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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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같은 시간에 오두막을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여우다.

그런 여우에게 그녀는 『어린 왕자』를 읽어주기 시작했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그녀를 자연은 힘껏 안아주었다.


저자가 레인저로 일하며 야생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 그녀에겐 후진도 안 되는 낡은 자동차 한 대, 그리고 기본적인 캠핑 장비가 전부였다.

책은 로키 산맥 자락의 인적 없는 땅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던 그녀가 야생 여우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으며 시작된다. 오두막 근처 여우 계곡에 가면 그녀가 진창에서 회전초를 뽑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저자, 캐서린 레이븐은 1959년생으로 미국의 몬태나 대학교에서 동물학 및 식물학을 공부했고, 몬태나 주립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글레이셔, 레이니어산, 노스캐스케이즈, 보이어저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레인저로 활동했으며 〈아메리칸사이언티스트〉, 〈저널오브아메리칸멘사〉, 〈몬태나매거진〉에 자연사 에세이를 기고했다.




Ⅰ 만남


3년 전, 땅 하나를 사들인 '나'는 토지를 조성하고 오두막을 건축하게 된다.

경치를 망가뜨리는 건축물이 거의 없어 꼭 엘프가 나올 것만 같은 온전한 무지개를 볼 수 있어 그 자리에서 항상 기다린다.

'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여우다.

언덕을 정탐하다 어느샌가 거리가 좁혀지더니, 여우는 이내 좋아하는 바위의 그늘에서 쿨쿨 자고선 오후 햇볕이 쨍쨍할 때쯤 그 열기에 눈을 뜬다.


생선 뼈처럼 길고 가는 풀씨가 털에 달라붙고 가죽을 파고들었다. 그는 작은 장미 덤불 앞에 멈춰 가시에 대고 몸을 빗질하듯 비볐다. …… 선인장, 채찍 같은 바람, 생선 뼈 씨앗은 최적의 여건은 아니었다. 알팔파밭의 여우들은 푸른 들판에서 입을 벌리고 선잠이 든 채 길 잃은 생쥐가 낮고 부드러운 풀밭을 무심코 가로지르며 날 잡아드슈 하길 기다릴 것이다. 그런 게 최적의 여건이었다. 멍청한 생쥐가 우글거리는 사냥터를 장악하는 것이 유일한 인생 목표인 여우에게는 그럴 만도 했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나와 여우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Ⅱ 어린왕자


일정한 간격을 두고선 앉은 나와 여우.

나는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앙투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란다."


여러 달 동안 여우와 마주하며 편안한 단계에 이른 나와 여우.

오랫동안 물음표와도 같았던 나의 삶,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 먹고나니 문득 여우가 생각났다.

어린왕자를 읽어줄 때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나는 여우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을 건낸 후 15초간 한참을 쳐다보는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쳐다보는 그 타이밍이 여유가 말할 차례라는 것을 의미했다.


상자에 갇혀있지 않은 여우와 한참 책을 읽다 제나에게 연락이 왔다.

야생동물 수업의 내용을 알려달라는 전화였다.

1년에 10주정도 취업자로 만들어주는 수업이었다.

이번에는 32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50km나 떨어져 있어 승낙할 경우 여우와는 떨어져야 한다.

여우와 또다른 규칙이 있었으니, 바로 함께하는 시간의 끝은 언제나 그가 정하는 것이었다.

그가 먼저 돌아서는 것이 바로 시간의 끝이었다.

이튿날, 여느때처럼 여우를 기다렸다.

열닷새 내리 함께 책 읽는 기념비적인 순간이기에 기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축하한담?

어떻게 축하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나는 여우를 떠나보내기로 마음먹게 된다.

우연을 인연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읍내로 내려가 장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었다.

공원 관리소에서 함께 일했던 과학자 빌이 역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때 내가 말을 꺼낸다.

여우가 어쩌면, 자신을 찾아오는 지도 모르겠다고.

"당신이 인격화를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라는 말과 함께 윙크로 답한 빌에게 괜스레 굴욕감만 느끼고선 나는 체육관을 나오게 된다.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우연을 인연으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사회가 인간과 야생(즉, 상자에 갇히지 않은)동물 사이에 깊은 협곡을 파두었음을 간파하는 데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감히 협곡을 뛰어넘으려 들 만큼 무모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그 협곡은 너무 넓고 깊어 보인다. '왕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크리스토퍼 로빈 스타일의 반바지와 보비 삭스 차림으로 대학 강의실에 나타나는 정도는 되어야 인격화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 곰돌이 푸만 당신과 놀아줄 테니까.


그 후,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여우와의 관계를 비밀로 부칠 수는 없다고.

또한 여우와의 관계를 해명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도.




미국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 순록을 기르는 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거의 방목해서 키우다시피 하다 보니 눈밭을 뛰는 순록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에이트 빌로우가 절로 연상될 정도였으니, 그 모든 장면이 어린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교감… 감정을 교류한다.

외할머니 집에 있는 멍멍이들은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볼 수밖에 없었고, 집에서는 애완동물도 키우지 않았으니 동물과의 교감이 어떤 느낌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던 내게 기회가 다가온다.

미국에서 두어 달 정도 머물 때 함께했던 고양이, 그 후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일 년 정도 우리 집에 매일매일 출석체크했던 길고양이들 덕분에 동물과의 교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미국이었다.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 미드를 보고 있으니 고양이가 쭐래쭐래 다가와 침대 위로 폴짝 뛰어 오르더니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겠는가.

눈을 맞추고 웃어주니 슬금슬금 내 품으로 다가와 등과 엉덩이를 내 가슴쪽에, 머리를 내 턱쪽에 붙이고선 가만히 쳐다보는 그 순간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에 잊을 수가 없다.

두둥실 구름 위에 안착해 레몬 하나를 베어 문 느낌이랄까.

벅참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사실 이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당시 쓴 일기에도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고 썼을 정도였으니깐.)

누구에게나 곁을 내주지도 않을 뿐더러 낯선 사람이 집으로 오면 일단 숨어서 절대 안 나오는데, 내 옆에 찰싹 붙어있는 고양이를 보더니 고모는 말하셨다.

"오래 머물다 갈 사람을 느끼나보다."

지난 주, 샵에 다녀왔을 때도 샵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교감'을 나누었었다.

애완동물이지만 내가 주인이 아닌데도 충분히 교감을 느끼게 해준 동물들에게 신기하면서도 참 고맙다.

저자는 아마 그 시간이 더 벅차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무려 야생동물이라니! 야생 여우라니!


지금은 인간이 야생 동물들의 영역에 발을 들인 곳이 많아 서식지가 부족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식지가 부족해지니 야생 동물 개체수 또한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멸종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다.

분명 동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공생해야 하는 관계이다.

이렇게 해석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여우에게 어린왕자를 읽어줄 때 규칙을 세워놓고선 이를 지켰었다.

결국 넓게 바라본다면 우리 또한 정해진 규칙에 있어서 꼭 약속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히려 저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었던 야생이었다.


어린 수사슴과 어른 암사슴은 무리로부터 적잖이 떨어져 있다.

그가 나를 쳐다보며 너무 꾸물거리자 암사슴이 안절부절 못한다. 그녀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개울을 건너는 무리에 합류하려고 떠난다. 그는 5미터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따금 암사슴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180도 돌려 작은 잿빛 수사슴을 돌아본다. 그는 아직도 풀을 먹지 못했지만, 통통하고 다부진 몸을 보니 나의 근심은 가라앉는다. 어디서든 먹이를 찾아낼 것이다. 지금은, 내가 유리 덧문 뒤에 서 있는 동안 그가 바라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뿐이다. 내가 얼굴 앞에서 오른손을 흔들어 나도 그를 보고 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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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검사들 - 수사도 구속도 기소도 제멋대로인 검찰의 실체를 추적하다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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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수사도 구속도 기소도 제멋대로인 검찰의 실체를 추적하다!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가 있으니, 바로 최정규 변호사다.

그가 바로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유령 대리 수술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로,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흑역사를 되짚고 나아가 ‘진짜 검찰 개혁’이 무엇인지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저자, 최정규는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믿음 아래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이다.

공익 법무관,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로 일하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법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에 국민을 대표해 나쁜 법과 불량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4년 신안군 염전에서 100여 명의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행해졌던 노예 사건을 긴 싸움 끝에 승소로 이끌었지만, 평소에는 판례상 패소할 것이 뻔한 사건에 맞서는 게 일상이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틀에 박힌 판례를 거부한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국경 없는 마을’ 안산 원곡동에 2012년 원곡법률사무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이주민, 장애인, 국가 폭력 피해자, 공익제보자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공익을 위해 변호사로서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Ⅰ 검찰, 그들은 누구인가


"검찰은 법과 상식에 맞게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된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장관 후보 지명 이후 검찰 개혁 과제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선 답한 말이다.


검찰과 경찰의 차이를 대부분 다 알고있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마주한 검사들의 모습에 간혹 혼동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검사는 피의자를 법원에 기소하는 일을 담당한다.

당연히 총기를 소지하지도 않고 경찰과 함께 현장에서 뛰는 일도 없다.

검찰제도의 시작은 '인권보호'에 있다.

과거, 집행관 역할을 맡았던 원님은 잡혀 온 자가 자백할 때까지 그 어떤 고문도 서슴치 않았으며 이 과정에서 반인권적인 행태를 자행하였었다.

이 때를 규문주의 시대라고 하는데, 유럽에서는 중세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까지 이 제도가 유지되었었다.

그러다 르네상스 시절 유럽에서 인권 문제가 대두되면서 규문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소추기관과 재판기관을 권력과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검찰제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검찰제도의 핵심은 첫째는 시민들의 인권보호, 둘째는 정치 권력으로부터 분리다. 이 두 핵심을 가장 잘 담은 표현은 "공익의 대표자"다.

즉, 공익의 대표자로서 검찰은 사법부에 버금가는 독립성을 부여받고 있다.


어느 날,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사망을 하게 된다.

헌법 제12조 제2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는데, 당시 검사와 수사관들이 물고문을 자행했고 이 과정에서 피의자가 사망했던 것이었다.

독재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무려 2002년에 일어났던 일이다.

2002년 서울지검 고문치사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하며, 특히 검사가 범인 잡는 일에만 몰두하여 인권보호를 소홀히 했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물론 범인을 놓쳐서도 안 되고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라면 동정도 가지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9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고문을 견디지 못해 허위자백한 피해자들은 생각보다 꽤 많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배움이 없다는 이유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검찰이 탄생했으며, 범인을 잡아들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며 검찰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검찰은 그 마음을 잃어버렸다. 아니, 변질되었다.

공익 대표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검찰제도!

대한민국에서는 그 시작이 매우 비정상적이었다.

1895년 재판소구성법에서 검찰제도가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식민 통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장 없이 검찰에 독자적인 강제 수사권을 부여하였고 검찰은 일본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되어 시민들의 인권을 탄압하였다.

'급속한 처분을 요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때'라는 조건이 달렸지만, 사실상 허락없이 마음대로 집으로 들어가 강제적으로 증거 수집을 할 수 있었고 의심되는 사람을 붙잡아 최장 20일 동안 죄를 추궁할 수도 있었다.

"법이라는 외피를 두르기는 하였으나 그 자체 폭압적 깡패집단에 다르지 않았다."

그랬다. 검찰은 허울일뿐, 하나의 깡패집단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1949년 12월 20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제정과 동시에 시행된 검찰청법은 검사의 직무를 설명하며 그제야 '공익의 대표자'라는 칭호를 붙이게 된다,




Ⅱ 최고 수사기관 검찰의 문턱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3년간 법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대체복무하게 된 저자는 2년 차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민원 전담관실에서 공익 법무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고소장 접수를 받고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가지고 형사고소장을 써오는 분들을 바로 옆에 위치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출장소에 연계하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어두컴컴한 지하 단칸방에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15년이 지난 현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민원실은 아직도 지하 1층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검찰청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국민중심 검찰, 신뢰받는 검찰, 공정한 검찰"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국민중심 검찰'이라는 문구를 보며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시민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민원실을 햇볕도 들지 않는 지하실에 처박아 두었으면서 무슨 국민중심 검찰인가? 국민중심 검찰이라면 검사장실과 차장검사실이 위치한, 이른바 로열층인 13층을 시민들에게 내어줄 수는 없단 말인가?"

거창한 제도 변화가 아닌, 직접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시민들을 위한 검찰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이런 구호를 내민다.

"검찰 개혁은 민원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WWE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이 문구가 나온다.

[PLEASE DO NOT TRY THIS AT HOME]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혹여나 출연자들이 위험한 행동을 할 때, [함부로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문구가 화면에 나오기도 한다.

출연자들에게는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지만 시청자의 경우는 예방책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알려지게 되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란, 2018년 1월 2일 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재고하기 위해 검찰 스스로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다.

학식과 지혜를 겸비한 시민들이 개입하여 결정을 내리며 표면적으로 권고 효력만 있으나 검찰이 대부분 받아들일 만큼 실효성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 또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하게 된다.

그렇게 첫 번째로 요청하게 된 사건이 이른바 사찰 노예 사건이다.

서울 노원구의 한 사찰에서 주지스님이 지적장애인을 32년 동안 폭행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던 사건으로 경, 검은 물론 노동청까지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12건의 폭행만 약식기소되어 벌금 500만 원으로 끝나게 된다.

이후 시민단체에 의해 확인되어 주지스님을 다시 수사해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을 제출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32년 동안 13시간의 노동력 착취는 물론 폭행과 폭언을 당하며 살아왔는데 절에서 이루어지는 협동 관행인 '울력'이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20년 1월 29일, 경찰은 명의 도용한 사실만 추가로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으로 가해자를 검찰에 송치하게 된다.

하지만 담당 검사는 시민단체 및 피해자에게 단 한 차례의 연락도 하지 않았고 결국 5개월의 기다림에 지친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2020년 7월 1일 검찰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시민들의 개입을 요청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사실 신청서를 제출해도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 검언유착 사건 등은 5일, 9일 만에 진행되었지만 이 사건만큼은 진행조차 되지도 않았다.

결국 보도가 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검찰은 피해자를 다시 불러 조사를 하며 수사를 서두르게 된다.

2020년 8월 중순, 종이 한 장이 든 검찰청 봉투가 하나 사무실로 날아온다.

이름도, 낙인도 없이 듣도 보도 못한 형사5부장이 보낸 공문서 같지도 않은 문서 한 장이었다.


검사는 사건의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이니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상식과 공정을 저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눈에 보일 정도니깐.

간혹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 검찰 입장에서 난감할 때면 공소장과 송치 의견서가 모두 그들의 소유물인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수사 기록의 소유권은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일까?

검찰? 아니다. 바로 국민에게 있다.

즉,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으로 수사를 한 검찰은 국민에게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

꽁꽁 숨기는 관행을 내려놓고 적극적인 수사 기록을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하며, 이러한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종결된 수사 기록은 즉시 검찰청이 국가기록원 등 제3의 국가기관에 이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Ⅲ ‘밥맛없는 검사들’과 검찰의 흑역사


제 식구 감싸주는 것은 검찰의 관행인 것일까?

검사님들을 위한 99만 원짜리 불기소 세트가 인터넷을 한 번 달군 적이 있었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검사들과 술을 마셨었는데 3명 가운데 검사 A씨만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적이 있었다.

덧붙여 검사 A씨에게 술접대한 김 전 회장, 술자리를 주선한 검찰 출신 변호사 B씨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이 술자리가 있기 전인 지난해 7월에도 김 전 회장은 A씨를 포함한 검사 세명과 변호사 B씨 총 네명에게 536만원 상당의 접대를 했었는데 검찰은 검사 세명 가운데 A씨만 100만원을 초과한 술·향응 접대를 받았다고 결론 내리게 된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1인당 접대 금액이 1회 100만원 이상인 경우에는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검찰은 검사 두명이 그날 술자리에서 밤 11시 이전에 귀가해 밴드·유흥접객원 추가비 55만원의 접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던 것이다.

검찰의 계산법에 따라 검사 2명은 각각 96만2000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것으로 됐고 처벌 금액 기준인 100만원을 넘지 않아 기소를 면하게 된다.

이 때 나온 풍자가 바로 검사님들을 위한 99만 원짜리 불기소 세트이다.

그렇다면 수사 결과에 따라 공직자가 부적절한 술접대를 받더라도 100만원 미만으로 미리 결제하면 죄가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 참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2020년 10월, 부산지방검찰청이 강제추행 혐의로 체포된 부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지난 5월, 부산의 한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피해 여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등 부적절한 접촉을 하며 이후 여성의 뒤를 700미터가량 뒤따라간 혐의였다.

경찰은 강제추행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검찰로 사건을 보냈지만 검찰은 피해자를 추행할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리게 된다.

예컨대 부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라는 직함이 없는 일반 남성이었다면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사실상 제 식구 감싸기 한 셈이었다.

처벌을 피했지만 체면을 손상했다는 이유로 감봉 6개월 처분을 받긴 했지만 2021년 7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부장 검사로 부임하게 된다.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검찰은 이미 불이익이란 불이익은 다 받았다며 비판을 일축했다.


검찰의 잣대는 그때그때 다르다.

뉴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감자 5알로 지명수배를 당한 한 80대 노인의 이야기를.

5900원 족발세트 먹은 편의점 알바생이 무죄를 받자 검찰이 항소한 이야기를.

800원 횡령한 버스기사에게는 해임이 정당하다고 했고 85만원 접대받은 검사에게 면직은 매우 가혹하다고 말한 게, 바로 검찰이다.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인지 그들에게 묻고싶고, 매우 궁금하다.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사법부에 관한 신뢰는 이미 바닥을 친 지 오래되었다.

BBK 주가 조작 사건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최근 박수홍 친형의 116억 횡령 사건을 지켜보면서 특히나 많은 것을 느꼈다.

박수홍님이 친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던 그날, 지인의 글에 따르면 진행되는 2년 반 동안 검사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정기 인사 과정에서 교체된다고는 하나,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계속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사건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더 많은 사건들을 보며 분명히 느낀 것은, 검찰의 잣대는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분명 검찰 내에서도 법과 정의 실현을 위해 힘쓴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일 뿐, 모두가 썩어보이는 것은 기분 탓인 것일까?

앞날을 알 수 없기에, 언젠가 법이 필요한 날이 분명 생길 것이다.

하지만 검찰 밥상에서 우리네 사건들은 뒤편으로 밀려난다.

역시나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것은 인맥인건가라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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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스마트폰 사진 한 장 - 감성쟁이으니의 사진 여행
조정은 지음 / 성안당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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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출사하는 게 아니면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추억을 남기곤 한다.

아이폰이 출시되고 나서 대부분 아이폰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를 '카메라'로 꼽을 정도였으니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이렇다보니 셀카는 물론 풍경까지 스마트폰을 통해 남기게 되는데, 간혹 SNS에 올라오는 핫플레이스 포토존은 똑같은 구도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처럼 같은 장소라도 남들과는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노하우를 한껏 담은 책이 바로 『나를 위한 스마트폰 사진 한 장』이다.




Ⅰ 스마트폰 촬영을 위한 기본기 다지기


카메라 메뉴를 잘 알고 활용하면 급한 상황에서도 안정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카메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스마트폰 카메라 조작법은 구성만 다를 뿐 사용 방식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대상이 스마트폰이라 해도 구도를 잘 잡을 수 있게끔 기본기가 세세하게 분석되어 있어 읽는 내내 놀라웠다.

DSLR과 스마트폰의 이미지 센서에 대한 차이를 비교분석한 것부터 셔터속도, 화이트밸런스 등 촬영을 하기에 앞서 스마트폰 세팅법까지, 사진과 함께 첨부되어 있어 누구나 따라하기 쉽다.

인물사진의 경우, 수평 혹은 수직 구도로 잡았을 경우 어떻게 촬영을 해야 하는지도 나와있어 사진에 대해 제대로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덧붙여, 스마트폰 사진 보관 팁까지 수록되어 있어 활용하기에 좋다.




Ⅱ 구도를 배우며 촬영하기


사진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하였다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물 사진 구도에 맞춰 실전 촬영을 해봐야 한다.

먼저, 스마트폰 사진은 구도를 우선순위에 두고 촬영해야 한다.

이때 알아야 할 것이 삼분할, 황금분할, 삼각형, 사선, 점, 선, 면 등이다.

안정적인 삼분할부터 구도 잡기 유용한 선, 공간을 활용한 면까지!

저자가 직접 여행다니며 찍었던 구도들이 사진과 함께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Ⅲ인싸가 되는 사진 속의 그곳


여행 가서 한 장 제대로 남겨오는 것이야말로 모두의 바람이다.

대부분 여행을 가서 우연히 발견한 아름다운 장소를 단순히 눈으로만 담진 않는다.

아름다운 장소에서 사진을 담는 것도 여행의 이유가 아니겠는가.

좋은 사진에는 아름다운 장소와 배경이 늘 함께 한다.

그래서 이 책을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책에는 43가지의 아름다운 곳이 소개되어 있는데, QR코드까지 첨부되어 있어 네이버지도로 바로 확인해볼 수 있다.




눈에 담기만 아까워 항상 꺼내게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으로 찰칵찰칵 찍어내 훗날 시간이 지나도 사진을 보며 그때를 상기하곤 한다.

이렇다보니 필름카메라는 물론 인스탁스, 캐논 Mark 2까지 가지고 있는데, 평상시에는 들고 다니기에 짐일 수밖에 없으니 제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간직하고 싶은 것은 다 사진으로 남기는지라 외장하드가 2개나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사진으로 많이 남기는 편이다. 아마 7-80%가 스마트폰으로 남겼던 사진일 것이다.

찍다 보면 늘 수밖에 없다고 하던데, 예전에 찍은 사진들보면 참 어리숙하게 찍은 것들이 꽤 많다.

대학생이 되고서부턴 조금이라도 잘 찍고 싶어 사진과 관련된 책을 처음 봤었는데, 지금까지도 종종 보곤 한다.


지금까지 이런 사진책은 없었다.

이것은 책인가! 엽서북인가!

그만큼 예쁘고 아름다운 곳들이 한가득 모여 있어 사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들뜰 수가 없었다.

사진과 관련된 책을 꽤 읽어봤지만,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샘솟고 책 속 사진들이 그저 황홀하다는 표현이 절로 나올 정도였던 책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책을 덮는 순간,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으니깐.

"여행 가고 싶다!"

장담컨대, 책을 통해 이해하고 익힌 뒤 사진을 찍고 나면 분명 그것은 '인생 사진'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우니,

최근에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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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0-20 2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호테우 해변에 못 보던 게 생겼네요
전에는 낡은 배 한 척이 있었는데요.
사진 멋집니다^^

하나의책장 2022-12-16 20:11   좋아요 1 | URL
오오, 정말요? 제가 2019년에 가보고 올해 가봤는데 크게 달라진 건 없더라고요^^
처음에 공항에 들어섰을 때는,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 다 골프채 하나씩 수하물로 부치더라고요!
다들 제주도로 골프치러 가서 그런지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사람에 부대낀다는 느낌은 크게 못 받았었어요.
곧 마스크 해제되면 이전처럼 여행지들도 더 북적여지겠죠?

바람돌이 2022-10-20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래 사진을 보니 이 책을 왠지 봐야 할듯한 느낌이.... 이 책을 읽으면 저렇게 멋지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

하나의책장 2022-12-16 20:12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보고선 제주도에 갔었던건데,
프로 수준은 아니지만 구도나 색감은 마음에 들게 찍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mini74 2022-10-20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게 폰으로 찍은 사진이나리 하나님 👍

하나의책장 2022-12-16 20:13   좋아요 0 | URL
미니님이 너무 예쁘게 봐주셨어요😍

호우 2022-10-21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미 프로 사진가시네요.😃👍

하나의책장 2022-12-16 20:13   좋아요 0 | URL
호우님,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극한 식물의 세계 -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 이야기
김진옥.소지현 지음 / 다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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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1월 1일 0시 기준으로 지구가 탄생했다면 식물은 11월 24일 이끼식물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가 식물이라 부르는 생물의 가장 원시적인 단계는 이끼식물이다.

최초의 식물부터 지금의 식물까지 알고 싶다면, 45억 7000만 년이라는 지구의 역사와 지질시대를 훑어봐야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식물들 중 가장 크고 작은 식물은 무엇이고 가장 빠르고 느리게 자라는 식물은 무엇이고 극한의 땅에서도 자라는 식물은 과연 무엇일까?

식물의 세계가, 문득 궁금해졌다.


저자, 김진옥은 이화여자대학교 생물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식물분류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자연사박물관 학예원구원, 성신여자대학교 자연사박물관 학예사로 근무했으며, 현재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식물분야 전문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허준박물관, 약령시 한의학박물관, 한독의약박물관, 한국숲해설가협회 등에서 식물수업을 진행하였다.

저자, 소지현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생명과학과 학사와 에코과학부 식물계통분류학 통합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자연사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자연사박물관, 인천 국립 생물자원관, 허준박물관에서 과학 교육 담당 강사로 활동하며 자연과학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Ⅰ 크거나 작거나


2016년 7월, 전 세계가 이목이 한 식물에 집중되었다.

시체꽃이라고도 부르는 타이탄 아룸이 80년 만에 꽃을 피운다는 것이었다.

수만 명이 이 꽃을 보기 위해 뉴욕식물원으로 몰렸고 꽃이 피고 지는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었다.

도대체 어떤 꽃이기에 모두가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타이탄 아룸은 수마트라섬에만 있던 식물로, 현재는 전 세계 식물원에서 옮겨 심어 전시하고 있는데 대개 7-9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무엇보다 피어 있는 기간이 단 이틀 뿐이라 타이탄 아룸의 꽃을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타이탄 아룸의 개화 소식이 들리면 모두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단지 7-9년에 한 번, 그것도 이틀만 꽃을 피운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이목을 한 번에 받는 것일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타이탄 아룸은 길이 3m, 너비 1.5m까지 자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꽃이란 꽃 한 송이가 아닌 꽃대에 달린 꽃 전체를 일컫고 있으니 정확하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차례'라 할 수 있겠다.

바깥쪽은 녹색의 잎, 안쪽은 마치 거대한 나팔 모양의 꽃잎이 피어나듯 검붉은 색을 띄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타이탄 아룸의 꽃을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꽃차레 전체가 하나의 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타이탄 아룸의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을 불염포라고 하는데, 이는 잎이 변형된 것으로 꽃차례 전체를 감싸안아 꽃차례를 보호하며 꽃가루를 옮기는 동물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카라와 안스리움의 꽃도 각각 흰색과 빨간색의 꽃잎처럼 보이는 불염포로 싸여 있는 꽃차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게 '진짜' 꽃은 어디에 있을까?

'진짜' 꽃은 불염포 안쪽으로 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연두색 기둥 아래쪽에 달려있다.

불염포가 감싸고 있어 자세히 볼 순 없지만 연두색 기둥 아래에 밑씨를 가진 작은 암꽃이 빼곡, 그 위로는 꽃가루를 가진 수꽃이 빼곡하게 달려 있다.

덧붙여 불염포가 감싸고 있어서 자세히 볼 수 없기도 하지만 방독면 없이는 관찰이 힘들다고 한다.

그 이유는 꽃이 풍기는 지독한 냄새 때문이다.

앞서 시체꽃이라고도 불린다고 언급했었는데, 그 냄새가 마치 썩어가는 고기와도 같아 얼마나 독한지 가까이 보려고 했던 사람들 중에 기절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틀이란 짦은 개화 시간 동안 성공적인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 꽃차례에 거대한 크기, 강렬한 색깔, 지독한 냄새, 높은 온도 등 촘촘한 설계로 완벽한 생존 전략을 가지고 있는 타이탄 아룸!

그래서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꽃이 아닌 나무로 넘어가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는 무엇일까?

열네 살쯤 가족들과 양평으로 여행을 떠났었는데 그때 용문사에도 들러 은행나무 앞에서 막냇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쭉 뻗어있는 은행나무를 다 담아주려던 엄마의 열정이 빛을 발해 결과물이 매우 만족스러워 큰 액자로 뽑아 장식장 한편에 두었는데, 그때 찍었던 은행나무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은행나무이다.

1962년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의 키는 42m로 나이는 11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100년, 그렇다면 삼국시대에 싹을 틔워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쳤으니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은행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다른 나무에 피는 암수딴그루 식물로, 먹는 은행은 암나무에서 열리는 씨앗이다.

덧붙여, 황금빛의 절경을 보고싶다면 꼭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 용문사에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키가 큰 나무를 봤으니 작은 나무도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작은 나무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

제주도에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추운 곳이 있으니 바로 한라산 꼭대기이다.

땅에서부터 100m씩 올라갈수록 기온이 0.6℃씩 떨어지는데, 백록담의 기온은 한라산 아래보다 약 11℃ 더 낮다고 한다.

바로 백록담 바위틈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작은 나무인 암매가 붙어 살고 있다.

암매는 돌에 피는 매화라는 뜻으로, 난쟁이버들과 막상막하를 이루며 세계에서 가장 키가 작은 나무에 속한다.

아무리 자라도 10m가 넘지 않아 서로 옹기종기 붙어있는 모습이 마치 난쟁이버들과도 같다.

마치 전체적인 모습이 방석과도 같은데 암매는 백록담 바위에서 빈틈없이 빽빽하게 줄기를 얽혀 매서운 바람과 낮은 기온을 이겨낸다.

암매의 잎은 난쟁이버들의 잎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가죽처럼 반들반들하고 도톰해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살며 수명이 다해 죽더라도 줄기에 남아 태양열을 흡수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암매는 어쩌다 백록담 바위에 붙어 살게 된 것일까?

사실 암매는 북쪽의 극지방에 서식하고 있었는데 빙하기 때 점점 강해지는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그렇게 정착한 곳이 제주도였다.

그런데 빙하기가 끝나고 날이 따뜻해지자 암매는 더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어 다시 올라가려 하는데, 한반도와 제주도가 바다를 두고 분리되니 갈 곳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땅을 피해 고도가 높은 곳으로 오르고 오르다보니 도착한 곳이 백록담이었던 것이다.

생명과학의 세계란 참으로 신기하다.

안타까운 것은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전체적인 기온이 올라가면서 암매는 백록담 꼭대기에서 올라갈 수도, 버틸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 우리나라 멸정위기 1급 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Ⅱ 강하거나 독하거나 교묘하거나


식물이 독을 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식물에게 천적이라 하면 그 대상은 동물이 될 수도, 균이 될 수도 있다.

독이 강한 식물은 그렇지 못한 식물보다 잘 살아남을 뿐더러 자손을 많이 퍼뜨려 더더욱 강한 독을 강한 식물로 진화하게 된다.

식물의 독은 전체적으로 퍼져있기도 하고 잎, 열매, 씨앗 등에 집중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씨앗에 독을 품는 식물들이 많다.

씨앗이 자손을 남기는 직접적인 매개체이기에, 동물들이 먹지 못하게 하려고 씨앗에 독을 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물의 씨앗이 가장 강한 독을 가지고 있을까?

바로 피마자의 씨앗이다.

피마자는 아주까리라고도 부르며 열대지방 전체에 널리 퍼져 있어 많은 사람이 심어 기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독한 식물로 기록되어 있는 피마자의 씨앗에는 소량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이 들어있다.

피마자의 씨앗에 들어있는 독의 실체는 리신으로, 리신은 생물무기금지협약 규제 목록에 올라와 있을 정도이다.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리신을 무기화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암살되었었다.

리신은 책을 통해 접하기도 했지만 CSI와 같은 범죄물 미드에서 일찍이 접해 사람에게 얼마나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이렇듯 리신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은 것은 바로 많은 사건의 중심에 올라왔었기 때문이다.

1978년 영국 런던의 한 버스정류장, 불가리아 정부를 반대하던 조지 마르코프가 불가리아의 비밀경호국 요원에게 살해당한다.

우산 끝에 다리를 찔렸다는데, 사실 우산은 우산을 가장한 무기였으며 끝에 리신을 넣은 작은 알갱이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1.7mm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았지만 사람을 죽이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그렇게 리신이 들어있는 우산에 허벅지 뒤쪽을 찔린 마르코프는 처음에 벌레 물린 통증을 느끼다 그날 밤 열이 나기 시작했고 시름시름 앓다 4일 만에 사망하게 된다.

2013년, 당시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에게 리신이 들어있는 편지가 배달되어 테러 경계령이 내려졌었는데 용의자는 상원의원과 판사에게도 같은 편지를 보내 생물학적 무기 사용 시도 혐의로 25년 형을 받게 되었다.

가루로 만든 리신이라도 기침, 발열, 설사, 출혈 등이 나타나다가 결국은 사망에 이르고 만다.

리신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단 몸 속으로 들어오면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단백질을 세포에서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번식력이 좋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왜 피마자를 심어 기르는 것일까?

기원전 4000년경 이집트 무덤에서도 나온 것을 보면 유용하게 사용했던 식물임에는 틀림없다.

추정하건데, 피마자 씨앗에서 얻는 기름인 피마자유를 램프의 연료나 화장품, 의약품으로 쓴 게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다른 식물의 씨앗보다 월등히 많은 기름을 추출할 수 있다.

지금도 피마자유는 다양한 분야에서 쓰여지고 있다.

금속이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윤활제, 상처 치유 연고, 램프 연료 등 여러 화학 분야의 원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치명적인 독성에 반해, 사람들은 왜 기피하지 않는 것일까?

씨앗에만 독성이 있고 씨앗에서 기름을 추출할 때 단백질인 리신이 기름에 녹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80℃ 이상만 열을 가해도 파괴되기 때문에 독성은 쉽게 사라진다.




Ⅲ 지나치거나 열악하거나


전세계에서 가장 메마른 곳, 아타카마 사막.

비가 땅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버리니 진정한 사막이라 할 수 있겠다.

오죽하면 화성 탐사 장비 테스트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을까.

아타카마 사막은 바다였던 곳이 융기하여 생성된 지형으로, 소금 덩어리가 돌아다닐 정도로 염분이 많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도이다 보니 낮은 여름처럼 더워도 밤은 겨울처럼 추워 계절에 상관없이 밤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곤 한다.

이렇게만 보면 극한의 공간이나 다름없으니 그 어떤 식물도 못 견딜 것 같다고 예상하겠지만, 살아가고 있는 식물이 있다.

너비 6m에 달하는 거대한 반구형의 모습을 한 식물, 그 주인공은 바로 야레타다.

야레타는 바위 근처에 붙어살며 극도의 건조함과 온도 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초대형 브로콜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야레타를 본 대부분은 신기하게 생긴 녹색 바위라고 생각하지 식물이라고 생각하지 못 한다고 한다.

야레타는 물이 많은 곳에 살면서 포자로 번식하는 이끼가 아니라 극도의 건조함 속에서도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속씨식물이다.

1년에 겨우 1.4mm에서 4mm까지 자란다고 하니 녹색 바위처럼 생겼다고 본 야레타는 수백 년 동안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야레타의 생존 전략은 바위와 돌에 있다.

물이 없는 환경이 유리하기에 큰 돌이나 바위 근처에 붙어사는 야레타는 돌 위에 고여지는 물을 빠르게 흡수한다고 한다.

아타카마 사막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맞다. 다만 안갯속 수분이 높은 해발에 있는 돌 위에 닿으면 식어서 물방울로 변하게 되어 소량의 물이 고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낮에 강렬한 햇빛으로 데워진 돌이 밤의 추위 속에서 야레타를 따뜻하게 보호해준다.

현재 기후변화로 인해 날이 갈수록 건조하고 척박해지니 과학자들은 오늘도 아타카마 사막의 식물들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극한의 조건에서도 수백 년을 살아오고 있는 야레타는 정말이지 대단한 존재이다.

야레타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작물을 만들어낸다면 훗날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유치원 때, 식물원에 다녀온 기억이 선명하다.

그 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식물이 바로 파리지옥이었다.

식물이 파리를 먹는다고?

설마! 했었지만, 살포시 앉은 파리를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작은 식물은 무엇이고 가장 빠르고 느리게 자라는 식물은 무엇이고 극한의 땅에서도 자라는 식물인지, 총 30개의 식물을 통해 뜻깊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생명체는 결국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식물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생명과학의 세계가 이렇게나 신비로웠던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겠지만 미생물에 이어 식물까지 책을 통해 접해보니 순간 그런 생각도 했었다.

'이과를 선택해서 과학을 배웠으면 참 좋았을텐데…'

생각해보니 서울대공원 내에 있는 식물원 들렸던 게 20살 때이니 식물원 안 가본지도 참 오래된 것 같다.

생각난 김에,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어제의 미생물에 이어 오늘의 식물이라니!

마치 짜여진 것 마냥 순서를 완벽하게 잡은 것 같아 뿌듯할 정도였다.

생명과학이 이렇게나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나, 정말로 과학 좋아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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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미생물, 우주와 만나다 - 온 세상을 뒤흔들어온 가장 미세한 존재들에 대하여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헬무트 융비르트 지음, 유영미 옮김, 김성건 감수 / 갈매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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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 하늘의 별만 우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 역시 또 다른 우주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지구를 오늘날과 같은 행성으로 만든 것도 미생물이에요. 행성으로서의 지구는 우리 천문학자의 담당 영역이지요. 소행성, 혜성, 달, 다른 행성도 그렇고요. 우리는 멀리 어느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는지 아직 알지 못해요. 하지만 외계 생명체를 부지런히 찾고 있지요. 이런 수색에도 미생물이 중요한 역할을 해요."

헬무트 융비르트 "미생물이 온갖 것에 연관되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에요. 한 사람의 신체 안에 있는 세균 수만 해도 100조 개에 이르거든요. 자그마치 우리 은하에 있는 별 개수의 500배에 해당하는 수지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균의 총 개수는 관측 가능한 온 우주의 별보다 더 많고요. 미생물은 작지만, 온 세상에 존재해요! 그러므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면, 이 작은 생물체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천문학자인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와 생물학자 헬무트 융비르트의 대화를 듣고 나니 가슴 한 켠에서 궁금증과 동시에 설레임이 폭발했다.

내가 과학을 이렇게나 좋아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나 신비롭고도 무궁무진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는데 책을 안 펼쳐볼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들을 통해 바라본 우리와 우주의 세계, 지금 미생물 사전을 통해 바로 확인해보자.


저자,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천문학을 공부하고 소행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행성 중 하나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기도 했다. 2008년에 그가 개설한 천문학 블로그 ‘Astrodicticum Simplex’는 현재 최다 방문객을 자랑하는 독일어권 인기 과학 블로그다.

저자, 헬무트 융비르트는 오스트리아의 칼 프란젠스 그라츠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공부하고, 아포토시스(세포자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같은 대학 과학 커뮤니케이션 및 인재 육성 센터에 근무했고, 2016년 10월 오스트리아 최초로 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튀빙겐과 빈 대학에서 연구했고, ‘그라츠 참여실험실Mitmachlabore Graz’을 공동 설립했으며, ‘미각실험실Geschmacklabor’의 학술 분과장이자 사회·지식·커뮤니케이션 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연의 모태에서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지는 경이로운 형상, 미생물


Schizomycete 분열균류는 의미가 전이되어 세포 분열로 증식하는 미생물을 뜻하게 되었다.

사실 이 말은 구체적인 생물을 칭하는 말로 이는 fungus 진균과는 무관했다.

지구상의 생물을 분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분열균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Brock의 미생물학》에 따르면, 미생물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미생물은 아주 미세한 단세포생물이다. 미세하게 작지만 세포는 없는 바이러스도 미생물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미생물은 육안으로 볼 수 없으며, 단세포이며 무엇보다 미생물은 생물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생물 분류를 명확하게 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을 '완벽'의 정도로 분류하여 인간을 자연의 사닥다리 최상단에 위치시키는 주관적 오류를 범하였는데, 물론 지금은 생물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8세기, 자연과학자 칼 폰 린네는 식물과 동물이라는 두 '계'로 나누고 그 밑으로 강, 목, 과, 속, 종 같은 하위 그룹을 위치시켰다.

호모 사피엔스 종인 인간은 동물계 중에서 포유류 강에 속했고 포유류 강 안에서도 호미니드과에 속하였고 그 과에서 또 호모 속으로 세분화했다.

이렇게 생명체를 단순하게 동식물로 나누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미생물에 속하는 생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때,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새로운 분류체계의 필요성을 대두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동물, 식물을 추가적으로 더해 대부분 단세포생물로 이루어진 원생생물이 또 하나의 계로 추가된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서서, 균류를 식물계로부터 분리하고 원생생물을 진핵생물과 원핵생물로 나누었다.

그러다 1970년대 새로운 연구 결과를 통해 다시금 극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미생물학자 칼 워즈가 박테리아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필연적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보여도 유전적 분석으로는 전혀 달랐기에, 원핵생물을 세균과 고세균으로 분류하고 생물 분류 단계에서 계보다 높은 최상위 단계인 역을 두었다.

즉,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진핵생물과 세균 그리고-새로운-고세륜, 이렇게 세 가지 역으로 분류하였다.

지금도 새로운 제안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생물 분류 문제는 아직도 최종적으로 결론나지는 않았다.


올해는 특히 인명피해가 심각할 정도로 장마가 심했는데, 지금도 전세계에서는 홍수, 가뭄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급격한 기후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인 지구 온난화 현상이 심해지지 않도록 전세계가 작은 노력부터 천천히 실천하고 있지만 여전히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미생물 이야기에 앞서, 무한도전 오호츠크해 특집편에 나왔던 퀴즈 하나를 내볼까 한다.

문제! 소가 트림을 하면서 내뿜는 가스, 이산화탄소보다 25배 강한 온실효과를 내는 가스는?

정답은 메탄이다.

파아란 하늘 아래 드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들, 이러한 목가적인 풍경이 사실은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소나 초원에게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 책임은 소와 풀을 서식 공간으로 삼는 미생물에 있다.

고세균인 메타노브레비박터 루미난티움은 메탄을 생성하는 단세포 미생물로, 현재 메탄을 발생시킨다고 알려진 유일한 생물이다.

대기 중의 나머지 메탄은 지질활동으로부터 배출되는데, 고세균들은 산소가 없는 환경을 선호하므로 소의 위나 장이 더할 나위없이 적합한 서식 공간이다.

소의 내장에서 메탄이 만들어 내면 자연스레 메탄은 소의 위장 안에 남아있게 되니 소의 트림이나 방귀로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메탄가스는 무색무취로, 기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기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중 메탄이 차지하는 비율이 20퍼센트 정도이며 그중 동물사육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니, 전세계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의 35퍼센트 이상이 축산업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의 내장에서 고세균을 억제하는 방법이 실질적으로 효과적이지 못하니, 동물성 식품의 대량생산을 줄여 소의 수를 줄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일까?

2013년 연구자들은 고세균이 특히 사탕무에 주로 들어있는 물질을 화학적으로 변화시켜 메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사탕무는 동물사료에 종종 사용되는 식품이다.)

사료 제조과정에서 유채씨유를 소량 섞으면 유채씨유가 소의 위장에서 수소가 방출되는 과정을 방해하여 고세균의 성장이 억제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방법은 소들이 식량으로부터 충분한 영양을 취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져 이런 방법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과연 소에게 이로운 것인지는 확신할 순 없다.

지구온난화가 유발하는 것은 결코 소의 잘못이 아니다.

소의 배설물이 기후문제를 유발하긴 하지만 자연 속에서 메탄은 배출될 뿐 아니라 자연스레 흡수되어 없어지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렇다고 목장을 숲으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숲으로 무성해지면 나무는 더 많은 수분을 필요로 할 테고 건조화는 더 가속될 것이다.

즉, 지구에는 숲도 필요하고 초지도 필요하며 적절한 곳에 적절한 미생물도 있어야 한다.

지구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닌 지구는 후손에게서 빌려온 것이니, 소나 고세균에게 책임을 떠넘길 것 없이 우리가 기후 문제를 적극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미생물의 세계는 수수께끼와도 같다.

그중 고세균이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고세균은 박테리아, 즉, 세균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불과 몇 십 년 전에 고세균이 독립적인 생명 형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로서, 고래와 상어는 생김새와 행태가 비슷하더라도 고래는 포유류이고 상어는 어류다.

이처럼 박테리아와 고세균도 마찬가지지만, 이 차이가 매우 크다.

처음 고세균은 극한의 환경에서 발견되었다.

펄펄 끓는 뜨거운 온천, 칠흑같이 깜깜한 심해, 말라버린 염호 뿐만 아니라 우리 몸 속에도 존재한다.

미생물의 종류를 막론하고 코로나나 독감같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그리고 균류와 조류는 끊임없이 우리를 병들게 하는데 참 희한한 것은 고세균만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메타노브레비박터 오랄리스는 구강 속에서 살며 치주염을 앓는 사람들에게 자주 발견된다.

고세균의 신진 대사가 입안의 무해한 세균의 균형을 깨뜨려서 질병을 유발하는 세균을 더 증식하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추정일 뿐이다.


고세균도 병을 유발하는데, 그 메커니즘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병을 일으키는 고세균은 정말로 없는지도 모른다.

자연과 생물들 간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감안하면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생물계에서 우리에게 늘 친절한 영역 하나가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까.




언젠가 우리가 다른 행성에 거주하게 된다면 그 때에도 함께 할, 미생물


흥미롭게 봤었던 영화 「인터스텔라」를 생각하면, 우주는 참 불친절한 공간이다.

시공간의 제약이 얼마나 작고 클지 가늠이 되지 않을 뿐더러 실질적으로 방사선을 얕잡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별은 빛과 열 뿐만 아니라 태양 대기의 외부층으로부터 고에너지 입자 흐름을 계속 방출하지만 지구에는 자기장과 대기가 막아주고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다만, 우주에는 이러한 보호막이 없기에 우주에 머문다는 것은 생명체로서 굉장히 위험한 일일 수밖에 없다.

화성을 생각해보자. 화성을 비행하려면 몇 달은 족히 걸릴테고 화성에 도착해서도 자기장과 대기가 없기 때문에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주방사선에 노출되어야 한다.

(열 번은 족히 봤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데, 자기장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영화 「코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여러 방법론들이 제안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는 지하에 거주지를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두꺼운 암성측이 충분히 방사선을 막아준다는 것이었다. 가능할 순 있으나 그렇다해도 썩 유쾌한 방법은 아니다.

또 다른 제안은 이렇다. 곰팡이를 방사선 차폐 재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지구에서는 곰팡이가 달갑지 않은 존재일 수 있으나 우주와 화성에는 곰팡이가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누출된 방사선으로 인해 수백 종의 균류가 발생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클라도스포리움이었다.

클라도스포리움은 방사선 친화성을 보이는 균류로, 멜라닌 색소를 사용해 방사선에 들어 있는 에너지를 활용한다.

하지만 원자로에서 누출된 방사선과 우주방사선은 차원이 다르기에 이 제안 또한 썩 유쾌하지는 않다.

가까운 우주정거장을 잠시나마 안전하게 방문하는 정도로 만족할 순 있겠지만 우주로 여행을 떠나고 정착하는 것은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찌되었든, 언젠가 우리가 다른 행성에 거주하게 된다면 분명 미생물과 함께 할 것임은 틀림없다.


2000년, 박테리아로 장전한 총이 등장하였다.

생물학전 무기일까?

아니다. 애리조나대학 연구자들이 지구상의 생명이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고서 만든 것이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스웨덴 과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는 포자들이 바람에 실려 지구 대기의 최상층까지 이르렀고 그곳으로부터 우주 공간까지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주는 생명에 적대적인 조건이 지배적인 곳이어도 이러한 환경에서 무리없이 적응해 살아가는 생물들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현미경으로 봐야 보이지만, 생물 가운데 특히 강인한 생물은 바로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이다.

1950년대 통조림에 방사능을 조사해 최대한 무균 상태로 만들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든 것을 다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방사선량을 식품에 노출시켰는데도 얼마 안 있어 깡통 속의 고기가 상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는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수준보다 1000배 이상 높은 방사능을 쏘여도 살아남는다고 한다.

이 정도의 강인함이라면 우주여행을 하는 데 있어 최적의 무장을 하고 있는 셈 아니겠는가.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는 방사선 뿐만 아니라 우주의 다른 조건에도 끄덕없는 존재이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이루어진 실험에 따르면, 1년 내내 우주에 노출시켰는데도 끄덕없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과학계에서는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를 코난 박테리아라고 별명 지어주기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의 저항력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최대 500군데의 손상된 부위를 동시에 복구할 수 있을 정도로 DNA를 복구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 가능한 로켓들과 달리 코난 박테리아에게는 적절한 추진 수단이 없으니 학자들은 이를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다.

다른 천체에서 확연한 미생물을 찾지 못하면 지구상의 생명이 우주에서 우리에게로 온 것인지 규명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에 서식하는 생물을 먼 우주에서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긴 세월 동안 지구도 많은 암석 파편을 우주로 날려보냈으니깐.




미생물 사전을 이렇게나 쉽게 접할 수 있다니!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들을 통해 바라본 우리와 우주의 세계는 실로 신비로웠다.

균이라고 하면 fungus가 전부였는데, 100개의 미생물에 대해 알아본 것은 생애 처음이다.


35억여 년 전, 지구상의 생명이 탄생했다.

10억 년 정도가 지나면 태양의 지표면 온도가 섭씨 100도를 웃돌 것이고 50억 년이 더 지나면 태양은 부풀어 오를 것이다.

결국 지구는 생명이 살기 힘든 땅이 될 지도 모른다.

우주의 무한한 시간에 비하면 우리 행성의 생명은 매우 짧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어쩌면 미생물은 끝까지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 하늘의 별만 우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 역시 또 다른 우주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지구를 오늘날과 같은 행성으로 만든 것도 미생물이에요. 행성으로서의 지구는 우리 천문학자의 담당 영역이지요. 소행성, 혜성, 달, 다른 행성도 그렇고요. 우리는 멀리 어느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할는지 아직 알지 못해요. 하지만 외계 생명체를 부지런히 찾고 있지요. 이런 수색에도 미생물이 중요한 역할을 해요."

헬무트 융비르트 "미생물이 온갖 것에 연관되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에요. 한 사람의 신체 안에 있는 세균 수만 해도 100조 개에 이르거든요. 자그마치 우리 은하에 있는 별 개수의 500배에 해당하는 수지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균의 총 개수는 관측 가능한 온 우주의 별보다 더 많고요. 미생물은 작지만, 온 세상에 존재해요! 그러므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면, 이 작은 생물체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천문학자인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와 생물학자 헬무트 융비르트의 대화를 듣고 나니 가슴 한 켠에서 궁금증과 동시에 설레임이 폭발했었다.

내가 과학을 이렇게나 좋아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책을 다 읽고선 마지막 장을 딱 덮고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과학 좋아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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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09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상 추카 합니다
어제 개기월식 보셨나요!^^
11월 건강하게 ^^

하나의책장 2022-12-16 20: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개기월식, 완벽하게 보진 못했었어요ㅠ
그래서 다른 분들 사진보면서 제대로 감상했었죠ㅎㅎ

서니데이 2022-11-09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하나의책장 2022-12-16 20:2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11-09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의상 축하드려요^^ 과학을 좋아하셨다는 고백이 저까지 기분좋게 하네요*^^* 궁금증이 인다는 건 설레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죠!ㅎㅎㅎ

하나의책장 2022-12-16 20:27   좋아요 0 | URL
거리의화가님 댓글에 절로 미소가 지어져요ㅎㅎ
정말요! 궁금증이 생긴다는 것은 설레일 준비가 되었다는 거죠♥

이하라 2022-11-09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하나의책장 2022-12-16 20:27   좋아요 0 | URL
하라님! 항상 감사해요♥

thkang1001 2022-11-09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의책장 2022-12-16 20:27   좋아요 0 | URL
항상 감사합니다^^
춥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