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탄줘잉 엮음, 김명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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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음 앞에 서 있다면 어떤 일이 가장 아쉬운 것일까? 자문해본다. 아쉬운 일들이 참 많다. 나의 부모와 형제 가족에게 마음을 다 써서 대해주지 못한 점. 또한 만나는 사람들에게 품었던 좋지 못한 생각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일을 지키지 못했던 일들. 나를 스쳐갔던 그리고 내 삶 깊숙히 들어왔던 사람들에게 남은 아쉬움과 그리움...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후회스러운 점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세상에 와서 또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아침에 학교에 일찍 도착하여 교문을 지나면서 바라보니 간밤 추위에 다 떨어져내린 은행잎들이 땅에 수북히 쌓여 있다. 그 노란색 물감으로 칠해진 교정의 한 켠이 문득 마음에 쏙 들어와버린 것은 왜일까? 차에서 내린 나는 다시 교문을 향해 걸었고 그 은행잎들의 무리 속을 잠시동안 거닐었다. 다시 이들을 볼려면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 발 밑에서 부드러운 느낌으로 밟히고 있는 이 은행잎들...아침이 문득 상쾌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차는 듯하다.

탄줘잉이 옮겨놓은 49가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루 아침에 다 읽기는 아깝다. 하지만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한편 한편 새로운 감동의 파도로 밀려드는 아름다운 인생의 바다 앞에 나는 들었던 책을 쉬이 놓을 수가 없었다. 삶의 가장 아름답고 소중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들은 나의 가슴 속의 가장 아름다운 면들을 일깨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자신을 잊어버린 삶의 이야기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그것이 우리들의 본래 모습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쉰 여덟 살의 노직원에게 오늘 어떤가? 하고 묻는 사장의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살아오면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또 다른 수많은 아름다운 날들도 기억합니다. 분명히 그런 날들도 무척 행복했어요. 하지만 오늘처럼 좋았던 날은 없지요. 그날들 중 어떤 날도 단지 두 번째일 뿐이에요. 그 하루하루가 지금의 생활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행복했던 날들이 모두 모여서 오늘을 만들어준 것이니, 바로 오늘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오늘, 지금, 이곳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오늘, 지금, 이곳은 자신의 존재에 깊이 천착할 수 있게 하는 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온전히 깨어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 자신의 육체만으로 구성된 것을 넘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럴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넘어선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넘치는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말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의 비밀은 마음이다. 작고 하찮은 일이지만 거기에 사람의 진정한 마음이 담기게 되면 그것은 당사자에게 어떤 값으로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자신의 대학등록금을 위해 집안 가보로 물려오던 담뱃대를 판 아버지에게 그것을 돌려주기 위해 걸린 수십년의 노력 속에 담긴 그 마음을 받고 아버지는 기뻐하였던 것이다. 제자를 생각하는 노 선생의 방에 모아둔 수많은 제자들의 소식과 현황에 담긴 그녀의 제자사랑이 바로 한 남자의 마음을 그토록 깊게 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대할 때 진정으로 대하고 사물을 대할 때 진정으로 대해야 한다. 그 진정한 마음 속에 담겨진 보석이 바로 인생의 보석이다. 창조주는 세상을 창조하면서 가장 중요한 보석을 어디에 숨길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그것을 가장 잘 숨겨두는 것은 아무렇게나 세상 어디에나 두는 것이란 걸.... 그 보석은 마음이다. 세상의 일들을 아름답게 하기도 하고 추하게 하기도 하는 것. 보잘것 없고 하찮고 사소한 일 하나가 이토록 우리들의 마음 속에 깊이 스며들어 우리의 인생을 움직이게 하기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이고 삶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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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4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꼭 해보고싶은 일..
'세계 유명미술관 100일 순례'랍니다.


달팽이 2006-12-04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그날이 오면 꼭 사진으로 페이퍼에 남겨주시길...
덕분에 앉아서 간접적으로나마...

파란여우 2006-12-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죽음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여기는 걸까요.
별로 여한이 없을 듯합니다.
원래 생각 짧게 사는 사람인지라...
한사님의 사진 다큐를 저도 볼 수 있는거죠?^^

달팽이 2006-12-0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짧다고 하는 말에 여우님의 삶이 얹혀진 것을 안다면 누가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누~님!
 
세상 끝의 사랑
마이클 커닝햄 지음, 김승욱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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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6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새로운 사랑과 가족의 형태를 그린 마이클 커닝햄의 작품이다. 사실 형태로만 본다면 새로운 가족에 대한 형성과 기존 가족 관계의 급격한 파괴와 변화는 지금의 트렌드이다. 40년 후의 미래사회의 모습이 그의 상상력속에서 되살아난 것일까? 그는 한 여자가 두 남자와 동거생활을 하는 이상한 가족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삼각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관계이다. 육체적 관계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또는 그것이 없어도 무방하다. 그저 세 사람은 각각이 서로에게 사랑과 연민을 품고 있고 그것은 아무런 꺼리낌이나 금기없이 서로간에 표현된다.

  커닝햄은 자신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동성애자이다. 동성남자와 한 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그는 세상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자신의 삶의 형태가 비록 남과 모습만 다를 뿐,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평범한 가족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자보다 남자에게서 더욱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그는 이 소설 속에서 바비나 조나단을 통해서 자신의 성장과정과 내면적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레이첼이 아기를 가졌다. 바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두고서 네 사람은 이상한 가족형태를 계속해나간다. 바비와 조나단은 식당을 운영하고 레이첼은 딸을 양육하면서 그들은 이상한 공존을 계속해나간다. 조나단은 레이첼의 딸을 마치 자신이 낳은 딸로서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가족에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담아간다. 바비는 이런 관계를 수용하면서 아내와 딸의 공유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끝은 레이첼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자신이 심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두 남자에게 자신의 딸을 평생 짐처럼 지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과 딸이 그들의 곁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연극같이 이별의 장면을 준비한 그녀에게서 두 사람은 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비록 그녀가 지금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지라도 그녀의 딸 레베카만은 언제나 그 둘의 딸임을 잊지 않는다. 이 집과 그들의 유산이 모두 그녀에게 상속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주제는 죽음이 된다. 인간관계의 영원하고도 되돌릴 수 없는 상실, 죽음 앞에서 그들은 남겨진 삶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단순하게도 모든 삶은 죽음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죽은 자들이 하나같이 삶을 꿈꾸었다는 사실과도 중첩된다. 위성같이 더 떨어지지도 않고 더 가까워지지도 않는 우리들이 살면서 맺는 가족관계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꿈꾸는 하나의 환상이다.

  새로운 가족을 꿈꾸는 것은 단지 인간의 욕망이 변용된 형태의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내겐.

그것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서 떠나는 일련의 우주적 작용으로 주어진 새로운 만남과 관계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가족관계가 떨쳐버리지 못한 족쇠가 아니라 필연처럼 때로는 우연처럼 우주가 빚어낸 고맙고 감사해야 할 내 생의 과제이다.

주어진 가족 관계 그 자체에서 내 마음의 작용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하는 삶이 나에게 메세지를 준다.

너는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삶을 살 것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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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생육기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5
심복 지음, 권수전 옮김 / 책세상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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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엔 남녀간의 고리타분한 사랑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변함없는 이야기에 우리들은 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또 얼마나 울고 웃고 하는가? 아름답고 순수했던 사랑, 운명처럼 다가와서 당사자를 완전히 삼켜버린 사랑, 당사자도 모르게 시작되어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들의 결혼 후 생활은 마치 결혼 전의 사랑이 받았던 조명의 밝기만큼이나 두껍게 드리운 그늘로 캄캄해져버리고 만다. 이런 사랑 이야기에서 결혼 후의 이야기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그 결혼 후의 생활이야말로 얼마나 두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커플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짐이 되고 회피해버리고 싶거나 그냥 무관심하게 방치하는 삶을 산다. 물론 살붙이고 살다보면 정이 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정이 계속 살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이란 것은 알고보면 익숙하게 몸에 베어있는 습관같은 하잘것 없는 집착이 아닌가?

  바야흐로 세상은 변해가는데 그에 걸맞게 부부관계는 제대로 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부부는 한때의 충동적 사랑으로 만나서 그 열꽃을 피운 결과물에 의무를 지고 평생을 가족과 가족관계에 묶여사는 노예같은 남녀의 삶에서 벗어나 상대방이 직감적으로 나를 끌어당긴 매력 속을 심층적으로 탐구해보고 그녀에게 비친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부부 각각이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을 가지고 구제도의 가족에게서 육아의 부담을 나누어 가지며 허덕댈 때 단순한 부부간의 정을 넘어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삶의 동반자로서 체험 학습장인 인생에서 배움을 공유하는 벗으로서 그 관계의 폭을 넓힐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책이 현대의 부부들이나 부부이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심복과 아내 운과의 관계도 역시 그러했다. 결혼 후 23년의 부부생활동안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골목에서 만나도 지긋이 손을 꼭 쥐며 '당신 어디가요?'하고 묻곤 했으며, 어떤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달 밝은 밤이면 함께 술자리를 펴서 시를 논했고, 삶의 문제를 글로써 논했다. 이렇게 함께 살면 살수록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서로의 삶의 풍요롭게 만드는 동반자일진대 어찌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 수 있었으리오?

  그녀와 함께 했던 많은 행복한 시간들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녀가 마흔 정도 밖에 안된 젊은 나이로 요절하게 된 것을 지켜본 후로 그는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다. 그러다가 그녀를 그리워하고 외로워하고 또 그리워하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왜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났을까? 그녀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 앞서 그녀의 마음의 병이 깊었던 탓이다. 그는 사랑하는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며 마음과 몸의 관계를 생각했을 것이고 마음이 몸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이 6번째 글인 '건강하고 여유롭게 사는 법'으로 쓰여졌을 것이다. 한 때 세상이 가진 것 없이도 더없이 행복했던 날들, 그녀와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가진 듯이 행복했던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처럼 잡을 수 없고, 허공에 새들이 그들의 족적을 남기지 못하는 것처럼 흩어져버리는 것이다. 뜬 구름같이 곧 흘러갈 꿈 속에서 우리는 또 꿈을 꾼다. 덧없는 인생의 꿈을 깨어야 비로소 인생 그 자체가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허물없이 살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손을 잡고서 행복해하게 되고, 그녀의 무덤 앞에서 좌절하지 않게 된다.

  결혼을 한 지도 어느덧 4년이 다되어 간다. 늘 나의 반쪽으로 생각되던 그녀를, 오직 그녀 하나만을 바꾸면 내 삶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음을 안다. 그녀 하나 바꾸는 것이 세상 모든 것을 바꾸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그것은 우선 내가 바뀌는 것을 전제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를 바꾸는 것은 바뀌는 그녀가 아니라 바뀐 나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제는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제이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또 무슨 말이 필요한가?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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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9-0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浮生六記인 모양이군요. 부초처럼 덧없는 삶에서 여섯 꼬투리를 쓴...
자동차와 마누라는 5년마다 바꾸고 싶어진다고들 하더군요. ㅎㅎㅎ
연애의 짜릿한 감정이 결혼 후엔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겠지요.
연애하듯이 결혼 생활을 즐겁게 하는 법엔... 서로 배려하고,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길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삶이 수행인 셈이지요. 배려와 독립은 수행인 셈이니까요.

비자림 2006-09-0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년차라면 아직은 좋을 때 같은데요.^^ 그래도 아이들 키우며 번잡한 일상을 같이 하다 보면 부부간에 해야 할 말과 나누어야 할 감정들에 대해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옆사람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또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서로를 지켜주고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달팽이 2006-09-0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비자림님,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도 정신적인 홀로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요즈음의 저의 생각입니다.
자신의 중심이 서 있을 때라야 상대방이 간혹 보이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에 덩달아 반응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그나저나 운이와 같은 여자와 산다는 것...너무 부럽더군요...
그런 친구를 만나는 것도 귀한 일이지요...

혜덕화 2006-09-0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때 이 책을 읽고 아주 감동을 받았습니다. 문고판 작은 책이었는데, 책들을 정리해서 버리거나 줄때도 이 책만은 꼭 남겨두었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달팽이님의 글을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달팽이 2006-09-0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혜덕화님과는 책읽는 인연이 있나봐요..
좋은데요..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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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니엘 호손은 19세기초 미국 낭만주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미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에머슨, 소로우 등의 초절주의자들이 인간의 정신과 인류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가진 것과는 달리 인간의 내면적인 어두움과 무의식, 인간 본성에 내재한 악과 부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인간 정신의 깊은 이해에 도달하려고 했다. 더불어 그는 개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역사 그리고 윤리 문제로 나아가 이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첫 작품인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부터 내용이나 상징하는 바의 모호성으로 뚜렷하게 작품의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그것이 주인공 로빈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인지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인지에 대한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맬빈의 매장'에서는 지키지 못한 장인과의 전쟁터에서의 약속이 자신의 아들과의 업으로 이어져서 결말맺는 과정에서 로이벤의 가슴 속에서 더욱 명백해지고 지울 길 없는 죄책감으로 자리잡게 되는 내면적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오월제 기둥'에서도 '목사의 검은 베일'에서도 '반점'에서도 이러한 이중성과 모호성은 더욱 짙어진다.

사람들과 세상과의 벽으로 놓여진 검은 베일은 얼굴을 가리는 기능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생겨나고 변해가는 인간 본성의 부정적인 요소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가 이어진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끝내 벗지말라고 말하는 목사는 인간의 마음 속에 그 인간의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악마의 내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사실 우리들 마음 속에도 그런 베일이 하나 또는 둘 있지 않은가?

넓은 대륙을 프론티어 정신으로 개척하기 위해 기계기술과 과학을 발달시켰던 미국이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맹목적인 희망에 대해서 비판하는 '반점'은 그 비판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선과 악의 문제를 더욱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 반점이 있어 그녀는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아름다운 그녀인데도 조지아나의 반점이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의 과학적 자존심과 더불어서 자신의 마음 속에 난 자존심의 상처가 되고 그것이 불행의 씨앗으로 자라게 된다. '라파니치의 딸'에서는 선에서는 악이 독이 되지만 악의 입장에서는 선이 독이 되는 선과 악의 상대성을 통해서 우리가 지향할 인간 본성은 과연 무엇인가 묻게 해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옮긴이가 얘기한 것처럼 인간의 내면적 본성의 특성이기도 한 모호성이 베일처럼 작품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해가 찬란하게 비치는 낮이 아니라 구름이 뿌옇게 끼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희뿌옇게 뜬 달과도 같다. 그 달빛이 비친 강물 위에 물결이 출렁이는 모습이다. 우리는 어떻게 그 달빛을 볼 것인가?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물결 위를 쳐다볼 필요가 없다. 물결이 멎을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저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 걷힌 밤하늘에서 명쾌하게 뜬 달을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호손은 우리들이 가진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 우리들의 내면에서 찾을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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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읽는 한국어사전 이어령 라이브러리 8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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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글쓰기 책을 읽는 중 작은 마을 도서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글을 어떤 식으로 쓰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고 바로 읽어나갔다. 언어의 대가답게 테마를 잡는 것에서부터 그 말의 어원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말을 뒤집어보고 반대되는 상황에서의 예를 들어보고  이것 저것을 건드리면서도 글이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선명한 궤적을 내고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짧은 글 하나가 치밀하게 구성된 하지만 전혀 인위적이지 않은 하나의 작품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데에도 이런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구나! 글의 천재, 언어의 천재라고 불리우는 이어령 선생님도 그 말 뒤에 보이지 않는 이토록 많은 자료 조사와 꼼꼼한 구성과 노력들이 있었구나! 글의 구석구석에서 그것을 볼 수가 있었다. 아! 타고난 작가는 없구나. 비록 적성과 재능을 타고났다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노력과 준비가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글쓰기의 재능과 기법을 떠나 그의 글에 대한 정성과 마음을 먼저 배워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말 중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쓰는 말도 있고, 그 말이 변하고 변해 처음 쓰이던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말도 있다. 이런 말들을 그 말의 어원과 국어에 대한 바른 의미를 통해서 보다 깊은 의미를 도출해내고 우리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도록 지혜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그토록 탁월하나니...두 세장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 선생님이 조사하고 정리하였을 많은 자료들과 그것을 구성해서 어떤 체계를 만들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마음이 절절이 느껴진다. 그 동안 내가 너무 함부로 써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낱말 하나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정확한 의미와 그 사용법을 익혀서 쓰는 선생님의 자세를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선생님처럼 정확히 또 깊이 이해하지는 몰라도 조금씩이라도 노력은 하고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것이 이렇게 빈틈없이 그리고 잘 된 글을 사용하는 분을 글을 통해서나마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 글을 읽고 감동하는 독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말의 의미에 따른 사용에서 보여지는 상반되고 이중적인 해석은 우리들이 존재에 대한 깊은 의문을 가지게 한다. 선생님이 스스로 말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어머니의 부재에 대해 영원한 모성을 꿈꾸게 하였고 그것을 생물학적인 의미를 넘어서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어머니란 꿈과 이상으로 승화시켰음이 그것을 말해준다. 존재의 빈탕같은 탯줄의 언어로써 말 속에서 존재의 진실을 찾고자 했던 그의 의문이 삶을 더욱 깊게 하였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선생님의 책을 좀 더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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