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매점을 돌아 나오는 길에서 너는 나에게 다가왔지

쭈뼛쭈뼛한 태도로 "선생님, 나 이상한 꿈 하나 꾸었는데 해몽해줄래요?"하고는

역시나 우물쭈물하고 있었지...

그때였어

네 얼굴 위로 12년전의 내 모습이 비친것이...

꽃잎이 바람에 뒹굴고 화단에 핀 지푸라기 흐느끼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지.

나는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고서

꿈 이야기를 내 벗이자 선배인 그에게 얘기하고 있었지

그 때 벗의 어깨너머로 저녁의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고 한결 무거워진 공기가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지.

그는 내게 "너에게도 이제 사랑이 시작되고 있구나" 하고 해석해 주었지.

순간 나는 그 사랑은 어떤 대상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스스로의 자양분으로 자라고 있음을 깨달았어.

왜냐하면 한번도 내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경험이 없었으니까

누군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이미 내 스스로에 대한 욕망과 애착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어렵지 않았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사랑은 그렇게 왔더랬어...

하지만 피어보기도 전에 그 사랑의 꽃은 시들어버렸고,

그 사랑의 예언을 했던 벗과는 앞으로 영영 꿈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한 번은  벗의 집에서 그가 한때 사랑했던 여자를 보았어

유난히도 슬픈 눈을 가진 그녀는 전해에 학교 숲속 어딘가에서 목을 매었다고 했지..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젖어있음을 느낀 것은 순전히 직감이었지...

어머니를 잃고 계모의 슬하에서 아주 어린 배다른 동생을 둔 그가

빈 호주머니에 꿈과 사회적 정의를 가득 채우고 다녔던 대학생활을 마치고

비로소 삶의 행복을 찾기 시작했을 무렵

그에게 닥친 사고는

그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게 된 나로 하여금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는 영원한 추억 속에 유폐시켜버렸지.

오늘, 나에게 꿈을 묻는 네 얼굴에도 사랑의 꿈을 가슴에 간직한

그날의 내 모습이 있었을 줄이야...

 내 짧은 사랑과

그와 함께 한

내 깊은 추억이 있었을 줄이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달팽이 2005-05-17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를 뿌릴 것 같은 하늘이 괜시리 형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날, 형이 살았던 그 이층집이 보고 싶어졌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보자고 했지, 형과 함께 밤을 세워가며 사랑과 진리와 참삶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며 밝아오는 새벽을 맞았던 날들을 생각했지. 근데 이게 뭐야, 내 기억 속에 형은 20대 중반의 모습에서 세월이 멈춰버렸는데, 나는 30대 중반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야, 참 세월 짖궂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