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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장이의 딸 - 하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박현주 옮김 / 아고라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소녀 수집하는 노인'으로 처음 알게 된 조이스 캐롤 오츠. 그 책은 그녀에 대해 깊은 인상을 심어준 책이었습니다. 왠지 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다. 그녀의 책들을 읽고 싶다.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도서관에 '사토장이의 딸'을 신청했는데, 너무 처리가 늦게 되서 그냥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제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보니 이상하게 구입도서는 언젠가 읽는다는 생각에 구입만 하고 차곡히 모셔다 놓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책 역시 받아보고 나서야 꽤 두꺼운 페이지에 살짝 모셔둘뻔했다가 제가 그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선물로 조이스 캐롤 오츠의 또 다른 책 '여자라는 종족'을 받고서야 정신이 돌아왔어요.^^
그나저나 저는 이 책을 처음 읽을때까지 '사토장이'의 뜻이 그저 도자기에 관한 직업인가?하고 생각했다니 좀 무지했네요. 읽다보니 좀 이상해서 다시 책 표지를 살펴보고 나서야 'The Gravedigger’s daughter'라는 원제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사토장이가 무덤을 파는 사람의 직업을 뜻하는지는 이번에 알았습니다.
'사토장이의 딸'은 책을 펼치는게 힘들었지, 펼치고 나서는 무척 쉬웠습니다. 900여페이가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남은 페이지를 체크하게 되었는데, 지루해서가 아니라 저의 책 읽는 속도가 마음의 속도에 못미쳐서 답답해서 한 행동이었습니다.
레베카의 가족들은 그들도 전쟁의 피해자이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하층계급이라는 그리고 레베카는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받게 됩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말하지만, 그 기회는 누구에게나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레베카의 아버지는 독일에서 수학교사로 음악을 사랑하며 한때는 지성인이라 불리우는 계층이었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 미국을 선택했고 잠시동안 일하리라 생각해서 사토장이를 선택했지만 벗어날수 없는 현실에 정신적으로 힘들었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덜 비참했을텐데, 자신과 가족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모욕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결국 무너져버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까웠어요.
초반에는 레베카의 불행한 유년시절과 불행한 결혼 생활로 너무나 우울했었습니다. 하지만 레베카는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고, 자신을 완전히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그녀는 영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서 자기에게 유리한것을 얻어내는 방법을 말이지요.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이 얼마나 남성의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어 있는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들은 없을거야.하고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이 완전한 현실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는지라 책을 읽는 동안 더 우울했던것 같아요.
그나마 레베카가 헤이젤 살아가면서 더 이상 세상에 상처 받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울때는 안도했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진짜 자기 자신을 잊은채 큰 비밀을 가슴 속에 묻어두는 삶도 그다지 행복한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레베카의 사촌으로 추정되는 여인과의 편지 서신은 이제야말로 정말 레베카가 그녀 자신이 갖고 싶었던 행복을 찾은 것 같아서 행복하게 책을 덮을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조이스 캐롤 오츠를 만나게 한 두번째 책이지만, 이 책을 읽고 바로 '여자라는 종족'을 읽어서인지 그녀의 작문 성향이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는것 같더군요. 여성작가임에도 무척 난폭하고 거칠지만 한편으로는 여리고 부드러운 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야성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이랄까요. 솔직히 그녀가 다작을 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만약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이런성향을 보인다면 조금은 멀리하고 싶은 부류이기도 해요. 그러면서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매력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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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레베카는 자신의 몸에 베어 있는 아버지의 체취를 지우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는 장면에서 처음에는 그저 그녀의 정신적인 압박감의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그녀가 자신의 머리에 붙어있는 아버지 시체의 파편을 가위로 잘라내었어야만했던 상황에서 그녀가 보였던 모든 행동들이 이해가 갔습니다. 꽤 잔인해서인지 인상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