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간에 공공부조의 도입은 노동자 및 자본이 국가와 맺는 관계의 전환점이었고 국가기능의 정의를 바꾼 계기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굶주림과 공포라는 수단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을 최초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계급관계의 보증인이자 노동인구 재생산과 훈육의 제1감독기구로서의 국가를 재건하는 첫 발걸음이기도 했다. (p136)

 

봉건제는 페스트와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과 실질임금 상승으로 인해 그 기반이 무너져 내렸고 그렇게 노동계급이 나타나 지역적으로 단결하여 저항하게 되자 국가가 나서게 되었다.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국가가 조치를 취하는 순간이 오게 된 것이다. 그 맥락에서 공공부조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 새로운 "사회과학"이 출범하면서 오늘날의 복지논쟁을 예견하는 국제적인 공공부조 관련 논쟁이 전개되었다. 소위 "자격 있는 극빈자"인 노동무능력자만 공공부조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신체 건강한" 노동자도 혜택을 받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혜택을 얼마나 많이 또는 적게 줘야 구직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가? 공공부조의 주된 목적이 노동자를 일터에 묶어두는 것이었던 만큼, 위 사항은 사회규율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p137)

 

공공부조는 시혜가 아니라, 노동력 규제의 수단이었다. 남아도는 인력이 없게끔, 국가가 한 곳에 수용해서 그들에게 노동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였다.

 

 

16세기 잉글랜드에서는 아이건 어른이건 "구빈원(work-houses)"에 갇히는 조건 하에서만 부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그들은 각종 노동계획표의 실험대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인클로저와 가격혁명에서 비롯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한 세기가 지나면서 노동계급의 범죄자화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신축 구빈원이나 교정원(correction-houses)에 감금되어 노동하거나, 아니면 항상 채찍과 교수대의 올가미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법 외부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국가를 공공연하게 적대시하는 대규모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되었다. (p138)

 

 

이 부분을 읽는데 문득 최근에 본 영드가 생각났다. <콜 더 미드와이프(Call the Midwife)>.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 이스트엔드의 수녀원에서 조산사로 일했던 Jennifer Worth의 실제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든 영드인데, 시즌 1 에피소드 1의 지루함만 극복하면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이제는 나이든 Worth의 목소리가 바탕으로 깔리면서 그 시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즌 1의 에피소드 5화에 구빈원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나이든 남매가 있다. 그들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구빈원에 가 살아야 했다. 7살이었던 오빠는 어린 여동생의 보호자가 되었고 그 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 중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여동생은 구빈원에서 청소업무를 맡았고 온종일 닦고 쓸고 하는 일만 하느라 인간다운 생활을 못한다. 오빠는 그 곳을 뛰쳐나와 여동생을 그 곳에서 빼내기 위해 온갖 일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여동생을 구출(!)해나와 둘이 오손도손 살아가게 된다. 여동생은 수녀원에서 청소를 하는데 예전 구빈원에서의 습관을 못 버린 채 깨끗하게 하는 데 엄청 집착하고 오빠는 그런 여동생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구빈원은 그런 곳이었던 거다. 가두어 두고 노동을 착취하던 곳. 약간의 물질을 제공하면서 사람을 사육하던 곳. 그 곳은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탈출해야 하는 장소였던 거다.

 

그 에피소드에서 사실 그 남매는 부부와 같은 사이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산사들이 모여서 근친상간 아니냐며 수근거리자 그 얘기를 옆에서 듣던 나이든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구빈원이 어떤 데인 줄 알아요? 알면 그렇게 말 못합니다."

 

어쩌면 종교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오히려 수녀님들은 이해했다. 세상 천지에 의지할 사람이 서로일 수 밖에 없었던 남매에게, 그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오빠가 암에 걸려 죽고 여동생은 그 오빠 곁에서 모르핀을 먹고 죽는 길을 택한다. 발견한 수녀님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진정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거라고.

 

<캘리번과 마녀>에 나온 구빈원에 대한 내용을 읽고,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서 <콜 더 미드와이프>의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니, 이런 짓이 참 할 짓이 못되는 일이었음을,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이해하려면 그냥 그 현상만이 아니라 흐름을 보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수녀님들처럼. 종교에 얽매여 제도에 얽매여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개인이 뿌리치지 못했던 불행한 국가적 속박이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 거구나...

 

 

 

 

 

 

 

 

 

 

 

 

 

 

 

 

 

 

책도 있고 Audio CD도 있어서 한번 사볼까 한다... 결국 또 지름신 안착. 하지만 <캘리번과 마녀>와 <Call the Midwife>와의 접점을 발견한 것은, 내게 때아닌 기쁨을 안겨준다. 이런 것 때문에 책을 읽는 게 아닐까. 그러니 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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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07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 사도 된다, 라는 문장에 오늘 페이퍼는 설득력이 가득가득합니다. 사셔도 됩니다, 비연님.

비연 2020-07-07 12:19   좋아요 0 | URL
그쵸? ㅎㅎㅎㅎㅎ 그래서 지금 보관함에 푱 넣고 장바구니로 옮기기 직전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