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두 책. (지난 번에 글 썼다가 날려먹은 두 책.. 이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ㅜㅜ)

 

 

 

 

 

 

 

 

 

 

 

 

 

 

 

 

 

딘 쿤츠. 우리나라에도 몇 권 번역되어 나와 있긴 하지만 동시대의 유명한 이야기꾼인 스티븐 킹에 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좀 낮다고나 할까. 근데 미국사람들은 딘 쿤츠를 꽤 좋아한다고들 한다. 미국에 출장갔을 때 보면 페이퍼북으로 딘 쿤츠를 읽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한 적도 더러 있었고.

 

 

 

 

 

 

 

 

 

 

이 외에도 꽤 된다. 이 중에서 내가 읽은 건 <남편>과 <살인예언자> 정도. 간만에 딘 쿤츠의 소설이, 그것도 시리즈물 첫 권으로 나왔다고 해서 사본 게 <사일런트 코너>이다. 남편 닉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제인 호크라는 FBI 요원이 그 비밀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의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 누가 봐도 반할 정도의 미모의 소유자이지만, 그런 걸 이용하지 않고 매우 담담하고 냉정하고 공사 분별 뚜렷하고 판단력 좋은 멋진 여성으로 표현된다. 책의 말미가 다음을 기약하듯이 끝나서 다음 책도 나오면 봐야겠다 그정도 마음은 들게 하는 책이었다. 사실, 스티븐 킹의 소설같은 흡인력이 있지는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아마 그래서 스티븐 킹의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딘 쿤츠의 소설은 뭐랄까. 약간 인공감미료가 안 들어간 자연주의 식단같은 느낌이랄까. 슴슴하고 밋밋하고 그렇긴 한데 볼수록 감칠 맛이 나는 글인 건 맞는 것 같다.

 

 

 

 

 

 

 

 

 

 

 

 

 

 

 

 

 

나는 줄리언 반스라는 소설가를 좋아하고, 그의 책이라면 덮어놓고 사서 보는 편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책도 샀다. 그리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 요리라는 거, 요리사라는 것, 요리책이라는 것에 대해서 통쾌한 말들을 많이 날려주는 데다가, 레시피 보고 허우적 거리는 나에게, 괜챦아 원래 그런 거야, 쓸 때부터 걔네도 확실히 몰랐던 거야, 라는 투로 위로를 하니 그럴 수 밖에.

 

 

부엌의 현학자는 새 레시피를 마주하면 간단한 음식이라도 불안감을 느낀다. 단어들은 '일단 정지' 도로 표지처럼 그를 향해 번득인다. 이 레시피는 설명이 애매한데, 그러면 적절한(아니 그보다는, 겁나는) 해석의 자유가 있다는 건가? 아니면 저자가 더 정확한 언어를 구사할 수 없어서 그런 건가? 간단한 단어부터 문제다. 한 '덩어리(lump)'는 얼마만큼이지? 한 '모금(slug)' 또는 한 '덩이(gout)'는 얼마만큼이지? 언제를 이슬비라고 하고 또 언제를 그냥 비라고 하느냐 하는 문제와 다를 게 없다. '컵(cup)'이라는 말은 편리한 대로 대충 쓸 수 있는 용어인가 아니면 정확한 미국식 계량 단위인가? 포도주 잔은 크기가 다양한데 왜 단순히 '포조두 한 잔'만큼이라고 하지? 잠시 잼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두 손을 합쳐 최대한 덜어낼 수 있을 만큼의 딸기를 넣으시오"라는 리처드 올니의 레시피는 어떤가? 정말들 이러긴가?고 올니 선생의 저작관리인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손이 얼마나 컸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어린이가 잼을 만들려면 어떡하란 거지? 서커스단의 거인은 어떻게 하지? - p41~42

 

내가 늘 속으로 (가끔은 밖으로) 울부짖는 말이다. 나에게 왜 이러시나요. 나만 못 알아먹는 건가. 도대체 한 스푼 넣으라고 하면 그게 밥숟가락인지, 차숟가락인지 망설이는 자는 나뿐이란 말인가, 좌절감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 이 말씀이다. 이 외에도 줄리언 반스의 유머러스한 묘사들이 많이 등장해서, 읽는 내내 심심하지 않은 책이다. 물론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이 책에 무슨 레시피가 들어있다고 기대하진 않으리라 믿는다. 레시피에 대한 줄리언 반스 나름의 생각들이 주욱 나열된 에세이라는 거. 역시 글 잘쓰는 사람이 쓰는 에세이는, 대충 쓰는 것 같아도 재미있다는 거. 

 

오늘부터 읽고 내일부터는 출퇴근 길에 읽으려고 고른 책은, 이거다.

 

 

벌써부터 읽겠다고 찜해놓고 이제야 책을 든다. 재미있으면 오늘 다 읽고 내일은 다른 책 들고 나가야지. 아. 커피 한잔에 즐거운 마음으로 고른 책을 들고 소파에 앉는 맛이란, 일요일 저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일 출근할 걸 생각하면... 금새 싸..한 마음이지만, 일단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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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21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쌔한.. 그 느낌...
직장인들의 숙명이 아닐까요.
그래도 새 책을 집어 듭니다.

비연 2019-07-21 20:16   좋아요 0 | URL
그래도 그래도 새 책을..^^;;;
 

 

 

 

 

 

 

 

 

 

 

 

 

 

 

예전에도 한번 썼던 것 같지만,... 나는 우리나라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조금 예전 작가들, 박경리나 조정래 등의 선굵은 작품을 좋아하고 박완서와 같은 촘촘하면서도 다정한 글들을 좋아한다. 제일 질색인 것은, 나를 가르치려 드는 장광설이 들어갈 때인데... 아 그런 작가들은 너무 많다. 이 작품 괜챦네 하고 읽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이 설교를 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등장인물을 통해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걸 난 못 견뎌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읽지 않게 되었다. 요즘 작가들 중에 특히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을 읽어야지 라는 내면의 호소가 강하게 울려퍼지기 전까지는 정말 안 쳐다본다. 편견일 수도 있다. 아니, 편견일 것이다. 아뭏든 내가 싫어하는 글은 그런 거다, 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일 뿐.

 

그 와중에 내가 챙겨 읽는 우리나라 소설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 정유정이다. <7년의 밤>이나 <종의 기원>을 읽으면서 물론 어느 부분에는 장광설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이 정도의 글솜씨와 이 정도의 상상력이라면 읽을 만 한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 <진이, 지니>라는 신간이 나왔을 때 두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구입했고 출퇴근 길 읽을 책으로 낙점했다. 사실, 내용적으로는 많이 끌리진 않았다. 사람의 영혼이, 정신이 보노보라는 동물에게 들어갔다는 이야기.

 

 

 

보노보

피그미침팬지(Pygmy chimpanzee)라고도 한다. 몸길이 70∼82㎝, 몸무게 30∼40㎏이다. 1929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침팬지의 한 아종이었으나 1933년 독립된 종으로 분류되었다. 다른 침팬지들에 비해 다리가 길고, 어깨와 가슴 폭이 좁으며, 머리털이 길고 양쪽으로 갈라진다. 얼굴은 검은 편으로 이마가 높으며, 귀가 작고, 입과 턱부분이 덜 튀어나왔다. 털은 검은색이며, 꼬리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반점이 있다.

 

 

환타지도 아니고, 이게 뭐얌...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정유정이라는 작가를 믿고 보기 시작했다. 오늘 다 읽었고..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 정유정이 전작들에 비해, 좀더 깊어졌다는 걸 느꼈고... 전작들에서 보였던 그 잔인할 정도의 치열함이 조금 누그러지고 인생에 대한 생각이 무르익어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한 그녀와 제인이 듀엣으로 선보인 '아하하하'는 날숨으로 목젖을 세게 쳐야 나오는 소리였다. 인간들 사이에선, 적어도 이 홀로세의 인류는 쓰지 않는 방식의 웃음소리였다. 모차르트는 즉각 이에 대한 해석을 내놨다. 하느님, 우린 행복해요. - p29

 

 

주인공 중 하나인 김민주가 이진이라는 사육사와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소리에 민감한 민주는, 진이가 침팬지를 안고 보이는 소통방식에서 그들의 관계를 읽어낸다. '다정한' 그녀는 행복했고 그와 마주한 침팬지도 행복한 그 상태. 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인연이 되어 민주와 진이는 생애 가장 치열했던 사흘을 함께 만들어내게 된다. 우연한 교통하고로 보노보 지니의 몸에 들어가게 된 이진이의 영혼과 정신을 눈치챈 민주는 다시 이진이의 몸으로 그 영혼을 돌려놓기 위한 행보에 참여하게 된다. 그 동안, 진이의 영혼은 지니의 몸에서 지니의 역사를 함께 보게 된다. 제 3자적인 입장이었다가 점점 동화되어 가는. 그러면서 먼먼 나라에서 한국에까지 팔려와 거쳤던 고초들을 이해하게 된다.

 

 

아주 어릴 때 이후로, 나는 누군가에게 업혀본 적이 없다. 타인에게 기대본 경험 역시 없다. 육체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기댄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거부감마저 있었다. 기댄다 하여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기대는 일이 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닌데. 그냥 이렇게 머리를 기울여 맞대면 되는 거였는데. - p225

 

 

그렇게 김민주와 이진이도 친구가 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 없지만, 김민주가 백수로 집에서 쫓겨나 노숙자 신세가 되기까지의 사정이나, 이진이가 아빠없이 태어나 엄마가 갖은 고생으로 키워졌고 그 엄마 또한 홀연히 돌아가셨다는 사정이나.. 알 수 없지만, 어느 새 그들은 하나로 이어진다.

 

 

"노래 하나 불러도 돼?"

노래라면 조금 전 램프에서 넌덜머리 나게 들었다. 민주의 노래라면 더욱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야상 주머니에서 이상한 안경을 꺼내 끼더니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내가 거부 의사를 나타내기도 전에, 예의 현란한 노래 솜씨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생일... 이라고.

 

나의 친구 진이의

생일 축하합니다.

 

그는 노래를 끝내고 짠, 하듯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토끼 얼굴 모양의 장난감 안경이 붙어 있었다. 안경테 양쪽 윗부분엔 귀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고, 귀와 귀 사이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Happy Birthday.

 

그는 양쪽 손가락 두 개를 귀 옆으로 들어올려 토끼처럼 깐닥거렸다. - p348

 

 

이 장면이 내내 마음에 박힌다. 속은 진이이지만 겉은 지니인 보노보 앞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민주의 모습. 그 짠함이, 그 다정함이 마음에 전해져 아릿해진다. 정여울의 후기에도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건 무엇인지,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었다. - p367

 

 

 

이 대목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어쩌면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떠나가는 사람이 말로 하진 않아도 전해주던 이야기. 잊지 말아야 하는데 잊고 있었구나 라는 마음에 울컥한다... 정유정의 글은 매력적이고... 잡으면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잊어버릴 뻔 한 걸 일깨워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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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너무 인상적이고, 포크너의 책을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들게 된 책이다. 예상보다 난해했고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한 여자(엄마이기도 한)의 죽음으로 빚어진 긴 장례여행 길에서의 그 가족들. 그리고 그 심경들. 행위들... 한 번 나오는 죽은 여자의 독백. 뭐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어렴풋이 알게 하는 전개들.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 놀라운 책이다.

 

 

하느님이 길을 땅바닥에 납작하게 만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느님이 무엇인가를 계속 움직일 목적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길이나, 말, 혹은 마차처럼 앞뒤로 길게 뻗어야 한다. 그런데 한자리에 머물도록 만든 것이라면, 나무나 사람처럼 위아래로 뻗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위아래로 쭉 뻗은 사람이 길에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길과 집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 만들어졌는 지 새각해 보면 된다. 집이 먼저 세워져 있는데 그 옆에 길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절대로. 마차를 타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마다 현관에 침을 뱉는다면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편히 살 수 있겠는가? 사람이란 나무나 옥수수처럼 한곳에 머무르도록 만들어졌다. 만약 사람이 계속 움직여야 하고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면 하느님은 사람을 뱀처럼 길바닥에 쭉 뻗어 기어다니는 모양으로 만들었어야 한다. 분명히 그렇다. (p44)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그냥 기억났을 뿐이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죽어 있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p195)

 

가끔씩 난 확신할 수가 없다. 누가 미치고 누가 정상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어느 누구도 완전히 미치거나, 완전히 정상일 수는 없을 거다. 마음의 균형이 제대로 잡히는 것이 쉽진 않으니까.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p268)

 

 

포크너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고 싶다.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건 <소리와 분노>. 그리고 <팔월의 빛>이다. 사실 미국 작가들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포크너의 글은 좀 다른 생각을 가지게 한다. 아 그러고보니.. 책을 또 사야 하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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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6-23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세요! 저도 지난 주에 두 번이나 질렀답니다. 하하하하하.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는 지난번에 잠자냥 님 페이퍼였나, 거기에서 보고 사야지 했었는데 그 다음에 샀는지 안샀는지..기억이 안나네요... 흐음... 그렇지만 사려고 하면 알라딘이 알려주겠죠...

비연 2019-06-24 10:57   좋아요 0 | URL
허허허허... 알라딘에 들어오면 지름신들이 여기저기 강림... 으흑. 오늘 그렇다면...
저도 가끔은 샀는 지 안 샀는 지 기억이 안나고.. 알라딘이 알려주면 그뤠? 하면서 삭제.. 허허허.
 

 

 

 

 

 

 

 

 

 

 

 

 

 

 

 

 

병원에 자질구레한 질병으로 자주 가고 혹은 가끔 검사하자고 해서 놀란 마음을 지닌 채 진료를 받기도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질병이라는 것, 사람이 아프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여러가지 심리적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아직까지 큰 질병으로 고생한 적은 없고 우리 가족들도 그러진 않아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지만, 가끔씩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자거나 할 때 느끼는, 세상이 무너지는 감정 등을 겪을 때는 사는 게 무엇인가, 사람이 산다는 건 늙는다는 건 무엇인가를 재삼 또 재삼 생각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지은이인 아서 프랭크는 심리학자이고 교수이다.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심장마비와 암에 걸렸었고 그로 인해 느꼈던 수많은 감정과 알리고 싶은 것들을 글로 담아낸 것이 이 책이다. 읽고 있으면, 맞아 내가 이런 심정과 가깝게 느꼈더랬지 라는 생각도 들고 내 주위에 암으로 이승을 작별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가 그들에게 '돌봄'이라는 것을 다르게 했었어야 하는구나 라는 아쉬움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내가 원하는 도움은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름의 방식으로 질병을 살아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의료진 또한 지켜봐주는 것이다. 답을 받기보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p30)

 

우리는 취약한 생물이고, 인간들은 바로 이 취약함을 공유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희망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취약함을 부정하기보다는 받아 안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취약함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을 때만 또렷하게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또렷하게 분별한다는 것은 저곳이 아니라 이곳에서 돌아다니길 선택하는 일 이상이고,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희망하는 일 이상이고,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사랑하길 선택하는 일 이상이다. 또렷하게 분별한다는 것은 어디서, 무엇을 누구를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 모든 활동의 한가운데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p39)

 

 

심장마비를 거쳐 특히 암이라는 질병을 가짐으로써 저자는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그리고 인생에서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관점을 조금씩 다듬어나가고 있었다. 심장마비와는 다르게 암이라는 질병은 '낙인'이 찍히는 일종의 만성질환이고 어쩌면 한번에 저세상으로 갈 수 있는 심장마비라는 것과는 달리, 길게 죽음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하고 암환자라는 세상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도 당연히 인용하고 있다.

 

 

사회가 두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병들은 언제나 성격에 관련된 이론으로 설명했다. 암을 주제로 한 책 중에서도 대단히 분별 있고 합리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은 이러한 사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에 나오는 예를 보자면, 중세 시대에는 행복한 사람은 전염병에 걸려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중세 사람들이 전염병을 막을 수 없었듯이 우리도 암을 막을 수 없으며, 그들이 전염병을 두려워했던 만큼 우리도 암을 두려워한다. 중세 사람들은 행복이 보호책이라고 주장했고, 우리는 분노나 성, 혹은 유행 중인 다른 무엇을 억누르지 않아야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p174)

 

 

 

 

 

 

질병에 대한 환상 중에 하나는, 생물학적 원인 이외의 감정적인 원인 혹은 가치적인 원인을 찾고자 하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내가 어떻게 했기 때문에 이게 걸렸을 거야. 이런 것. 내가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그런가. 내가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런가. 내가 성적으로 문란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남에게 비난을 하고 상처를 준 적이 있었던가.. 내가, 내가... 이런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결국 질병의 원인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국한하여 자꾸 찾으려 하는 데에 있다. 질병은 개인이 무엇을 잘못 했기 때문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감정이나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안 좋은 조짐이라도 보일라치면 대부분 이렇게 된다. 나의 지난 행동을 반추하고 나의 나쁜점을 들추고 나의 잘못한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생각을 했다.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치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멀고 먼 별자리에선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 하늘 한구석의 죽음이겠지." 라고 폴 사이먼은 노래했다. 멀고 먼 별에서, 우리는 한 번 깜빡이고는 사라지는 빛처럼 보일 것이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우리는 빛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일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p190)

 

이 책을 읽으면서, 질병을 가진 자와 그 주변에 머무르는 자들의 입장과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을 때만큼의 철학적 성찰이 있지는 않지만, 지은이는 자신의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좀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더 마음에 와닿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어차피 병들고 죽는다. 이것만한 진리가 있을까. 누구나, 그렇기 때문에 질병이라는 것에 대한 성찰이, 나름대로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지금은 건강해도 내일, 혹은 내년, 혹은 십년 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게 사람의 인생이고, 따라서 미리 준비를 한다.. 라기보다는 질병에 대한 생각들을 책을 통해서라도 정리해두는 작업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자기의 일이 되면.. 그것은 다 소용없는 일이고, 100% 내가 개인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겠지만, 그래서 이런 '생각'이란 자체가 사실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건강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에게조차 필요한 성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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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9-05-29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질병이 생기면 그 모든 원인을 결국 내부로 돌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저런 조심을 했어야 했는데, 생활식습관을 다르게 가졌어야 했는데 등등이요. 사실 그런 것들이 모두 원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까지도, 나쁜 생각을 가졌다던가, 뭐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어서 그랬다든가 ㅋ.

비연 2019-05-29 21:5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더 힘든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사실 질병의 원인이란게 하나인 것도 아니고.. 선악과 따먹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듯.. 이 책이 그런 점에서 통찰력을 주네요~
 

 

딱히 리뷰라고 할 건 없었지만, 그래도 책 읽고 그 안에 있는 좋은 단락들 몇 글자 끄적이며 내 나름의 감상이랄까를 적는 게 좋았는데 요즘 그게 하기 싫어진 건 뭐인지. 하기 싫다.. 라기보다는 좀 게을러진 것 같다. 읽고 나서 다시 끄집어내어 뭔가 쓰는 게 귀챦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뭐 이러다 말겠지. 쌓이는 책들을 보며 뭔가를 쓰겠지 하고 편안하게 마음을 먹어 본다.

 

 

 

이 책은 좀 길게 잡고 읽은 것 같다. 요즘 빅데이터니 뭐니 하면서 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시기에, 데이터를 잘못 분석하면 안돼, 라고 경고하는 책이라는 것이 흥미로와서 보았던 것이다. 책을 쓴 사람 자체가 수학을 전공했고 실제 증권가에서 숫자를 다루는 직업을 가졌었고 그 와중에 데이터라는 것을 잘못 취급했을 때 얼마나 큰 폐해가 나타나는 지를 절감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활동들을 하게 되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데이터라는 것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고 설사 그다지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닐지라도 지속적인 현실의 반영과 점검을 하지 않으면 실제로 사회에서 경제적, 인종적, 성적 차별 등이 일어날 수 있고 이것은 악순환으로 이어져 그 status를 고착화 혹은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의 선한 의지가 개입될 수 있도록 선순환의 루프를 도입해야 하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들을 계속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당히 동감한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제목이 좀 무섭기는 하다...;;;)

 

 

 

 

드디어 이 책이 마무리가 되었다. <항설백물어> 책이 여러권 나왔지만 사실 첨에 한 권 정도 읽고 읽지 않았는데 (교코쿠 나츠히코의 책을 왕성하게 읽을 때도 있었건만) 이 책이 나오키상을 받았다고 해서 <후 항설백물어>는 상/하권을 다 읽어내었다. 이 책, 하권에서 이제 일단락이 되면서 그간의 많은 이야기들이 저물어가게 되고, 이 정도로 일본의 괴담을 재미나게 의미있게 풀어냈다면 나오키상 한번 정도는 줄 만하겠다 싶었다. 

 

세상에 요괴/요물은 있는가. 사실 다 사람의 원념과 나쁜 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을 그러한 정체불명의 그리고 세상에 있음직하지 않은 존재들로 대체하여 표현하는 것은 아닌가. 시종일관 이 책들은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교코쿠 나츠히코라는 사람은 참으로 독특한 사람이 아닐 수 없고 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마음에 의외로 꽂히게 하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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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았다. 개봉일이 그제였는데 그날 보려고 했다가 못 보고 어제 부랴부랴 예매해서 보았다. 저녁 7시 35분 시작해서 10시 35분 시작, 집에 도착하니 세상에 11시 30분 쯤이었다. (지금 피곤) 세시간 내리 영화를 해대는 건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후로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집중력이 계속 상승하여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사람들이 중간에 꼭 화장실을 간다고 해서 영화 들어가기 전에 물 종류는 아예 먹지를 않고 화장실도 여러 번 다녀온 끝에 영화는 무사히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중간에 뛰쳐나가는 사람들 꽤 되어서, 그걸 보면서 괜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면 내가 이상한 건가? 아뭏든... 역시나 어벤져스 시리즈의 대단원은, 사람과 현재와 우정과 가족을 다시한번 환기시키는 그것이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어벤져스들이 아무리 첨단의 무기로 장착하고 초능력을 가지고 싸운다 해도 결국 싸울 때는 중국 무술이나 일본의 유도, 우리나라의 태권도 같이 몸과 몸이 맞서 싸우는 전통적인 방식의 싸움일 수 밖에 없고 그들이 회귀할 곳은 어디 멋드러진 행성이나 어마어마한 곳이 아니라 자신의 한몸, 운명의 흐름에 따라 맡기고 안위를 위탁할 가족이더라... 뭐 이런 것이었다... 더 이상 얘기하면 스포가 될 테니 여기까지. 이 열기가 좀 식으면 iMax로 한번 더 볼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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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9-05-14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책들 다 재밌을 거 같습니다. 오늘 집에가서 열심히 책 읽어야겠네요ㅎ

‘세상을 구하기 위한 어벤져스들이 아무리 첨단의 무기로 장착하고 초능력을 가지고 싸운다 해도 결국 싸울 때는 중국 무술이나 일본의 유도, 우리나라의 태권도 같이 몸과 몸이 맞서 싸우는 전통적인 방식의 싸움일 수 밖에 없고 그들이 회귀할 곳은 어디 멋드러진 행성이나 어마어마한 곳이 아니라 자신의 한몸, 운명의 흐름에 따라 맡기고 안위를 위탁할 가족이더라... 뭐 이런 것이었다..‘

뭔가 물 흐르듯이 읽히는 좋은 문장이었습니다^^b

비연 2019-05-14 19:54   좋아요 1 | URL
다 괜챦은 책들에요 ㅎㅎ 제가 마블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게 저변에 깔린 ‘결국 인간이더라’ 라는 휴머니즘적인 테마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