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 지치지 않는 독서교육을 꿈꾸는 보통 교사들의 새로운 교실이야기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1
경기도중등독서교육연구회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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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우리는 우리가 직접 해본 수업만 이야기 햇다. 보통의 교사들이 정규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같이 한 사례를 모았다.

화려한 독서교육 모형이 이 책에는 없다. .... 우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독서교육을 하려 했다.

사회구조를 문제삼으며 교육 불가능성을 탐색하기보다, 현재의 교육 환경에서 교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두었다.

우리는 우리가 교실에서 실천하며 겪은 어려움을 기록하고, 실패를 고백하고, 그 실패속에서 찾아낸 성공의 길을 정리하려 했다.     --머리말 중에서 발췌

 

해마다 수많은 교육청의 수업모형과 수업연구 성과들이 쏟아지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서 외면받는 이유가 사실상 저 머리말에서 모두 설명이 된다.

즉 저 반대로 하면 딱 교육청 주도의 수업모델이 된다는 얘기다.

교육청의 각종 연구성과들은 대부분 교사들의 승진 점수와 연계되어 있고, 따라서 항상 단기간의 성과나 밖으로 보이기에 그럴싸한 이론적 배경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폼이 나야 한다.

 

하지만 교육은 절대로 폼이 날 수가 없다.

어떤 교육방법도 100%의 아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다만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적용하는 과정일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출발점은 바로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라는 점에서 정당한 출발선에 서있다.

또한 요즈음의 교육현장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를 진단하는데서도 올바른 출발점, 즉 교사와 학생의 소통의 어려움이라는 현실에서 제대로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거시적인 교육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책의 고민의 대상은 미시적인 교실 현장이므로....)

 

실제로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소통의 문제는 심각하다.

이것은 단순히 수업의 기법이나 내용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살고있는 사회의 현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부모들이 겪고있는 불평등과 무기력과 희망의 부재를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체현하고 있다.

그것이 교실에서의 무기력으로, 교우관계에서 폭력적인 성향으로 나타나는 것이 교실붕괴니, 학교폭력이니, 중2병이니 하는 것들이다. 이들은 부르는 명칭만 다를뿐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이 책의 교사들이 함께 읽는 책읽기를 하고자 하는 출발점이 바로 여기이다.

수업내용 아니 수업 자체에 아무 관심이 없는, 이 수업이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데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체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고 아이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하게 만들것인가?

소통의 물꼬는 일단 한번 트이면 흘러가게 되어있다.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라면 막히지 않는 것이다.

항상 시작이 어렵고, 그래서 시작이 중요하다.

함께 읽는 책읽기는 바로 그 시작을 할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해준다.

 

이 책의 교사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그것은 이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제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과목에서 각 과목에 맞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된 독서교육의 사례들을 보며 나에게 맞는 방식을 구성한다.

어느 한 교사의 방법이 절대적일 수 없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교사들의 경험을 따라가다보면 내게 맞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의 생각이 모인다.

1월 2월은 다음 해의 수업을 고민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올해의 수업계획에 독서를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의 줄기와 전체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었다.

아마도 올해 나의 독서수업은 그리 큰 성과를 낳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쌓아가는 것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성과를 바로 바라지 말것이며, 천천히 한걸음을 내딛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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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코바섬에서의 물놀이까지 마치고 이제 뎀레로 간다.

뎀레란 마을은 정말 작은 시골마을. 이곳을 찾은 이유는 성 니콜라오스 교회때문이다.

교회를 들르기 전에 점심을 여행사에서 데려가는 식당에서 부페로 해결했는데 정말 이런건 한국이나 터키나 똑같이 맛없다.

도대체 부페인데 왜 먹을게 없을까? ㅠ.ㅠ

 

이 분이 성 니콜라오스다. 크리스마스의 상징 산타클로스의 모델 되시는 분이 바로 이분이다.

 

의미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남들이 모두 성자의 발을 만지고 가길래 우리도 모두 한번씩 만져봤다.

뭐 비슷하겠지. 우리가 절에가서 부처님 발 한번 만지면서 기도하는거랑....

그래도 아이들의 수호성자이니 나도 우리 아이들의 건강 이런걸 기원했다.

절대로 공부잘하게 해달라고는 안빌었다. ㅎㅎ

 

성 니콜라오스는  270년 경 태어나서 346년 돌아가신 성자이고, 이 교회는 그가 주교로 있던 곳이다.

음.... 진짜 오래 전 분이구나....

이 분이 산타클로스의 원조가 된 이유는 이곳에 살던 귀족이 갑작스레 몰락하여 세 딸의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귀족의 세 딸은 굴욕을 감수하며 아주 낮은 신분의 평민과 결혼하거나 결혼을 못하거나 하는 수밖에 업었는데 성 니콜라오스가 밤에 몰래 그 귀족의 집으로 가서 창문사이로 금화 주머니 3개를 던져주려고 했지만 창문이 굳게 잠겨있어 할 수 없이 지붕으로 올라가 굴뚝으로 금화를 떨어뜨려주었다고 한다.

뭐 덕분에 귀족 아가씨들은 신분에 맞는 남자와 결혼할 수 있었고....

이후 성니콜라오스가 죽은 뒤에도 이 곳의 신심깊은 신자들은 종종 이런 방식으로 성 니콜라오스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을 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성 니콜라오스가 '남몰래 선물을 주는 성인'이 되었고 여기에 아이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했던 성 니콜라오스는 점차 크리스마스 이브에 굴뚝으로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성인으로 변해간 것이다.

이런 내용이 북쪽 게르만족에게 전파되면서 게르만족의 선물을 나누어주던 성인 '오딘'과 결합, 오딘이 타고 다니던 발 8개 달린 말이 성니콜라오스에 결합되고, 발이 8개 달린 말은 아무래도 이교도의 냄새가 너무 나니 어느 순간 말은 순록이 끄는 썰매로 , 오딘의 수엄도 산타클로스의 수염으로, 복장도 대주교의 법복에서 오딘이 입었던 사냥복으로, 신발도 장화로 바뀌면서 산타클로스의 기본 이미지를 형성 시켰던 것.

 

그래도 가난한 이들의 성자가 절대로 뚱뚱할 수는 없다. 성니콜라오스 즉 산타클로스는 저기 저 동상처럼 야윈분이었을 것이다. 수도와 기도로 스스로 고난의 삶을 살았을 성직자가 어떻게 뚱뚱할 수 있느냐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는 왜 그렇게 뚱뚱해졌을까?

그건 바로 코카콜라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르 1930년 산타클로스 성인은 미국에도 상륙하셔서 어린이들에 꿈과 희망을 전해주셨다.

그런데 미국의 어린이들은 잠도 안자고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다가 선물을 나눠주기 위해 고생하고 다니는 산타클로스를 위해 코카콜라를 선물했다.(산타클로스를 등장시킨 코카콜라의 첫 광고 내용이다.)

가는 집마다 아이들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코카콜라를 주는 족족이 마신 산타클로스 성인은 결국 비만이 될 수 밖에 없었던것.... ㅠ.ㅠ

이제 산타클로스는 이 때부터 코카콜라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 사냥복의 색깔도 코카콜라의 상징인 빨간색으로 바꾸고, 코카콜라의 상징인 하얀 거품같은 수염을 달고 다니시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성인에 대한 모독인가?

아니면 코가콜라가 성인에 대한 모독인가? 아 헷갈린다.

 

지금 남아있는 성 니콜라오스 교회는 성 니콜라오스가 살아있던 3세기의 모습은 없고  6세기에 세워진 이후 계속 증축되어 왔으며, 기본 양식으로는 바실리카 양식이다.

바실리카란 로마시대의 공회당을 말하는데 옆면에 회랑이 있는 긴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이라고 대충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이렇게 공사중이어서 건물의 전체를 한 눈에 보기도 힘들고 심지어 정문으로가 아니라 건물 옆으로 희안하게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이 곳에 가면 유난히 러시아인들이 많은데 거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성 니콜라오스는 정말로 많은 세력의 수호성인인데 심지어 러시아 정교회의 수호성인이기까지 하다.

1034년 이슬람 세력이 이 도시를 점령하고 난 이후 교회는 점점 파손되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1863년 이 소식을 들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는 그들의 수호성인이 대주교로 봉직했던 이 교회를 사들여서 복원을 시작했다. 이후 오스만제국 내지는 터키 정부와 여러번의 알력과 대립으로 삐걱거리면서 발굴과 복원이 진행 - 중단 - 진행- 중단을 거듭해왔었고, 지금은 터키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발굴과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쨋든 이런 사정으로 러시아인들은 이 교회를 자신들의 것이라 생각하고, 터키는 터키대로 당연히 터키의 것이라 생각하고....

어쨌든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수호성인을 찾아 이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이 건물의 정면인데 원래는 이곳으로 입장해야 하는데 복원공사 덕분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곳이 되어있다.

 

 

 

입구의 바닥에는 모자이크 장식이 되어있고, 벽들과 천장에는 성인들을 그린 옛적 프레스코화가 남아있어 그 옛날 교회의 전성기의 모습을 추억하게 한다.

 

 

 

 

 

 

 

 

 

 

 

 

 

 

 

 

 

 

 

 

 

 

 

 

 

 

 

 

 

 

 

 

 

 

 

 

터키땅은 한때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땅이었기에 무수히 많은 기독교 정교회 유적들이 남아있다.

그 중에는 이렇게 세계적인 수호성인의 고향이자 중심지이기도 한 역사적 의의가 큰 교회도 있고...

하지만 한 지역 내에서 소수자의 위치란 결국은 참으로 고달프고 외롭다는 것을 이곳 역시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이슬람화가 거의 완전히 진행된 나라에서 이교도의 종교적 성지가 이정도로 남아있어 준것도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하기야 기독교인들이 다른 지역에 들어가서 파괴한 문화들에 비하면 이곳은 양반이긴 하다.

이전에 어떠했든 오늘날에 와서는 서로 다른 종교 사이의 배려와 관용을 좀 더 기대하고 싶은, 그래서 종교에 관계없이 이곳을 찾은 이들이 옛 성인의 마음을 좀 더 경건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기원한다.

세상에는 나처럼 평소에는 절에 가서 부처님한테 별 생각도 없이 절하다가 멋진 성당에 가면 심각하게 개종을 할까 고민하다가 또 이슬람 사원의 개방성과 평등성에 감탄해서 이 종교는 어떨까 하고 기념품을 사오는 그런 사람도 있다.

 

 

  <파이 이야기>에 보면 파이가 인도에 있을 때 여러 종류의 종교를 모두 섭렵하는 장면이 나는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말이다.

  나도 사실 파이랑 똑같거든.... ^^

 

 

 

 

 

 

 

 

 

 

  얘기가 살짝 옆으로 샜는데

  어쨌든 우리는 갈길을 또 가야 한다.

  다음은 리키아의 고대무덤과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이 함께 있는 유적지다.

  덥다. 정말 덥다.

  그래도 부지런히 가야지.....

  어린이의 성인 성 니콜라오스의 배웅을 받으며 다음 코스로......(이곳에는 여러 형태의 성 니콜라오스 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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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1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인물의 동상이 저렇게 여러 형태로 여러 군데에 있군요. 마지막 사진에 동상의 아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게 설마 콜라는 아니겠지요? ^^ 산타클로스가 뚱뚱한 이유 너무 재미있어요. 저도 엊그제 아이 가방에서 코카콜라 빈 캔을 발견하고 뭐라고 했더니 한정판매용 캔이라 모으려고 샀다나 어쨌다나.
더운 날씨에도 참 부지런히 다니셨어요. 성니콜라스 교회의 모자이크는 참 아름답네요. 천장의 모자이크는 어찌 제작되었을까나...
보통 관광을 하면 발과 눈과 입으로만 하기가 일쑤인데 바람돌이님은 머리로도, 손으로도 하셨네요. 열심히 조사하고 정리하고 기록하고. 대단하십니다.

바람돌이 2015-01-13 23:54   좋아요 0 | URL
뎀레라는 동네는 이곳이 이슬람 국가가 맞나 싶게 기독교의 상징들로 가득했습니다. 뭐 전부 장사와 연관된거긴 했지만요. 러시아인들을 중심으로 이 교회를 보러 관광객들이 많이 오다보니 아예 도시 전체를 성 니콜라오스로 도배를 한듯한 분위기예요.
여행을 다닐때 늘 준비를 하는데요. 저의 경우는 이건 직업병이라고 할만하네요. ㅎㅎ
준비의 효과는 어떤 경우는 기대보다 못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그 모든 준비가 다 소용없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라로 2015-01-1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느끼는 거지만 사진이 고화질이에요!!!^^ 멋지네요!! 그럼 섬에 갔다가 저길 또 가신거??? 정말 알찬 여행의 대가!!! 따님들이 팔다리가 긴 게 쭉쭉 빵빵이네요~~~근데 피부색이 차이가 나요?? 둘이 개성대로 이쁘네요~~~. 딸이 둘 이라 좋으시겠다!!!! 완전 부러움~~~~.
암튼 바람돌이님 어쩜 이리 재밌게 역사를 잘 설명해 주실까!! 제가 학창시절에 다른 건 못해도 세계사는 잘 했는데 바람돌이님 설명을 들으니 예전 제 세계사 샘이 얼마나 성의가 없었나 느껴지네요~~~ㅠㅠ 암튼 다음 코스도 따라갑니다~~~~~^^*

바람돌이 2015-01-13 23:56   좋아요 0 | URL
이번 사진은 모두 폰카입니다. 폰카 성능이 그만큼 좋아졌다는거죠. ㅎㅎ
셋째날은 투어프로그램에 참여한거였어요. 그래서 가이드 따라 졸졸졸..... 이곳이 안탈랴에서 워낙 먼곳이라 대중교통으론 하루에 도저히 소화할 수 없었거든요.
피부색요? 큰 애는 원래도 조금 하얀편인데 거기다가 햇볕에 잘 안타요. 그냥 조금 빨개졌다가 마는 정도... 둘째는 원래 저 정도 차이는 아닌데 밖에 나가서 노는 만큼 까매지는 정직한 피부를 가졌습니다. ㅎㅎ
세계사를 잘했다는 비비아님 말에 잠시 음찔합니다. 뻥치다 바로 걸리겠구나.... ㅠ.ㅠ

조선인 2015-02-0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이 같이 있는 걸 보니 예린이의 새침함은 그대로이고, 해아가 소녀가 된 거군요. 신기하네요.

바람돌이 2015-02-02 13:11   좋아요 0 | URL
해아는 외모만 그렇고 성격이나 하는짓은 뭐 여전히 천방지축입니다. 보통 성격이 그러면 머리는 짧게 자를텐데, 그건 또 죽어도 싫다네요 ^^
 

안탈랴에서의 3번째 날.

사실 이 날쯤은 하루를 온통 해변과 카페에서 뒹굴거리는데 써주는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곳은 안탈랴! 지중해 최고의 휴양지 아닌가 말이다.

유럽애들은 여기 와서 한달씩 뒹굴거리다 간다는데.....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의 극대화라는 그놈의 빌어먹을 자본주의적 사고습관에 찌들대로 찌든 나는

"또 내가 언제 여길 오겠어, 돈 들여서 이렇게 왔으니 볼 수 있는 건 최대한 봐야지" 뭐 이런 생각이 도저히 판단의 중심에서 떠나질 않는거다.

아 어쨋든 오늘은 안탈랴 근교 도시라기 보다는 시골, 미라와 케코바섬 투어이다.

현지 여행사의 주변 지역 투어로는 페르게 - 아스펜도스 지역 투어가 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지역의 유물은 모두 로마시대 유물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주구장창 로마시대 유물을 볼 예정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좀 색다른걸 보자고 선택한 것이 미라와 뎀레, 케코바섬투어이다. (여기서 미라는 지명입니다요. 이집트 미라 아닙니다. ㅎㅎ)

 

호텔 앞에서 출정준비 완료!!! 

음 해아야 가장 어린 네가 가장 크다니 기특하구나.... ㅎㅎ

하지만 역시 어린건 어쩔 수 없어, 저 터키산 나자르 본죽(=악마의 눈이라는 뜻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쳐주는 일종의 터키 부적) 쿠션을 더워 죽겠는데도 밤낮으로 끼고 살았지.

해아 네가 저거 어디다가 흘리고 다닐때마다 줍는다고 엄마가 얼마나 짜증나게 신경쓰였는줄 아니?

 

 

여행사에서 온 픽업 차량을 타고 출발. 호텔마다 들려 같이 여행갈 사람들을 싣는데 우리가 제일 먼저였다.

뭐 일행은 단촐하다.

우리 일행 6명, 이집트인 가족 4명, 터키인 20대 커플 2명, 터키인 가이드님과 운전사님 모두 14명이다.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고대 리키아왕국의 영역이다.

아 또 듣도보도못한 왕국이라니..... ㅠ.ㅠ

터키는 넓고 역사는 길고도 길구나.....

 

리키아 왕국의 땅은 높고도 험한 산맥과 가파른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험한 자연환경만큼 굳센 전사부족의 땅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외부의 침입에 대한 저항도 거세서 터키지역 전체에서 가장 늦게 로마의 영토로 편입된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민족은 어떤 문화를 발달시켰을까?

리키아 왕국에 대한 초기 기록들은 거의 신화의 영역에 속한다.

호메로스의 시를 근거로 헤르도토스는 크레타 미노스 왕의 동생이 이곳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고 하며, 트로이 전쟁 때 이들은 트로이의 편에 서서 싸웠다고도 하는데 이는 결국 신화의 이야기이고 정확하게 확인된바는 없다.

건국 이후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하다가 페르시아에 의해서 정복당한다. 하지만 이 때도 리키아 지방의 도시들은 자치권을 잃지는 않았다고 한다.

페르시아 전쟁때는 무려 50척의 배(50척이라니! 이게 사실이라면 리키아 왕국의 세력이 정말 만만찮았던 거다)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단다.

알렉산더 이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이집트의 지배를 100년정도 받았는데 이 때 리키아 지방의 그리스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이후 복잡하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국 로마에 편입되게 된다.

저 복잡한 시기동안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는데 오늘 우리가 보러 가는 것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안탈랴에서 첫번째 목적지인 케코바섬까지는 3시간이 넘는 머나먼 길이었다.

이 도로가 지중해를 끼고 달리면서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라기에 기대했지만 문제는 차를 타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모두는 끊임없는 졸음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는 거다.

잠이 안오던 초반에는 우리 앞자리에서 터키인 가이드님과 이집트 아저씨 둘이서 영어로 대화하는걸 신기해하면서 계속 들었다. 참 영어를 잘하니 저렇게 대화가 되는구나.... ㅠ.ㅠ

대충 들은걸로는 주로 이집트의 정치얘기였던 것 같은데, 결론이 우리 나라 상황과 비슷해서 웃었다.

확 끓어올랐는데 지금은 너무 잠잠해져서 이집트 민주화가 멀고도 멀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듯한데 남의 얘기가 아닌듯....

 

워낙 오래 가다보니 중간에 차량을 세워 잠시 쉬었는데 그게 휴게소 같은 곳이 아니고 그냥 길거리다.

왼편으로는 이렇게 산과 산 너머에 해변을 따라 도시가 보이고 그리고 그 너머는 바다다.

어찌 보면 제주도를 닮은 듯도 하다.

 

 

하지만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제주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가 있음에도 황량하고 메말라보이는 산과 곳곳의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를 뚫어 만들어놓은 주택들.

옛날 옛적에는 이렇게 바위를 뚫고 사람들이 살았단다.

 

왜 돌집도 아니고 나무집도 아니고 바위집이었을까?

이건 나중에 카파도키아지역까지 계속 고민을 했었다.

둘러보면 이 지역은 아름드리 나무가 자라는 지역이 아니니 나무집은 불가능하고, 저 나무들을 연료로 해서 벽돌을 굽는 것도 말도 안된다.

그런데 돌로 집을 쌓는 것도 쓸데없는게 여기 돌들을 보면 진짜 약하다.

우리 나라 화강암을 생각하면 안된다. 돌이라고 다 같은 돌이 아니라는 것.

만져보면 그냥 쓱 만지는 것만으로도 돌 표면의 부서러기들이 흘러내린다.

이런 돌을 다듬어 집을 짓느니 그냥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게 맞을 듯하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은 언제나 경이롭다.

 

 

 

여기서 수줍음많던 터키 청년이 갑자기 나무를 오르더니 꼭 강낭콩같이 생기긴 햇지만, 강낭콩과는 달리 아주 못생겨서 색깔도 이상해서 전혀 먹고싶지 않은 열매를 따줬다.

바로 이 나무....

 

 

먹어보라는데 정말 안먹고 싶었지만 성의를 봐서 안먹을수가 없고...

근데 뭐 생각보다 맛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달콤하기도 하고, 하지만 계속 먹고싶은 맛은 아니다.

이름도 어찌나 어렵던지 잊어버렸다. ㅠ.ㅠ

 

드디어 케코바섬이다.

여기서 유람선으로 갈아타니 살것같다.

 

 

이곳은 원래 육지였던 곳이나 아주 먼 옛날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가라앉았단다.

그러다보니 좀 높았던 곳은 다 가라앉지 않고 저렇게 섬처럼 떠있다.

그러니까 저 작은 섬들이 예전에는 모두 도시의 산들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케코바섬이다.

유람선은 케코바 섬에 상륙은 하지 않고 섬주위를 돌면서 지진으로 가라앉은 유적지들을 보여준다.

대부분이 로마시대의 유적이다.

지진으로 가라앉기전 이곳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설마 품페이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을까?

 

 

 

섬 주변의 해안에는 이렇게 고대도시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물속에도 도시의 흔적이....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돌담은 고대 목욕탕은 유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랜세월동안 파도에 모두 휩쓸려갔을것이고 이나마 남아있는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유적 자체가 볼만하게 남아있는 건 없었다.

다만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과 빠져들듯 아름다운 바다색깔과 무엇보다 이 더운 여름날에 걷지 않아도 된다는 혜택이 너무나도 고마운 투어다. ㅎㅎ

 

저기 눈앞에 보이는 케코바섬은 정말 예쁜 마을이다.

이 투어 역시 여행사 1일 투어가 아니라 그냥 버스타고 우리끼리 왔더라면 당연히 저 섬에 상륙해보는 건데....

아쉽다. ㅠ.ㅠ

 

 

 

여기서 가이드 아저씨와 잠시 얘기를 나눴었는데 한국에서 왔다니까 당연히 한국인들이 주제다.

한국인들이 이 투어를 생각보다 많이 오는듯한데, 가이드 아저씨가 말하길 한국 아가씨들 너무 너무 용감하다.

아가씨들 대부분이 혼자서 이 먼나라까지 여행을 온다고, 그리고는 성격도 대부분 너무 수줍음을 많이 타서 거의 이야기를 안하고 한쪽에서 조용히 여행한다고....

음.... 그중 많은 이가 수줍음이 아니라 영어울렁증이라고 짐작되었지만 그 얘기는 안했다.

되지도 않는 영어 단어와 바디랭귀지만으로 대화를 하는 우리도 있으니까.... ㅎㅎ

근데 우리나라사람들을 빼고 다른 나라 여행객들은 어쩜 그리 영어를 잘하지?????  신기할세그려....

 

여기서 잠시 1시간 정도 스페셜타임이 주어졌다.

바로 여기 바다 한가운데서 풍덩풍덩 수영타임....

사전 정보가 있어 준비는 해왔지만 정말 좁은 배에서 옷갈아입을 곳도 마땅찮은 이곳에서 수영이라니...

나와 내 친구는 그냥 포기. 왜냐! 우리는 수줍음많은 한국인이니까....

대신 남편과 아이들은 바다로 풍덩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비키니를 사라고 했건만 말 안듣더니 수영복 갈아입는데만 한참 걸렸다.

같이 배를 타고 있던 러시아 여행객들은 정말 순식간에 원피스를 벗어던지니 안에 비키니다.

그냥 바다에 풍덩풍덩 뛰어드는데, 아! 이 먼곳에 와서도 한국에서의 습성, 아무데서나 옷 못벗는, 또 자신없어 비키니도 못입는 이 쓸데없는 수줍음이라니..... ㅠ.ㅠ

 

너무 너무 신난 해아! 물이라면 어렸을때 목욕탕물부터 사족을 못쓰더니..... ㅎㅎ

니가 그렇게 파닥거리니 아무도 옆에 안가지....

 

역시 지중해의 바닷물은 엄청나게 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제 산타클로로스로 더 알려져있는 성 니콜라오스의 마을 뎀레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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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다락방 2015-01-10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째를 터키여행에서 가졌었더랬죠! 터키 여행중에 안탈야도 많이 기억에 남아요! 안탈야에서 빈둥빈둥 지내다가 케코바섬 투어일정을 신청하고 버스를 타고 바람돌이님과 똑같은 루트를 돌았어요. 저희 가이드는 여자분이셨는데 목소리가 큰데다 약간 거슬리는 목소리여서(버스타고 가는 내내 뭔가 설명을 마이크에대고 해줬음 ㅠㅠ) 심지어 같이 버스에 탄 여행객들이 짜증내며 그냥 조용히 가자고 화낼정도였어요! ㅋ 아....생각나네요 터키.멋진나라죠!

바람돌이 2015-01-10 10:46   좋아요 0 | URL
이런.. 터키 저 더넓은 땅의 기를 받고 태어난 아이라니, 음 뭔가 큰 인물이 될듯합니다. ^^
혹시 그 가이드분 우리랑 같은 보트를 탔던 여자분 아닐까하고 잠시 생각해요. 그 여자 가이드분도 목소리가 진짜 크고 버스 안에서 듣기에는 좀 부담스런 목소리던데..... ^^
저희 가이드분은 배나온 맘좋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조용조용하게 말씀하시면서도 아주 쾌활해서 좋았어요. ^^

하양물감 2015-01-10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러운 여행이어요.

바람돌이 2015-01-12 01:33   좋아요 0 | URL
지금은 제가 다른 사람들 여행가는거 보면서 부러워하고 있어요. ㅎㅎ

라로 2015-01-1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최고에요!!! 어쩜 물이 저런 색이 나오는지!! 저런 사진을 보면 지구의 미래가 아직은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알찬 여행 하셨네요!!! 멋져요!!!! 꼭 도와주세요~~~^^

바람돌이 2015-01-12 01:34   좋아요 0 | URL
지중해 물색깔이 예쁘긴 하더군요. 하지만 뭐 저정도는 제주도 가도 나오는거니까 하면서 다녔어요. ㅎㅎ
제가 고향이 섬이거든요. 그리고 부산살고요. 그니까 바다는 사실 그렇게 큰 감흥이 없달까 뭐 그래요 ㅎㅎ

라로 2015-01-13 00:49   좋아요 0 | URL
저번에도 바다에 대해서 쓰시면서 부산바다 자랑하시던 거 기억나요~~~.ㅋㅎㅎㅎ
섬소녀셨군요 바람돌이님~~~~.^^
4일째도 얼렁 올려주세요~~~~.(이젠 대놓고 막 조른다;;;;ㅋ)

BRINY 2015-01-28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긴 한데, 비키니는 커녕 원피스 수영복만 입고 바닷가에 나갈 자신도 그닥 없네요.
동남아에서도 원피스 수영복 위에 얇은 셔츠 걸치고 겨우겨우 다녔어요^^;;

바람돌이 2015-01-28 23:38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 ㅎㅎ
여기서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좀 더 뻔뻔스러워질 수 있을까요? ^^

나비 2015-03-2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이쁘네요. 저도 담달에 안탈리아 여행하려고하는데

미라, 케코바 투어 예약하려는데 어디서 예약하면되는지 알려주세용~

찾고있느데 없더라구요 ㅠㅠ

바람돌이 2015-03-23 14:16   좋아요 0 | URL
저도 온갖곳을 다 뒤졌는데 결국 못찾아서 예약한 숙소에 메일 보냈어요. 그랬더니 친절하게 알아서 예약해주고 다 해주더라구요. ^^
4월이면 그렇게 사람이 많을 때가 안되니 제 생각엔 가셔서 예약하셔도 충분할듯도 해요. 이 곳의 숙소들은 왠만한 투어업체와 다 연결되어 있는듯했고, 또 도시가 그리 크지 않다보니 다 서로 잘 아는 것 같더라구요.

날씨 좋을 때 부럽네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5-06-25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해아가 더 크군요. 다리도 길고. 제 동생이 저보다 크고 울집딸들도 동생이 더 커요. ㅎㅎ
마지막사진 파닥거리는 해아 귀여워라~
 
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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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역할을 보다 많은 대중에게로의 전시에 둘것이냐, 아니면 작품의 보존과 연구에 중점을 둘것이냐?

쉽게 답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아마도 그 의견들 대부분은 나름의 논리적, 심증적 근거를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 스스로가 대중의 입장에서 그동안의 간송미술관의 활동방법에 대해서는 불만이 좀 많았었다.

1년에 2번, 무슨 시혜처럼 베풀어지는 소장품의 공개, 거기다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좁은 미술관 공간, 그리고 사설 미술관의 재정적 한계라는건 알지만 세련되지도 못하고, 친절하지도 않은 전시방식, 즉 연도와 작품이름, 작가이름만 덜렁 적어놓은 전시방식은 뭐 전문가들만 와서 보라는거야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물론 간송미술관이 자신들의 역할을 연구와 보존에 중점을 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간송미술관의 정책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일명 DDP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간송미술관 소장품 전시회(지금 3기 전시가 진행중이다)와 이 책 <간송미술 36 : 회화>의 출간이 그것이다.

또한 인터뷰형식으로 진행된 이 책의 저자 서문에서도 대중을 향한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저자 서문에서 재밌는 말이 있어 살짝 옮겨본다. 또한 이 책을 읽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듯하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아는 것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될 수가 있어요. 게다가 자기가 알아낸 것도 아니고 남이 알려준거잖아요. 그때는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금방 쉽게 잊어버립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오래전 유홍준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한 이후로 광풍처럼 몰아친, 그래서 지금은 문화유산이나 예술작품을 보는데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도 재밌고, 실상 아는 것이 어떻게 알게된 것이냐에 대한 문제제기도 재밌다.

결국 알기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의 생각으로 미술품을 볼 수 있어야 진짜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그림의 기법과 배경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다못해 도망간 여자친구라도 떠올릴 수 있어야 실제 그림의 아름다움에 진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조선시대 대표회화들의 배경과 기법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림과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는것이 바로 이런 의도에서인듯하다.

 

책의 만듦새를 보면 제대로 된 그림책을 만들기 위한 배려가 곳곳에서 우러난다.

이런 책은 도판의 인쇄상태, 종이의 질 등이 모두 중요한데 전문가가 아니라 종이종류가 어떻고 할 수준은 전혀 안되지만 상당히 비싼 고급지임은 확실해보인다.

또한 도판의 인쇄상태 역시 이전 내가 실제로 봤던 그림들을 떠올려봐도 이정도면 아주 훌륭하다.

놓치기 쉬운 배려도 눈에 띄는데 그림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림이 있는 면은 아주 연한 노랑으로 바탕면을 다시 깔아준 것이 그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글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편집을 시원하게 했고 그림의 제목과 그림을 나란히 배치하기 위해 앞의 글이 짝수 페이지에서 끝날 경우 다음 한페이지를 아예 공백으로 두는 것도 책의 단가보다는 가독성을 우위에 둔 배려로 돋보였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때 페이지에 비해서 책값이 너무 비싼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책을 다 보고 난 지금 그 책값이 결코 비싸지 않음을 알겠다.

이런 책은 싸게 만드는게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할때 그 기본에 가장 충실한 편집을 보여준 출판사에 대한 신뢰도가 살짝 올라간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행복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과연 명품들의 향연이라 할만하다.

처음 리뷰를 쓰고자 할때는 포토리뷰를 생각했으나 되지도 않는 사진실력으로 어정쩡하게 그림을 올리는건 작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은 실제로 보는 것이 최고고, 다음은 되도록이면 좋은 도판으로 보아야 한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회화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성있고 지명도가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는 그림도 많고 대부분의 작가가 어디선가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명품이되 부담스럽지 않게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의 의미가 뭐일까를 계속 생각했었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시대를 본다는 것이고, 동시에 미적 감성의 공유를 통해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같다.

그러므로 옛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는 필요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여기에 얽매이지 않는 나의 마음으로 그림을 보는 연습 이 양자가 함께 어울릴때 그림이 좀 더 깊이 보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는 상당히 좋은 안내자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적인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그림이야기로 인상깊었던 것들을 짚어보자.

첫 번째 그림으로 신사임당의 포도그림이 나온다.

음... 신사임당 하면 대표작이 초충도 아닌가? 그런데 대표작이 포도그림??

이런 의문이 드는데 실제로 사임당 당대의 평가를 보면 신사임당은 산수화와 포도 그림에 대한 평가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후대에 우암 송시열의 글을 결정적 계기로 하여  화가로서의 사임당보다는 율곡의 어머니로서의 사임당에게 어울리는 그림을 더 평가하게 되는 웃지못할 이데올로기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우암 송시열답다고나 할까?

 

이정의 작품 <풍죽>을 보면 바람앞에 흔들리면서도 꼿꼿함을 잃지 않는 대나무의 기개가 선비의 기개처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안타까움도 같이 느껴진다. 이는 이정이라는 화가의 개인사-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칼을 맞아 팔이 잘려나갈 뻔한-를 알고 보면 더 마음으로 와닿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이정의 말년의 그림 <문월도 -달에게 묻다>를 보면 이 위대한 대가가 개인적인 고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도달한 경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단 2개의 그림으로 이정이라는 대화가의 삶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착시를 경험하다니 이는 뛰어난 안내자의 힘인듯도 하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들은 워낙에 알려진 그림들이지만 그럼에도 <단발령 망금강>을 저자의 설명과 함께 다시 보는 것은 새롭다. 동시에 이 대가가 그린 또다른 분위기의 <서과투서 - 수박 훔치는 쥐>의 그림은 같은 화가가 그린 그림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정겹고도 유머감각이 넘쳐난다.

 

조선후기 조선남종화를 탄생시킨 심사정의 그림은 사실 평소에는 그리 감흥이 없던 그림인데 이 책에 소개된 <삼일포>는 새롭게 알게된 저자의 불우하고도 불우했던 일생과 같이 보다보면 그 쓸쓸함이 배가되어 애잔한 마음이 든다. 더불어 눈내리는 삼일포를 그린것으로 알던 것이 실제로는 눈이 아니라 보관의 잘못으로 좀이 쓸어 구멍이 뚫린 것이라는 설명을 듣다보면 오히려 그림의 애잔함이 더해지는 기가막힌 우연을 만나게도 된다.

 

추사 김정희의 그림을 통해 쓰러져가는 조선의 마지막을 선비의 학문과 기개로 헤쳐나가고자 했던 그 마음이 그림을 통해 읽혀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마지막의 몸부림이 지나친 경직화로 이어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모든 그림이 이러한 시대적, 개인적 사회사를 통해서만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림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보는 순간 무한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강세황의 <향원익청-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속의 연꽃의 아름다움은 그 향기가 책을 뚫고 배여나오는 듯하고,

김홍도의 <마상청앵 -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을 보면 인생의 후반기에 선 노대가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하다.

또한 역시 김홍도의 <황묘농접 - 노란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속의 어린 고양이는 당장이라도 포근히 안아주고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모두 느낀 듯하기가 쉽지 않은데,

역시 뛰어난 예술은 하나 하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임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책장 속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펴가면서 보고 또 보고싶은 책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지만, 그 아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 또한 예술을 보는 제대로 된 힘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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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08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정말 읽어보고싶게 만드는 글을 쓰셨어요. ^^
간송미술관 딱 한번 가봤는데, 그 기억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네요

바람돌이 2015-01-09 16:37   좋아요 1 | URL
두 번 가기 힘든곳이 간송미술관이잖아요. ^^
이 책 보고는 다른 소장품들에게 대해서도 이런 책을 좀 더 내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자신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간송미술관 팀이 지나치게 폐쇄적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었거든요.

라로 2015-01-0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형필의 책을 읽었지만 간송미술관에는 가보지 못하고 미국에 와버려서 늘 안타까워요. 이 글을 읽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꼭 가보고 싶네요~~~.

바람돌이 2015-01-09 16:39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데 그곳에서 간송미술관을 가보려면 정말 신의 도움이 있어야 할 듯하군요. 일년에 2번(일주일씩인가?)밖에 안 열어요. ㅠ.ㅠ
부디 비비아님에게 그런 축복같은 행운이 가기를..... ^^

라로 2015-01-10 00:52   좋아요 0 | URL
일년에 두 번 일주일!! 그래서 제가 결국은 못 보고 온 거에요,,,ㅠㅠ 근데 정말 행운이 따라줬으면 좋겠어요~~~.엉엉

바람돌이 2015-01-10 01:41   좋아요 0 | URL
요즘 간송미술관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3번째 전시회인데 5월까지 한다죠. ^^ 혹시 그전에 한국으로 출장이....

돌궐 2015-01-0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소개 잘봤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만들어진 명작`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평가들과 별개로 또 초충도 자세히 보면 정말 동물이나 곤충들 잘 그린 거 같아요.
아는 게 보는 걸 가릴 때도 있다고 하잖아요. - 명법스님 책에 나온 말이에요.^^

바람돌이 2015-01-09 16:41   좋아요 0 | URL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유명세를 띄면서 모작이 정말 많이 만들어졌다더군요.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그림들의 진위여부가 사실 의심스럼다는 말도 이 책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식으로 생각하면 진위여부야 미술사가들에게 중요한거고, 그걸 실제로 신사임당의 그림이라고 믿을만큼 멋지다는거잖아요. 미술의 즐기는 입장이 저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멋진 그림을 볼 수 있으니 베낀것도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댄스는 맨홀 2015-01-0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ㅎㅎ

바람돌이 2015-01-09 22:17   좋아요 0 | URL
저는 좋았습니다. 책의 만듦새도 내용도요. ^^

달걀부인 2015-01-2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읽었습니다. 전 간송미술관빠예요. 일년에 두번밖에 열지않지만..가끔 거기 정원가서 놀다와도.. 친절하지도 않지만...거긴 식민지시대부터 우리것을 지키고자한 어떤 무시무시한...정신이 서려있는듯 하거든요.사색하기에 좋은 장소. 아. 바로 그옆에 섭지코지도 맛있어서..밥도 먹고요.. 이러나저러나 이 책이 얼마인지 궁금하네요.

바람돌이 2015-01-28 23:37   좋아요 0 | URL
서울에 산다면 일년에 2번이라도 가는게 아주 어려운건 아닐 수 있지만 지방사는 저는 정말 저 날짜에 맞춰서 보러가는건 정말 쉽지 않아요. 간송이 지키고자 한 정신은 기리고 감사히 여겨야 할 게 분명 맞지만 시대가 바꾸면 그 정신은 다른 방법으로의 표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책값은 책소개 보시면 뭐.... 2만원이네요. ^^
 

 

 

 

 

 

 

 

 

 

 

 

 

 

 

 

 

몇 년전에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간적이 있었다.

방학때도 아니고 정말 이 전시 하나 보러 토요일 서울까지의 나들이는 큰 맘을 먹고였는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제대로 된 관람은 정말 꿈도 못꿀 일이었다.

 

그래도 그 유명한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내 마음을 유난히 앗아간 그림 하나가 있었다.

처음 보는 그림이었는데 이날 하루가 어찌나 버라이어티 했었는지(예전에 페이퍼로 썼던듯.....) 그림은 기억이 나는데 작가의 이름도 제목도 기억이 안나는거다.

결국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그림이려나 햇는데, <간송미술 36 회화> 이 책에 떡 하니 실려있다.

 

狹籠採春(협롱채춘) - 나물 바구니를 끼고 봄을 캐다

 

 

 

 

 

 

많은 예술작품들이 그렇지만 특히 그림은 실제로 봤을 때와 화집으로 봤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 때 간송미술관에서 이 그림은 처음 보는 거였는데 크지도 않은 이 그림 앞에 선 순간 왜 그리도 마음이 먹먹해졌는지....

넓디 넓은 여백은 봄 아지랑이로 가득찬듯 보였고, 저 아낙의 뒷모습에선 삶의 신산함이 느껴졌고, 그래도 봄과 함께 피어오르는 애틋함까지도 함께 마음에 들어왔었다.

저 여인이 문득 돌아서서 맑고 고운 웃음한자락 남겨주는 것이 어찌나 보고프던지.....

 

이번에 이 책에서 이 작품의 저자를 알았다.

윤용 - 공재 윤두서의 손자란다. 이 그림만으로는 할아버지를 능가하는 대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자기 세계를 가꾸어가던 뛰어난 화가였다는건 알겠다.

다만 아쉬운건 33세에 요절함으로써 일가를 이루기에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음이다.

 

그림의 시제는 신위라는 사람이 쓴 글인데

 

비 젖은 싹 바람 맞은 잎 초록이 무성한데, 고운 손 검푸른 머리 한궁에서 나온다. 눈앞 가득 만물이 모두 이럴진대, 차마 그림속에서 칠하고 바른 것으로만 보겠는가.

 

원나라 문인 소관이 지은 <묵채>를 신위가 인용한 것인데, 봄에 묵채(한련초)가 움트는 것을 보고 왕소군이 궁에서 나오는 것을 연상하여 지은 시라고 한다.

좀 뜬금없다.

저 아낙을 왕소군에 비유했을리는 없고, 저 아낙이 기다리는 봄을 왕소군에 비유한 것이려니 싶지만 그래도 좋은 그림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시제의 선택이다

 

이 책의 저자도 같은 생각이어서 정지용의 향수를 골라놨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리야 

 

훨씬 낫구나

한글로 저곳에 이 대목을 정갈하게 써넣으면 훨씬 아름다운 그림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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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1-0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정말 좋은 걸요!!! 제 남편도 화가인데(음~~~ 그림 그릴 시간이 전혀 없는;;;;) 이 사람이 동양화를 전혀 배우지 않았는데 유화로 그린 그림들이 다 수묵화를 연상시켜요~~~. 이 그림 좀 보여줘야 겠어요. ^^;;;

바람돌이 2015-01-09 16:44   좋아요 0 | URL
앗 제가 존경하는 화가라니.... 전 손으로 하는건 뭐든지 다 못해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정말 항상 동경과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답니다. 비비아님 옆지기님은 외모도 훈훈하시던데 화가이시기도 하다니... 더더욱 저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합니다. ^^;;

라로 2015-01-10 00:54   좋아요 0 | URL
제가 남편 사진을 올린 적이 없는 데요?? 올렸나요???ㅎㅎㅎㅎㅎㅎㅎ이 기억력;;;;ㅠㅠ
화가,,,,랑 왜 결혼을 했는지 이럽니다 전,,ㅠㅠ 현실은 달라요~~.^^;;;;

바람돌이 2015-01-10 01:40   좋아요 0 | URL
어 전에 예스24달력 모델돠어주신분이 남편님 아니었나요?? 제가 잘못알았나요..ㅠㅠ

바람돌이 2015-01-10 10:46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까 그분이 사장님같기도하고 음..... ^^;;

라로 2015-01-13 00:52   좋아요 0 | URL
ㅋㅎㅎㅎㅎㅎㅎㅎ 그 사람 데이빗이에요~~~.ㅎㅎㅎ 바람돌이님이 데이빗보고 그래 24에 모델료 요청하라고 하셨잖아요~~~~ㅋ 사장님은 중국인이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동의 안 하지만 제 눈엔 장국영 닮은 우리 사장님~~~.ㅋㅋㅋ 제가 넘 귀여워 하고 있어요,,,폼 잴때는 기죽은 척 해주고요,,,ㅋ

바람돌이 2015-01-13 01:58   좋아요 0 | URL
음 회사가 정말 다국적이군요. ㅎㅎ 제가 헷갈렸어요. ^^
데이빗씨 정말 멋지던데 비비아님 남편분도 지난 번 페이퍼 보니까 정말 멋질듯해요.
배려의 아이콘이랄까? 한국남자들 그런 배려는 잘 없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