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의 책들이 좋다.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면서 아직은 읽어야 할게 더 많음을 기뻐한다.

처음으로 읽었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임펙트가 워낙 강해 찾게 된 로맹 가리

은근 중독증세를 보인다. 아직은 이렇게 본 책 보다 봐야 할 책이 더 많아 행복한 작가!

 

 

 

 

 

 

 

 

 

 

 

 

 

 

 

 

 

지금 유럽의 교육을 읽고 있는데 제목만 들으면 완전 무슨 교육서적 같아 평소와 달리 역자 후기를 먼저 봤다.

그리고 봤다.

자살하면서 남긴 로맹 가리의 유서를.....

 

 

 결전의 날.

 진 세버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상심한 마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른 데다 호소하도록 초대받는 법이다.

 사람들은 아마 신경쇠약 탓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 신경쇠약이라는 것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계속되어왔으며, 내 문학적 작업을 완수하게 해주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인가? 아마도 <밤은 고요할 것이다>라는 내 자전적 작품의 제목과, '사람들이 달리 더 잘 말할 줄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말 속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로맹가리

 

 

아 젠장!  멋지잖아.

내가 이 세상에서 할 건 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저 당당한 자신감.

저런 유서를 남겼는데도 사람들은 왜 1년 전에 자살한 진 세버그때문이라고 말들을 했을까?
(진 세버그는 영화배우였으며 로맹 가리의 전부인이기도 했다.)

 

 

 

 

김학철 선생님이 예전에 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시면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영면에 드셨다.

멋있었다.

 

 

며칠 전에 본 역사e에서 이회영 선생이

예순 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 라고 했다.

머리가 띵 울릴 정도로 멋있었다.

 

 

 

 

 

 

 

 

지난 달에 영화 <지슬>을 봤다.

가장 슬펐던건 이들의 죽음이 너무 허무해서였다.

왜 죽는지도 모르고, 뭔가 의미를 남기지도 못하고, 따뜻하게 잡아주는 손 하나도 없이 그냥 그냥 죽어갔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죽음.....

 

 

깨놓고 말하면 나이가 든다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다.

아! 죽을 때 멋있고 싶다.

로맹가리처럼, 김학철, 이회영처럼........

사는 동안 멋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던 나같은 사람이 죽을 때 멋있어 보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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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깝죽 2013-06-2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이가 66세라면 완전 청춘이구먼 그 아까운 나이에 자살을 하다니
나 같으면 뭔가 큰 물건 하나 만들어 놓고 가겠다.
 
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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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e의 인기에 힘입어 EBS에서 역사e를 만들었다.

지식e만큼의 임펙트에는 조금 미치치 못하는듯 하지만, 자료로 쓰기좋아 관심있게 보고 있다.

결국 지식e와 같은 컨셉이다.

 

숨은 인물과 사건을 발굴하고, 뻔해 보이는 사건을 뒤집어보고, 낯설게 하고 그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 것

지식e나 역사e가 기여하는 바는 바로 이런 면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e나 역사e에 열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고....

 

역사e는 독립운동가 이회영으로 시작한다.

인상적인 시작이다.

 

 

 서른 살 청년 이회영이 물었다.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예순 여섯 살 노인 이회영이 답했다. "예순 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 (18 -19쪽)

 

 

조선의 유서깊은 양반가였으며 떵떵거리는 부자였던 이회영 일가는 일제에 의해 주권을 잃어버리자 집안의 재산을 정리해 간도 삼원보로 떠난다. 집안의 6형제가 함께 떠났으니 집안의 가풍을 짐작할만하다.

이 집안의 돈이 간도에 독립운동기지를 만들었고,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어 무수히 많은 독립군을 배출해냈으며 상해임시정부에 쓰이고.... 돈만이 아니다. 함께 간도로 떠난 6형제 중 해방 이후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건 다섯째였던 이시영 한 사람뿐이었다.

예순 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라......

얼마나 당당하고 오만한 자신감인가?

하지만 이회영이라면 수긍이 간다.

40대에 가진 모든 것을 바쳐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개화적인 양반에서, 계몽운동가로, 50대에 아나키스트로 자신의 사상을 새롭게 정립해나가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생을 바친 사람의 삶 자체가 답이 될 수 없다면 무엇이 답이 될 수 있겠는가?

나이 50에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온몸을 바쳐 투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범인의 경지를 벗어나는 것이리라....

내 나이 60은?

음.... 생각하기 싫다......`

 

 

 

 

 이부자리 개기, 아침인사, 요강비우기, 집안청소.... 할아버지의 시중을 들며 익히는 바른 습관

 단정한 옷차림, 바른 몸가짐, 남을 대할 때의 예의범절... 할아버지를 보며 깨치는 '선비'의 덕목

 봇짐장수, 일가친척, 방랑객... 사랑채에 드나드는 사람들, 사랑채에 앉아 듣는 '세상 공부'

 ........

 할아버지가 손자를 직접 가르치는 최고의 교육법 '격대교육'

 

 

바쁜 부모를 대신해 세대를 건너뛰어 조부모를 통해 이루어지는 가정 교육.

16세기의 사대부 이문건은 손자를 기른 일종의 육아일기 <양이록>을 남긴다. 사화에 휘말려 귀양살이를 하던 이문건이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손자를 기르면서 쓴 육아일기다.

손자는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일기의 마지막은 "할아버지와 손자 모두 실망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이 늙은이가 죽은 후에나 그칠 것이다. 아, 눈물이 흐른다"로 맺어진다. 대충 보니 이 때 손자가 딱 사춘기다. 부모 모두 잃고 혼자 남아 귀양살이 하는 할아버지 품에서 자란 손자의 사춘기가 얼마나 극심했을까? 근엄한 성인의 이미지 밖에 없는 율곡 이이도 사춘기때 새어머니와 맞지 않아 가출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모습을 닮는다. 아니 조선에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닮았을까?

이후 손자는 할아버지의 뜻대로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하였지만,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키고 그에 대한 상도 당연한 일이었다며 사양했단다.

결국 부모 또는 조부모의 삶이 자식의 본보기인 것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진짜 사는게 만만찮다. 잘 살아야 한다. 내 아이가 올바른 삶을 살게 하고싶다면.....

 

 

 

 나는 야스쿠니 신사 구석에서 천덕꾸러기처럼 서 있는 조선 비석을 발견했다.

 .........

 강제로 빼앗긴지 꼭 100년이 되던 해

 "남과 북은 일본으로부터 북관대첩비를 반환받기로 하고 이를 위한 실무적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제15차 남북장관급 회담 공동보도문)

2006년 북관대첩비는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오랫만에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당국 회담이 결국 무산되었다.
예상한바라 하더라도 안타까운건 어쩔수 없다.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는 공방전, 대화의 의지 자체가 없으면서 책임은 피하고 싶은 작태는 가소로울뿐이다.

 

1592년 임진왜란, 일본은 부산에 상륙한지 겨우 20일만에 서울을 함락시키고 60일만에 평양을 함락시킨다.

당시 서울까지 가는 길이 급하게 걸어가면 20일정도가 걸렸던 걸 감안하면 말이 안되는 속도다.

이러한 전세를 뒤집은 것은 이순신의 해전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들이었다.

함경도로는 한번도 진 적이 없어 전쟁의 신이라 불리던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 2만 2천이 진격해온다.

의병장 정문부는 다른 의병부대와 곳곳에서 연합작전을 벌이며 일본군을 괴롭힌다.

이 책에서는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부대 2만 2천 VS 정문부가 이끄는 의병 200 이라고 하지만 이건 엄밀히 말하면 과장이다.

함경도 지역 곳곳에서 일어났던 전투를 통틀어 북관대첩이라 하는데 2만2천대 200이라고 하면 마치 전면전을 벌인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전면전은 불가하다. 정문부의 의병부대를 비롯한 여타 의병부대가 상황에 따라 연합해가며 기습전을 벌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럼에도 가토 기요마사의 정규군을 맞아 싸워 결국 그들을 패퇴시키고 함경도를 수복했다는 것은 엄청난 공적임에 틀림이 없다.

 

바로 이 북관대첩의 공적을 기록한 것이 북관대첩비, 정식명칭 '조선국함경도임명대첩비'이다.

그런데 이 비석이 1905년 러일전쟁 중 북상하던 한 일본장교에 의해 "이것은 일본역사의 수치다"라는 선언으로 강제로 떼어져 일본으로 건너가 결국 야스쿠니 신사 구석에 내팽개쳐지게 된 것이다.

 

1979년부터 한국정부는 북관대첩비의 반환을 일본에 요구하였으나 난항을 거듭하다가 2000년대 들어 남북공동외교활동에 의해 결국 2005년, 강제로 빼앗긴지 꼭 100년만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남북이 같이 함으로써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북관대첩비의 글을 읽는 날, 남북회담의 무산이 더욱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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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6-13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께 인사를 드린적이 있는 지 모르지만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넘 반가와요!!!!^^
이 책은 저도 세실님께 받아서 갖고 있는데 [린 인] 다 읽고 읽어야겠어요~~~.^^

바람돌이 2013-06-13 14: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시아님. 음... 저도 인사를 드린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시아님 서재 가서 해든이란 이름을 보니 분명 인사를 했던듯해요. ^^
닉네임이 원래 시아님이었나요????
하여튼 반가워해주셔서 감사해요. ^^
 

 

팟캐스트 방송 중에 창비에서 만든 라디오 책다방 을 즐겨 듣는다.

김두식씨와 소설쓰는 황정은이 진행을 하는데 이번 9회 방송에서는 엄기호 한윤형 두 사람과 함께 방송이 진행되었다.

이 두 사람은 이름은 처음 듣는데 지은 책들의 제목은 모두 익숙하다. 제목만.... ㅠ.ㅠ

 

 

 

 

 

 

 

 

이번 편은 주로 세대론을 다뤘는데 듣다보니 속으로 뜨끔한 얘기들이 제법 있다.

그중에서도 386세대의 교육관을 얘기하는 부분은 정말 앗 뜨거다.(여기서 386세대라는 말의 폭력성이나 경계들의 의미는 잠시 재껴두자.)

 

나는 흔히 말해지는 대로 한다면 딱 386세대다.

대학시절 나는 세상이 이제 뒤집어질 줄 알았고, 그 기대가 어긋났을때도 이 세대가 사회의 주도층이 될 때쯤에는 세상이 확 달라져있으리라 기대했다.

그게 얼마나 순진하고 멍청한 기대였는지는 지금 현실이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먼 옛날 손자병법의 이 명언을 깨닫지 못한 우리 세대는 적의 강고함을 얕봤고,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소위 386세대들은 이제 대부분이 10대 이상의 아이들을 기르고 있는 부모세대가 됐다.

이들은 이제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고 있을까?

 

 

 

 * 자신의 아이가 초등학교는 대안학교를, 고등학교는 특목고를 가기를 바란다.

 * 유사 이래 아이들은 가장 똑똑한 부모를 뒀다. 그래서 아이들의 책을 부모가 고른다. 좋은 책만....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 좋은 책 나쁜 책 고를 기회가 없다. 오히려 부모덕분에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된다.

 *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을 비판하다보면 자식교육에 올인 - 기러기아빠가 된다.

 *속마음 - 아이가 별로 공부안하고도 서울대갔다고 얘기하고싶어한다.

 * 최고 히트 - 학교 공부를 못하는 자식은 괜찮지만, 똑똑하지 않은 자식은 참을 수 없다. 학교를 때려치더라도 멋지게 때려치워야 한다.

 

 

여기에 내가 하나 덧붙이자면

* 사회문제에 관심많고 진보적인 부모가 집에서까지 진보적이고 완전히 민주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집에서는 그냥 게으르고 아이들 심부름 시키기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부모다. 즉 말만 진보적이다.

 

이러고 보니까 아!

애들 정말 이런 부모밑에서 산다고 고생이 많겠구나!!

똑똑해야 되고, 공부도 잘하면 좋고, 멋지기까지 해야 하고....

거기다 말빨은 세서 말로는 부모한테 절대 못이기는데 딱히 수긍은 안가고....

 

남 얘기가 아니다.

딸 둘을 키우고 있는 나의 은밀한 욕망이 이런식으로 까발려지니 뜨끔하다가 민망하고 딸들한테 미안해진다.

저 말들이 내 마음과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 70%이상이다.

특히나 학교공부는 못해도 똑똑하기는 해야 한다는데서는 빵 터졌다.

세상에는 똑똑한 아이보다는 똑똑하지 않은 아이가 더 많은데 어떡하지?

 

우리집 애들을 비롯해서 요즘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그냥'이다.

왜 그랬어? 왜 좋아? 왜 싫어?
무수히 쏟아지는 왜, 왜, 왜?에 아이들은 그저 그냥이란다.

부모세대의 말빨에 아이들이 눌려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386세대가 아이들을 기른다면 무지 반듯하게 멋지게 잘 키울 것 같았는데.....

관념의 진보는 이렇게 현실과 부딪히면 백전백패다.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 아이가 미래에 행복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미래의 행복이 지금의 행복을 저당잡아서 이루어질 수는 절대 없는 것!

딸들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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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6-13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딸도 그냥 이란 말을 잘 해요
그런데 가만 보면 전 그 그냥을 추궁하는거 같아요 왜인지
사실 말하기 싫어서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저야말로 그냥 불쑥
이런 경우가 많은데요
전 그냥 아무 이유없이를 아주 생활화했던 사람인데
저도 점점 아이들 세계와 멀어져 가는 사람 같네요
아이입장 부모입장
같아질 날은 오지 않겠지요

바람돌이 2013-06-13 12:24   좋아요 0 | URL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특히나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죠.
아이입장 부모입장 같아지면 오히려 큰일 날 것 같아요. ^^
어른은 어른스럽게 아이는 아이스럽게.... ^^;;

순오기 2013-06-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는 저도 뜨끔합니다~ 그래서 동의하고요.ㅠ
부모 노릇을 잘하기는 어려우니, 그냥 친구같은 부모가 되면 좋겠다 생각해요.
물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하는 말이지, 어릴 때는 친구같은 부모를 생각만하고 실천은 못했어요.ㅜㅠ
 

몇년을 벼렀다.

꼭 보고싶은데 일년에 한 번밖에 개방을 안하는지라 초파일외에는 갈 수 없는 곳

바로 문경 봉암사다.

요 절은 부처님 말씀대로라면 연이 닿지 않은 건지 꼭 초파일에 집안행사가 생기거나 다른 조건이 다 되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거나....

그리도 안맞던 연이 올해는 드디어 맞아떨어졌나보다.

새벽 6시. 잠이 덜깨서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그냥 후려쳐서 집을 나섰다.

문경까지는 참 먼길. 3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하니 네비게이션에는 아직도 절은 7 km나 남았다는데 경찰들이 나와 교통정리중이다. 갓길에 차를 대란다. 헉~~~

다행인건 거기서 조금만 걸어가니 사람들이 셔틀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있다. 30분정도 기다려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도, 내려서 걷는 길도 정말 사람 천지다.

이 외진 문경골짜기에 하는 말이 쏙 들어간다.

 

 

저 만큼 희양산이 나타난다.

순간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흰 봉우리를 안고 있는 희양산은 옛부터 '절이 들어서지 않으면 도적이 들끓을 자리'라 했다는데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크지 않음에도 저런 장쾌한 기상을 내보이는 산 아래에 어떤 집이 기를 펴고 번성할 수 있을까?

산의 기세에 눌리기 십상이다.

 

 

 

아직 아스팔트 길이 이어지는데 길 오른편으로 너럭바위들과 너른 계곡이 나타난다.

이런 곳은 절대 그냥 못 지나치는 해아가 조르르 달려가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다.

나중에 보니 올챙이를 데리고 놀고 있다.

조심스럽게 올챙이를 가져오더니 자랑삼아 내밀고는 다시 조르르 달려가 물에 놔준다.

 

드디어 흙길이 나오고 일주문을 지나 본격적인 산사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유난히 솔향이 진하다.

절 초입이 공기가 좋고 풀내 나무내음이 좋은건 당연하다해도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해아가

"엄마 공기에서 맛이 느껴져"란다.

"무슨 맛?"

"음.... 시원한 맛"

하하... 오늘의 표현이구나! ^^ 정말 공기가 달고 시원하다.

철쭉은 예쁘게 피었고 꽃내음보다 더 진한 솔내음을 맡으면서 해아는 엄마랑 공기타령을 하고,

예린이는 휴대폰 대신 얼마전에 얻어낸 갤럭시 플레이어 삼매경에 빠졌다가 혼나고...

예린이는 이제 커서인지 이런 산책보다는 갤럭시가 더 좋다.

 


 

 

이제 절이다.

절 바로 앞에 이렇게 돌다리를 놨는데  자연석 돌다리 위에 흙을 깔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길을 내어서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이런 예쁜 다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절쪽으로 가서 돌아봐야만 절묘하게 예쁜 이 모습이 그제서야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돌아봄을 포함할 때 더 많은 것들을 주는게 맞나보다.

 

이 나이가 돼서 겨우 깨달은건 산다는건 일직선이 아니라는 것, 앞만보고 달리는게 아니라는것 하나다.

좀 주저앉아도, 남들보다 천천히 일어나도, 아니 아예 뒷걸음을 좀 친다해도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작용을 할지는 살아봐야 아는거라는 것.

그러니까 푸시킨이 그랬잖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

(앗! 푸시킨에 대해서 나에게 뭘 묻지는 마시라. 내가 아는 푸시킨 시는 이것 하나뿐이니....)

 

 

드디어 봉암사 경내로 들어서다.

그런데!!

아 저게 뭐냐?

봉암사 3층석탑이 수리중이다.

내가 왜 봉암사를 오고싶었냐고?
언젠가 봤던 다큐에서 봉암사 3층석탑을 보고 홀딱 반했었다.

아 저렇게 예쁜 탑이라니, 저걸 꼭 보고말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봉암사는 아직도 내게 완전한 인연을 허락하지 않은거였던 것이다.

 

에잇! 해아야 선크림이나 발라라....

가려진 3층석탑 앞에서 예린 해아 얼굴에 철퍼덕 철퍼덕 선크림을 발라주면서 슬픔을 달랜다. ^^;;

 

 

 

봉암사 대웅전.

새로 지은 건물인데다 대웅던 앞은 사람으로 가득차서 산사의 아늑함이나 고즈넉함과는 거리가 멀다.

봉암사의 역사는 저 산세 때문인지 정말 구구절절히 사연들이 많다.

신라말 선종이 이땅에 들어올때 지증대사에 의해 희양산문으로 개창되어 선종9산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곧 후삼국 시대가 되고 문경은 그 위치로 인해 견훤과 왕건의 격전장이 되고, 봉암사는 폐허가 되어 겨우 극락전 하나만 남기게 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또다시 큰 불이 나 역시 극락전을 빼고 다 타버렸고, 1908년에도 대웅전에 불이 났던 것.

이런 큰 난리들을 겪으면서도 절이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던 게 어쩌면 신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른 건축이 들어서기 힘든 저 희양산의 기세 때문이지도 모르겠고....

 

 

 

원래는 희양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요 금색전이 절의 본당이었던듯 하다.

건물의 앉음새도 그러하고, 삼층석탑도 지금의 본당인 대웅전이 아니라 금색전에 위치한걸봐도 그러하다.

금색전 역시 새로 지은 건물이라 특별한 느낌은 없으나 하늘과 희양산과 어우러진 모습은 옛적의 모습을 짐작케한다.

 

금색전 옆으로는 절의 창건조인 지증대사의 부도와 부도탑비가 전각안에 자리해있다.

 

 

 

 

 

 

지붕돌이 좀 커서 약간 무거워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조각들이 대담하고 아름다워 지방 산사의 부도라고 무시하지 못한다. 창건당시에는 봉암사의 세가 만만찮았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해준다.

 

 

 

 

부도 옆에 있는 지증대사 부도비 역시 거북받침의 거북이 준수하고 대담한 조각 솜씨를 보인다.

또한 비석의 글씨 역시 단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비석의 글은 최치원의 4산비문 중의 하나인데 불행히도 나의 한자실력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고, 최치원의 유려하다는 문장을 못느낀다. ㅠ.ㅠ

 

신라 말의 작품인데도 희화화 되지 않고 진지한 거북이의 모습이 당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봉암사 극락전

극락전이 앉은 돌기단은 창건당시의 것이니 1,000년을 이어온 것이다.

저런 정방형의 기단으로 보아 원래는 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에 또다시 불에 타고 난 이후에 다시 단층의 건물로 태어났다.

그런데 참 놀라운 건물이다.

지붕과 건물의 비례를 보라. 정말 말도 안되는 비례지 않은가 말이다.

저 비례면 건물이 눌려도 한참을 눌려 짓눌리고 억눌린 느낌이 들어야 당연하다. 지붕은 2겹이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런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건 무슨 조화일까?

 

두겹으로 지붕을 만들어 지붕의 화려함을 더하고 날렵한 선으로 한 곳에 모이는 사모지붕을 선택해 지붕의 무게 압박을 시각적으로 날려버린다.

또한 건물의 주변을 활주로 둘러싸고 가운데 자그맣게 본당을 들어앉혀 아래 공간이 좁은 공간임에도 좁은 느낌이 들지 않도록 배려한 것. 이런 것들이 모여 이 건물의 느낌을 완성하는게 아닐까?

건물이라기보다는 목탑을 재현한 것이 확실한데 보는 나에게는 이제 막 수줍게 봉오리를 내미는 연꽃 한송이를 보는 느낌을 준다.

 

며칠전에 읽은 책 <구본준의 마음을  픔은 집>에 보면 건물은 작은 건물이 가장 짓기 어렵다는 구절이 나온다.

큰 건물은 무엇이든 만들어넣고 배치할 수있으나 작은 집은 그 작은 공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집어넣고 아름다움도 갖춰야 하는 지라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다가 나는 바로 여기 극락전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봉암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극락전이 아니다.

극락전을 2위로 밀어낸 주인공은 바로 요기.

 

 

지증대사 부도비 옆의 공터에 누군가 갖다놓은 돌멩이들.

누가 조각한 것도 아니고 그저 맞춤한 작은 돌 몇개를 가져다 얹었을 뿐인데 영락없는 아기부처다.

어찌나 절묘한지 이 돌을 쌓은 이도, 그것을 버리지 않고 여기에 배치한 이도 최고의 예술적 감각이라 감탄하지 않을 수없다.

보는 순간 저절로 입끝이 올라가며 미소짓게 하는 저 마음이 부처의 마음일게다.

 

해아는 토끼풀을 열심히 뜯어 자그마한 꽃다발을 만들더니 나중에 극락전에서 절하고 불상앞에 공양으로 올린다.
내가 절밥 얻어먹는다고 한 지폐공양과 해아의 꽃공양 중 어느 것이 더 귀할까? ㅎㅎ

갤럭시플레이어에 잡아먹힌 예린양은 등장할 타이밍을 못 찾는구나.... ㅠ.ㅠ

 

점심을 절에서 내주는 비빔밥으로 얻어먹고 절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공기는 여전히 맛나다.

꽤 걸어서 도착한 백운대마애보살좌상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 없는 장면은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다.

뒷모습이 찍히신 저 분은 모르는 분.... 얼굴이 안보이니 여기에 등장해도 괜찮으실거야라고 자위하면서....

고려시대의 마애불이라는데 옷의 주름이나 아랫쪽의 조각을 보면 신라말 고려시대가 맞는데 얼굴은 좀 아닌듯...

지나치게 현대적이랄까?

뭔가가 딱히 맞지 않는 느낌인데 뭐라고 콕 집어 말하기가 참 애매하다.

 

마애불 앞으로는 넓은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고 시리도록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안 뛰어들수가 없다.

그러다가 철퍼덕 넘어진 해아

 해아는 지금 옷 말리는 중.....

 

에잇! 물고기들아 우리 발냄새나 맡아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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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3-06-05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아는 여전히 개구장이군요. ㅎㅎ 이렇게나 자랐다니! 예린인 숙녀가 다 됐어요. 반가워라~~~^^

바람돌이 2013-06-05 11:23   좋아요 0 | URL
많이 크긴 했어요. 근데 갈수록 말을 안들어먹어서.... ㅎㅎ

세실 2013-06-05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 예린, 해아가 이렇게나 컸군요^^ 숙녀가 다 되었네.
봉암사 일년에 한번만 개방을 해요? 이런.....대체 왜? ㅎㅎ
용궁사도 좋던데 이리 멀리까지 다녀가셨군요^^

바람돌이 2013-06-05 11:29   좋아요 0 | URL
1982년부터 조계종 종단에서 특별수행도량으로 지정했대요. 그야말로 스님들만의 공간이 된거죠.
이렇게 된데는 여러가지 과정의 일들이 있겠지만 저는 잘 모르고요.
조계종 정도의 규모 종교라면 이런 공간이 하나쯤은 필요하겠다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덕분에 이 곳의 자연환경이 다시 살아난다고 하네요.
실제로 가본결과 공기가 정말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순오기 2013-06-0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예린이와 해아, 정말 많이 컷네요~ 쑥쑥!!
바라만 봐도 흐뭇하겠어요~~ @@

절은 조망하는 즐거움에 찾아가는 곳~ 바닷가의 용궁사는 그래서 좋았어요.^^
부산 가기 전에 바람돌이님 만날까 생각했는데 한창 수업중일 듯해서...
전에 핸드폰 고장으로 저장된 번호도 사라졌고요.ㅜ

바람돌이 2013-06-05 11:31   좋아요 0 | URL
핸드폰 고장은 저랑 같네요. 무려 2년전에 쓰던 핸폰이 액정이 고장나는 바람에 있던 전화번호를 몽땅 날렸어요. ㅠ.ㅠ

용궁사는 풍경이 좋은 절이죠?
다음에 부산오시면 저녁에라도 잠시 얼굴볼수 있게 해주세요. ^^

꿈꾸는섬 2013-06-0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해아와 예린이 정말 많이 컸네요.ㅎㅎ 하긴 우리 애들도 그새 엄청 자랐어요.
문경 봉암사가 초파일에만 개방을 하는군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가기에 셔틀버스가 운행되는 건지, 신기해요.

바람돌이 2013-06-05 23:29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크는걸 보면 내 나이 먹는게 느껴진다죠. ^^
다들 참 어떻게 아는지 정말 사람이 많더라구요. 근데 셔틀버스가 수도 작고 운행체계도 잘 잡혀있지 않아 정말 엄청 기다리고 우여곡절도 많았어요. 올때는 거의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구요. ㅠ.ㅠ

마노아 2013-06-0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락없는 아기 부처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할 만해요. 예술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네요.
해아는 여전히 지구 아이로 잘 크고 있군요. 해아답고 예뻐요. 예린이는 숙녀 분위기가 물씬 나네요.
꼬꼬마들이 이렇게 자랐다니 세월이 머쓱해요.^^

바람돌이 2013-06-07 11:04   좋아요 0 | URL
아기부처는 저렇게 쌓은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죠? 예술을 뛰어넘는 아름다움 맞아요. 음 좋은 표현, 적어놔야지... ^^
예린이는 예측이 가능한데 해아는 예측불가인게 여전합니다. 외계인이 되는건 아닌지.... ^^

무스탕 2013-06-0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이 이렇게 크도록 안 보여주시다니욧-! 바람돌이님은 새삼 반성하셔야해욧-! ㅎㅎ
오랜만에 예린이랑 해아 보니까 참 조타~~ :D

바람돌이 2013-06-07 11:05   좋아요 0 | URL
아 무스탕님!! 반성은 하고 있어요. ㅎㅎ
애들이 근데 옛날처럼 예쁜 맛은 사라지고 있어요. ^^

책읽는나무 2013-06-08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울집 아이는 안컸다고 하던데 말이죠?!^^
저렇게 숙녀로 다 키워놓으시곤....ㅡ.ㅡ;;

님 생각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좀 그리웠다고나 할까요?
한 달음에 달려왔지만 좀 늦었죠?
암튼..그동안 무탈하게 더 건강하게 귀환하시어 반갑습니다.^^

바람돌이 2013-06-10 08:46   좋아요 0 | URL
제 눈에는 민이랑 둥이들 큰 것만 보이더라구요. ^^
반가워요. 나무님...^^

2013-06-08 0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글.사진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참 예쁜 글!

만약 작가를 모르고 봤다면 여자가 쓴 글이라고 생각했을듯도 하다.

남자들의 글속에서 감성은 곧잘 모자라고, 여자들의 글에서 감성은 곧잘 지나치게 넘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물론 모든 남녀가 그런것은 당연히 아니다. 언제나 예외들은 존재하는 법!)

그러나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간다는 어쩌면 낭만적일 수 있는 여행길에서 자신의 감성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풀어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만 못하다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일인가 말이다.

 

이 책에서 다니는 여행지는 이미 말한대로 영화의 촬영지들이다.
그런데 영화는 모두 유명세가 대단한 영화들이지만 그 촬영지들은 영화가 아니라면 절대로 관심이 가지지 않을 것같은 곳들 - 외지고 한적하고 그래서 가려면 죽도록 고생해서 가야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이동진 이사람이 아니라면 언제 이런 곳을 책으로라도 보겠는가 말이다.

 

호주의 에어즈록에서 작가는 말한다.

"서로 몸을 맞대고 반갑게 비비기라도 하듯, 평상에 드러누워 끝없이 속살거리기라도 하듯, 별들은 일제히 소리를 냈다. 별이 별을 부추기고 별이 별을 흔들어 깨우는 압도적인 풍경을 올려다보고 있다니 현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 밤, 나는 별의 잔해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바위 에어즈 락, 그 바위외에는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과 하늘 외에는 없는 그곳의 밤이 나를 감싼다. 이 순간 나 역시 별의 잔해가 된다.

 

"사막에서는 모래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어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이는 모래는 고체이고 액체이며 기체였다..... 사막에서 모래는 무형의 형질로 그 모든 것이 되었다. 그렇게 세상을 이룬 모래는 잔바람에도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속삭였다. 이제 어둠이 사막을 완전히 삼킨 후에도, 모래는 잠들지 않고 오래도록 수군댈 것이다."(스타워즈의 촬여장 - 튀니지) 모래는 바람의 잔영일테다. 아마도 나 역시 잠들지 못하고 모래의 수군거림을 내내 듣고 있었으리라....

평이한 문장들 속에서 이토록 깜찍하게 튀어나오는 문장들은 갑자기 나를 공간이동시킨다. 그저 평범한 여행이 특별함이 되는 보석같은 순간들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촬영지 피지 모누리키섬을 찾은 것은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머감각이 빛나는 곳이다.

아니 도대체 영화의 촬영지라고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1박2일동안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아보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톰행크스처럼 불을 피워보려다 결국은 포기하고 라이터로 불을 피우고, 야자열매를 따서 목마름을 해결하겠다고 나무를 오르다 실패하고.... 농담 한마디 없이 웃기는 것도 가능하구나... 이 정도면 21세기 톰소여에 그대를 임명할 수 있겠구나... ^^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의 여행지는 어디였을까?

세계적인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무덤이 있는 스웨덴 포러섬이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세계적인 거장의 겉을 모두 빼고 자연인 잉마르 베리만 하나만 남은 흙무덤 하나 보겠다고 스웨덴까지 날아가다니....

하지만 글을 따라 함께 가다보면 작가가 왜 이 곳을 굳이 가야했는지가 수긍이 간다. 무지 어려울것 같은 분위기와 명성에 압도되어 그의 영화를 하나도 못본, 그래서 잉마르 베리만이라는 영화감독에 대한 존경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그의 무덤은 신성한 성소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의 삶이 마지막조차도 이렇게 비장하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또 하나 이 책의 마지막 아름다움은 여행의 본질을 잊지 않음에 있다.

"여행이라는 것 역시 나그네에게는 삐걱대는 삶을 수리하는 기간일 것이다."

"누군가 잠깐 들른 휴식 공간이 다른 이에게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 여행자는 종종 죄책감의 삯으로 환상을 소비한다."

"전경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들이댈 때, 멀리서 나를 알아본 테오의 엄마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는 사진 찍는 것보다 마주보며 나도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감성이 얼핏 평범해보이는 여행에세이를 비범하게 빛나게 한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그와 함께 한 여행이 끝났을 때 내 입가에 미소 한자락을 머물게 한다.

 

(글 속의 붉은 글씨는 책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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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6-0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전문기자로 여자로는 김혜리를 좋아합니다.금요일 밤 10시 문화방송 FM 성시경의 푸른밤에 고정출연하는데 아주 해박한 지식과 감칠맛나는 언변으로 영화이야기를 해줍니다.목소리가 좋아서 매주 듣습니다.추천!

바람돌이 2013-06-04 23:22   좋아요 0 | URL
김혜리씨의 책도 눈팅만 하고 있었는데 챙겨놔야 하겠네요. ^^
라디오를 따로 챙겨듣지는 않는데 혹시 팟캐스트로 떠있는지 확인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