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사서 바로 읽기 시작했지만, 다락방님 코멘트대로 그다지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시공간을 왔다갔다 하고 사람도 왔다갔다 하고, 묘하게 눈에 잘 안 익혀지는 이름들 속에서 그 인생들이 헷갈리기도 했다. 그냥 어쩌면 요즘의 내 심정이 심란하고 갈팡질팡하여 그런 지도 모르겠다.

 

원래 이 시기가 되면, 멍때리는 일이 잦아지는데, 근간에 있었던 사건과 그로 인해 오고간 많은 말들, 공격들이 계속 스트레스가 되어 더 힘들어졌었다. 누구를 옹호하고 누구를 비난하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내 마음을 가르지 못했고 그게 묘한 죄책감이 되기도 해서인지, 더 잦아드는 기분이었다. 다만, 그냥 사는 게 왜 이리 힘든 지 사는 게 뭔지 정말 아무리 시간이 가도 잘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만이 짙어지던 요즘이었다.

 

이 책은 여자 수형소 얘기이다. 가난하고 사회 밑바닥에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래서 입게 된 마약사범, 살인자, 사기범 등의 이름. 그 결과로 가지게 된 장기수, 사형수, 전과자 라는 굴레. 그런 이야기이다. 누구나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하는 거다. 가난해서였을까. 못 배워서였을까. 부모가 학대를 해서였을까. 뭐였을까.. 하지만 어쨌든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런 '남보다 못한' 배경 때문에 죄라는 걸 짓게 되고, 사법체계는 거기에 그 죄에 엄중한 처벌만을 내린다. 처벌을 그 개인에게 한다는 게 옳은 일인가. 어쩌면 많은 사연이 있었던 사람들. 그 사연을 만들어낸 사회나 배경에는 철퇴를 내리기 힘드니 결국 죄를 짓는 '개인'에게 처벌할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그런 이야기들을 이 책은 하는 것 같다.

 

제목인 <마스룸>은 주인공인 로미 홀이 일했던 클럽이다. 여자들이 거의 헐벗은 몸으로 나와 '가짜' 애무를 하면 그 주변에 둘러 앉은 남자들이 스스로에게 '진짜' 애무를 하는 곳. 남들은 뭐라 할 지 몰라도 로미는 그 직업이 싫지 않았다. 스트립댄스를 추며 남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거기에서 번 돈으로 아들 잭슨을 키우는 생활. 그러다가 지미 달링이라는 남자를 알게 되었고 애인이 되었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살만하다 싶은데, 커트 케네디라는 스토커를 만나 결국 집에까지 좇아 들어온 그 자를 쳐서 죽였다. 29살 나이에 종신형 두 번 추가 플러스 6년을 받아 영원히 감옥에서 보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오래 살 계획은 없다. 그렇다고 짧게 살겠다는 것도 아니다. 내게는 그런 계획이라는 게 전혀 없다. 문제는 계획이 있든 없든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계획 따윈 무의미하다.

그러나 계획이 없다고 후회도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마스 룸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를 만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가 나를 스토킹하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하지만 그는 마음먹었고, 그러고 나니 끈질겼다. 저 일들 중 어느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콘크리트 구덩이 속 인생을 향해 달리는 버스에 타고 있지는 않았을텐데. (p26-27)

 

 

호송되는 버스 안에서 지난 인생들을 훑으며 로미는 이런 후회를 한다. 인생이, 참 그런 것 같다. 납득 안되는 결과를 받아들이려고 애쓰다보면, 과거에 그 결과를 일으켰으리라 예상되는 여러 원인들에 생각이 닿게 되고 그 때 그걸 안 했다면, 인생이 달라졌겠지 라는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 잔인한 것은, 인생은 그냥 one-way라는 것. 돌이킬 수 없는 한 방향. 후회한다 해도 영화처럼 그 선택의 순간에 돌아갈 길은 없다.

 

 

"감옥에서는 말이야, 적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할 수 있어. 내 말은, 진짜로는 모르지. 예측이 불가능해. 근데 그 예측 밖의 일들마저도 다 따분할 뿐이야. 비극적이고 끔찍한 뭔가가 벌어질 수도 있는 그런 곳이 아냐. 내 말은, 물론 벌어질 수 있지. 당연히 벌어질 수 있지. 하지만, 교도소에서 모든 걸 잃을 순 없어. 이미 모든 걸 잃은 뒤니까." (p42)

 

 

감옥은 그런 곳이다. 특히 이렇게 장기수이며 무기수인 사람들에겐 더 하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희망이 없으니까. 이미 인생의 막장 코스에 올라탔으니까. 그런 사람에겐 외부의 사람과의 연락이 정말 간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다 소용없다. 애인이었던 지미 달링은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당신이 지미 달링의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지 모른다. 편지에 야구 얘기를 쓰지는 않았을망정 인생이 끝장난 누군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긴 했을 것이다." (p43) 로미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뭐하러 교도소에 있는 여자랑 연인을 하겠냐고. 그렇게 그들은 점점, 어떨 땐 아주 확, 소외되어 가고 잊혀져 간다.

 

세상사는 우리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복잡하다. 인간은 우리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멍청하고 덜 사악하다. (p266)

 

 

인정.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담은 문구인 듯 하다. 세상사도 인간도 우리가 알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걸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그래서 다들 살면서 계속 실수를 한다. 작은 실수, 큰 실수. 로미 홀은 큰 실수. 근데 그게 그렇게 종신형을 살 정도로 그녀만 잘못한 일인가.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는 큰 실수로 그녀의 인생은 그냥 망가졌는데. 스토킹이라는 걸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남자가, 그녀가 얼마나 두려웠을 지 얼마나 몸서리쳤을 지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생각할 때는 그런 '사소한' 일로 사람을 죽이다니, 심지어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스트립댄서 여자가 흉기를 휘두르다니, 선처의 여지가 없지, 라는 판단 밖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인 나는 그 느낌을 안다. 내 일상 전부가 위협받는 듯한 그 느낌. 뭔가 내게서 소중한 것을 잃을 것 같은 느낌. 무엇보다 그 소름끼침. 그럴 때 옆에 몽둥이가 있다면 힘껏 쥐고 내리치는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우리는 그걸 정당방위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걸 안다. 사회에, 남자에, 설명도 안되고 납득도 안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생각보다 대단히 훌륭한 소설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은 한 책이었다. 내내 좀 불쾌하고 잔상이 남는 이야기라, 요즘 같은 때 읽기 좋겠다 라고 말하기도 어렵겠지만, 읽고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니 다른 잡생각은 안 들어올 수도 있겠다.

 

 

계속 소설을 읽어대느라, 7월 책은 앞의 몇 장만 뒤적이고 아직 진도를 못 뽑고 있다. 200페이지인데,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끝냈을 분량인데 말이다. 이제 잠시 소설을 놓고 이 책을 봐야겠다. 물론 <캘리번과 마녀>는 매일 조금씩 아주 재미나게 읽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도 조만간 페이퍼를 써야지 작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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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14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리뷰랑 비연님 리뷰 읽고 나니 왠지 친근한 이 소설.... 전 아무래도 패쓰할 것 같아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이제 두 꼭지 남았는데, 아직도 제 자리네요ㅠㅠ 오늘의 결심, 꼴등하지 않으리....

비연 2020-07-14 13:47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괜찮습니다. 꼴등은 저로 확정...ㅜ 이제 10페이지인데요..
<캘리번과 마녀> 읽느라 그렇다고 괜히 핑계대봅니다...
이 소설은, 강추는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 조심스레.
아..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을 날이 이제 17일 남았군요. 헉.

레삭매냐 2020-07-14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초반에 아주 흥미롭게 몰입했었는데,
로미 레슬리 홀이 감방에 간 다음에 잠깐
주춤하고 있네요.

스탠빌 교도소와 프리스코에서 성장기,
싱글만 랩 댄서로서 로미의 고단한 삶,
미국 서브컬처에 대한 조금은 장황한
하지만 그네들에게는 공감을 살만한
이야기들이 조금 동 떨어져 있다는 느낌
이 드네요.

소설의 소재 선택과 구성은 뛰어나다
는 느낌이네요.

전작 <화염방사기>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연 2020-07-14 20:46   좋아요 0 | URL
전체적인 구성은 나쁘지 않은데 좀 산만한 느낌이랄까. 아주 현실적이진 않은 느낌이랄까.
좀 그렇긴 했어요... <화염방사기>라는 전작이 있나요? 제목 끝내주네요 ㅎㅎㅎ 저도 찜.
 

 

 

 

 

 

 

 

 

 

 

 

 

 

 

좌우간에 공공부조의 도입은 노동자 및 자본이 국가와 맺는 관계의 전환점이었고 국가기능의 정의를 바꾼 계기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굶주림과 공포라는 수단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을 최초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계급관계의 보증인이자 노동인구 재생산과 훈육의 제1감독기구로서의 국가를 재건하는 첫 발걸음이기도 했다. (p136)

 

봉건제는 페스트와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과 실질임금 상승으로 인해 그 기반이 무너져 내렸고 그렇게 노동계급이 나타나 지역적으로 단결하여 저항하게 되자 국가가 나서게 되었다.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국가가 조치를 취하는 순간이 오게 된 것이다. 그 맥락에서 공공부조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 새로운 "사회과학"이 출범하면서 오늘날의 복지논쟁을 예견하는 국제적인 공공부조 관련 논쟁이 전개되었다. 소위 "자격 있는 극빈자"인 노동무능력자만 공공부조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신체 건강한" 노동자도 혜택을 받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혜택을 얼마나 많이 또는 적게 줘야 구직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가? 공공부조의 주된 목적이 노동자를 일터에 묶어두는 것이었던 만큼, 위 사항은 사회규율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p137)

 

공공부조는 시혜가 아니라, 노동력 규제의 수단이었다. 남아도는 인력이 없게끔, 국가가 한 곳에 수용해서 그들에게 노동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였다.

 

 

16세기 잉글랜드에서는 아이건 어른이건 "구빈원(work-houses)"에 갇히는 조건 하에서만 부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그들은 각종 노동계획표의 실험대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인클로저와 가격혁명에서 비롯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한 세기가 지나면서 노동계급의 범죄자화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신축 구빈원이나 교정원(correction-houses)에 감금되어 노동하거나, 아니면 항상 채찍과 교수대의 올가미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법 외부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국가를 공공연하게 적대시하는 대규모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되었다. (p138)

 

 

이 부분을 읽는데 문득 최근에 본 영드가 생각났다. <콜 더 미드와이프(Call the Midwife)>.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 이스트엔드의 수녀원에서 조산사로 일했던 Jennifer Worth의 실제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든 영드인데, 시즌 1 에피소드 1의 지루함만 극복하면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이제는 나이든 Worth의 목소리가 바탕으로 깔리면서 그 시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즌 1의 에피소드 5화에 구빈원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나이든 남매가 있다. 그들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구빈원에 가 살아야 했다. 7살이었던 오빠는 어린 여동생의 보호자가 되었고 그 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 중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여동생은 구빈원에서 청소업무를 맡았고 온종일 닦고 쓸고 하는 일만 하느라 인간다운 생활을 못한다. 오빠는 그 곳을 뛰쳐나와 여동생을 그 곳에서 빼내기 위해 온갖 일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여동생을 구출(!)해나와 둘이 오손도손 살아가게 된다. 여동생은 수녀원에서 청소를 하는데 예전 구빈원에서의 습관을 못 버린 채 깨끗하게 하는 데 엄청 집착하고 오빠는 그런 여동생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구빈원은 그런 곳이었던 거다. 가두어 두고 노동을 착취하던 곳. 약간의 물질을 제공하면서 사람을 사육하던 곳. 그 곳은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탈출해야 하는 장소였던 거다.

 

그 에피소드에서 사실 그 남매는 부부와 같은 사이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산사들이 모여서 근친상간 아니냐며 수근거리자 그 얘기를 옆에서 듣던 나이든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구빈원이 어떤 데인 줄 알아요? 알면 그렇게 말 못합니다."

 

어쩌면 종교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오히려 수녀님들은 이해했다. 세상 천지에 의지할 사람이 서로일 수 밖에 없었던 남매에게, 그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오빠가 암에 걸려 죽고 여동생은 그 오빠 곁에서 모르핀을 먹고 죽는 길을 택한다. 발견한 수녀님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진정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거라고.

 

<캘리번과 마녀>에 나온 구빈원에 대한 내용을 읽고,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서 <콜 더 미드와이프>의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니, 이런 짓이 참 할 짓이 못되는 일이었음을,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이해하려면 그냥 그 현상만이 아니라 흐름을 보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수녀님들처럼. 종교에 얽매여 제도에 얽매여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개인이 뿌리치지 못했던 불행한 국가적 속박이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 거구나...

 

 

 

 

 

 

 

 

 

 

 

 

 

 

 

 

 

 

책도 있고 Audio CD도 있어서 한번 사볼까 한다... 결국 또 지름신 안착. 하지만 <캘리번과 마녀>와 <Call the Midwife>와의 접점을 발견한 것은, 내게 때아닌 기쁨을 안겨준다. 이런 것 때문에 책을 읽는 게 아닐까. 그러니 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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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07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 사도 된다, 라는 문장에 오늘 페이퍼는 설득력이 가득가득합니다. 사셔도 됩니다, 비연님.

비연 2020-07-07 12:19   좋아요 0 | URL
그쵸? ㅎㅎㅎㅎㅎ 그래서 지금 보관함에 푱 넣고 장바구니로 옮기기 직전입니다 ㅋㅋㅋ
 

 

 

 

 

 

 

 

 

 

 

 

 

 

 

 

책을 보기도 전에 이 책이 내게 맞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근데 이 책은 그랬다. 계속 보관함에 두고 급기야 사면서, 이 책은 나한테 맞을 거야 라는 절렬한 느낌이 쫘악 끼쳤었다. 그리고 요즘, 드디어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그 느낌을 확인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실비아 페데리치라는 근사한 사람과의 만남에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다.

 

임금노동과 "자유로운" 노동자의 출현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맑즈주의적 시각은 재생산의 영역을 은폐하고 자연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또 <대캘리번>은 미셸 푸코의 신체 이론에도 비판적이다. 신체를 복종시키는 권력기술과 훈육에 대한 분석은 재생산과정을 무시하고, 여성사와 남성사를 무차별적인 단일체로 융합시키며, 여성의 "훈육"에 너무나 무관심하여 근대 들어 신체에 가해진 가장 소름끼치는 공격 중 하나인 마녀사냥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22)

 

마르크스와 푸코는 훌륭한 학자이고 시대의 흐름과 사상을 바꿀 만한 저작을 내놓은 사람들이다. 그들 이론 전부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으나, 여성주의 책들에서 특히 최근의 책들에서 계속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어쩌면 어쩔 수 없는) 남성주의적 시각이다. 역사와 사상의 맥락에서 여성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 인한 맹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 언급에서도 나타났듯이 말이다. 이런 대목을 읽을 때마다 왠지 통쾌하다. 남들은 못 찾는 그 틈새를 찾아낸 그들도 멋지지만,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완전히 동감할 수 있다는 점도 멋지게 느껴진다.

 

<캘리번과 마녀>가 제기하는 더욱 심오한 질문은 자본주의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신체에 대한 여성주의적 분석과 푸코식의 접근을 대비하는 데서 나타난다. 여성운동 초기부터 여성주의 활동가 및 이론가들은 남성지배의 근원과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의 구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신체"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주의자들은 여러가지 상이한 이데올로기들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에 위계적인 등급을 매기고 여성을 육체적 현실이라는 비속한 개념과 동일시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가부장적 권력의 공고화와 여성 노동력에 대한 남성의 착취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5~36)

 

사실상 우리가 <캘리번과 마녀>에서 배울 수 있는 정치적인 교훈은 사회, 경제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항상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그 사회적 관계 속에 짜여진 모순(자유에 대한 약속과 억압의 만연이라는 현실, 번영에 대한 약속과 빈곤의 만연이라는 현실)을 착취대상(여성, 식민지 신민,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 지구화로 인해 갈 곳 잃은 이민자들)의 "본성"을 폄하함으로써 정당화하거나 애매하게 흐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 따라서 사본주의를 해방과 연결 짓는다거나 자본주의 체제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 때문에 오래도록 지속되리라고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산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신체에 새겨 넣은 불평등의 그 물망 때문이며, 착취를 지구화할 수 있는 역량 때문이다. 이 과정은 지난 5백 년간 그랬듯 아직오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에는 투쟁 또한 전 지구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p41)

 

 

이 내용들은 서론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들어가 역사적 맥락을 통해 어떻게 여성이 마녀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박해받게 되었는가를 짚어나가는 과정은 논리정연하고 사실적이며 재미있다. 사실, 그 내용 자체는 재미있다고 말하면 안되는 비참하고도 슬픈 역사이지만, 읽는 사람에게 이런 재미를 주면서 심도깊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도 드물다. 본래가 역사를 좋아하고 그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걸 좋아하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정말 최적의 책이 아닐 수 없다. 지금 1장까지 읽었는데, 앞으로도 여러 번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캘리번과 마녀>와 세트같은 책이라 하여, 아직 다 읽지도 않은 주제에 주문부터 덜컥 했다. 뭐 늘상 있는 일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지만 (그러나 그 속도에는 나조차도 놀랐다. 섬광같이 질렀다ㅜ) 이 책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점점 쌓여만 가고 있지만, 이런 책들, <캘리번과 마녀>라든가 하는 책들을 접하게 되면 막 도전의식이 생긴다. 더 열심히 읽자, 이런 결심 아닌 결심도 하게 되고. 

 

 

 

 

 

 

 

 

 

덕분에 7월의 책인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꺼내 놓은 것은 6월말이었으나 살짝 뒷전으로 밀려있다. <캘리번과 마녀> 다 읽고 봐야지 라는 마음도 있고 얇으니 금방 읽겠지 라는 마음도 있는데, 먼저 읽어나가는 분들의 페이퍼를 보니, 이게 얇아도 만만치 않아요, 라는 평이 지배적이라, 엥? 얼른 읽기 시작해야 하는 건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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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03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페미니즘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캘리번과 마녀>는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애정도서거든요.
비연님과 느낌 공유네요.🤗

비연 2020-07-04 10:10   좋아요 0 | URL
어멋. 단발머리님이 많이 안 읽으셨다니...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 책 상위랭킹에 들겠다 기분이 들어요. 다들 이 책 좋다 하셔서 더욱 힘내어 읽고 있는데 (심지어 7월 책은 뒷전..) 아 재밌네요.
이런 책 너무 좋아요!

syo 2020-07-04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섬광같이 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7-04 12:2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심지어 이미 받았답니다
 

 

 

 

 

 

 

 

 

 

 

 

 

 

 

독특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어떤 연유로 알게 되어 읽겠다고 샀는 지는 가물가물한데.. (아마 라로님 페이퍼를 읽고 골랐던 게 아닌가 어렴풋한 기억이..) 읽어보니 이 학자의 인생도 놀랍고 이런 분야가 가능한 것도 놀랍고 무엇보다 하나도 보이지 않는 저저 깊은 곳에 흔적이 남아 누군가 그 어딘가에 있었는 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왔다.

 

퍼트리샤 월트셔는 원래는 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이다. 화분학자라고도 해야 하나. 우연한 기회에 이 학문을 접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푹 빠진 나머지 평생의 업으로 삼아 공부한 사람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때가 된 듯하다.

내 인생은 내 바람대로 훌러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훌륭한 이야기는 모두 이렇게 시작한다. 50대 초반의 나는 어느 날, 인생의 방향을 바꿀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며 법의학 수사의 세계로 들어섰다. (p45)

 

인생은 이런 것인가. 어느 날 받은 한 통의 전화로, 인생의 나머지를 다 바칠 만한 길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 물론 그 이전에는 어이없는 일로 다른 일을 했어야 했다. 어딜 가나 남자들이란.. 이란 생각을 하게 한 대목도 있었다.

 

 

나중에 나와 결혼한 당시 남자 친구는 내가 대소변과 혈액을 분석하고 쥐를 다루는 일보다는 더 '여자다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다운' 이란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사무직과 비서직을 위한 강의를 소개하는 광고를 보고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여긴 나는 강의를 신청했고 돈을 받는 상근직 일자리를 얻었다...(중략)... 여기서 하는 일들은 정말 이상해 보였다. 어두운 양복 차림의 이기적이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위해 바보같이 일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기계적인 일상에 치이다 보니 매혹적인 지식들을 얻을 기회가 적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p46~47)

 

나도 궁금하다. '여자다운' 일이란 무엇일까.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선생님이었는데 수업 시간에 자기가 왜 국문과를 선택했는 지를 얘기해줬다. 입학할 때 학부제로 들어가서 2학년 되기 전에 전공을 선택해야 했고 자기는 러시아문학이 좋아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그 당시 남자친구가 "나는 국문과 다니는 여자친구가 좋다" 라는 말 한 마디에 국문학을 선택했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 저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있어.. 라고 코웃음쳤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남자친구랑도 헤어졌다면서 자기도 그 때 왜 그런 선택을 그렇게 했는 지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아고. 그러나 살아보니 그 때 그 때의 선택에서 가끔 그런 바보스러운 이유로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된다고 해도 그럴 때가 있는 것임을 알고 나니, 그 선생님께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었다. 뭐 어쨌든 재미있는 이유 아닌가.

 

통찰력 있는 경찰들이 범죄의 현장을 뒤쫓기 위해 식물/화분학자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인연이 닿은 관계는 주욱 이어진다. 범죄조직의 현장을 찾기 위해 차의 곳곳에 묻은 토양 표본들과 현장의 표본을 대조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시체가 파묻힌 곳에 범인들이 갔었는 지를 찾기 위해 범인의 소지품을 다 조사하고 그 균류와 먼지의 성분, 토양의 성분 등을 대조하여 알아내기도 한다. 에드몽 로카르의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라는 말이 여실히 입증되는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책은 단지 그런 직업적인 면만을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퍼트리샤 윌트셔라는 사람의 자라온 이야기들. 살아온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인생과 어찌 연결되는 지를 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죽음이, 사람의 생과 사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지도 더럽지도 않은 것임을, 누구나 그 길을 가고 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덕분에 이 험한 일을 하는 데에도 두려움 없이 임할 수 있었노라 이야기한다.

 

종종 죽음, 강간을 비롯한 여러 범죄에 관한 경험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질문을 받는다. 내 인생에서 죽음을 통해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명은 내 딸과 할머니였다. 아직도 지혜와 위안을 주던 할머니의 빈자리가 그립다. 내 딸 역시 내게 아픔을 주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가슴속 깊이 간직한 그 아이를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생각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그동안 마주친 사체들 역시 이들에 대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 깨닫게 했다. 그러면서 나는 무고한 희생자들을 계속해서 존중하고 보살필 수 있었다. 비록 검사대 위의 사체가 나와는 별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이 사체와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나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사람이 객관적이지 않으면 쓸모 있는 일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체가 한때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p359~360)

 

그래서 이 책의 원제가 <The Nature of Life and Death> 인가보다. 사건을 추적하고 균류와 먼지를 분석하고 실험으로 그들을 대조하여 범죄를 좀더 명확하게 보는 데 일조를 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지만, 역시, 사람이 산다는 것, 나고 죽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힘이 있다, 이 책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거기에서 나서 그 곳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 슬프지만 어쩌면 인정해야 하는 일인지도. 인간의 육체는 죽고 나면 그저 기존의 자연 모습 그대로 분해되어 자연의 분자와 원자 속으로 사라질 뿐이라는 것.

 

 

나는 범죄 현장에서 구더기가 끓는 시체를 한동안 살폈고, 우리가 뭔가를 배울 수 있도록 시체를 썩게 내버려 두는 미국 테네시주의 '시체 농장'에도 가봤다. 나는 여러분을 피가 흠뻑 젖은 카펫과 쿠션이 있고 회색과 갈색 곰팡이가 잔뜩 자라 희생자가 살해된 순간을 밝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던, 던디의 한 아파트로 데려갈 것이다. 그리고 나무들이 무성한 숲과 외딴 황야에 버려진 시체들, 영국 남부 한복판에서 환각을 일으키는 독성 식물과 함께 벌어지는 샤머니즘 의식, 실종된 수많은 소녀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 채 얕게 파묻힌 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여정에서 또한 여러분이 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도록 이끌고자 한다. 거기에는 나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어린 내가 자연 세계의 드넓은 경이에 눈떴던 웨일스의 작고 좁다란 골짜기가 있다. 그 끝에 지금껏 내가 식물과 동물, 미생물을 관찰하면서 발견한 경이로움을, 어떻게 우리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작동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여러분에게 줄 수 있다면, 이 작업은 성공인 셈이다. (p19)

 

 

책을 읽다가 '시체 농장'에 대한 글을 읽고 허걱 했는데, 그러니까 1970년대에 퓔리엄 배스 라는 미국 인류학자가 녹스빌 테네시 대학과 인접한 삼림지대에 부지를 받아 시설이라는 걸 세운 게 시초라고 한다. 말하자면 시체를 산재시켜 놓고 호나경이 시체가 부패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기 위해 시체들을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곳이라고.. 헐... 심지어 퍼트리샤 콘웰이 이에 대한 책도 썼다고 해서 찾아봤다.

 

 

 

 

 

 

 

 

 

 

 

 

 

 

 

 

 

번역판까지 있었다니. 이건 제목만 봐도 읽기가 싫어지는 류의... 이 책에 이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써놓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시설에 기증된 시신은 수많은 종류의 버려진 시체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사용한다. 시신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때로는 특이하고 기괴한 상태에 방치되며 그 부패 과정이 상세히 기록된다. 이런 과정이 충분히 자주 반복되면 특정 조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이 시설이 유명해지자 수많은 박사 과정 학생들이 사체나 그 주변 토양 그리고 그곳에 대량 서식하는 곤충들에 관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p197)

 

 

여기까지. 곧 점심 시간인데... 학문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정말 깨끗하지도 완벽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것임을 다시한번 절감. 뭔가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은 가장 지독하고 무시무시하고 지저분한 과정인 지도 모르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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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29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4월에 서점 갔다가 저 책을 보고 너무 사고싶어져서 보관함에 넣어뒀었거든요. 여즉 안사고 있었네요. 7월 구매에 넣겠습니다. 너무 궁금해요. 읽어보니 ‘호프 자런‘의 [랩걸]과 비슷한 것 같아요. 아, 너무 읽고 싶ㄴ에요. 오늘도 책이 도착했고 내일도 도착할텐데 또 사고 싶네요. 이런...

문득 인생을 살면서 성장과정에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돼요.
저 고등학교때 화학선생님은 여자분이셨는데 본인은 수학과를 가려고 생각했대요. 그걸 과학선생님이 알고 오시더니 ‘숫자만 계산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공부가 과학이야, 과학이 어떠니‘ 라고 하셔서 화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하셨거든요.


저 대학때 남자친구가 긴 머리 자르지 말라고 긴 머리가 좋다고 해서 내내 제 긴머리를 자랑스러워했던 생각나네요. 아 짜증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점심 맛있게 드세요, 비연님!

비연 2020-06-29 12:28   좋아요 0 | URL
재밌어요, 이 책. 정말 다양한 식물종과 균류 등의 이름들이 나와서.. 가끔 헷갈리는 것만 빼고는 ㅎㅎㅎ
저도 지금 신간들 보면서 아 책을 또 사야 하나... 일단 보관함에 푱푱.. 까지만 하고 있는데. 내일까지는 버티려구요. 양심상 그래도, 7월에 샀다고 하고 싶어서... (조삼모사 ㅜ)

긴머리..ㅋㅋㅋㅋ 전 예전 남친이 짧은 스트레이트 머리 귀엽다 해서 짧은 스트레이트 머리만 고수했던 한 때가. 꼬불이 파마하고 싶어도 참고.. 이런. 하나쯤 짜증나는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흠냐.

점심.. 먹어야죠. 맛나게 맛나게. 먹는 게 맛날 때가 좋은 거다 하고 푸짐하게 먹을 생각.. ㅋㅋ
다락방님도 맛난 점심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리도 솔직하고 세심하고 유려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지. 마여 앤젤루의 장단에 맞춰 재미있게 슬프게 조마조마하게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어를 그렇게까지 못하기도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지라 바라보며 얘기하긴 글렀으니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왜, 많은 흑인들이 그녀를 존경하는지 칭송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단 한 권의 작품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 책은 마여 앤젤루의 자서전이지만, 한 흑인의, 한 흑인여성의, 한 성폭행 피해자의, 한 버림받은 자식의, 한 미혼모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책에 너무나 조화롭게 어우러져 묘사되어 있다.

 

지금도 난리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은, 그 시절에는 더 심했었다. 북부보다 남부가 심했고 그게 너무나 일상에 파고들어 있어서 세상에 백인이라는 부류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읽고 있노라면, 어떻게 사람을 이리 분류하여 무시하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지, 그런 세상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는 지 그 속에서 흑인들이 느꼈을 수치심과 분노와 자괴감은 어떠했을 지 상상이 안 될 정도였다.

 

우리 마을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모두 좋아하지는 않았고 몇몇은 아주 싫어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었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 즉 외계인처럼 사는 것 같지 않게 살고 있는 그 낯설고 창백한 피조물들은 사람들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백인들일 뿐이었다. (p38)

판사는 '미세스 핸더슨'을 소환하라고 명령했고, 마마가 도착해 자신이 '미세스 핸더슨'이라고 말하자 판사와 법정 관리, 백인 방청객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판사는 흑인 여자를 '미세스'라고 부르는 실언을 내뱉고 말았다. 파인 블러프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서 가게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흑인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그 사건을 가지고 오랫동안 킬킬거렸고, 흑인들은 이 사건으로 우리 할머니의 가치와 위엄이 입증됐다고 생각했다. (p65)

의사는 문손잡이를 놓고 마마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비좁은 층계참에 우리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애니, 내 원칙은 말이오. 검둥이 입에 내 손을 집어넣느니 차라리 개 주둥이에 집어넣겠다는 거요." (p249)

샌프란시스코의 백인 부인 한 사람이 전차에서 흑인 시민이 옆으로 비키면서까지 앉을 공간을 만들어줬는데도 그 옆자리에 앉기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부인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은 징병 기피자에다 흑인인 그 사람 옆에는 앉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오 섬에서 싸우고 있는 자기 아들처럼 그 흑인도 최소한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부인은 덧붙였다. 소문에 따르면 흑인 남자는 창문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더니 팔이 잘려나가 텅 빈 한쪽 소매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용히 위엄 있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시면 부인, 아드님께 그곳에다 두고 온 제 팔을 좀 찾아봐달라고 부탁하시죠." (p280)

 

또한, 흑인 여자아이로서의 마여 앤젤루는 아름답지 않다고 고정관념화된 자신을 이야기한다. 백인은 아름답고 우아한데 반해 흑인은 못생기고 거칠고 투박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그녀에게 자리잡혀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이 어둡고 흉측한 꿈에서 깨어나면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까? 마마가 곧게 펴지 못하게 하는 곱슬머리 대신에 기다랗고 금발인 내 진짜 머리카락을 하고 있다면 말이다. 모두 내 눈이 너무나 작고 사팔뜨기라서 "아버지가 중국 사람임에 틀림없다"고들 말했는데 본래대로 돌아온 연푸른 내 눈동자를 보면 그들은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매혹당할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내가 왜 남부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으며 저속한 속어를 사용하지 않는지, 그리고 흑인들이 잘 먹는 돼지 꼬리와 돼지 주둥이를 먹으려고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백인이었는데 잔인한 요정인 계모가 아름다운 내 모습을 질투해서 나를 검정 곱슬머리에 두 발은 마당만 하고 이와 이 사이가 넘버-2 연필이 들어갈 만큼 벌어진 몸집 큰 검둥이 계집애로 만들어버렸다. (p11)

 

 

이 대목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p165~p166에 걸쳐 바로 '이 대목'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야 안젤루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아름다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백인이 되는 것이라는 점을 고통스럽게 깨닫게 된 과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위 단락 이용) ... 흑인을 "밝은 피부를 지닌" 흑인과 "시시한 흑인"의 두 범주로 나누는 것은 흑인여성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검은 피부를 지닌 여성은 열등한 존재이자 "잘 안 빗어지는 머릿결을 지닌 뚱뚱한 흑인소녀"로 취급된다. (p165~p167, <흑인 페미니즘 사상> 중)

 

마여 앤젤루는 흑인이기 이전에 여성이었고 어린 시절, 어머니의 흑인 애인에게 무참하게 성폭력을 당한 후 4년간 말을 잃었다. 같은 멸시받는 흑인이면서 남성이 여성을 또 폭력으로 억압하는 상황.

 

"마거리트, 질문에 대답을 해요. 당신이 강간당했다고 말한 그날 이전에도 피고가 당신을 건드린 적이 있었나요?

법정 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히 "아뇨"일 거라고 생각했다. 프리먼 아저씨와 나를 뺀 모든 사람이. 나는 애타게 "아뇨"라고 대답해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저씨의 슬픈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는 "아뇨" 하고 대답했다... (중략) .. "이 늙고 비열하고 더러운 놈아. 더럽고 늙은 놈아." (p113)

 

아이는 처음에 성추행을 당했을 때 그것을 따뜻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고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간을 당하고 나서 그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그러니까 자신이 그냥 받아들인 것을 알고 착한 아이가 아님에 실망할까봐 차마 "네"라는 답을 못한 채 "아뇨"를 한 후 소리소리 지른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게 한 강간자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사는 내내... 흑인여성은 한편으로는 인종에 대한 충성심과 다른 한편 여성으로서 느끼는 연대감 사이에서 분열을 느낀다.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분열시키고 자신을 억압하는 편을 드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녀들은 거의 언제나 여성보다는 흑인인종을 선택했다. 인종의 편을 들면서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자아와 온전한 인간성을 희생한 것이다. (p221, <흑인 페미니즘 사상> 중)

 

 

그러나 마여에게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친할머니 마마가 있었고, 어머니 비비가 있었고 플라워즈 부인이 있었고 오빠 베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민한 그녀 자신이 있었다. 마여는 그렇게 스스로 처한 험한 인생살이를 버티고 지켜 나간다. 그녀는 순순히 그렇게 차별받으며 운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빠가 집을 나가자, 전차 차장이 되기로 결심했으나 흑인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얘기에 끝까지 투쟁하기로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곁엔 어머니가 있었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란 말이지? 그렇다면 실패할 때 실패하더라도 한번 시도해야지. 네가 가진 걸 모두 바쳐라. 너한테 여러 번 말했지만 '할 수 없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으니까. 그 두 가지 말은 의미가 없어."

그 말을 해석하자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고, 또한 인간이 관심을 가져선 안 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나한테 그보다 적극적인 격려는 없을 것 같았다. (p347)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도 줄곧 얘기하고 있지만 흑인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남다르다. 흑인 어머니는 자녀에게 특히 딸에게 좋은 훈육자이자 생존을 위한 보호자라는 말. 마여는 그렇게 어머니에게서 힘을 얻고 그 나름의 사랑을 받아들여서 결국 최초의 전차 회사 흑인 직원이 될 수 있었다. 부라보!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니까 사고방식이 너무나 많이 변해버려서 나 스스로도 이것이 내 모습이 맞나 생각할 정도였다. 폐차장 친구들이 나를 무조건 받아들인 탓에 보통 느끼게 마련인 불안감이 사라져버렸다. 전쟁의 광란이 만들어낸 진흙투성이 집 없는 아이들이 뜻밖에도 나에게 처음으로 형제애라는 것을 가르쳤다. 미주리 주에서 온 백인 소녀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멕시코 소녀, 오클라호마 주에서 온 흑인 소녀와 함께 깨어진 빈 병들을 주워 파는 생활을 하고 나니까 나 자신이 인류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임시로 만들어진 우리의 특별한 공동사회가 보여준 비판 없는 분위기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고 내 삶에 관용이라는 색조를 낳았다. (p333)

 

 

아버지에게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우연치않게 한 달간 노숙을 하면서 (구태여 데려와달라 연락하지 않은 채) 마여는 또 다른 세상을 맛본다. 모든 인종이 가난 속에서 모여 살면서 느끼는 형제애. 그 속에서 관용이라는 것, 일종의 인류애라는 것을 느낀다. 십대 여자아이였지만,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은, 성장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경탄하게 되는 구석이 있었다. 그 아이가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급기야 열 여섯살에 미혼모가 되기를 선택하는 과정 또한 드라마틱하다.

 

이 책은 자서전 6권 중 첫 번째 권으로 4살부터 16살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마도 가장 강렬한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흑인이면서 여성이면서 가난한 낮은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서, 수없이 많은 장애물을 넘고 마여 앤젤루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된다. 그 성공 스토리를 꼭 말하지 않더라도,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마여 앤젤루의 가치는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자서전이라는 분야를 좋아해서, 여러 사람의 책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재미있고 솔직하고 담대한 책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읽은 수많은 분석과 의견들을 한방에 다 증명해내고 있어서 읽는 내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뒤적거리며 아 이 부분이야 그렇지 이 부분이 현실에선 이렇겠구나 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힘은, 그 어떤 이론서도 뛰어넘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입증해낸 책이다.

 

 

 

 

 

 

 

 

 

 

마여 앤젤루의 다른 번역책들도 냉큼 보관함에 넣어둔다. 이런 재치있고 진솔한 글이라면 언제든지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마여 앤젤루의 이후 인생 또한 매우 다채롭고 흥미진진하여 번역이 되지 않았다 해도 자서전 나머지를 원본이라도 사서 읽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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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6-23 0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정말 좋은 책이긴 한데 사실 어려울수도 있잖아요. 두껍기도 하고요. 우리가 이런 거를 또~~ 솔직히 인정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두 권 모두에 흥미가 생긴다면 <새장에 갇힌 새가..>를 먼저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전 흑페미를 읽었어도 인용해주신 부분들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165-167쪽은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전, 마야 안젤루가 올해의 발견 Top 5에 들어가거든요. 너무 좋았어요. 비연님 말씀대로 소장각인데 전 도서관책으로 읽어서 이제 구입하려고 합니다. 비연님의 완벽 고퀄 페이퍼를 이 아침에 읽노라니, 전 저절로 굿모닝!입니다. 감사해요, 비연님!

비연 2020-06-23 09:5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이 좋다고 하신 글도 보고 <흑페미> 보면서 흥미도 생기고 해서 읽었는데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소설의 힘은, 예술의 힘은, 이렇게 좋은 내용을 마음에 확 와닿게 해주어서 더 큰 듯 해요.
저도 올해 책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함께 동감해주는 분들이 계시니 더욱 힘이 나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0-06-23 09:54   좋아요 1 | URL
그리하여 전 어제 <엄마, 나 그리고 엄마>를 읽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고로, 전 에코페 진도가 지지부진하다는 기쁜 소식 2도 전해드리고요^^

비연 2020-06-23 09:56   좋아요 0 | URL
어멋어멋. 그새 <엄마, 나 그리고 엄마>를 읽으셨다니! 페이퍼 기대합니다 으흠~
에코페 진도가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이 기쁜 소식이라뇨...ㅎㅎㅎ 어느새 훌렁 읽어서 절 놀래키실 거라
지금 다시금 긴장 모드. 제가 3일 천하였잖아요.. 흑흑 ㅜㅜㅜㅜㅜ

다락방 2020-06-23 0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으네요. 흑인 페미니즘 사상 읽은 분들이 다 같이 마야 안젤루에게로 뻗어나가는 독서.. 너무 근사합니다. 이럴 때면 사실 저는 제 자신이 뿌듯하고요(응?)
저는 마야 앤젤루의 책을 이미 갖춘 이상 읽는 일만 남았습니다. 움화화핫.

비연 2020-06-23 09:52   좋아요 0 | URL
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요즘 독서의 재미는 연결되고 또 연결되는 이 맛.
읽으면서 내내 머릿 속에서 뭔가 뿅뿅 떠오를 때의 뿌듯함... 이런 거 같아요.
이 책 꼭 읽어보시실 권해드려요. 저희가 또.. 책을 집에 가지고 있으니 바로 집으면 되니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