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재미있다...쉽다...그리고 빨리 읽힌다...'이런 말이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쉽고 재미있고 빨리 읽히는 이 책이 던져주는 그 무언가는 두껍고 빽빽하게 글씨가 들어찬 책보다 결코 적지 않다. 일상적인 삶에 권태와 무료함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고 난 후의 성취감과 즐거움이 늘어지는 게으름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치즈는 우리들이 원하는 이상과 가치일 수 있으며 삶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목표이자 목적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이 치즈는 여러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경험에 따라서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의 폭과 깊이에 따라 각자가 가진 고유의 치즈의 모양과 맛과 빛깔은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게서 이 치즈는 참존재이다. 현실과 물질적인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영속하며 본질적인 그 무엇...그리고 그것을 인식하고 알 수 있는 나의 마음.

따라서 이 치즈라는 삶의 목표를 찾기 위해 설정되는 미로는 그야말로 신화속에 나오는 미궁인 것이고 이는 나에게 있어 인생의 참다운 의미와 참다운 앎을 찾기 위해 떠돌아다니고 있는 내 삶인 것이다. 치즈를 찾기 위해 우선 자신의 기존 생각을 뒤엎고 비웃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듯 나에게는 나의 물질적이고 현상적인 이 세상의 절망을 희망으로 뒤집어 엎을 이면에 존재한 참 존재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허와 헴이 미로를 거쳐 치즈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변화가 필요하듯...신화속 미로를 빠져나가는데에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필요하듯.

변화는 세상의 존재법칙이듯 나의 생존법칙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의식의 변화에서부터 비롯된다. 행동으로 나아가기 전의 인식의 변화,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작가 공지영의 성장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6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의 성장기를 거치고 80년대 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 민주화운동이 많았던 대학생활을 통해 인생을 거쳐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앞 뒤의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자신의 어린 성장 시절의 이야기로 채워가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작가 자신과 자신의 첫사람이었던 봉순이 언니와의 관계와 삶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봉순이 언니의 손에서 자란 작가의 성장과정과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벚꽃놀이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남의 집 식모살이로 어렵고 서럽게 살아가는 봉순이 언니의 성장과정은 비록 한 사람은 주인집 딸로서 그리고 한 사람은 그 집 식모로서 만나지만 그들의 삶은 비슷한 사랑의 결핍과 사랑에의 갈구로 이어져 있다.

봉순이 언니의 세탁소 병식이 아저씨와의 첫사랑은 병식이 아저씨의 본심과는 상관없이 사랑에 목말라했던 봉순이 언니의 불운한 첫사랑이었으며, 병에 걸린 시골 아저씨와의 재혼도 자신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놓은 채 세상을 떠나버림으로써 결말이 나고, 또 작가는 어머니로부터 개장수와 눈이 맞아 떠나가버린 봉순이 언니 이야기를 듣고서 서럽고도 질곡이 많은 그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봉순이 언니의 삶은 작가에게 있어 60년대의 경제개발과정에서 소외된 우리네 민중들의 불운한 삶의 전형 또는 극한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된다.

그 역시 대학에서 사회현실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되었을때부터 민중의 편에 서고자 했으며 그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가 만난 첫사람의 기억과 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미 많은 것이 변해버린 지금 어떤 향수와 연민이 그에게 봉순이 언니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을까 하고 생각에 잠겨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작가지망생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읽는 이유는 글쓰기 속에 어쩌면 글읽기의 기술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헐리우드의 잘나가는 작가 스티븐 킹의 창작론에 관한 이야기이다. 글의 앞부분에 담긴 그의 자서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내용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천재작가에게선 어릴적부터 그 가능성의 싹이 보인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는 글쓰기를 위한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물과 현실에 대한 순수한 정신감응인 글쓰기에는 좋은 연장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풍부한 어휘력과 치밀한 문법력 그리고 상대방에게 의미를 명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한다. 과다한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은 글을 난해하고 복잡하게 하며 그것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수동형의 글도 유의하라는 충고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글쓰기가 그에게는 얼마나 즐거운 작업이며 삶의 보람과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인지 알 수 있다. 그의 아내 티비도 그의 글쓰기를 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여자다. 그가 썼던 많은 작품들 속에는 번쩍이는 창조력과 상상력이 독자를 압도한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비록 그 내용이 공포와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라도 그의 삶과 얼마나 일치되며 그의 정신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글쓰기는 좋은 연장통을 갖추고 땅속에 파묻힌 화석을 발견하는 것에 비유된다. 화석을 발견하는 것이 운이듯이 뛰어난 작가의 자질과 그에 따른 좋은 이야깃거리는 운이며 그것은 또한 운명이기도 하다. 다만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천복을 될 수 있는 한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소명감을 가지고 실현시키는 것이다. 내 속에 존재하는 어떤 신적인 것이 글로써 내 몸을 통로로 하여 내 손을 빌어 쓰여지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쩌면 글쓰기를 통해서도 우린 깨우침을 얻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가져볼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비록 직접 글쓰기를 주된 일로 삼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많이 쓰고 많이 읽어라'는 그의 말처럼 독서하면서도 작가의 글쓰기의 패턴과 그의 기술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고 나 또한 읽으며 나의 문체를 가다듬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글을 많이 읽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지 성자
전재성 지음 / 선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몸은 사원이요 마음은 고통에 나부끼는 깃발이다.'라고 하는 하피스의 말처럼 우리들은 마음을 잘못가져 생기는 고통과 병으로 몸을 망친다. 여기 동서양의 고전과 종교를 아우르며 참다운 깨우침으로 삶을 살아가는 한 성자의 이야기가 있다. 페터 노이야르라고 불리우는 그는 거지 성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병과 고통이 잘못된 식생활 습관과 욕심과 탐욕으로부터 비롯되는 마음의 병이라고 보고 자신의 삶에서 소유라는 생각을 지우고 무소유의 삶을 고집하고 사는 자이다. 살육은 물론이고 살육된 고기조차 거부하며 자연이 키워낸 모습 그대로의 생식을 즐겨하며 늘 책과 명상을 통하여 마음의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며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이 시대의 부처요 예수이다.

그의 단조롭지만 부지런한 삶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선 일반적인 사회적인 삶 속에 자리잡은 소유관념과 동물에 대한 살생을 통한 육식의 폐해를 느끼고 평범하고도 사회적인 삶을 거부하며 고되고 힘든 수행을 길을 선택한 그의 삶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큰 깨우침과 결단력의 조약돌이 되어 마음의 호수에 번져감을 느낀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사람들은 주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행동에서 커다란 가르침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페터 노이야르는 그의 행동에서 우선 큰 가르침을 주는 그런 사람이다. 또한 그의 삶이 얼마나 튼튼하게 그의 깨우침이 뿌리내리고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지도 알 수 있을만큼 그의 말도 깊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그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에서부터 그가 던지는 여러 가지 화두가 담긴 말들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붓다의 삶이 그의 삶 속에 체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 역시 하나으 옳음을 육화시키기가 얼마나 어렵고 또 그것이 흐트러지기가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다. 알고 있는 옳음을 행동에 생활에 그리고 삶에 육화시키고 그리하여 마음과 몸이 서로 일치되어 하나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에 깨우침을 갈구하는 자들이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 아니겠는가?

그의 삶은 마치 물이 골짜기를 타고 흘러 강을 이루어 흐르다 바다로 흘러 절대적인 평온의 상태에 다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의 말들 어딘가에서 나는 내 마음이 생기는 그 지점으로 향한 촉수를 열심히 세우고 있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서 가다보면 우리 역시 시행착오일지라도 달을 보는 운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찾는 자에게 길이 있다는 말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자리잡은 이기심과 탐욕이라는 악덕을 떨쳐버리고 대자연의 순환속으로 삶을 되돌린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헨리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버몬트 숲에서의 생활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어떻게 이 사회의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삶을 벗어나서 그런 삶의 차원 너머에 있는 가치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단순하고도 조화로운 삶을 위한 몇가지의 원칙을 세워 놓고 그에 따르는 생활을 영위하였다. 될 수 있는 한 자급자족의 원칙하에 그들은 집과 먹을 것을 직접 만들고 생산하면서 자본주의의 이기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여유롭게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들로 채워갔으며 일년중 반년을 공부와 자신들의 이상을 위한 노력으로 바쳤다.

사회속에서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화폐를 매개로 삶과 생활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있어 실업과 화폐의 부재는 죽음과 절망과 좌절에 다름이 아니다. 과연 이 모든 것을 스스로 떨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니어링 부부의 육체적, 정신적인 모든 면에서의 건강하고도 풍요로운 삶은 이 시대에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끔 한다. 어쩌면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시간과 정열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들의 건강한 삶의 비결은 바로 대자연의 순환 속에 자신들의 육체를 맡기고 그에 조화시키는 삶이다. 육식을 멀리하고 생식을 즐겨하며 화학비료의 사용을 없애고 노동하며 의식의 상승을 지향하며 공동체의 삶을 나름대로 살아가고자 했던 그들의 삶은 자본의 추악한 논리에 의해 삶과 인생이 파괴되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의 선명하고도 새로운 모범적인 대안이 됨을 부인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