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일도 많고 코로나 덕분에 약속도 다 취소되고.. 그래서 참으로 단순한 생활, 그러니까 일하고 밥먹고 일하고 밥먹고 잠깐 잠깐 쉬고 이런 와중이다. 수도승 생활 같다, 뭔가 도 닦는 기분이다, 그런 상황이라 마음의 에너지 준위가 막 고양될 수는 없는 세월이고. 그렇지만, 하는 일이 예전에 비해 싫지 않고 (회사 다닐 땐 일 자체가 고역이었는데. 난 회사형 인간은 아니었던 거다, 다시금 절감) 사람들 만나진 못해도 나한테 집중하며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고 해서 그럭저럭 견딜만 합니다..
... 라지만, 그렇다고 하루 일과를 끝낸 고단한 마음에 든 책이 이 책이라는 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좀 재기발랄한 책을, 희망을 직접적으로 설파하는 책을 읽고 싶었는데, 나의 시선이 이 책에 머물며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속에 어느새 손이 가고 있었다.. 라고 복잡하게 설명하지만, 그냥 읽고 싶었어요, 가 정답이지.
약간 의무랄까.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을 어쨌든 읽고자 노력하는데 묘하게도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이나 시는 잘 안 읽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대부분 예전 작가. 김원일의 글이 좋고, 박완서의 글이 좋고.. 요즘은 정유정의 글이 좋다. 에세이는 더 싫은 것이, 그냥 아무 말이나 막 던져대는 글이나 자기 감정과잉된 글이거나 자기 얘기를 너무 노골적으로 늘어대는 글은 질색이고 시간낭비라 생각하는 지라 거의 안 사고 안 읽는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 중에서 내가 찾아서 읽는 건, 좀 전문적인 책들, 그렇다고 무슨 전공책 이런 건 아니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쓴 책, 또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담을 쓴 책들인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에 <임계장 이야기>도 읽었고 (아 정말.. 망했다. 이 책 좋았는데.. 중고로 팔 생각이다).. 이 책도 읽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죽은 자의 집 청소>. 이 책의 저자는 시를 전공했고 작가로도 살아서인지 글솜씨가 유려하다. 하지만, 글솜씨로 잘 포장을 해서이지 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고개를 절래절래 젓게 되는 일이라고나 할까. 특수청소업. 말하자면, 죽은 사람의 마지막 집정리를 하거나, 청소라기 하기엔 뭣한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일을 하는 일이다. 고된 마음에 저녁 잠자리에서 읽기엔 좀 버거운 책이었지만, 어쩌면, 고된 일과를 잊게 만드는 효과는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달라도 끝은 다 같은 사람의 인생. 죽은 뒤에 남겨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감 투박한 고민들.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젊은 나이에 미쳐서 스스로 돌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한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면, 마치 인생의 보물인 양 부질없이 간직해온 내 과거의 불행함을 그 남자에게 그대로 전가하고는, 나는 결백하답시고 시치미 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바라보듯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이 지하 방에 관해 알게 된 유일한 진실이다. (p101)
내가 느끼는 것이 아마도 이 저자의 느낌과 비슷한 것 같다. 남을 바라보지만, 결국 나를 바라보는 것. 또는, 나를 바라보지만 남을 바라보는 것. 누구나 뭔가를 바라볼 땐 빈 머리로 대하진 않는다. 뭔가를 통해, 뭔가를 투영하면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고, 결국 사람은 나든 타인이든 사람을 통해 사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지 않겠는가.
나쁜 시키. (p183)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착화탄과 소주를 움켜진 채 어느 외딴 곳으로 간 그녀는, 불쑥 청소업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 괴롭지 않냐고. 이 정도면 되겠냐고. 놀라서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결국 그녀가 있는 곳을 찾고 죽음에서 일단 떨어뜨려 놓고 나니, 그녀가 이 사람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나쁜 시키." .. 그 메시지를 받고 든 생각은, "살아 있구나." 라는 안도감이었다고. 욕먹은 건 온데 간데 없이 그냥 핸드폰에 찍힌 그 글자 속에서 당신의 세상 속 존재함을 느끼는 것에 다행함을 느낀다고. 한 줄의, 아니 두 단어에 내포된 더할 수 없이 큰 사실. 누군가가 살아있다, 는 것. 어쩌면 많은 말들이 필요없는 세상이다. 몇 단어로 나의 살아있음을 알리고, 다른 사람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세상인지도.
문득, 한 단어라도 좋으니 메시지를 직접 받았으면 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게는 아직도 그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 전화를 해지하지 않고 계시다. 그렇지만, 아무 쓸모없는 한 단어라도 내게 오는 일은 없겠지. 쓸쓸.
그들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직 당신이 살아 있을 때, 병에 걸려 고통 받으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은 절대 잊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남긴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지워질 테지만, 당신이 남긴 사랑의 유산만은 누구도 독점하지 못하고, 또 다른 당신에게, 또 다른 당신의 당신에게 끝없이 전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p129)
다 부질없을 수 있지만, 어차피 세상 떠나면 뭔 소용이야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가졌던 따뜻한 마음만큼은 남아서 세상에 한톨의 영향이라도 미칠 것이라고 믿어야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어디다 뿌릴 데 없는 따뜻한 마음을 거두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는 마음을 가져 본다. 그게 어쩌면 떠난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인지도 모른다.
좋은 책입니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스산한 책이지만, 이 겨울날에 나를 돌아보고 남을 기억하기에는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다음 책은 좀 생기발랄한 걸로 골라볼까..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을 고른다. (그러니까, 며칠 전 주문한 책이 벌써 왔다는 이야기다. 허허) 물론 <성의 역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