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의 사랑
마이클 커닝햄 지음, 김승욱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196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새로운 사랑과 가족의 형태를 그린 마이클 커닝햄의 작품이다. 사실 형태로만 본다면 새로운 가족에 대한 형성과 기존 가족 관계의 급격한 파괴와 변화는 지금의 트렌드이다. 40년 후의 미래사회의 모습이 그의 상상력속에서 되살아난 것일까? 그는 한 여자가 두 남자와 동거생활을 하는 이상한 가족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삼각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관계이다. 육체적 관계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또는 그것이 없어도 무방하다. 그저 세 사람은 각각이 서로에게 사랑과 연민을 품고 있고 그것은 아무런 꺼리낌이나 금기없이 서로간에 표현된다.

  커닝햄은 자신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동성애자이다. 동성남자와 한 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그는 세상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자신의 삶의 형태가 비록 남과 모습만 다를 뿐,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평범한 가족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자보다 남자에게서 더욱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그는 이 소설 속에서 바비나 조나단을 통해서 자신의 성장과정과 내면적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레이첼이 아기를 가졌다. 바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두고서 네 사람은 이상한 가족형태를 계속해나간다. 바비와 조나단은 식당을 운영하고 레이첼은 딸을 양육하면서 그들은 이상한 공존을 계속해나간다. 조나단은 레이첼의 딸을 마치 자신이 낳은 딸로서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가족에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담아간다. 바비는 이런 관계를 수용하면서 아내와 딸의 공유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끝은 레이첼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자신이 심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두 남자에게 자신의 딸을 평생 짐처럼 지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과 딸이 그들의 곁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연극같이 이별의 장면을 준비한 그녀에게서 두 사람은 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비록 그녀가 지금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지라도 그녀의 딸 레베카만은 언제나 그 둘의 딸임을 잊지 않는다. 이 집과 그들의 유산이 모두 그녀에게 상속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주제는 죽음이 된다. 인간관계의 영원하고도 되돌릴 수 없는 상실, 죽음 앞에서 그들은 남겨진 삶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단순하게도 모든 삶은 죽음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죽은 자들이 하나같이 삶을 꿈꾸었다는 사실과도 중첩된다. 위성같이 더 떨어지지도 않고 더 가까워지지도 않는 우리들이 살면서 맺는 가족관계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꿈꾸는 하나의 환상이다.

  새로운 가족을 꿈꾸는 것은 단지 인간의 욕망이 변용된 형태의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내겐.

그것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서 떠나는 일련의 우주적 작용으로 주어진 새로운 만남과 관계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가족관계가 떨쳐버리지 못한 족쇠가 아니라 필연처럼 때로는 우연처럼 우주가 빚어낸 고맙고 감사해야 할 내 생의 과제이다.

주어진 가족 관계 그 자체에서 내 마음의 작용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하는 삶이 나에게 메세지를 준다.

너는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불행한 삶을 살 것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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