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 -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사이쇼 히로시 지음, 최현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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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진 직장과 꽉 짜여진 하루 일과에 내 마음을 놓고 사는 일상이 되풀이되면서 뭔가 새로운 계기에 목말라하던 나에게 빗줄기처럼 내린 책이다. 내 마음을 일의 밧줄과 인과관계의 밧줄이 이리 묶고 저리 묶어 하루의 일과속에 꼭 붙들어 매어버리고나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일과속에서 마음을 잃고 헤매이고 만다. 그 쳇바퀴같은 삶에서 탈출하는 길은 하루가 시작되는 지점에서의 마음을 점검하는 것이다. 아침은 하루가 시작되는 그 지점에서 내 마음을 점검해내고 일상의 쳇바퀴속으로 들어가면서도 내 마음이 그 밖에 놓여져 있음을 알아차리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내게 준다.

"아침은 밤보다 지혜롭다"는 말이 있다. 아침시간의 뇌활동은 아주 활발해서 아침의 한 시간의 학습은 오후의 3시간의 학습과 맞먹는다고 한다. 아침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할 때 우리는 하루를 30시간으로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양적 시간에 앞서 우리가 우리 존재의 깊은 본성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역시 아침이다. 물질적 세계와 영적 세계로 통하는 길이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신성한 시간에 우리는 우리 삶의 절박하고 중요한 과제에 대해 답을 내리는 시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 생활에 대한 반성과 개선의 필요로부터 이 책은 도움되는 이의 손으로 전해져 읽혀지면 좋을 책이다. 컨텐츠가 무엇이건 자신이 목표로 한 바가 무엇이건 이 책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주 유용한 방편은 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누구나 손쉽게 읽어내릴 수 있으며 누구나가 자신의 처지와 실정에 맞게 시작할 수 있는 100일간의 적응기간에 대한 설명과 구체적 계획은 이 책을 놓고 직접 도전해보게 하여 우리의 삶으로 쉽게 연결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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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2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형 인간이라... 물론 좋은 것이긴 하지만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리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전부 아침형 인간으로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물론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바꾸는 게 좋겠지만]
단순히 제 주관적 생각일 뿐이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만이 성공을 쟁취할 수 있다]
이렇게 강요하는 것 같아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러면서도 새벽 5시에 자명종을 맞춰놓는 나는 뭐지?ㅡㅡ]

달팽이 2004-04-27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군요...자신만의 리듬을 타는 것....
인생의 목적은 스스로만이 가지고 있어야겠죠...
다만, 방편은 개인사가 작용할테니까요...
말씀 고마웠어요..
 
법정에 선 나무들
크리스토퍼 D. 스톤 지음, 허범 옮김 / 아르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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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천성산은 도롱뇽이 원고가 되어 소송을 하고 있다. 물론 도룡뇽이 직접 법정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도룡뇽의 이름으로 소송대리인으로 지율스님이 나선 것이다.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를 위한 환경영향평가의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무시되었던 천성산에 서식하는 도룡뇽을 원고로 하여 소송대리인에 의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과연 사람이 아닌 것에 의한 소송이 당사자적격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취하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판례는 일본에서 1970년대 초에 토끼를 원고로 한 소송에서 토끼의 손을 들어 준 적이 있다.

그럼 과연 왜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환경 자체에 의한 소송이 필요한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주목한다. 원래 당사자적격이란 개념은 법적인 것이며 그것은 인간사회에서 자꾸만 확장되어 왔다는 것이며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시민이라고 하는 협소한 개념에서 노동자, 농민, 빈민에게로, 여성에게로, 흑인에게로 확장되어 왔으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구생명체를 위해 환경 그 자체가 당사자젹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 하면 환경자체의 이익이 사람들만의 이익으로 환원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숨겨진 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간 지구는 인간의 복지라는 이름 하에 너무나도 많은 자연 파괴와 생태계의 파괴를 겪어 왔다. 단지 그것이 인간의 이익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사실 그 이익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특정한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그와 관련된 소송도 환경의 원상복귀가 아니라 소송을 제기한 사람의 직접적 재산을 손실분만을 원상회복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 땅은 불모지의 땅으로 변해가고 사막화과정은 더욱 광범위하게 진행되며 대기는 오염되어 오존층의 파괴가 심각할 정도로 넓어지고, 수질오염은 더 이상 이 땅에 이 강에 물고기들이 살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욱 인류가 가진 핵에너지는 그 일부의 사용만으로도 이 지구 전체를 박살낼만큼 위협적이며, 원자력 발전소 폐기물은 반감기만 해도 수백만년이 걸리어서 안전한 처리라는 말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이러한 때에 이젠 사회적, 전지구적 필요에 의해 비인격에 대해서도 인격화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 법정은 비인격인 법인에 대해서도 인격을 이미 부여하였다. 사단법인, 재단법인 등.... 만약 사람아닌 것에 대한 당사자적격이 정 어렵다면 우리들의 미래세대를 위한 후견인 설정이나 당사자적격 부여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법적 의미는 원래부터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화되고 조정되는 것이며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개미 한 마리가 우리 지구라는 별에서 우리 인간과 공존하는 생명공동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인간만을 위해서는 타생명체는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식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는 이미 지구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있으며 머지 않아 그 위협이 우리에게도 돌아올 것이다. 생명다양성이 존중되는 삶의 풍토가 우리에게는 절박하게 필요하다. 그것은 경쟁과 속도의 삶에서 벗어난 삶의 다양성을 전제로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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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로가 있는 땅에는 핏빛 꽃들만 피어났다
수전 안토네타 지음, 박수현 옮김 / 이소출판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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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소의 홍보비디오가 전국의 각급 학교와 공공단체에 무작위로 배부되고 있고, 그것이 정말 위험하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줄 것이라고 착각하는 동안 우리 나라에서는 벌써 18,9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지고 부안에서는 핵 폐기물 처리를 둘러싸고 군수가 얻어맞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과연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나 하고 물어보아야 할 때이다

이 책은 방사능과 산업폐기물과 살충제에 의해 오염된 지역에서 그 부모와 자신의 성장과정을 거친 한 여자의 가족사의 형식으로 씌여진 글이다. 그녀의 뛰어난(?) 상상력과 문체덕에 글이 너무 어려워진 것이 흠이지만 - 어쩌면 번역에 문제가 좀 있었는지도 모른다 - 어쨌든 그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각종 산업폐기물과 원자력에 의한 생태계 파괴와 그것이 인간에게 가져올 돌이킬수도 없고 감당하기 힘든 재앙과 자연파괴에 대해 우리들에게 무서운 암시를 주고 있다. 우리 나라는 왜 항상 먼 미래에 대한 안목없이 이렇게 근시안적인 정책과 제도들만 쏟아내는 것인지 참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의 파괴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파괴시키고 폐허의 땅으로 만든다. 어찌 고기가 사는 물을 중금속으로 오염시키고 그 고기가 잘 자랄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 우리 문명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대하고 있노라니 아메리카 제국사에서 시애틀 인디언추장이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이 떠오른다.

'우리는 이 땅을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사랑하듯 사랑합니다. 그러니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주시오. 우리가 보살폈듯이 보살펴주시오. 그대들의 것이 될 때 이 땅이 간직하고 있던 추억을 그대들 마음 속에 간직해 주시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이 땅을 잘 간직하면서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이 땅을 사랑해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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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스코트 새비지 엮음, 김연수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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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빠른 자동차와 열차, 비행기가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왜 시간에 쫓겨 가족들과 애정어린 대화 한마디 못하고 하루를 보내야 하는가? 노동의 편의를 위해 만든 기계가 왜 우리를 더욱 고립, 단절시키고 공동체를 파괴하는가?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 정보와 상품의 세계화가 왜 인간의 삶을 더욱 황폐화시키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본의 미친 질주에서 한 두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산업혁명이후 기계의 발달은 우리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간접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들면서 땅과 강, 나무와 숲, 공기와 하늘 그리고 인간의 공동체마저 파괴하였다. 자연과 존재가 가진 수많은 다층적인 의미를 오로지 디지털 정보에 의해서만 파악하게 하고 인간사이의 공동노동과 끈끈한 유대를 단절시키고 좌절시켰다. 교육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기계적인 반응과 정보를 매개로 한 수동적인 의사소통만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미친 기차의 질주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어쩌면 위험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런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상황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되어 준다. 기계와 문명을 벗어던진 삶, 플러그를 뽑은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미쉬공동체의 이러한 삶의 방식은 그 영역이 아주 폭넓다. 어떤 물질주의와 기계주의도 반대하는 삶, 즉 세속적인 삶에 반대하는 것에서부터 최소한 먹는 것만이라도 스스로 생산하자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져 있으나 우리의 비뚤어지고 어긋난 삶의 방식을 반성하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보고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도는 같다.

기계가 아닌 몸이 직접 자연을 포함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화학물질, 합성물질이 아닌 생명체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 그리고 나아가서는 형식과 교조없이 직접 신과 만나고 일상의 모든 일과 존재에 신이 현현함을 체험하는 방식을 권한다. 그것은 해악만 가득한 매개체나 수단인 기계와 문명을 벗어던지고 우리가 사물과 자연과 삶과 세상과 신에게 직접 이어지는 삶을 추구하는 길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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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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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형성해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포기하며 자연적 환경 속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한 선구자적인 한 사람의 인생이 있다. 바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그렇다. 이 책은 그가 하버드 대학생활을 하면서 졸업 후 일반적인 사회적 지위의 획득경로를 포기하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자연과 조화되는 삶을 살아보고자 한 그의 이야기가 월든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변화와 그에 대한 놀라움과 그것의 섬세하고도 자세한 설명들과 동, 식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느끼는 대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은 진정으로 참된 인간의 삶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소로우를 환경보호주의의 선구자라고 하며 이 책을 그 시초라고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환경 보호주의를 훌쩍 뛰어넘는 소로우의 정신적 세계와 만났음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 생명체라고 하는 개념을 직접 쓰지는 않지만 대자연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시각에서부터 인간과 생명체의 죽음 이후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삶의 존재와 그에 대한 믿음이 이 책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요즘에 영적인 것들을 다룬 좋은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서 그의 글들이 정신적인 면에서는 어쩌면 덜 세련되고 초보적인 면들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50년을 훌쩍 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그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과 그 속에서 떠나는 자신의 내면 세계로의 여행은 우리들 각 각의 속에 내재한 우주여행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진정한 자아와의 만남을 이룰 수 있게 되며 또한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진정한 존재와의 만남도 이룰 수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가 자립적이고 자연적인 삶을 영위했던 그 호숫가, 월든 호수에 서서 150년의 시간을 돌이켜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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