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2000∼3000원에 책을 사보던 게 언제던가. 요즘 웬만한 책의 가격은 1만원이 넘고 3만∼4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책들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필사로 만들어졌던 책들에 비하면 요즘 책들은 아주 저렴하다.

책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책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무렵에는 책을 읽는 행위가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 여겨져 묵독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밭갈이에 비유되곤 했던 필경(筆耕)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참회의 행위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인쇄술이 없던 시절, 책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수서본을 베껴 쓰는 것이었으니 책을 만들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유럽 중세 시대 한 권의 성경을 제작하려면 자그마치 200마리의 양을 잡아야 했다. 수서본 한 권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장원의 연간 소득에 가까웠다고 하니 책이 얼마나 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책 도둑도 적지 않았다. 대학 도서관들은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책에 무거운 쇠사슬을 다는가 하면, “이 책을 훔치는 자는 교수형을 당할지어다”와 같은 섬뜩한 경고문을 책 머리에 싣기도 했다.

옛날 책들은 귀한 만큼 정교하게 제작됐는데, 중세 시대 제작된 책의 아름다운 글씨체와 화려한 그림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출간될 당시에도 보물이었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가치를 더한 중세 시대 진귀한 책들의 모습과 책에 얽힌 이야기를 이 책 한 권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월넷째주베스트셀러(종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정관념을 깬 사람들


[조선일보 이규현기자]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탈리아 제노바의 소년이었던 1451년에서 시작해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 콜럼버스가 죽은 1539년까지, 유럽 역사가 대변혁을 겪던 시기를 그린다. 마치 콜럼버스 가족을 옆에서 보며 스케치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초등학교 고학년용 모험소설처럼 쓴 서양역사책이다.

콜럼버스와 그 아들 세대로 이어지는 15세기말에서 16세기 중반 유럽은 종교·과학·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당시 새로운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유럽 왕실과 교회의 영향 아래에서 어떻게 용감하게 시대를 바꾸어 나갔는지를 이야기한다. 마틴 루터,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에라스무스 등 당시 유럽을 바꾸는 데 기여한 여러 인물들이 콜럼버스를 둘러싼 이야기에 함께 등장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관념과 방식을 무너뜨리는 변화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칠 인생에 포기란 없었네


[조선일보 김성현기자]

“나는 라틴어 시험 중 한 문제도 답을 써내지 못했다.”(12세) 영국 최연소 재경부 장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대학 진학에 실패해 사관학교에 진학했고, 외국어 구사 능력도 떨어지며, 영국 사회에서 필수적인 예의범절에도 서툴렀던 괴짜. 한평생 빚에 시달렸고, 10여 년간 정치적 공백을 겪었으며, 하루에 절반은 술에 취해 있었다는 범인(凡人).

“의석도 얻지 못한 처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는 정계의 조롱에 시달렸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격랑에서 그는 예순여섯의 나이로 풍전등화(風前燈火) 영국의 수상 직을 맡는다. 처칠은 “나는 내 운명과 함께 걷는 느낌이었다. 내 모든 과거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이때부터 그는 최전선을 누비고 폭격 당한 런던의 거리를 걸으며 “내가 드릴 수 있는 건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뿐” “결코 포기하지 말라”며 열변을 토한다. 지금은 연합국의 거두(巨頭), 노벨문학상 수상자, 20세기의 명연설가로 그를 기억한다. 진정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화가 들려주는 세기의 전설들"

[동아일보]

◇100편의 명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마르크 퓌마롤리, 프랑수아 르브레트 지음·정재곤 옮김

◇100편의 명화로 읽는 구약/레지스 드브레 지음·이화영 옮김

◇100편의 명화로 읽는 신약/레지스 드브레 지음·심민화 옮김/238쪽(신화) 228쪽(구약) 230쪽(신약)·각권 1만3000원·마로니에북스

가랑이 사이로 쏟아지는 황금비를 받으며 흥분으로 발그레해진 볼, 반쯤 벌린 입술, 은밀한 곳으로 사라진 왼손…. 혼자서 보이지 않는 신과 사랑을 나누며 황홀경에 빠진 여인을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다나에’다.

이 그림의 소재는 아크리시오스 왕이 손자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신탁을 피하려고 딸 다나에를 성에 가뒀지만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해 다나에에게 접근하고 이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난다는 그리스 신화의 한 대목. 추상적이고 황당한 이야기가 클림트의 그림을 통해 관능적인 전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서구 화가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구약 신약 성서도 마찬가지다. 형상이 없는 신을 믿던 고대 신자들은 우상 숭배의 금지, 즉 이미지의 거부를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그 같은 신념이 반영된 성서는 서양의 가장 위대한 시각예술을 탄생시킨 모태였다.

2003년작인 세 권의 책은 세계의 명화를 길잡이 삼아 그리스 로마 신화와 구약 신약 성서의 방대한 전설을 탐험하도록 돕는다. 프랑스 학술원 회원인 마르크 퓌마롤리 등이 쓴 해설도 읽을 만하나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옛이야기에 피와 살을 부여한 거장들의 그림이다.

‘하느님이 진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니 사람이 되었다’는 창세기의 간결한 대목은 성경에서 가장 많은 초상화를 낳은 구절이다. 아담의 숱한 초상화 중 책에는 수염이 없고 미끈한 몸매의 젊은 청년을 그린 알브레히트 뒤러의 ‘아담’이 실려 있다. 이 그림은 이후 서양화에서 남성미의 전형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구약 신약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은 천지창조부터 최후의 심판까지 이야기 순서대로 배치됐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치 눈앞에 세기의 전설이 동영상처럼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