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인생에 포기란 없었네


[조선일보 김성현기자]

“나는 라틴어 시험 중 한 문제도 답을 써내지 못했다.”(12세) 영국 최연소 재경부 장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대학 진학에 실패해 사관학교에 진학했고, 외국어 구사 능력도 떨어지며, 영국 사회에서 필수적인 예의범절에도 서툴렀던 괴짜. 한평생 빚에 시달렸고, 10여 년간 정치적 공백을 겪었으며, 하루에 절반은 술에 취해 있었다는 범인(凡人).

“의석도 얻지 못한 처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는 정계의 조롱에 시달렸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격랑에서 그는 예순여섯의 나이로 풍전등화(風前燈火) 영국의 수상 직을 맡는다. 처칠은 “나는 내 운명과 함께 걷는 느낌이었다. 내 모든 과거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이때부터 그는 최전선을 누비고 폭격 당한 런던의 거리를 걸으며 “내가 드릴 수 있는 건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뿐” “결코 포기하지 말라”며 열변을 토한다. 지금은 연합국의 거두(巨頭), 노벨문학상 수상자, 20세기의 명연설가로 그를 기억한다. 진정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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