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학여행과 처의 공무원교육이 동시에 끝나고 맞는 주말에 그동안 미뤄만 왔던 부모노릇 좀 하기로 했다.
우선 병원에 있는 동생을 방문하고 시윤이의 재롱을 긴긴 투병생활의 위로삼아 펼쳐놓은 뒤,
늘 처가 노래처럼 입에 붙이고 다니던 대게를 먹으로 용원으로 갔다.
가덕도로 가는 선착장뒤로 대게 직판매장이라는 푯말이 보였고,
우리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처의 의견을 따라 수족관에서 킹크랩을 고르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사실 난 생전 처음 킹크랩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50000원짜리 킹크랩 하나가 무지 양이 많았다.
둘이서 배부르게 먹고 나서 두껑에다 밥까지 비벼먹은 후 오후가 한참 넘은 2시쯤에야 비로소 수목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진주가는 길 끝자락에 반성과 진성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왔고, 나는 인터체인지를 지나 반성쪽으로 약 15분간 차를 몰았다. 국도를 따라 달리고 있으니 길가에 핀 온갖 꽃들이 수학여행의 꿈속으로 다시 나를 인도하는 듯했다.
드디어 수목원에 도착하고 차에서 유모차를 꺼내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는 시윤이의 비명소리와 함께 시작된 주말의 늦은 오후가 그동안의 부모노릇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끔 했다.
녀석은 한 번도 안기려고 하지 않고 유모차에 오르지도 않은 채 두 시간 동안에 이곳 저곳을 기쁜 듯이 둘러보며 마구 뛰어다녔던 것이다.
이런 녀석을 집안에만 가두어 놓았으니, 그동안 어린 것이 말도 못하고 참 지루했겠구나 하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든 우리는 오늘만큼은 시윤이가 좋아하는 대로 놔두기로 했고, 수목원 문을 닫을 때까지 이곳 저곳을 보며 돌아다녔다. 염소와 타조,칠면조와 양, 솔개와 매, 독수리, 오리, 꽃사슴, 붉은 여우(아 여우는 정말 날렵하고 긴 다리를 가졌다)와 삵괭이, 오소리와 수달 부엉이를 차례차례 둘러본 후 나무와 꽃을 구경하였다.
어찌나 신나게 걸어다니던지 몇 번을 넘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재롱까지 피워가며 걸었던 오후가 버찌를 따서 먹고 내려오던 길을 마지막으로 끝나갈 무렵엔 시윤이의 눈꺼풀이 이미 무거워지고 있었다.
왠지 오늘은 내가 잠이 든 시윤이를 안고 싶었다.
그래서 처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약 3시간동안 녀석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며 아픈 팔을 참아가며 될 수 있으면 편한 자세로 잠들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쳤다.
녀석은 자면서 때때로 "반딱 반딱"하는 잠꼬대를 했다.
불빛을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잠꼬대까지 해댈 줄이야.....
황혼이 깔리는 고속도로 위엔 달리는 차 안에서 한 아이가 행복한 주말오후를 보내고 곤히 잠들어 있었고,
운전을 하는 처나 아이를 받치고 있는 나나 모처럼 행복한 주말 오후의 끝을 만끽하고 있었다.
"시윤아, 부디 행복하거라" "그리고 아빠는 공부 게을리 하지만, 너는 좀 더 부지런히 하여라."
"그래서 아빠보다 성숙한 삶을 네가 살 수 있다면 좋겠구나."
오늘의 꿈은 이렇게 또 흩어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