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 2월의 책, <여자들의 무질서>. 무질서(disorder)라는 단어가 좋아, 으헝, 하면서 딱 펼쳐드니.. 역시나 다른 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 선정도서들과 마찬가지로 서론이 내 앞을 가로 막는다. 다행히 33페이지까지 밖에 되지 않아서, 그래, 서론인데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흠. 어렵네? 허허.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니, 역시. 캐롤 페이트먼은 정치학자였던 거다. 사회학자나, 법학자나, 여성학자나, 역사학자나.. 가 아니라, 이제껏 잘 접하지 못했던 정치학계의 거두였던 것이다. 그러니 시각은 정치학적인 시각. 같은 사안이라도 풀어내는 것이 새로울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복지국가의 경우에 아이러니는 여자들이 복지에 기여하라고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복지는 여자들이 가정에서 아이, 노인, 병약자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제공하는 사적인 무급의 '복지'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국가가 여자들에게 한 요구들은 고유한 사적 책무를 갖는다고 간주되며 따라서 시민으로서의 지위가 애매하고 모순적인 자들에게 적합한 형식을 항상 취해왔다. 여자들의 '기여'는 그들 시민권의 일부로 혹은 시민권과 유관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고, 그들의 성에 고유한 사적 책무의 필수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p 24)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서, 남성은 공적이며 여성은 사적이다. 따라서 시민은 남성이고, 여성은 남성의 피부양자의 자격만 있을 뿐이며,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성별 자체를 기반으로 한 사적인 책임 뿐이다. 오. 명료하게 정리되네. 이렇게 돌봄노동의 문제도 나오고, 성적 동의라든가 하는 문제도 나오고... 시민이 아니니 노동자의 범주에도 들어가기 힘들며, 그러니 어떤 권리를 얘기할 때 양성적인 측면을 고려하기 힘들게 된다. 그러니 여성의 급여는 작을 수 밖에 없고 직장에서의 위치는 애매하다. 시민의 범주에 못 들어가고 노동자의 범주에 못 들어가고, 그냥 남성에게 종속된 상태로 남게 된다... 아니, 이 책이 1989년에 나온 책인데도 왜 이렇게 절렬하게 느껴지는 거지. 왜 아직도 이런 걸 현실로 느끼게 되는 거지. 갑자기 분노스러워지는. (활활)


서론까지 읽고, 일단 덮고, 일요일의 마무리를 위해(흠?) 와인과 영화를 누릴 생각이지만... 역시나 서론밖에 읽지 않았음에도 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 선정도서는 '놀랍다' 싶다. 어려워도 흥미롭고 쉽지 않아도 읽고 싶어지는 책들 뿐이다. 부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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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2-07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역시 비연님~^^♡ 부라보!!

비연 2021-02-07 20:38   좋아요 2 | URL
^_________^
 
















주된 관심사가 'equity'에 있다보니 이런 책들을 좀 찾아보는 편이다. 제목을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저렇게 되지만 원제는 <Poor Economics>, 말하자면 빈곤의 경제학 정도가 되겠다. 제목이 현혹되어, 아,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인 거야? 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좀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그 상황에서 하는 선택이 우리가 봐선 아니겠지만, 그들에겐 '최선의' 선택이다. 그들에게도 그 나름의 합리적 상황 배경이나 이유가 있다 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고, 따라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들을 개선해주면 그들도 우리가 보기에도 reasonable한 선택이 가능하게 된다. 큰 변혁이 아니라도 작게 작게 시작하면 변화할 수 있다. 요약하면 뭐 그런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결론 부분이 아니라 그 문제의식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난'이 뭐지? '가난한 사람'은 뭐지? 우린 왜 그들을 '도와야' 하지? 그들을 돕는다고 하는 방법이 맞는 건지? 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게 흥미로왔다. 생각해보면 가난한 나라를 원조하는 많은 입장에서, 그들을 가난하다고 규정한 이유가 있을 테고 그들에게 돈이든 현물이든 사람이든 지원할 때는 이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일텐데, 어쩌면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딱, 지원하는 입장으로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의문심이 들어 버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축 행위는 사람들이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자신의 바람을 실현할 기회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솔한' 소비를 줄이고 미래에 투자하려 한다. 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달리 계획이 없다. 이에 따라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간의 저축 활동이 달라지고 똑같이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저축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p275~276)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돈을 주면 저축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필요한 소비재를 산다. 자식을 교육시키려 하지 않는다. 현재 더 개선할 여지가 있어도 그냥 그 상태에 머무르려고 한다. 처음엔 잘 하는 것 같다가도 나중에 그대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국가에 뭔가를 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그들은 그러니까 가난한 거다... 라는 생각에 반문을 하고 있다. 그들이 먼 미래를 바라보고 뭔가를 하기 위해선, 그 먼 미래에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에겐 그게 없다. 따라서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지내는 거다. 따라서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불어넣어주면 그들에게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라고 저자들은 말하고 싶은 거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희망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골대를 조금 가깝게 밀어주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첫걸음을 내딛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p278~279) 


이 점에 동의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는 '넛지'가 필요하다. 그냥 돈을 주면 되지 현물을 주면 되지 봉사활동을 하면 되지 이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한다면 그 길은 요원하다. 그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거기에서 motivation 될 수 있는 trigger를 잡아주는 것이 제일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한 걸음 내디디면 그 다음 걸음을 내딛기가 쉬워지니까. 


개인적으로 지금의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동남아시아 권의 빈곤은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나라들에게서 수탈받은 경험으로 인해 상당히 왜곡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빈곤이 그냥 경제적으로 못산다, 이게 아니라 그 안에 역사적으로 쌓여온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내재되어 하나를 해결하려고 하면 다른 하나가 걸리기도 하고, 정치나 사회가 너무 부패하여 빈곤이란 것이 풀리지 않는 매듭이 되어버린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빈곤한 나라들에 원조라는 것을 할 때 '정치적' 개입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해결하지 않으면 빈곤이 해결되지 않는데? 라고 얘기한다 해도,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치적인 개입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큰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그래서 소액금융제도 등과 같은 시도가 의미가 있다고 보다. 



일반적으로 원조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동반하고, 지도자들이 부패한 상황에서 원죠를 계속하면 정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스털리가 비관적인 입장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각 국가가 저마다 성공 비결을 찾을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도록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한 가지 전문가적인 충고를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자유다. 이것은 최대한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적 자유란 '가장 과소평가되고 있는 인간의 발명품', 즉 자유시장이다. (p325) 



이 견해에 일견 동의하고..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상태로 그냥 방치하자가 아니라, 자꾸 Top-down방식으로 하려 하지 말고 'Bottom-up'방식으로, 그러니까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유도해보자, 라고 제의한다. 그냥 인도주의적으로 감정에 호소해서 원조를 하려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난한 사람/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그 부분을 해결하자는 것. 이런 논의제기로 이들은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제 경제학이란 것이 주류경제학에만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노벨상의 흐름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후속 작품으로 이 책도 나와 있길래, 일단 사두었다. 지금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곧 보게 될 것 같다. 세상이 마냥 나빠지지만은 않는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건, 이런 학자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실천에 기반한 연구를 끊임없이 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 같이 잘 살자라는 취지 아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더디더라도 그 노력을 조금씩 인정받아 가는 흐름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꽤 읽을 만 했다. 문제의식을 달리 했을 때 사안이, 그 해결방안이 얼마나 달리 보일 수 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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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2-06 19: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저축 하신 것 같아요. “후속 작품으로 이 책도 나와 있길래, 일단 사두었다.”ㅎㅎㅎ 비상식량 마련, 그렇게. 책 산 것에 대해서 이렇게 우아하게 말하시다니!😅

비연 2021-02-06 22:2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책저축. 정말 딱 맞는 표현요^^

붕붕툐툐 2021-02-06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이 읽고 있어요 올릴 때부터 내용 궁금했는데, 드뎌 완독하시고 후기 남겨주셨군요!! 앞부분 딱 저예요~ 내가 합리적인 이유가 궁금했는데!ㅋㅋㅋ
저는 오늘 친구랑 대화하면서 가난이란 뭘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거든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인 거 같네요!!

비연 2021-02-06 22:29   좋아요 2 | URL
가난이란 뭘까요. 정의라는게.. 참 중요한 거 같아요. 뭐든 거기서 시작하는~ 좋은 책입니다!^^
 

 

 

 

 

 

 

 

 

 

 

 

 

 

 

일단 독서의 질병이 잠식해 들어가면 몸이 너무나 쇠약해져서, 잉크병에 숨어 있고 깃털 펜에서 곪아 가는 치명적 병균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버린다. 가여운 인간이 글을 쓰는데 빠져드는 것이다. 이것은 가진 것이라고는 비가 새는 지붕 아래 놓인 의자와 탁자뿐이라서 결국 잃을 것이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지만, 여러 채의 저택과 가축, 하녀, 당나귀와 리넨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글을 쓰려는 부자의 고충은 가련하기 그지없다. 그 모든 재산을 향유하는 즐거움이 달아나 버린다. 그는 뜨거운 쇳덩이에 난타당하고 해충에 뜯긴다. 작은 책 한 권을 쓰고 유명해질 수 있다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동전 한 푼까지도(그 세균의 악성은 이 정도로 지독하다)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페루의 금을 모두 내놓아도 보석처럼 우아한 시 한 줄도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폐결핵에 걸려 앓아눕거나 자기 머리통을 권총으로 쏴버리고 혹은 돌아누워 벽만 바라본다. 그가 어떤 자세로 목격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었고, 지옥의 불꽃을 경험한 것이다. (p79)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쓰면서 느꼈던 심정을 옮겨 담은 게 아닌가 싶었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거기에 빠져들고. 참으로 유려한 표현이다. 문득, 예전에 본 영화가 기억났다. 제목도 가물가물했는데, <디 아워스(The Hours)>. (<디 아더스(The Others)> 아님다.. ㅎㅎ 여기에도 니콜 키드먼이 나와서 엄청 헷갈리는 비연)..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었다. 심지어 2002년 작이네. 극장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아마 아카데미상 탔다고 봤던 듯.

 

 

 

 

여기에 메릴 스트립과 줄리안 무어가 나왔던가. 그냥 기억나는 건, 버지니아 울프로 분했던 니콜 키드먼의 모습. 뭔가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예민함이 보였고 담배를 계속 피던 모습이 떠오르고. 그리고 호숫가로 걸어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내가 버지니아 울프를 우울함으로 기억하는 건, 이 영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에서의 울프의 모습은 적절한 유머가 있고 세상에 대한 냉소를 돌려치며 말하는 위트가 있고 무엇보다 표현이 섬세해서, 우울함은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인생 자체를 비극으로 여기는 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다시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찾아보니 왓차에 있는 것이다. 흐흐흐. 돈 낸 보람이 있구나, 왓차. 이번 설 연휴는 짧은데 할 일은 많고.. 그 중에 이 영화 보는 것도 하나 넣어둬야겠다.

 

일요일 아침에 괜한 일로 약간의 스트레스르 받았었는데 (세상 졸렬한 사람이 널렸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발견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일요일 아침에) 이 책 잠시 들춰보니 마음에 슬며시 평안이 깃든다. 자. 이제 일요일의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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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1-31 1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은 왓차를 보시는 군여. 저도 왓차에만 있는 <리틀 드러머걸>땜 원작 읽음 갈아타려구요.ㅋ<디아워스>안그래도 찾아봤는데 웨이브엔 없어서 발동동구르던차에요. 포스터에 니콜 키드먼 정말 버지니아울프 느낌이 물씬♡

비연 2021-01-31 11:21   좋아요 3 | URL
미미님. ㅎㅎ 저는 제가 뭐 보고 싶을 때 바로 볼 수 없는 상태를 별로 안 좋아해서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전부 가입해있어요. 이젠 쿠팡플레이도 해야 하나 하고 있는. 쿨럭. 정말 저 포스터에서 니콜 키드먼은 버지니아 울프와 싱크로율이 좋은 듯^^ 당시에 니콜 키드먼처럼 화려하게 생긴 얼굴이 저렇게도 분장이 되는 것에 다들 놀라와했던 기억이 나요.

미미 2021-01-31 11:26   좋아요 2 | URL
비연님 꺄아악~♡이소리가 절로 나와요!! 문화적 하이클래스네요. 저도 늘려볼래요!(ㅋㅇㅋ)👍

비연 2021-01-31 11:30   좋아요 2 | URL
미미님... 문화적 하이클래스라기보다는... 문화적 호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쿨럭.
저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성질머리가 그런 게 불편한 걸 못 참아해서..ㅜ

오거서 2021-01-31 1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여운 인간이 글쓰기에 빠져드는 질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되네요. 이런 표현력이 그냥 생기지 않을 텐데요, 비연 님은 병중이거나 병력이 상당한 것 같아요. 저는 아직 병을 모르는 건강한 상태인 것 같아요. ㅎㅎ ^^

비연 2021-01-31 12:39   좋아요 1 | URL
아.. 아마도 버지니아 울프가 상당한 ‘독서 질병’이 있었던 게 아닌가.. ^^;; 전 뭐 근처에도 못갑니다만 ㅋ

붕붕툐툐 2021-01-31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줄까지 비연님 얘긴 줄 알고 귀 쫑긋했는데, 잉크병에서 아닌걸 눈치 챘죵~😉 그래도 비연님과 어울리는 병이라는 건 인정!!^^

비연 2021-01-31 14:17   좋아요 1 | URL
앗.. 이런..ㅎㅎㅎ;;;

2021-01-31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1-01-31 17: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릴 스트립이 나와서 봤는데요.ㅋㅋ 이때가 아마 니콜 키(크)드만이 톰 크르즈와 이혼한 시기일 거에요. 그녀의 연기 인생은 그와의 이혼으로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잘했어 니콜!!!^^;;;

비연 2021-01-31 18:58   좋아요 1 | URL
아.. 메릴 스트립이 나와서 보신. 전 왜 생각이 안 나는지..ㅜㅜ
니콜 키드먼은 정말 톰 크루즈와 이혼 후 훨씬 잘 되었죠. 연기적으로나 여러 면으로~
이 영화, 정말 다시 봐야겠어요^^

공쟝쟝 2021-01-31 1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봤고 전 심지어 (읽지 않은) 디아워스 소설 책도 있다...??ㅋㅋㅋ

비연 2021-01-31 18:58   좋아요 2 | URL
헉. 책도 있어요?????

공쟝쟝 2021-02-01 08:03   좋아요 2 | URL
네네 있습니다 있어요~ 저도 자기만의 방 읽고나서 영화보니 너무 좋아서 ㅋㅋㅋ 니콜키드먼 울프도 좋고 줄리안무아도 좋고 ㅋㅋㅋ 문제는 댈러웨이부인을 읽은 다음에 읽자 싶어 미뤄 놓음 ㅋㅋ

비연 2021-02-01 10:36   좋아요 0 | URL
이 영화가 <댈러웨이 부인>하고 연관이 깊어서.. 저도 이 책 보고 영화 다시 볼까나?
사실 저 라인업. 환상이죠. 니콜 키드먼도 그렇지만 메릴 스트립과 줄리안 무어라니.

syo 2021-02-01 02: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나 니콜 키드만 못 알아봤어요. 완전 그냥 울프인데??

비연 2021-02-01 04:18   좋아요 2 | URL
진짜 분장 승리죠? 예전에 분장하는 모습 영상으로 본 적 있는데 엄청 힘들겠더라구요..

유부만두 2021-02-01 0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디 아워스‘ 영화 먼저 보고, 책 읽고 그 다음에 울프 소설로 넘어간 ‘역주행‘ 독자입니다.

비연 2021-02-01 10:37   좋아요 1 | URL
오홍! 영화가 trigger가 된 거군요~

수이 2021-02-01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 아워스 저도 극장에서 보았는데 전 결혼 같은 거 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던 기억 나요 하지만 현실은 움움움 -_-

비연 2021-02-01 10:38   좋아요 0 | URL
그것이.. 원래 저런 영화 보고 결혼 하지 말아야지 결심하는 사람은 결혼하는 거고
결혼하고 말고에 아무 관심 없이 밍밍하게 나온 저같은 사람은 안하는 거고..ㅎㅎㅎㅎ

감은빛 2021-02-01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디 아워스]는 못 봤고, [디 아더스]는 봤는데 본문에 이 영화 언급이 있어서 반갑네요. ㅎㅎ

비연 2021-02-01 10:39   좋아요 0 | URL
영화 제목이 뭐 이리 비슷한지. 전 매번 <디 아워스> 찾겠다고 <디 아더스>를 치고 찾는다는.
그리고는 대문에 니콜 키드먼이 나오면 아, 하다가 흠? 하면서 아니네? 를 반복..ㅜㅜ
심지어 나온 연대도 1년 차이라 더 헷갈려요. 저는 두 영화 다 봤는데, 니콜 키드먼의 변신은 놀랍죠!
 

 

1.

 

요즘 고민이 있었다. 안 해도 되는 고민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결정이란 걸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이주 정도 고민했던 것 같고, 오늘 그 고민의 마지막을 찍었다. 그러니까 결정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 결정으로 3월 이후의 내 생활은 급변할 것이고... 잘한 건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어렸을 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상 사는 게 쉬워지는 줄 알았고 뭐든 결정도 빨리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이를 그렇게 먹었는데? 뭘 머뭇거려? 나이가 어렸을 때야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생각해야 할 변수들도 많고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나이 들면 그런 거 아니잖아. 좀 더 가졌을 거고 생각해야 할 변수는 나이에 반비례하여 많이 줄어들었겠지... 근데 아니네. 더 힘들다. 좀 더 가졌고 생각해야 할 변수도 훨씬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묘하게 결정은 못하겠다. 내가 결정을 잘 못하는 의지박약자 스타일도 아니고 가급적 결정 빨리 하고 뒤도 안 돌아보는 성격임을 감안할 때 매우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나이 먹는다고 뭐가 그렇게 많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럴 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하라고 얘기 좀 해주면 좋겠다. 그냥 머리 비우고 좇아만 가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든 2주 남짓이었다. 이젠, 아 몰라. go 야. 이렇게 생각하고 2월 한달을 재미나게 놀 생각을 해야겠다 싶다.

 

2.

 

현재 읽는다고 들고 있는 책은 두 권이다.

 

 

 

 

 

 

 

 

 

 

 

 

 

 

 

 

이 책, 보기보다 재미있기까지 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2019년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요즘 주류경제학보다는 행동경제학, 감성경제학 등의 말하자면 비주류경제학이 노벨상에 더 근접해있는 것을 보면 아주 놀랍진 않지만, 그래도 가난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그 때, 노벨상 결정나고 그 주제에 확 당겨서 바로 사두었었는데.. 이제야 읽고 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투적인 개념으로 단순화하려는 버릇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p6)

 

세계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목표는 당장 내일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의 고삐를 늦추면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요원해진다. 우리는 독자들이 인내심을 발휘해 한 단계, 한 단계 접근하는 것이 빈곤 문제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일 뿐 아니라, 세계를 보다 행복한 곳으로 바꿔놓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하길 바란다. (p37)

 

빈곤의 덫 이론에 숨어 있는 전제는 '가난한 사람은 가능한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p45)

 

 

지금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대한 실험과 해석들을 읽고 있는데, 정말이지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내용을 이렇게 풀어나가니 적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빈곤=기아.. 라고 항상 생각해왔던 거다. 그게 맞아? 라고 물어보니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거다. 빈곤, 가난.. 이것의 정의는 뭐지? 과연 가난한 사람들은 기아만 해결하면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거야? 이런 의문들을 던지는데,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는 깨달음이랄까.. 가 생긴다고나 할까. 뭔가 좀 역발상적으로 생각하는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내게 던져주는 문제의식만으로도 읽는 동안 충분히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다 읽고 페이퍼/리뷰 한번 쓰는 걸로.

 

 

 

 

 

 

 

 

 

 

 

 

 

 

 

 

 

왜 예전에 버지니아 울프를 지루하다고 생각했었지? 도대체 내가 뭘 읽은 거지? 라는 자책감이 들 정도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좋다. 이 책 <올랜도>는, 이제까지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책에 들어가지 않는 책이라, 그래서 골랐다. 이걸 다 읽으면 <댈러웨이 부인>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하긴, <자기만의 방>을 이제야 읽고 좋아라 한 비연이니 뭐.. (반성)

 

 

 

 

 

 

 

 

 

 

 

 

 

 

 

 

 

그리고.. 내 책상 위엔 이 책이 '올려져' 있다. 2월의 책. 오해 마시길. 아직 읽지는 않았답니다. 선행학습 그~음지! 그냥 양이 얼마나 되나 글자는 어떤가 하고 살짝 열어봤는데.. 비교적 얇다고 안심했던 것에 일격을 맞은. 글이 촘촘해. 그리고 논문 묶음이었어... 아. 2월도 그닥 만만치는 않겠구나 한다. 근데 제목이 맘에 든다. 무질서(disorder).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크하하.

 

<육식의 성정치>, 1월의 책은... 사실 다 읽은 후에는 페이퍼/리뷰를 쓰지 못했는데, 이것은 뭐랄까 심정이 복잡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못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지 모르겠다. 다만, 당장의 내 식습관에 영향을 주고 있긴 하다. 고기 먹는 횟수가 줄었고 어떻게 하면 고기 대신 채소나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물론 이게 쭉 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테이크는 너무나 큰 유혹이거든. 그러나 그만큼  이 책이 impact 큰 책이란 증거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아마도 아주 느리게 조금씩 먹는 쪽으로의 취향이 바뀌어나가는 trigger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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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1-28 2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육식... 은 읽은 사람의 심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힘이 있네요.^^;;
응원합니다, 비연님! 결정하신 일도 식습관도요 ~
버지니아 울프는 저도 동감이에요. 근데 사실 좀 지루한 글도 있는 건 맞아요. 소곤소곤.ㅎㅎ

비연 2021-01-28 22:35   좋아요 2 | URL
정말.. 육식.. 이 책은 어떻게든 영향을 받는 느낌요..ㅜ
버지니아 울프에게 지루함을 느꼈던 게 이상한 건 아니었군요. 괜한 안심 ㅎㅎ

미미 2021-01-28 20: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기만의 방>은 너무 좋아서 다른 출판사 것으로 한 권 더 살까 생각중이예요. ‘무질서‘ 저도 좋아함 흐흐^^♡

비연 2021-01-28 22:36   좋아요 2 | URL
아. 저도 이런 욕심이 있어요. 좋은 책을 출판사별로 가지고 싶다 이런 거.. 오노.. 미미님. 우리 우째요ㅜ

라로 2021-01-28 21: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댈러웨이 부인>으로 먼저 시작할까 해요. 그리고 봐서 <자기만의 방>을 읽을까 말까 결정. 너무 많은 (읽고 싶은 작가의 책이) 책이 줄을 서서 기다리니 전작을 하고 싶은 작가는 아니라서요. 저는 쉬운 책 읽기,,가 전문이라서요. (주제 파악 잘하죠!! 내세울 것은 그것 하나;;;)

비연 2021-01-28 22:36   좋아요 2 | URL
<댈러웨이 부인> 읽고 알려주세요! ^^
라로님 페이퍼 보고 보관함에 책 슝슝 던지고 있는 제겐,
라로님이 쉬운 책 읽기가 전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데요.. ㅎㅎ

유부만두 2021-01-28 22:49   좋아요 3 | URL
댈러웨이 부인 전 재밌게 읽었어요. 문장도 우아하고요. 전 자기만의 방을 어렵게 읽어서 오랫동안 울프를 겁냈었는데, 왠걸요! 버지니아 울프 소설 무섭지 않더라고요!

유부만두 2021-01-28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의 휴식과 충전의 2월을 덩달아 기뻐하면서 하트를 눌렀습니다.

비연 2021-01-28 23:59   좋아요 1 | URL
감사 감사 ㅎㅎ

수이 2021-01-28 2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는 왜 이리 재미난 책들이 많은 건가요 비연님 ㅠㅠ 알라딘을 끊어야 해 알라딘을 없애야 해 알라딘을 폰에서 삭제해버리겠어 북플도 삭제해야겠어요. 얼른 단계 떨어져서 2월에 면담하고 싶어요!!!

비연 2021-01-29 00:00   좋아요 1 | URL
저도 늘 삭제의 충동이.. 근데 왜 책 충동만 남는 것인지요.. 2월 면담 필히!^^
 

















이스라엘 작가는 아모스 오즈 정도 알고 있다가 '뉴욕 타임즈'로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아모스 오즈와 얀 마텔, 조너선 샤프란 포어 등의 극찬을 받은 작가의 에세이가 있다 해서 찾아 읽어보았다. 작가 이름은 에트가르 케레트. 몰랐던 사람이다. 이런. 세상에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작가 인생 처음으로 논픽션 에세이를 쓴 것인데, 그러니까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서 7년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매우 독특한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일면 애잔함이, 그러니까 2차대전을 겪은 부모를 두고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스라엘에 사는 상황에 대한 애잔함이 스미는 에세이였다. 사실, 이 모든 공포스러운 상황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다보니, 글 중간 중간에서 혼자 빵빵 터지곤 했다. 



그렇다. 그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기저귀를 더럽혀버린다. 그가 우주로 날아가거나 F-16 전투기를 조종하려면 아직 배울 게 몇 가지 더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48센티미터 규격의 완성된 인간이며, 그것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매우 극단적으로 기묘하고 독특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남들이 존중해주기는 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사람. 왜냐하면 복잡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키나 체중과 무관하게, 그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p20)


아기(이름이 레브)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하니, 뭔가 생생해지는 느낌이랄까. 이후에도 아들에 대한 얘기들은 참 다정하면서도 재미나게 그려진다. 이런 아빠에게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면 인생을 참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리키 선생님은 네가 초콜릿을 다 먹고 다른 애들이랑 나눠 먹지도 않는다고 하시더라." 내가 덧붙였다.

"응." 레브는 바로 그렇다고 했다. "애들은 학교에서 단 걸 먹으면 안 되니까 나눠줄 수 없어."

"그렇구나." 내가 말했다. "하지만 애들이 학교에서 단 걸 못 먹는데 왜 너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애가 아니니까." 레브가 능글맞게 웃었다. "난 고양이잖아."

"네가 뭐라고?"

"야옹." 레브는 가르릉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옹, 야옹, 야옹." 

..(중략)...

하지만 레브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보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들은 내 아들처럼, 자기가 고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임수를 쓰고, 남의 것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귀엽고 털이 복슬복슬하며 크림을 좋아하는 생명체인 그들은, 주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다니는 이족보행 생물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과 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p135~136)



아직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가 싶지만 어딜 가나 그런 것 같다. 우선 가장 가까운 부모가 홀로코스트를 겪은 세대이고 전쟁을 겪은 세대이니 그 상황이 작가에게 전달되었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중동 틈바구니에서 힘들다. 주변에 내전이 일어나고 폭탄도 터지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것을 그냥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사는 모습은, 이스라엘인들이 얼마나 매순간 평안하기 힘들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부다페스트의 문학 행사가 끝나고 술집에서 만난 헝가리 남자는 자기 등에 있는 커다란 독일 독수리 문신을 보여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자기 조부가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을 삼백 명이나 죽였다고 하더니 자신도 언젠가는 비슷한 숫자를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느 작고 평화로운 독일 동부의 마을에서는, 두 시간 전에 무대에서 내 단편을 읽은 배우 한 사람이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는 반유대주의는 나쁜 것이지만, 역사를 통틀어 유대인들이 저지른 견딜 수 없는 행동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어느 호텔 직원은 나와 아랍계 이스라엘인 작가 사예드 카슈아에게 자신이 규정을 정할 수만 있다면 호텔에 유대인을 받지 않을 거라고 했다. (p54~55) 


제2차대전 중,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모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느 폴란드 소도시의 땅속 굴에서 육백 일 가까이 숨어 지냈다. 굴이 너무 작아서 그들은 서지도 눕지도 못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인들이 그 지역을 해방시켰을 때, 그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들어서 옮겨야 했다. 모두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근육이 전부 위축되어버린 것이다. 굴에서 보낸 시간 때문에 아버지는 사생활에 민감해졌다. 형과 누나, 내가 같은 방에서 지낸다는 사실이 아버지에게는 미칠 노릇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었다. (p168~169)


너무나 좋은 아버지를 둔 행운을 가졌다고 말하다가 아버지가 암에 걸렸음을 얘기할 때는 내가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그것도 혀뿌리에 생겨서 여든이 넘은 나이에 항암치료 같은 것은 부담만 된다 하고 수술을 하면 혀를 잘라 말을 못하게 될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하는데,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어쩌면 자식 앞이라 노력하는 지도). 


"지금 아주 이상적인 상황이란다." 아버지가 내 손을 쓰다듬으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상황이 바닥을 칠 때 결정을 내리는 걸 좋아하지. 그런데 상황이 어찌나 암담한지 결국 이보다는 나아지는 것밖에 없겠구나. 화학요법을 받으면 곧바로 죽고, 방사선 치료를 하면 턱에 괴저가 생기고, 모두다 내가 여든셋이라 수술을 받으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하는구나. 내가 이런 상황에서 땅을 얼마나 많이 사들였는지 너도 알지? 주인이 팔지도 않으려고 하고, 내 주머니에 동전 한 닢 없을 때 말이다."

"알아요." 내가 말했다. 정말로 알고 있다. (p168)


"널 사랑하니까." 내가 말했다. "내 아들이니까.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지켜줘야 하니까."

"그런데 왜?" 레브가 끈질기게 물었다. "왜 아버지는 아들을 지켜야 돼?"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있잖니." 아이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끔 아주 힘들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적어도 지켜줄 사람 하나는 옆에 있어야 공평하지."

"아빠는?" 레브가 물었다.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빠는 누가 지켜줘?" 레브 앞에서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울었다. (p208)


주말에 부모님 집에 갔다. 매주 가는데도 엄마는 내가 집에 가려고 나설 때마다 따라 나서신다. 춥다고, 힘들다고 계시라고 해도 내가 차를 몰고 나가는 뒤꽁무니에 대고 손을 흔드신다. 현관을 나서는데 아빠가 말씀하셨다. "비연이는 좋겠다. 엄마가 있어서.".. 그리고는 약간 쓸쓸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빠는 엄마가 없는데.".. 그 얘길 듣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 때만큼은 우리 아빠가 나의 아빠가 아니라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들로 보였다. 한참 전에, 정말 한참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인데. 누구나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를 보호해주는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잘 모르고 살다가 문득 문득 가슴에 사무친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약해지시고 연세가 들어가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뒤돌아 나올 때마다 가슴에 먹먹함이 차오르곤 한다. 내 나이가 이렇게나 많이 먹었는데도 늘 걱정하시고 뭐든 해주려고 하시는 부모님을 쳐다보면 그렇다. 부모란 뭘까. 엄마란 뭘까. 아빠란 뭘까... 


마지막 에피소드가 너무 좋은데, 여기 옮기지는 않으련다. (이 에피소드는 읽어야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작가는 이 책을 모국어(히브리어)로 쓰지 않고 영어로 썼다. 내밀한 이야기라, 그래서 '비행기나 열차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사람에게 하는 편이 더 좋은 이야기'라 그냥 모르는 사람과만 나누고 싶다 생각했단다. 작가와 함께 따라가는 7년의 여정은, 그저 재미있기만 하진 않다. 전쟁과 아이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형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마음에 뭔가 차곡차곡 쌓이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책이 너무나 멋진 에세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맞았다. 좋은 에세이다.


작가를 알게 된 김에 그의 책들이 있나 찾아봤더니 번역된 게 몇 권 있었다. 심지어 이 작가가 2013년인가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했더라는. 아, 이렇게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많다. 이 에세이는 원서로 읽어볼까 라는 생각도 있다. 흠. 아니다. 쌓인 원서들. 지우자 지우자 생각을 ㅜ 나도 나중에 에세이를 쓴다면 이 작가처럼 쓰고 싶다. 이렇게까지 위트있으면서도 다정하게, 마음의 스산함까지 담아내는 글을 쓰진 못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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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26 13: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의 이 글 보고 방금 이 책 질렀습니다.
지르는김에 5만원을 넘겼지요.
2월엔 책 안살거니까 1월에 많이 사둬야겠지요?
그럼 이만..

비연 2021-01-26 14:01   좋아요 3 | URL
우리는 서로 책 뽐뿌하는 사이... 우히히.
2월엔 책 안 살거니까... 정말요? 정말요? ... 저도 그런 각오로 1월에 많이 사두었는데..
2월엔 알라딘을 안 들어와야 할까요...;;;;; 그것만이 길일지도. ㅜㅜ

수이 2021-01-26 17:1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뭐야 반칙이야 다락방님!!!!!!

다락방 2021-01-26 18:52   좋아요 2 | URL
응? 왜요? 왜? 뭐? 🙄
=3=3=3=3=3

비연 2021-01-26 23:02   좋아요 1 | URL
귀여운(?..!) 두 분 ㅎㅎㅎ

붕붕툐툐 2021-01-26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세상엔 제가 모르는 좋은 작가, 좋은 책이 참 많아요!! 비연님 덕분에 알게 되어 기쁩니다~ 읽고 싶은 책에 넣어놨어요!!😄

비연 2021-01-27 10:01   좋아요 0 | URL
정말, 알면 알수록 책의 세계는 넓고도 넓습니다, 붕붕툐툐님!
이 책을 읽고 싶은 책에 담아두셨다니 넘 반가와요~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립니다^^

까망태양 2021-01-3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커 갈수록 작아지는 나이 많은 부모님 이야기가 재일 먼저 떠오르네요.

비연 2021-01-31 12:56   좋아요 0 | URL
아. 이 내용은 어느 책에 있는 건가요?

scott 2021-02-10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모스 오즈 작품 이번에 영화로 나온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는데
포트만이 감독하는
비연님 페이퍼 이달의 당선 됬음
추카~추카~

설연휴 멋지게 보내세요(저는 오늘 부터 ㅋㅋ)

비연 2021-02-10 21:04   좋아요 1 | URL
오호. 아모스 오즈 작품이 영화로! 넘 궁금하네요~ 축하 감사드리구요^^ (부끄) 새해 복복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