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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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을 읽는다는건.....

어쩌다가 잠시 쉬던 때 누군가가 평전을 소개한 출판사 광고지를 가리키며  "이런 책은 도대체 누가 읽냐?"라고 했던 것 같다.

하필 옆에 있는 나는 웃으면서 "저같은 사람이 읽어요. 저는 평전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나를 희안하다는듯이 보며 "진짜? 이런걸 읽는 사람이 있네......" 잠시 우리 둘다 웃었던듯.....

 

어쨌든 나는 평전을 많이 좋아한다.

역사서를 직접 읽는 것보다 평전을 통해 시대를 보는 것이 더 좋다.

왜?

한 시대를 온몸으로 부대껴낸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삶에서는 역사서의 내용이 그의 삶을 무대로 현장감있게 펼쳐질뿐 아니라,

역사서의 서술에 포함되기 어려운 디테일한 삶의 풍경들이 손끝에 와 닿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도 내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역사는 그저 지나간 일이 아니라 내가 꼭 기억하고 보듬고 다독여야할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안도현이란 한 시인의 오랜 짝사랑이 만들어낸 시인 백석의 평전은 어떤 풍경들을 보여줄까?

평전의 첫 장을 펼칠 때는 늘 두근거림이다.

누군가의 삶의 소중한 시간들을 마치 나만 알게되는듯한 묘한 설레임.

소설과도 다르고 역사서나 인문학서적과는 완전히 다른 그런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간이 기다린다는 느낌이랄까?

 

백석은.....

백석은 그의 시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로 내게 왔다.

일제시대와 해방공간이란 시대에 뜬금없이 다른 세계에서 푹 던져진것 같은 모던보이의 낭만적인 외모로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고 우주급 뻥을 치는 이의 정신세계라니! 궁금하지 않은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다행히도 시인 안도현의 짝사랑 덕분에 나의 호기심과 설레임도 충족되었으니,

살아 다른 사람의 짝사랑을 고마워할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책 속에 보이는 백석이란 시크한 이름의 시인은 딱 그의 詩가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식민지시대, 누구나 그러했듯이 시인의 삶 역시 2가지 선택지 위에서 춤을 출 운명이었을게다.

민족주의 독립운동에 나서든지  친일파로 권력에 철저히 붙어 일신의 안일을 구하든지,

이 2가지의 선택지 사이에서 좌우를 끊임없이 오가며 왔다갔다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시대의 삶은 고난과 자괴감사이를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오고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인간은 참으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니, 그것은 만들어진 틀 사이를 자유롭게 탈출하는 이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백석이 그런 사람이다.

 

백석은 이념에 맞춰 시를 쓰고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유년의 자유로왔던 감성을 노래하고, 고향의 기억을 고향의 사투리속에 날것으로 담고싶어했고, 그것이 사람의 감정을 울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듯하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시인 역시 모두 다르다.

백석의 시가 이육사의 시와 같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육사의 시가 그의 선택이었듯, 백석의 시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가 그 시로 개인의 안일을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키지 않는 한 백석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나는 지금 21세기에 편안하게 앉아서 생각한다.

비록 식민지시대 오장환이란 젊은 작가처럼 현실비판의식이 없는 말장난에 가까운 시라고 (133-135쪽) 백석의 시를 폄하한 이도 있었지만, 그 역시 그 시대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고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문제는 백석의 시창작의 자유도, 오장환의 다소 설익었지만 그 비판 역시 자유로울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석은 독립운동을 하지도 않았고, 그 시대 카프문학처럼 현실참여를 외치며 식민지시대 민중을 위한 문학을 소리높여 외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조용히 어릴적 얘기를 하며 고향의 얘기를 하며 나직나직 노래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말이다.

분명히 이런 조용한 속삭임덕분에 위로받는 마음도 당연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목소리 큰 투쟁가에 힘을 얻지만, 누군가는 사랑노래에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기도 한다.

백석의 시 역시 그 시절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웃음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백석의 시는 아름답다.

지금에 와서 그의 연시가, 그의 산문에서 흐뭇함의 미소를 짓는 내가 있기에 또한 백석의 글은 여전히 아름답다.

 

식민지 시대의 삶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그리고 하고싶지 않은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해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백석 역시 쓰고 싶은 시와 쓰도록 강요받는 시, 쓰고 싶지 않은 시 사이에서 계속 갈등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건 타고난 자유인이었던 백석이 그래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걸 쓰지 않을 정도의 숨구멍은 있었다는 것이다.

민족말살정책의 시기에는 만주로 잠시 피신한다던지 하는 식으로라도.....

어쨌든 자신의 시정신을 배반하는 친일문학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서 저항 아닌 저항을 백석이 하게 되는것이 그의 민족정신 때문이 아니라 詩정신이라는 것에 백석이라는 한 인간의 본질이 있겠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은 오히려 백석에게 더 큰 올가미를 죄어대니

어떤 시를 쓰느냐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상황(아마도 그것은 개인 뿐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생존과 삶의  문제였을 것이다.)이 일제 시대가 아니라 해방된 조국에서 벌어지다니...

 

역사책을 뒤적이다가 비감할때가 딱 이런 경우다.

어떻게 일제시대보다 해방공간이, 그리고 지금이 더 개인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경우를 발견할때.

북한에서의 아동문학논쟁 이후 시인으로서의 생명이 끊긴 백석이 살아남기 위해 쓴 몇개의 시들을 읽는 것은 고통이다.

읽는 이의 심정이 이럴진대 이런 시들을 쓰는 백석의 심정은 어느만큼 고통스러웠을까?

시인을 시인답지 못하게 하는 세상은 출구없는 닫힌 세상인것이다.

 

백석이라는 자유롭고자한 영혼, 그 한 사람의 삶만으로도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삶이 그 자신 개인으로 봤을때 결코 행복한 삶이 되기는 힘들다는건 누구나 알지 않나?

백석의 산수갑산 시절,

시인으로서의 삶이 끝나고, 한가족의 가장으로, 개인으로서의 백석의 삶에 대해서는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건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평전에 오르지 못한 그 기간이 오히려 백석이라는 개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평화로웠던 기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산수갑산으로 가기 전에 백석이 아들에게 하는 말이 내내 귓전에 맴돈다.

거기 가서 우리는 양을 키울거야. 양이 자꾸 늘어나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보일거야라던....

이것이 백석이 살아온 삶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저자인 안도현시인의 말대로 그의 시인으로서의 삶이 끝났다고 개인으로서의 삶까지 무너졌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오지랖일듯 싶다.

다만 그의 시를 더 많이 보지 못하는 우리 후인들의 안타까움이 큰 것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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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04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바람처럼 나타나셨네요~~~~~~
백석평전. 우리도서관 인문학서평쓰기 동아리 내년 1월 선정도서예요.
저도 조만간 읽으려고 합니다.
백석시인은 시인들의 멘토인듯요. 기대됩니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도 좋았어요.

바람돌이 2014-12-04 16:21   좋아요 0 | URL
바람이라기엔 좀 무겁습니다. ㅎㅎ
세실님이야말로 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시는 그야말로 바람같은 분인듯한데요. 순오기님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항상 에너지가 넘치시는듯 늘 보기 좋아요. ㅎㅎ
백석시인은 매력적이었어요. 추천하신 책도 급관심이 가네요. 이상하게 전 강신주의 책이 손이 안가던데 한번 읽어볼까요? ^^
 
[세트] 자전거여행 - 전2권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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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개가 거듭 군령을 어기기로 베었다. 바다는 물결이 높았다."라는 식의 문체를 보인다.  2권 172쪽

 

위의 인용문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의 한대목이다.

놀랍도록 김훈의 문체와 닮았다.

나는 <난중일기>를 읽지 않았으니 <난중일기> 전체의 문장이 이러한지, 아니면 작가 김훈이 자신의 문체와 똑 닮은 이 부분을 일부러 떼온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건 김훈의 문체가 저 문체를 똑 닮았다는 거다.

김훈은 왠만해서는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있는 것,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역사를 이야기하고 풍광을 이야기하고 또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다가 그때서야 발견한듯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이 뜬금없는 장면의 전환에 늘 김훈이라는 인간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기쁘다 슬프다 표현하지 않아도 절절하게 그 마음이 와닿는 것이다.

 이 마을 염부 권호원씨(67)는 14살 때 아버지를 따라 피란왔다. 아버지와 함께 등짐으로 돌을 날라 둑방을 쌓았다. 그 염전에서 권씨는 지금도 소금을 거둔다. "이제는 염전일을 할 젊은이가 없다. 염전은 결국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고 권씨는 말했다. 1세대의 둑방은 아직도 튼튼히 바다를 막고 있다. 고무래를 미는 권씨의 굽은 등 위로 서해의 폭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1권 256쪽

 

권씨의 굽은 등 위로 폭양이 내리쬐는 모습은 사실 그 자체일 뿐이지만 그 모습에서 나는 그가 살아온 노동의 세월과 삶의 신산스러움과 한 세대가 저물어감을 동시에 느낀다.

고무래를 미는 권씨의 모습에서 굳이 굽은 등을 찾아낸 것, 그리고 그 순간 그를 스쳐간 바람이든 바다내음이든 그 무엇이 아니라 내리쬐는 폭양으로 그의 모습을 설명한 것에서 내가 김훈에게 느끼는 건 소름이다.

구구절절히 풀어내야만 할 것같은 모든 장면을 단 하나의 스틸컷으로 압축해내는 이 능력이라니....

김훈의 글을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힘은 그의 짭고도 강렬한 문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건 단순히 문체의 힘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본질적인 장면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하나의 명징한 장면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그의 사유의 깊이의 힘이라는 것을......

 

김훈의 글은 자연을 빌려 인간을 얘기함에 탁월하다.

그의 글의 예리함은 그의 애정서린 눈길과 오랜 사유에서 나오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 예리함이 사람을 베지 않고 자연을 베지 않는 것은 또한 대상에 대한 애정이깊기 때문일터이다.

늘 피고지는 꽃들에서 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버린다.

.....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뿜어져나오듯이 피어난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 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1권 15~17쪽

 

때때로 자연을 보는 사유의 눈은 더 깊이 인간의 자연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김훈이 자전거 풍륜과 함께 넘는 산은 옛적 누군가의 산이기도 했을 것이다.

김훈은 유가의 산이 다르고 도가의 산이 다름을 이야기하며, 또한 등산객들의 산이 다르고 산에 깃들인 삶을 사는 이들의 산이 다름을 얘기한다. 어쩌면 산은 거기 있을 뿐인데 인간들이 다르다하는 것이겠다.

 

또한 나무의 나이테 하나에서도 나무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새로 생겨난 나무둥치의 바깥면이지만, 나무를 나무답게 올곧게 지탱하는 것은 이미 죽은 중심부임을 얘기하며 건강한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의 원형을 배우고자 한다.

자연과 인간은 결국 이 우주의 원리에 올곧게 부응할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음이니,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우주의 원리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자 했던 그 태도가 어떤 것이었나를 김훈의 글속에서 발견한다.

 

김훈의 글을 읽는 또하나의 즐거움은 이토록 탁월하고 자유롭게  우리말과 한자어를 운용하는 작가를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한글은 소리글자 답게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글임이 김훈의 글을 통해 알게된다.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자음 'ㅅ'의 날카로움과 'ㅍ'의 서늘함이 목젖의 안쪽을 통과해나오는 'ㅜ'모음의 깊이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바람이다. 'ㅅ'과 'ㅍ'은 바람의 잠재태이다. 이것이 모음에 실리면 숲 속에서는 바람이 일어나는데, 이때 'ㅅ'의 날카로움의 부드러워지고 'ㅍ'의 서늘함은 'ㅜ'모음쪽으로 끌리면서 깊은 울림을 울린다....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속에 온 것 같다.   1권 59쪽

 

한자는 뜻글자답게 사유를 펼치고 사람의 사는 길을 표현함에 거침이 없다.

더불어 온갖 고전에 대한  김훈의 해석은 그의 어휘의 풍부함으로 한껏 빛난다.

우리말과 한자의 어우러짐으로 김훈의 글은 늘 간절하게 들린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 간절하고 자연과 세상과의 소통을 희구하는 마음 또한 간절함이다.

그의 말대로 간절한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 간절함의 끝에 사람이 있다.

소금밭을 가는 염부의 굽은 등, 차를 덖음질하는 이의 구부러진 손마디, 소를 매질하는 농부, 80년 광주의 사람들, 도자기를 굽는 도공의 마음.....

그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그의 글은 지극히 건조하지만, 그 건조함으로 오히려 간절하다.

또한, 그러므로 눈물겹게 아름답다.

 

보고 좋은 책, 즐거운 책, 생각하게 하는 책은 많고도 많지만,

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음미하고 싶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내게는 김훈의 이 책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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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20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문체~ 초기엔 김훈도 저리 간결하게 쓰지 않았더라고요.
<풍경과 상처>를 보면 후기에서 ˝이젠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고 밝혔어요. ㅋㅋ
http://blog.aladin.co.kr/714960143/3234375
나는 <칼의 노래> 첫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전율했지요.
김훈은 정말 대단한 작가에요. 글쓰기의 모범을 보는 듯한....

바람돌이 2014-11-21 09:25   좋아요 0 | URL
칼의 노래는 정말 그 문장 하나로 시작부터 마음을 확 뒤집고 시작하죠. ㅎㅎ
저는 김훈씨의 책이 칼의 노래부터 시작이라 이전 글은 못봤어요.
지금 김훈의 문장이 좋은 저는 풍경과 상처는 살짝 밀어놓을듯.... ^^

조선인 2014-11-2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도 `풍경과 상처`가 제일 좋아요. 가장 김훈같지 않기에, 내 20대에 가장 잘 어울렸던 책이었거든요.

바람돌이 2014-11-21 09:28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나 나만의 책이 있잖아요. ㅎㅎ
그리고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가가 중요하죠.
저는 지금은 전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이문열을 처음 만났을때의 그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거든요.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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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100년의 역사를 어떻게 표현할까?

격동의 100년? 대학살극의 시대? 이념의 각축장?

20세기를 진지하게 그린 책이든 영화든 어떤 컨텐츠를 보더라도 그 속에서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느낌은

아! 내가 저기 저 시대에 저 장소에 있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다.

 

그런데 안도감이라니?

이 안도감이란건 역으로 들춰보면 어쩌면 내가 속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전제하는 감정이다.

1980년에 나는 외가가 모두 광주에 있으니 광주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1987년 6월의 거리에서 연세대 앞 거리는 내가 다니던 대학 앞 거리로 바뀌어질 수도 있었다 같은.....

역사적 격돌과 그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있는 지역에서는 그것의 희화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설사 블랙코미디로 그려진다 하더라도 그 비극성에서 온전히 벗어나기란 어려운법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웰컴 투 동막골>이 코믹스런 상황을 아무리 연출해도 <황산벌>처럼 그려질 수는 없는 것은

<황산벌>과 달리 <웰컴 투 동막골>은 그 비극성이 현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스웨덴 내지는 그 인근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설이겠다.

20세기 무수하게 저질러진 학살과 대결의 현장에서 자신이 온전히 주인공인적은 없었던 행운을 가진 나라라고나 할까?

 

100세의 생일을 맞은 영감님 알란은 평생을 정치는 싫어! 종교도 싫어! 모든 이념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당위는 모두 싫어를 외치며 맘 가는대로 흘러가는대로의 인생을 살아왔다.

이념따윈 없다.

스페인에 친구따라 갔다가 내키진 않지만 공화파를 위해서 다리를 폭파하다가 우연히 적인 프랑코를 구하고,

미국에선 우연히 핵개발의 중심에 서게 되고,

중국에서는 장제스를 도우러 갔다가 오히려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을 구하고.....

이런 뒤죽박죽이라니!

20세기 이념의 시대를 탈이념을 부르짖는  21세기의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고나 할까?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가의 지금 생각으로 20세기의 삶을 재구성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소설은 재밌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면서 낄낄거리고 보게 된다.

하지만 영감님이 유쾌 상쾌하게 질주하는 그 시간과 공간을 무수한 고통으로 난도질당하면서 헤쳐온 역사를 갖는 또 다른 의미의 변방 한국에서 읽을 때 불편함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멀리 지독하게 운이 좋았던 나라에서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나라의 사람들을 굳이 배려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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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1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볼 생각을 안 했는데~ 리뷰를 보니 한번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안녕하셨지요?
너무 오랜만이라 곁에 있음 부등켜 안고 찐하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예전처럼 알라딘에서 자주 보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14-11-19 00:24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 너무 오랫만이죠.
글을 안 쓰니 서재에도 자주 안들어오게 되더라구요.
작년에 글 쓴걸 보니 딱 1년만.... ㅠ.ㅠ
자꾸 게을러져서 일단 시작하면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데 뭐 이놈의 게으름이....
자주 놀러갈게요. 반가워요. ^^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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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엃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카프카-

 

카프카의 글에서 제목을 빌려온 박웅현씨의 책을 읽었다.

저 인용글에 저자가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이 들어있다.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꼼꼼하게 읽고 그 속의 말들을 자신의 삶으로 변환시키는 데 진정한 독서의 의미가 있음을 이렇게 친절히 알려주는 책은 고마운 책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을 모두 따라 읽는게 중요한게 아닐게다.

나의 독서가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한  몫을 하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왜 하는걸까?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큰다면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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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1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 인용구 속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죠~
나의, 우리의 독서도 저래야 하는데...
세상은 책 읽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아서~ 에휴.ㅠ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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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책들을 읽어보면 '아! 이 사람이 도(道)에 이르렀구나' 이런 느낌이 들때가 있다.

뭔가 딱 집어서 얘기하기는 힘든데 무언가 삶의 한 경지를 이뤘다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신영복선생님의 <강의>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느꼈었는데, 이번 쿤데라의 책을 읽으면서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학문의 궁극은 통한다고 한다.

학문뿐만이 아니라 어떤 분야든지, 심지어 육체노동이 중심인 장인에게서도 오랜 세월을 녹여낸 삶의 경지를 느낄 때가 있다.

쿤데라의 이번 책은 딱 그 느낌이다.

 

쿤데라가 살아왔을 시대를 생각하면 거대담론의 한가운데를 헤쳐왔을 것이다.

그 시대를 헤쳐 살아오면서 80세가 넘은 쿤데가 도달한 곳의 결국 무의미한 것들 또는 무의미하다고 치부되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가치이다.

거대담론의 시대는 스탈린의 자고새이야기에서 통렬히 비판된다.

자고새의 농다이 뻔뻔스런 거짓말로 이해되어지는 농담 후의 시대...

거대담론에 파묻히면 디테일한 삶의 순간들은 숨어버린다는 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보여주다니...

 

소설은 마치 중구난방처럼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네 주인공의 일과를 무심하게 따라가고 중간중간에 스탈린의 이야기가 뜬금없이 끼어들고....

그런데 읽다보면 아 이것이 모두 삶의 소중한 순간들이구나

무엇도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삶의 한 순간 순간들.....

 

밀란 쿤데라는 이제 무엇을 더 얘기할 수 있을까?

내게 이 책은 마치 쿤데라의 마지막 메시지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거장이 도달한 최고의 경지를 내놓고 한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 하는...

농담 후의 시대에서 무의미의 의미로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축제의 시간이 오롯이 책속에 담겨있다.

어쩌면 쿤데라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까?

자신의 시대와 문학세계를 이렇게 아름다운 책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으니....

더불어 이런 거장의 인사를 받을 수 있게된 나 역시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이 나이든 거장의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그의 책을 다시 한 권씩 한권씩  찬찬히 보고싶다.

너무 어릴 때 읽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읽었고,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부터 시작하려 책을 주문했다.

다행히 밀란 쿤데라 전집이 나와있으니 두고 두고 아껴서 거장을 되짚을 행복한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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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1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리 딸만 읽고 나는 안 읽었어요.ㅜ
못 읽은 책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마는 박웅현님의 말처럼 `도끼`를 만나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