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던가 안 봤던가. 아마 보긴 봤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보진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 이 이야기를 책으로 보고 싶다, 이 생각을 언제 했었지? 아뭏든 어느 순간부터 내 책장에 딱 꽂혀 있었다. 

 

남들 눈치 보느라, 남들 인생 일정에 맞추느라 급급하게 지내다가 어느 덧 중년이 되어버린 애벌린은,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는, 그저 먹는 것만 입에 달고 사는 그런 지루한 삶을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를 모신 로즈 테라스 요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유쾌한 80대 스래드굿 부인에게서 오륙십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애벌린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한다. 그 시절,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그러나 용감하게 다른 사람의 편견에 저항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지와 루스. 그리고 십시와 빅조지와 온젤과 니니와 스텀프.. 등등의 사람들이 휘슬스톱 카페에 머물며 살아간 이야기.

 

엄마는 이지가 병이라도 날까 봐 걱정하셨지만, 아빠는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고 하셨어요. 말할 것도 없이, 그 사건 이후로 이지는 예전과 전혀 딴판이 되었죠. 루스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러다가 루스를 만나고부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나는 이지가 버디 문제를 진정으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요. 우리 모두가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슬픔에 잠겨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옳은 일이 아닐 테니까요. 이지가 루스를 만난 것처럼,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쪽 문을 열어 두신답니다. 나는 그분이 그해 여름 우리에게 루스를 보내 머물게 하신 데에는 필시 어떤 까닭이 있다고 믿거든요... '주께서 우리를 바라보심을, 나 또한 지켜보심을 안다네.' - p56~57

 

신은 정말 그러실까. 한쪽 문은 열어 두실까. 닫힌 문 저편의 아픔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래도 세상 살아갈 힘을 주는 다른 쪽 문을 예비하고 계실까. 그냥 그렇든 안 그렇든, 이 대목이 많이 위안이 된다. 내게도 예비된 문이 있겠지. 내내 슬퍼할 수만은 없을테니까. 그래서 달라질 수 있겠지. 이런 마음이 든다는.. 이지와 루스는 다른 사람의 편견어린 시선 따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감정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것이 주변을 행복하게 했고. 아마 신은, 그런 것을 예비하신 것일게다.

 

 

애벌린은, 왜 욕설은 늘 성적일까 하고 생각했다. 남자들이 다른 남자에게 모멸감을 주고 싶을 때 보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해 왔던가? 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흑인을 가리키는 욕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듣는 데서는. 이탈리아인들은 더이상 이태리 놈이나 더러운 이태리 놈이 아니었고, 반듯한 대화에서는 유태인 놈, 왜놈, 중국 놈, 남미 쓰레기 같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들 자신들을 변호하거나 대항할 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자들은 여자를 욕의 소재로 쓴다. 왜? 우리를 변호할 단체는 어디 있지? 이건 공정하지 않잖아. - p314

 

여기서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 아닌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여자를 여성이라는 굴레에 다 몰아넣고 경멸의 대상으로 줄곧 삼고 자신의 수컷성에 대해서는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우쭐함을 가진다. 그러나 여자에겐 뿌리박고 대항할 준거집단이 없다. 저항 한번 못해보고 불공정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여자들은 타자와 대결해서 싸울 수 있도록 자신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현실적 수단이 없었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과거나 역사와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프롤레타리아처럼 노동과 이해의 연대성도 갖고 있지 않다. 여자들 상호간에는, 미국의 흑인이나 게토의 유대인이나 생드니의 르노 자동차 공장 노동자가 공유하는 어떤 장소의 집단성도 없다. 여자들은 주거, 노동,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매이고 아버지나 남편 같은 남자들의 사회적 신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여자들보다 남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 사이에서 분산되어 살고 있다. (p22)

 

일찌기 시몬 드 보부아르도 이렇게 말했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째서 가장 해결되지 않는 불평등 중 하나가 성적 불평등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조금 해소되는 기분이었었다. 연대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 그것은 호소할 목소리를 낼 주체가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각지에서 개별적으로 산발적으로 '분산'되어 노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공정하지 않아.'

 

 

 

사실이 그랬다. 그 조그만 불알 두 쪽은 모든 문을 여는 열쇄였다. 보다 앞서 가야 할 때,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어야 할 때,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할 때 필요한 신용카드였다. 에드가 아들을 원했던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다 또 다른 진실이 떠올랐다. 슬프고도 바꿀 수 없는 진실. 그것은 그녀에게는 불알이 없으며, 가질 방법도 없다는 것이었다. - p362

 

애벌린의 이런 자각 아닌 자각에 왠지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는 건, 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이 책의 저자인 패니 플래그는 스스로가 레즈비언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남녀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 책 곳곳에도 그녀의 생각이 박혀 있다.

 

"그렇지. 게다가 네가 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게 또 있다. 이 땅에는 굉장히 멋진 것들이 있단다. 그것들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지. 그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내 말 알겠니?"

스텀프는 진지하게 이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잊지 않을게요." - p178~179

 

수많은 불합리 속에서도 주위 사람들을 포용하고 따뜻하게 하는 이지의 능력은 아마도 이런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나쁜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여성을 때리는 사람, 흑인을 업수이 여기는 사람 등등 사람의 탈을 쓰고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행하는 자들도 사람이지만, 하지만, 굉장히 멋진 것들도 또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다닌다는 것. 세상을 선의로 바라보는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 아닐까 하여 뭉클했다. 스텀프는, 비록 팔 하나가 없는 아이였지만, 이지와 루스의 이런 철학과 지지를 받으며 참 잘 자라나고 있었다.

 

내일 영화도 한번 다시 볼까 생각 중이다. 책을 읽는 동안, 위안을 받았다고나 할까. 어쩌면 나이들수록 비겁한 마음으로 쪼그라져 살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지와 루스의 삶,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의 삶은 문득문득 용기를 준다. 비록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지만, 애벌린이 옛이야기 속의 사람들을 통해 자아를 찾고 변화해나갔듯이, 나도 마치 실존인물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따스함이 번지는 며칠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영화를 보면 또 느낌이 다르겠지. 내일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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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책을 겨우 읽어내고 약간은 망연자실한 기분으로 이틀 정도를 보냈다. 어려운 책을 끝냈다는 기쁨도 잠시. 아 다음에는 뭘 읽지 생각하게 되었다. 2월의 책은... 주문하고 바빠서 돈을 안 낸 걸 잊었었고 퍼득 정신차려 입금을 하고 났더니 한 권 들어가 있는 일어 만화책 때문에 아직까지도 안 오고 있다. 아마 이번 주 토요일에나 온다지. 그렇다면 2월의 책이 오기 전에 며칠이 남아 있는데 뭘 읽으면 좋을까 하다가... 그래, 이걸 읽을 때가 된 것이다, 라고 집어든 책.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사놓고 애써 외면해왔던 책이지만, 이제 읽어야 할 것 같다. 손에 잡기 좋게 만든 판형이 좋아서 들고 다니며 읽어도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 성매매를 인생의 일부로 가졌던 여성이 직접 쓴 글이라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가진 자로서 읽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마음아플 각오를 단단히 하고 책장을 펼친다.

 

정희진 선생의 추천사 부터가 가슴에 꽂힌다.

 

이 책이 한국사회의 성매매 인식 변화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성매매에 대한 무지와 오해 자체가 폭력이다. 성매매는 상업화이어서, 비윤리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다. 몸과 섹슈얼리티를 연구한다는 이들조차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상업화되고 비윤리적인' 문제는, 성매매 말고도 널려 있다. 성매매의 핵심은 성별성이지 상업성이 아니다. (추천사 中, p11)

 

1월의 책과도 연결되는 내용이 추천사에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 나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 환원시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폭력을 행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여성이 하는 일은 중노동이고 위험한 노동이다. 여성이 사망해도, 공권력도 가족도 나서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성노동' 담론이 여성 혐오에 근거한 무지의 산물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 통용되는 이유는, '노동의 신성화'라는 서구 근대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주의 인식 때문이다. (추천사 中, p11)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이 등장한다.(이 대목 있었나? 갸우뚱한 건 안 비밀 ;;;)

 

궁전의 건전함을 위해서는 하수 설비가 필요하다고 교회 신부들은 말했다. 일부 여성을 희생하고 다수의 여성을 지켜 더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지 않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해왔다 (...) '창피한 줄 모르는 여성' 계층이 있기 때문에 '정숙한 여성'들을 더욱 신사적으로 배려하며 대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은 희생양이다. 남성은 극악무도한 행위를 성매매 여성에게 쏟어내면서도 그녀를 경멸한다. 성매매가 경찰의 관리 감독 아래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은밀하게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성매매 여성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로 취급된다.

 

 

알고보면, 다 연결되는 것들임을, 이렇게 이 책은 시작하면서부터 날 일깨운다.

자. 이제, 레이첼 모랜, 이 용감한 여성의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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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2-04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작하는 비연님에게 화이팅을 열 개 포장해 보내드립니다. 덮고 싶은 순간이 여러번 있었지만, 다 읽고나서 정말 읽기를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쉽게 한탄하거나 다른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을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더라구요. 레이첼 모랜은 진짜 멋진 사람이에요!

비연 2020-02-05 10:39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의 화이팅 열개 곱게 받아서 소중히 간직하렵니다. 첫 몇 장 봐도 이 분, 멋지더라구요!

다락방 2020-02-05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기운내시라고 말씀드려요. 읽고나면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읽기 전과 확실히 달라져요. 쉽지 않겠지만 자, 전진!

비연 2020-02-05 10:40   좋아요 0 | URL
전진! 으샤으샤~

han22598 2020-02-05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두었는데, 얼른 비연님 따라서 읽어야겠네요 ㅎㅎ

비연 2020-02-05 12:33   좋아요 1 | URL
han님, 함께 해요 울라울라~^^
 

 

어제는 여행을 다녀온 피곤한 몸과 마음에도, 하지만 스트레스가 한결 풀려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1월의 책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1장까지 읽고 (뿌듯) 아 나머지는 내일부터 또 읽자 하는 마음으로 덮었다. 처음엔 좀 어려운듯? 했지만 저자가 워낙 친절하게 반복해서 중간중간 요약정리를 해주는 데다가 베버니 마르크스니 예전엔 참 친밀하게(?) 느꼈던 사람들의 이름이 계속 나와, 뭐랄까, 좀 반갑다고나 할까. 점점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1월이 5일 남았다지? 철푸덕.

 

자려고 누웠는데, 흠. 머리도 식힐겸 쟝르소설이나 하나 빼서 읽어야겠다 하고는 서재로 낼름 갔다. 요즘엔 참으로 뜸하게 나오는 쟝르소설을 끊임없이 조달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고, 내가 그동안 대부분 읽어치웠구나 (그렇다, 그냥 읽었다라고 하기에는 빈약한 느낌인 것이다) 한숨 폭 쉬면서 겨우 고른 게 존 코널리의 <찰리 파커 시리즈>였다.

 

 

 

 

 

 

 

 

 

 

 

 

 

 

 

그 유명한 <찰리 파커 시리즈>를 읽지 않았다니. 우훗. 하고는 먼저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다크 할로우>를 들고 침대 위에 누워서 앞장을 차악 넘기는데, 흠? 이게 1권이 아니네? 그러니까 시리즈물인데 1권이 없다... 이럴 리가. 하고 다시 알라딘 북플에 들어가 뒤져보니, 맙소사. 1권이 아주 옛날에 나와 있었던 거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어쨌거나 나와 있는 1권을 보니, 2권부터 읽는다는 것은 시리즈물에 대한 배반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찰리 파커라는 전직형사가 사립탐정으로 분하여 활약하게 된 계기는 모두 다 1권에 있는 것이니. 잠시 망설이다가 1권을 사서 읽은 다음에 읽자, 하고 아쉬운 마음 한껏 담아 옆에 얌전히 놓아두고.. 잘까.. 하다가 아니야 쟝르소설 읽기로 했으니 하나는 뒤적이고 자자, 라는 비장한 마음이 생겨서 다시 서재로. (나 혼자 바빴다) 눈 뒤집고 찾는데도 안 읽은 게 안 보이다가 이 책을 찾았다!

 

 

 

 

 

 

 

 

 

 

 

 

 

 

 

 

북유럽 스릴러. 잔인한 내용임은 각오하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저넘의 표지. 밤에 보는데 아 무서워서 정말. 쟨 왜 날 쳐다보고 있는 거지? 제발 표지 좀 저렇게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매우 상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한 장 철컥 펼쳤고.. 곧 잠에 빠진. ㅎㅎㅎ  그러니까 어제는 책을 읽었다 라기보다는 책을 찾아 다녔다 가 적절한 저녁을 보냈다 뭐이런.

 

지금은 휴일이나 회사. 일해야 하는데 책이 읽고 싶어서 알라딘 들어와 이것저것 보다가 결국 글 한자락 남긴다. 저녁 먹기 전에는 집에 가고 싶으니 이제는 좀 열심히 해 보기로. (이눔의 회사)

 

여러분. 새해 연휴 마지막날 편하게 보내세요. (더덕단은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와 함께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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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27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월의 도서를 읽으려고 펼쳤다가 두 장도 채 못읽고 결국 낮잠을 자버렸어요. 내일이 출근인데 오늘 밤잠은 다 잔것 같고... 저는 이제 어떡합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러면 오늘은 1월 도서를 완독하는 걸로 해보겠습니다. ㅋㄷㅋㄷ

비연 2020-01-28 12:14   좋아요 0 | URL
그러나 그러나.. 그러고 다 읽어버린 다락방님! 멋쟁이! (저도 얼렁 속도를... 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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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틀 남았지만, 내일과 내일 모레는 여기다 글 남길 여유가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책 읽을 여유도 많지 않을 것 같아 오늘 잠깐 결산을 해볼까 한다, 올해를. 사실 고백하건데, 2019년은 독서 측면에서는 망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한 한 해였다. 게을렀고 넷플릭스와 왓챠에 정신이 많이 팔려 있었다. 하지만, 또 여성주의 책읽기 라는 기회를 통해서 오랜만에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보내기도 했었다. 알라딘에 글 올리는 것도 아주 드문드문이어서 이번엔 올해의 서재에는 낙방, 북플 마니아로만 당선된 결과도 낳았다. 북플 마니아라고 하는 건 아마 매일 전철 타고 다니면서 한번씩 확인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큰 활동은 없었는데.

 

 

1. 발견1 - 시몬 드 보부아르, 시몬 베유

 

 

 

 

 

 

 

 

 

우연히도 둘다 '시몬'이다. 이 두 분의 발견은 올해 내 삶을 보다 풍요롭게 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천재성, 쟝 폴 사르트르와 계약결혼한 작가 정도로만 인식되어 있어서 그녀의 대표작 격인 <제2의성>은 그냥 제목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전체를 다 읽어내려가면서 아, 이래서 보부아르 보부아르 하는구나 새삼 느꼈다. 놀랐고 신기했고 감탄했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이 책의 범주를 벗어나는 대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폭넓은 이야기들을 역사적 사회적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나가는데 길고 촘촘한 책이었지만, 그래서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사실 읽는 동안 지루하지는 않았다.

 

시몬 베유는 삶 자체가 상징적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고 여성과 사회와 유럽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삶이었다. 그가 철학자라거나 작가가 아니라도 그의 글 한대목 한대목 모두 가슴에 박혀왔던 것은, 그의 일생이 겪은 많은 일들이 불행과 좌절로 내려앉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확장해나갔기 떄문이 아닐까 싶다. 올해 시몬 베유의 책들을 여러 권 읽었는데 모두 주옥 같았다.

 

 

2. 발견2 - 샤론 볼턴, 스가 아쓰코

 

 

 

 

 

 

 

 

 

 

소설과 에세이 쪽에서 내가 새롭게 발견한 작가들이다. 샤론 볼턴의 소설들은, 아, 참으로 놀랍다. 그가 묘사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상처 투성이이지만 비굴하지 않고 쓰러질 듯 하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근간에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소재 자체가 대단히 흥미로와서, 사실 제목과 표지 때문에 망설이며 안 보았던 것인데, 일단 읽기 시작하면 책을 놓고 자기가 힘들다. <피의 수확>도 마찬가지. 번역된 책 중에 아직 <희생양의 섬>이 남아 있다는 것에 안도할 정도.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들은... 글쎄. 매우 뛰어나다 매우 아름답다 이런 건 아닌데 묘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이탈리아 여행 가기 전에 읽어서인지.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결혼도 했었고 서점도 운영했었고.. 그 경험과 함께 만났던 사람들의 묘사가 따뜻하게 다가오는 글들이었다.

 

 

3. 소설1 - 고전적인 소설

 

 

 

 

 

 

 

 

 

 

나이가 들수록 고전적인 소설들에 끌리는 건, 나이가 들어서겠지 (이게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사실 위의 소설들은 고전이라고 하기는 뭣하고 조금 이전부터 지금까지를 다 망라하고 있지만, 글의 내용들이 그냥 세대를 관통한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라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네 소설 전부, 내게는 매우 인상적인 소설들이었고 올해의 책들에 꼽아도 무색하지 않은 책들이었다. 앨리스 먼로의 <거지소녀>를 읽고는 그의 소설들을 몇 권 더 구입했고 앞으로 포크너의 소설들도 좀더 읽어볼 생각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영화로 봐서 다 안다 생각했던 것인데 책으로 읽으니 또 달랐다. 매우 관능적이지만 아름다운,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데도 그 속에 빠져 마치 실제인양 몰두했었던 책이다. <귀환>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소설이라 하기는 그렇지만... 잃어버린 아버지, 그 세대의 이야기, 그 속에서 용서와 화해를 하는 하는 글이 좋았다. 슬프기도 했고.

 

 

4. 소설2 - 여전한 즐거움

 

 

 

 

 

 

 

 

 

 

 

계속 나왔으면 하는 경찰소설 시리즈물들도 이번에 잊지 않고 한두 권씩은 나와 주었다. 당연히 다 읽었고. 에드 맥베인이나 M.C. 비턴, 마이 셰발&페르 발리의 <87분서 시리즈>와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정말 한 권도 놓치고 싶지 않은 소설들이고 끝날까봐 조바심 내게 하는 책들이다. 올해 나온 책들도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다음 번역본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 주었다.

 

 

5. 실망 - 철푸덕

 

 

 

 

 

 

 

 

 

기대가 크니까 실망도 큰 법이겠지. 엘레나 페란테의 초기작들은 이미 그의 멋진 작품들을 다 읽은 사람에게는 조금 미숙함이 느껴져 실망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기작 세 권 중 두 권 읽다가 나머지 한 권은 나중에 .. 하고 미뤄두고는 아직 안 읽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역시 이제 에도시대 소설만 쓰는 게 어떨까 싶다. <이유>라든가 <모방법>이라든가에서 사회 미스터리에는 한계를 다 한게 아닐까 싶다. <비탄의 문>이 아주아주 나쁘다 는 건 아니지만 2권 다 읽는 데 조금 힘들었다. 마이클 로보텀은 진작에 그만 두었어야 했는데, 왜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자꾸 돈 주고 사서 읽는 지 모르겠다.  이걸로 끝이다. 다신 읽지 않기로.

 

 

6. 기타라고나 할까

 

 

 

 

 

 

 

 

 

 

이 책들도 기억에 남는다. 올해는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책은 김영민 교수의 책만 읽은 것 같다.. 흠. 사놓은 것들은 몇 권 되는데 다 한 켠에 놓아두기만 (아멘)... 내년에는 사둔 책들을 좀 읽어봐야겠다. <나방사냥꾼>의 저자인 앤 클리브스도 사실 내겐 올해 '발견'의 하나이긴 했다. 아니 이런 재미있는 책을 왜 이제야 내놓은 거야. 구픽. 힘내주세요 라고 속으로 영차영차를 외치고 있는 중. 토바이어스 울프의 책들이나 <루거 총을 든 할머니>, 앤소니 호로비츠의 <맥파이 살인사건> 모두 훌륭한 책들이었다. 특히 <루거 총을..> 은 그 걸쭉한 말들을 어떻게 번역해내었나 신기할 정도였고 매우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이며 속이 다 시원한 스토리였다.

 

 

***

 

올해 시작할 때는 소설 좀 그만 읽고 비소설을 읽자 읽자 했었는데 결국 페미니즘 책을 주요하게 읽었고 나머지 비소설들은.. 몇 권 못 읽었다는 게 반성점이고... 읽은 책의 수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에 더욱 심각한 반성점을... 실토해야할 것 같다. 내년에는 좀더 열심히 읽자 이 수많은 책들을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지.. 라는 결심에 그만, 어제인가 또 책을 주문해버렸지만 (아니 도대체 읽자, 와 사자, 가 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인지. 사고 읽자, 도 아니면서).. 어쨌든 2020년은 좀더 분발하는 한 해가 되어야겠다. 물론 알라딘 활동도 더 열심히 해야지.. 이눔의 회사가 보안으로 글쓰기를 막아 놓는 바람에 더욱 뜸해졌다고 살짝 탓을 돌리면서.

 

알라디너 여러분들, 한 해 너무나 애쓰셨습니다. 책 읽느라 글 쓰느라,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하루 살아 내고 버티느라. 올해 한 해를 지내온 여러분들 모두가 승자임을 기억하시고.. (승자와 패자가 뭐 중요하냐고 한다면 뭐. 할 말은 없습니다만..)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힘차게 맞이하시구요!

 

(좀 빠르지만)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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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12-30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 이르지만 비연님도 2020년 새해에 더욱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비연 2019-12-30 02:09   좋아요 0 | URL
니르바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새해에는 더 자주 뵈어요^^*

단발머리 2019-12-30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샤론 스톤 <피의 수확>은 대기중입니다. 비연님과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읽어보려고 해요. 기대는 만발인데, 좀 무섭기도 해요.
<뱀이 깨어나는 마을> 전....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했다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드 맥베인이나 M.C. 비턴, 마이 셰발&페르 발리의 <87분서 시리즈>와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전 모두 처음 보는 책과 작가들이라서요. 도전해보고 싶어요. 비연님 페이퍼는 경찰소설 시리즈로의 초대 및 뽐뿌네요^^

비연 2019-12-30 09:08   좋아요 0 | URL
<피의 수확>, 실망 안 하실 겁니다~ 저는 <피의 수확>이 좀 달달한 부분이 있어서 좋았구요 ㅎㅎㅎ
제가 원래 경찰소설 광팬이라..ㅋㅋㅋ 나오는 건 다 읽는데 사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작품들은 그냥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재미난 소설들입니다. 추천요^^

단발머리 2019-12-30 09:11   좋아요 1 | URL
비연님의 달달 멘트에 읽던 책 던지고 샤론에게 풍덩할 기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9-12-30 09:12   좋아요 0 | URL
매우... 좋은 기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12-30 09:15   좋아요 1 | URL
이번 기회에 비연님 달달함의 진수를 제가 함 확인해보겠습니다.
취향이 어떠신지.... 저랑 비슷하신지.... 달달인데 알고 보니 다크 초콜렛인지 말이죠.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락방 2019-12-31 08:20   좋아요 1 | URL
에 단발머리님...샤론 스톤이 아니라 샤론 볼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12-31 08:23   좋아요 1 | URL
이거 지우지 말아야겠어요. 제가 이렇게 확실한 개그를 구사했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람을 느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님은 모르신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9-12-31 08:27   좋아요 0 | URL
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예 몰랐던 비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31 08:3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너무 빵터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12-31 09:10   좋아요 0 | URL
제가 이런 사람이에요. 글자 하나로 다락방님께 빵 하나 드렸습니다. 오래오래 기억해주시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19-12-31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왓 스가 아쓰코! 혹시 김영민 에세이 읽구 읽으신겁니까?? 제가 그렇습니더!!
올한해 일과 독서 부지런하시느라 고생하신 비연님:) 새해복 많이 받으시구 좋은 이웃되주셔서 고맙습니당~

비연 2019-12-31 23:21   좋아요 1 | URL
맞아요! 김영민 에세이 ㅎㅎㅎ 저 김영민 글 좋아라 하거든요~ 올해 쟝쟝님 알게되어 넘 좋았구요 새해에도 우리 좋은 이웃 되어요!^^

블랙겟타 2020-01-01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반대로 비소설에 편중되어 있다보니 소설 이야기 할때마다 모르구.. 새롭네요 ^^
저는 올해는 소설을 읽어보기로 비연님이 추천하신 소설도 꼭 읽어보기로! 작년에 여성주의 책을 같이읽게되어서 저도 힘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ᴗ•)
올 한해는 저도 글로서 자주 보여드릴께요
비연님,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٩(ˊᗜˋ*)و

비연 2020-01-02 07:38   좋아요 1 | URL
겟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올해 겟타님의 글들 기대할게요! 저는 소설을 좋아해서 꾸준히 읽는데 소설의 무한한 세계에 들어오신다고 하니 완전 반갑네요 ㅎㅎㅎㅎ 함께 책읽게 되어서 올해도 멋진 한해가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