단어일테다. 그러나 운동을 시작하고 도전한 이상 내가 도전하게 되는 바로 그 자세이기도 하다. 류은숙은 체스트프레스를 하면서 힘 좋다는 말을 듣게 되고 그것이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운동을 반복할수록 힘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고 균형이 잡히는 것 역시 당연할 터. 내가 무언가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해내고 그래서 어떤 성과를 눈 앞에서 보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일인가!



나는 여중,여고,여대를 다녔고, 중학교 시절에는 '무용'시간이 있었다. 무용 쌤은 발레 전공이었고, 우리에게 기본적 발레 자세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 때 나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나비자세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허리를 숙여 손바닥이 발에 닿는 것은 어렵지가 않아서, 나는 내 몸이 유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야 내 몸은 전혀 유연하지 않고 굉장히 많이 굳어 있으며 신체 부위 하나하나 모두 힘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팔과 다리힘은 물론이요 특히나 코어의 힘은 전무한 실정. 코어에 힘이 없으면 요가의 모든 자세를 해내기가 힘이 든다. 나무자세를 못하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절망했는지. 어떻게 이게 안될수가 있지? 이거 너무 쉬워보이는데?


나보다 5년먼저 요가를 시작해 계속 하고 있던 여동생은 우리집에 올때면 이제 요가에 관심 갖기 시작한 내게 이 동작 저 동작을 알려주는데, 내가 너무 다 못하는 걸 보고 '이것도 안돼?' 하고 놀랐더랬다. 되는 게 없는 나였던 거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나, 내가 나무자세에 버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와- 하니까 됐어, 오래 걸렸지만 나 이제 나무자세 버텨!! 하고 놀랬다가, 몇 주전에는 드디어 요가를 시작한지 10개월만에 '이지 바카사나'에 성공하게 됐다. 두 팔에 무릎을 기대고 지탱해 발을 바닥에서 떼네는 건데, 발이든 엉덩이든 바닥에서 떼내는 동작을 도전할 때마다 나는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겸손을 알고 내 육체의 비루함을 인정하게 된 나는, 이런 게 될 리 없다는 생각을 했고, 도전할 때마다 열심히 시도해보지만, 내 발이, 내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운지만 깨달을 뿐이었다. 내 발과 엉덩이는 땅에서 아주 강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고 있어서 절대 떨어지질 않아... 그러나 몇 주전에 또다시 수업 중에 바카사나에 도전하는데, 정식 바카사나는 아니지만 그 전에 해보게 된 이지 바카사나(까마귀 자세)에서, 어어? 나 들릴 것 같은데? 라는 느낌이 들더니, 옆에 쌤이 와서 지켜봐주는데, 어라? 다리가 들리는 거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들렸어. 쌤이 옆에서 보면서 머리를 바닥에 대라고 말해 머리를 바닥에 댔더니 발이 공중에 떠있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



된다!

된다!

나 바카사나가 된다!!



아직 정식 바카사나는 못하겠지만 이지 바카사나가 됐다는 기쁨에 나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선생님을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나 무거웠던 내 발이 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건 어마어마한 희열이었다. 세상에 소리쳐 말하고 싶었다. 그리도 아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구오구 우쭈쭈 부둥부둥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요가 센터 안에서 조용히, 혼자, 속으로 기뻐할 뿐이었다.



유명한 언덕이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비싼 전차비까지 내고 올라갔더니만, 동네 뒷산에서 보이는 경관만 못했다. 꽃구경도 못 갔다며 한탄하던 어느 날에는 잠깐 짬을 내 산책하다가 뒷산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며 '이렇게 지척에 장관을 놔두고 무슨 꽃구경?' 했던 적도 있다. 내 몸에 필요한 건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것 같은 빡센 운동, 그리고 그 성취감이 아니라 뒷산을 실실 마실하듯 몸을 길들이는 운동, 그리고 그 호젓한 변화가 아닐까. (p.76)



'샘, 그녀들을 모델로 삼으면 나는 운동을 할 수가 없다고요. 나는 전교1등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는 그런 학생이 되고 싶은 거라고요. 몸짱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오후 돼도 처지지 않고, 아침부터 천근만근이지 않고, 좋아하는 술 계속 마실 수 있고, 친구가 푸념하고 고민을 털어 놓을 때 귀찮아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체력을 원하는 거라고요.' (p.113-114)



류은숙이 원하는 건 전교1등이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 운동으로 대단한 무언가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데 더 편하고 싶다는 거다. 기초체력을 탄탄하게 만들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한다. 류은숙도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피티로부터 금주에 대해서도 많이 권유 받았다고 하는데, 나 역시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앞으로도 계속 술을 마시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건강이 필수일테다. 또한 나는 요가쌤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이 몸이 앞으로 백년을 요가한다 한들 요가쌤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내 몸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피로한 어느 날, 몸이 찌뿌둥한 어느 날 자연스레 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요가를 내 일상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은 일 주일에 고작 2-3회 가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이렇게 계속 시간이 쌓이다보면 요가가 내 습관이 되지 않을까. 요가를 하고 나서는 일상에서 이 동작 저 동작을 한 번씩 해보곤 한다. 가장 손쉽게는 손가락을 깍지 껴서 하늘로 쭉 뻗거나 등을 숙여 깍지 낀 손을 올리는 일 같은 것. 요가를 알기 전에는 할 생각도 없었던, 아주 사소한 동작들.



또한 나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 이지 바카사나에 성공했다면 이제는 그냥 바카사나에도 성공하고 싶다. 아직도 내 다리와 엉덩이는 너무 무거워서 좀처럼 바닥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하지만, 그래도 계속 도전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떨어지지 않을까.


류은숙은 운동을 지속하면서 비만에서 과체중이 되었지만, 여전히 날씬한 몸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도 요가를 일 년 가까이 해왔지만 '놀랍게도 살이 쫙쫙 빠졌어요!'하는 극적인 변화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작하기 전의 나와 시작하고 난 후의 내 모습은 육체적으로 사실 변화가 없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요가 자체만으로는 살이 빠지질 않는다. 내가 요가를 하면서 뭔가 먹는 걸 거시기하게 조절한다면, 술을 끊는다면 극적인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내가 운동을 시작한 목적이 어떤 극적인 몸의 변화를 바라서는 아니었다. 나는 의욕없는 내 자신을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리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고 또 아는 만큼 생각하기 마련이다. 인권운동을 업으로 삼았던 류은숙은 피티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운동을 하찮게 여겼던 시간들을 반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운동으로 인해 긍적적으로 변화된 자신의 몸을 증거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나에게 좋았던 것이 남들에게도 다 좋으리란 법은 없으니, 자신의 것을 찾으라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운동은 했으면 좋게다는 것.



나는 여기가 아닌 내 개인 블로그에 자주 요가일기를 쓴다. 한 친구는 내게 '요가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계속 하다니 신기하다'고 했다. 정말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요가를 하고나면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쏟아져나와서 막 털어놓고 싶어진다. 나는 친구들에게 '요가를 하라'고 권유한 건 아니지만, 내 일기를 읽던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요가를 시작했다. 한 친구는 요가를 시작하고나서 자신의 인생 운동을 찾았다고 했고, 자기가 삶에서 기대하는 건 요즘 요가 밖에 없다고도 했다. 다른 친구도 며칠전 요가를 하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 했고, 또다른 친구는 요가를 등록하지 않은 상태로 요가매트만 일단 주문했다고 했다. 외적으로 변한 건 없지만 이제 나무자세와 바카사나 자세가 조금 되는 내 코어의 힘이 느껴지고, 이 느껴짐이 외부로도 전달됐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보였던 게 아닐까 싶다.



무기력은 변덕스런 날씨처럼 고개를 치켜든다. 갑작스런 비처럼, 거짓말 같은 활짝 갬처럼, 기력과 기분은 시소를 탄다. 다른 일이 꼬였는데 운동만 잘하는 건 불가능하다. 생활의 힘이 골고루 안배되어야 운동도 해나갈 수 있다.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눈 뜨면 이부터 닦는 일, 잘 씻고 갖춰 입는 일, 아무리 재촉하는 일이 있어도 제때 끼니와 잠을 챙기는 일, 이런 걸 유지해야 운동을 해 나갈 힘이 생긴다. (p.121)



내가 운동을 열심히 병행하는 삶을 살면 건강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다고 병이나 장애가 없을 것이라 확실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느 쪽 길에 들어서건, 그 길마다 나름의 삶이 있을 것이다. (p.151)



내가 바닥에 있는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고, 그 요가가 분명 그런 상태의 나를 지상으로 데려다놓기까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게 무기력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로 어제도 그리고 금요일에도 무기력이 나를 갑자기 찾아들어 나는 다시 바닥으로 끌어내려졌다.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혼자 울고, 어제는 침대에 누워 울었다. 내가 요가를 하는 삶을 살게 됐다고 해서 매일매일이 해피하고 건강한 일상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울함도 찾아들도 무기력함도 찾아든다. 내가 어느 시점에 균형을 잃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나는 균형을 잡지 못했고, 그래서 무기력이 나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나 건강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도 역시 사실이다. 생리때가 되면 종아리가 뻐근해서 맛사지기 까지 사다두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는 생리전의 그 다리 뻐근함이 거의 찾아들지 않는다. 아직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무기력까지 컨트럴 할 순 없지만, 아무튼, 요가가, 요가 전의 나보다 더 활력 있는 삶을 살게 해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이 운동에 대해 나와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가, 또 운동을 경험하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다. 우리가 비록 선택한 운동은 다르지만, 그녀가 겪었던 일들과 그 감정들이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앞으로 운동을 해나갈 생각이나 다짐에 대한 것도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동안의 내 요가라이프를 다시 되돌아보는 데 도움이 됐으며 또 앞으로의 요가 라이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됐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의 운동기라 그런지, 운동을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같이 적어놓은 게 내게는 큰 즐거움을 줬다. 나 역시 운동을 하면서 단순히 몸의 움직임보다는, 그것들이 가져오는 다른 생각들과 감정들을 충실히 생각해내는 편이라 유독 반가웠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겠지만 요가하는 삶을 살고 싶다. 매일 빡세게 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일주일에 두 세번이 고작이라도, 꾸준히 하고 싶다. 어느 날에는 바카사나를 성공하고 어느 날에는 나바사나에서 오래 버티기가 가능해지길 희망한다. (지금은 부들부들 떨기만 하지 버티지를 못한다). 그리고 사실은 꿈이 있다. 마흔 다섯쯤이 되었을 때, 머리서기가 가능해지는 것. 이것은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어느 외국의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비키니를 입고 머리서기를 해서 인증사진을 찍고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마흔 다섯에는 꼭, 그랬으면 좋겠다. 가급적이면 마흔 다섯까지는 그게 됐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것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은 다리랑 엉덩이 너무 무거워 쌤이 도와줘도 못하고 있지만, 같은 센터에 다니는 나보다 훌쩍 나이 많으신 분이 머리 서기에 성공하는 걸 지난 주에 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능할거야 , 어쩌면 나도!



요가를 한다는 건 그전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하나 늘려갔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요가를 하는 사람, 요가를 아는 사람과 또 요가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요가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대화할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달까. 물론 이미 요가를 잘하는(여동생과 칠봉이가 내 주변에서 요가를 전문가처럼 잘해낸다) 사람들과 하는 대화도 즐겁지만, 요가를 모르는 사람들과 요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즐겁다. 류은숙의 사무실에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요즘 류은숙은 운동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하는데, 나 역시 요가에 대한 얘기를 요즘 자주 하게 된다. 요가 얘기를 하면서 또 실제로 요가를 하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내고 싶다. 도전이라는 말에 설레어 하면서 그 도전에 성공해내고 싶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나바사나를, 머리서기를 할 수 있게 되겠지.



책 뒤에는 <여성, 중년, 비혼, 비만, 활동가>라고 저자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활동가'만 빼면 모두 다 내 얘기다. 내 삶과 다르지 않아.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었지만, 여성이 아니어도 중년이 아니어도, 비혼과 비만이 아니어도 이 책은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운동의 의욕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작과 진행중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담인데, 이 부분에서 완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한번은, 여느 때처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소설을 읽는 중이었다. 소설에 너무나 뭉클한 장면이 나왔다. 슬픈 건 아니었다. 너무 감동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헬스장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우는 여자라니, 눈물을 흘리면서도 내 모습이 너무 괴기스러워 보일 것만 같았다. 운동 시간을 채 다 채우지 못했지만, 그날은 황급히 자전거에서 내려 샤워실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p.83)



몇 년 전 나도, 집에 있는 헬쓰용 자전거를 타면서 소설을 집중해 읽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 때 내가 자전거 위에서 애를 태우며 읽었던 소설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일곱 번째 파도》였다.



팔 운동은 그런 뽀빠이 만화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 지루한 반복의 지겨운 연속이다. 게다가 근육을 단련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이 운동을 거르지 않고 자주 해줘야 한다. 그 지루함을 버텨야 모찌모찌가 알통이 되고, 힘주면 단단해지는 근육이 된다. 공부 또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기까지 기나긴 지루함의 시간을 견디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역, 니은, 디귿, a, b, c, 한 자 한 자 익혀서 단어를 이해하고 문장을 만들고 어려운 텍스트를 술술 읽고 판단하고 재구성할 수 있게 되기까지, 지난한 기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팔운동을 하다 보니 내가 평생 공부를 해온 느낌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여겨졌다. (p.68)

게다가 운동의 과정마다 나는 땀 냄새가 다르다. 워밍업을 할 때는 송글송글 맺히고 샴푸 냄새 같은 게 난다. 본 운동을 할 때는 땀이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그 땀에선 간밤에 내가 먹은 것들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정리 운동을 할 때는 땀이 식어가는 쉰내를 맡아야 한다. 이 쉰내를 맡기가 그렇게 싫다. 쉰내를 맡는 대신 내 몸의 땀 냄새를 얼른 지우고 싶어 정리 운동을 건너뛰고 샤워실로 돌진한다. 하도 안하니 나이스는(피티쌤 별칭)정리 운동 하고 나서 검사 받고 가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p.73)

삶이 지루하다고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도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p.81)

어느 날부터 나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습관처럼 운동을 권하기 시작했다. 일단 해보니까 좋다, 이 좋은 기분을 너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말문을 연다. 하나둘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어느 때부턴가 동료들은 나를 ‘운동 전도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꼭 나처럼 피트니스를 하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내가 해서 좋다고 해서, 내가 해서 효과를 봤다고 해서 타인에게도 맞는 건 아니다. 자기 상황과 취향에 따라 맞는 건 제각각이다. 나에게 피트니스가 여러 면에서 적합했을 뿐이다. (p.117)

내 전도의 요지는 일단은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라는 것이다. 제대로 시작해보겠다고 미루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그냥‘ 시작하라고 한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일들을 좀 끝내고 나면, 이것 좀 마쳐놓고 저것 좀 마련해놓고 나면, 이런 식으로라면 ‘그날‘은 오지 않는다.
어디 운동뿐이겠는가. 「인권 정책 마련 지침」같은 데서 권고하는 사항이 있다. ‘큰 사건이 생기기 전, 평화 시에 정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큰 사건이 일어나고 관련자들이 모두 격앙된 상황에서는 공통의 약속을 만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기나 재난이 일어나기 전 차분한 상태에서 미리 약속을 만들어두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해보니 운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몸과 정신에 큰일이 닥치기 전에,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될 때에, 찬찬히 자기와의 약속을 만들어야 지킬 수 있는 차분한 약속을 만들고 몸에 새길 수 있다. (p.118-119)

세상의 잣대가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을 체력장이 가르쳐줬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 몸을 계발하고 몸에 대해 알아갈수록 다양한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생각 없이 몸에만 신경 쓰는 이들이라고 폄하했던 사람들이 실은 최선을 다해 자기를 다듬고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그렇든 아니든 저마다의 사연과 내력이 있을 테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 그런 것들을 체육관에서 배웠다. (p.134-135)

나이스는 피트니스를 군대에서 배우고 시작했다고 한다. 군대에선 축구가 최고 아니냐 했더니 자기는 축구가 질색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축구도 떼로 하는 것이다. 집단생활에서 잠시나마 떨어져 나와 구석진 체육관에서 나이스는 혼자 묵묵히 시간을 죽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면서 자기의 살아있음을 찾는 반전이 ‘군대 헬스‘에 있지 않았을까? (p.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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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4-23 10:52   좋아요 0 | URL
후훗. 술렁술렁 잘도 넘어갑니다. 읽어보세요! >.<

유부만두 2018-04-23 10:53   좋아요 0 | URL
운동까지 가야죠 ㅋㅋ

유부만두 2018-04-23 11:00   좋아요 0 | URL
주문완료.

다락방 2018-04-23 11:02   좋아요 0 | URL
오오, 주문도 하셨으니 읽으시고 이제 운동도 가시고!! 후훗.

유부만두 2018-04-23 11:07   좋아요 0 | URL
그래야죠. 아무튼 택시 읽고 택시도 탔었으니까요.

감은빛 2018-04-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참 좋았지만, 다락방님 글이 훨씬 더 좋네요.

다락방 2018-04-23 11:0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운동 얘기인지라 감은빛님 요즘도 운동 열심히 하시나 생각했는데 이미 읽으셨군요! 데드리프트는 당연히 하실테고, 체스트프레스도 하십니까? 흐흐흐

별족 2018-04-2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179110, 왜 갑자기 이 책을 권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으나, 이미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으나.

다락방 2018-04-23 16:36   좋아요 1 | URL
이미 읽다뇨 ㅋㅋㅋㅋㅋㅋㅋㅋ 보기도 처음 보는 책입니다.
근데 쪽수가 어마어마하네요. 일단 보관함에 넣습니다. 슝-

moonnight 2018-04-2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운동과 안 친해도 너무 안 친한 저주받은 몸ㅠㅠ;

다락방 2018-04-23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운동하고 딱히 친한 몸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가만 있는 것도 뭐랄까 불편해 하는 사람이라서 뭔가 항상 꼼지락거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문나잇님, 일단 이 책을 읽어보십쇼! 으하하하핫. 운동에 뽐뿌질을 할 지도 모릅니다.

비연 2018-04-2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 좋아요 ㅎㅎ 예전에 했었는데.. 예전에 예전에 ㅜㅜ 정말 이게 내 몸인가 싶을 정도로 좋아졌었죠.
가끔 발리나 이런 데 가서 매일매일 요가만 하며 지내면 어떨까 싶어요.

다락방 2018-04-23 16:38   좋아요 0 | URL
저도 요가를 하고나니까 동남아가 더 좋아지면서(응?) 동남아에 집 마련해서 거기서 요가쌤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제 몸이 얼마나 비루한지 깨달으면서 요가쌤은 어림도 없다...그저 휴가때 휴양지에 가서 머리서기를 해보자!! 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저도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비연님. 그런데 현실은.... 인생....삶...............Orz

비연 2018-04-23 21:51   좋아요 0 | URL
저도, 저도... 그런 여유로운 삶... ㅠㅠㅠㅠ 언제쯤 그런 날이 오려나요 으헝 ㅜ

단발머리 2018-04-2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워낙 운동과 담쌓고 사는 사람인지라, 정확히는 운동과 적대적인 삶을 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운동에 대한 전도와 간증 들은 것들 중, 다락방님 오늘 페이퍼가 최고예요.
다락방님 말씀하신 자세들... 사실 뭔지 모르지만 비키니 머리서기 사진은 진짜 완전 기대되네요~~~~~~~~~~~~~
요가매트 꺼내서 닦아야겠어요^^

다락방 2018-04-23 16:39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최고라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일전에 누구더라..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나는..질리안...이었나... 그 분의 운동 DVD 리뷰를 썼을 때도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죠.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 DVD 를 검색하고 제 리뷰에 힘입어 구매하고...

지금 그 DVD 가 어디있는지 제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비키니 머리서기 사진은 마흔다섯살 때까지 꼭!! 찍어서 보내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주 마시려고 했는데 요가가야겠어요. 오늘이 바로 그 빈야사 시간입니다. 우하하하핫. 아자!!

책읽는나무 2018-04-2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멋집니다.
마흔다섯에 비키니 입고 해변가에서 물구나무 서기 요가자세란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운동 한다는 것 자체가 멋집니다^^
작년 효리민박편에서 이효리가 해변가에서 요가하던 탄탄한 몸매에 정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바라봤었는데...운동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해봤지 목표로 삼을 생각은 감히 해보질 못했거든요!

요가매트를 늘 거실에 펼쳐만 놓구선 요가수업은 듣지 않고 있는데~~다락방님의 페이퍼는 무척 고무적입니다.요가 열심히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요즘 몸 여기저기 말썽인 곳이 많아져 운동의 시급함을 느끼곤 하는데 운동을 시작하는게 참 쉽지 않아요.
저도 이제 1년밖에 안남았겠지만 마흔다섯이 된다면 팔,다리에 근육이 예쁘게 붙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어요.이걸 목표로 삼아 볼까,싶네요^^

다락방 2018-04-24 09:50   좋아요 0 | URL
제 여동생이 지금 햇수로 6년차거든요. 요가요. 동생은 요가 덕분에 몸도 탄탄해지고 유연해지고 힘도 좋아지고 근육도 붙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운동했구나‘를 알아보는 몸이 되었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요가는 하지만 ... 늘 잘 먹고 잘 마시고 다녀가지고, 누가 봐도 운동하는 걸로는 안보일거예요. 하하. 그래서 ‘마흔다섯에 비키니입고 이국의 해변에서 머리서기‘라는 구체적 목표가 과연 실현이 될런지...라고 ㅠㅠ 저초자도 저를 의심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번 해볼랍니다. 해보자, 해보는거야!! 제가 하게 되면 이 공간에 인증하겠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상상만해도 넘나 멋지지요? 정말 그렇게 되어야할텐데....


요가쌤들 너무 멋지고 근사한게요, 몸에 근육이 있어요. 막 우락부락하진 않지만 작은 근육들이 팔에 붙어있는 걸 보면 세상 근사하더라고요. 요가 자세를 이미 알고 있다면 집에서 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요가 센터로 가서 직접 수업을 듣는 걸 추천합니다. 아무래도 처음에 바른자세 잡는 데 많이 도움이 되니까요. 히히. 책나무님, 우리 건강하게 지내요! 그래서 저는 머리서기 성공하고 책나무님은 팔,다리에 예쁜 근육 붙게합시다!!!

transient-guest 2018-04-24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이든 오래 꾸준히, 그리고 다양한 운동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먹는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ㅎ 요가는 생각보다 꾸준하지 못해서 이제 겨우 두 번 했네요. 이번 주에는 좀더 분발해볼 생각입니다. 근데 확실히 학원만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는 않고 그냥 좋은 운동을 하는 기분입니다. 근데 요가를 하는 아침이 참 다른게, 매우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하루의 시작을 맞게 됩니다. 기분이 묘해요. 이거 좋아하게 되면 아마 제대로 배울 곳을 찾아야 할텐데, 아직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쓸 요가매트를 하나 샀다는 정도...

다락방 2018-04-24 09:53   좋아요 1 | URL
저는 뭔가 막 새롭게 배워보는 타입은 아니라서요. 아마도 앞으로 다양한 운동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이미 시작한 요가에 대해서라면 좀 성실히, 꾸준히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가에 있어서라면 오래하고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되고싶어요. 물론 아무리 그래도 요가쌤은 될 수 없는 비루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요....

저희 센터가 토요일 오전에 수업이 있거든요. 평일 저녁의 수업도 좋지만 저는 이 토요일 오전의 수업이 특히 더 좋더라고요. 환한 오전에 몸을 한껏 움직이고 땀을 내고 그리고 사바사나 휴식자세를 취하면, 와, 행복하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거예요. 그래서 가급적 토요일 오전 요가는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랍니다. 아마도 이 느낌을 트랜님도 요가를 하는 아침에 받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요가를 시작하고나서....제대로된 매트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sj1309 2018-04-2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가를 하고 있거든요. 제가 하면서 느꼈던게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신기하고 그래요 ㅎㅎ 개인 블로그에 있는 요가 관련 글도 볼 수 있을까요? 많이 궁금하거든요^^

2018-04-30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4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5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dialtone 2018-06-0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한 사람이 요가 시작했는데 어쩜 똑같은 여정을 걷는 걸까요. 쓸만한 매트를 하나 더 산것까지...친한 사람의 내면을 더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우개 똥 쪼물이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부문 우수상 수상작 신나는 책읽기 51
조규영 지음, 안경미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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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먼저 읽었는데 등장하는 아이들의 나이가 조카의 나이와 같아서 '좋구나' 했다가, 읽다보니 이야기가 산만하고 재미도 없고..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아이라면, 내 조카라면 나랑 다르게 볼 수 있는걸까? 혼란스러워서 망설이다가 줬는데, 내가 잘한건지 아닌건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재미있으려면 어른에게도 재미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했다가, 아이는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볼 수도 있지 않나..싶다가...혼란하다... 아이에게 독서 안내자가 되고 싶긴 하지만, 좋고 나쁨을 내가 판단해서 알려주는 것은 오히려 더 강압적인 게 아닌가 싶고. 나는 뭔가 정신 사납고 재미없게 읽긴 했지만, 읽으면서 내내 '이게 좋은 책인가??' 하고 갸웃했지만, 창비에서 우수상 받은 작품이라니, 어쩌면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 책은 좋은 책일 수도???


아이 엄마가 그 무슨 전집을 사줘서 조카가 보고 있는데, 사실 나는 전집도 읽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전집 보다는 요즘 나오는 어린이용 도서를 새롭게 많이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새로운 책이 나오고 눈에 띄면 사서 주는 편인데(이번에 백희나 신간도 같이 사줌), 음... 잘 모르겠다. 나에겐 어린이 도서를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서....  조카가 조카 나름의 재미를 이 책안에서 찾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바라는 건 무책임한걸까? 아 모르겠다.



혼란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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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8-04-1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해 전부터 아이들 책을 사주고 있는데요(전에는 와잎이 전집류를)
간혹 저의 기대와 다른 책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저와 다를 거라는 생각에 어린이책을 공부해 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18-04-16 10:24   좋아요 1 | URL
아이를 존중하고 판단을 역시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서도 자꾸 ‘이 책은 재미없지 않을까?‘ 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이게 잘하는건지 못하는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보다 더 많이, 부지런히 어린이책을 읽어보자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제게도 보이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요. 계속 보다보면 뭔가 알게 되겠지, 생각합니다. 네, 공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