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쌍방이다. 나의 바람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분명 이 순간 그에게도 같은 벼락이 내리치는 게 보인다. 보이지 않는 두 줄기 번개가 내리쳐서 우리 둘을 불가해하게 묶는다. 인연의 인지. 그의 눈에 드리운 감전의 충격. 그가 흠칫 정신이 드는 표정을 짓는다. 오래전 연락이 끊어진 친구를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재회가 도무지 믿기지 않을 때 나올 법한 표정.

인사하려고 입을 떼는데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내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른다. 누군가 내 가슴에 전기 충격 패드를 붙이고 전류 강도를 최대치로 올린 느낌이다. 어떠한 말도 내 입술을 떠나지 못한다.
아는 남자다.
그를 처음 본 날이 엊그제 같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날. 열두 달 전 만원 버스 2층. 심장이 멎는 듯했던 눈 맞춤.

대체 어떻게 일이 이렇게 개판으로 꼬일 수 있지? 그가 세라의 것일 리 없어. 그는 내 거야. 꼬박 1년 동안 내 것이었어.
“내 친구 너무 괜찮지?” 지금 세라는 내 등허리에 손을 얹고 나를 자랑스레 내보인다. 서로 포옹하라고 나를 잭 쪽으로 떠민다. 세라는 우리를 어서 빨리 절친으로 만들고 싶어 몸이 달았다. 나는 너무나 비참하다.

우리는 다시금 침묵에 빠진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뭐라도 할 말을 이리저리 찾는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할까 봐, 그에게 나를 버스 정류장에서 본 기억이 없느냐고 물어보게 될까 봐. 조만간 내가 이 망할 충동과 싸울 필요가 없어지기를, 그 기억이 내게서 중요성도 타당성도 잃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희망한다. 이 또한 지나가기를.

"나는 평생 너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 너한테는…… 그게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운데, 뭔가 따뜻함 같은 거, 그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분한 표정이 된다. “너한테는 묘한 기운이 있어, 로리. 함께 있으면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기운.”
나는 그의 말에 놀라 잠시 내 처량한 처지를 잊고 고개를 든다. “진심이야?”
“그럼.” 그의 입술이 비스듬히 올라가며 미소가 느리게 퍼진다. “물론이지. 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어.”

“운명 같은 걸 믿지는 않지만, 루, 나는 네가 항상 내 인생에 있었으면 해.”
그가 내 눈을 내려다본다. 그의 입이 너무 가까워 그의 숨결이 입술에 느껴진다. 온몸이 아파온다.
“나도.” 내가 속삭인다. “너랑 함께 있는 게 가끔은 마음을 아프게 해도 말이야.”
그의 눈에 서린 표정을 읽기가 어렵다. 어쩌면 후회?
“하지 마. 더는 아무 말 하지 마.”

나는 울기 시작한다. 과하게 마신 와인, 견딜 수 없이 밀려드는 감정, 오늘 밤 너무나 많은 것을 떼어놓고 돌아서야 하는 내 인생 때문에. 그가 나를 꼭 끌어안고 그의 입술로 내 귀를 누른다.
“울지 마. 사랑해, 로리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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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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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의 사랑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12월의 어느 날』

 

 

 

 

 

『하나, 책과 마주하다』

​1년 전 크리스마스, 첫눈에 반했던 그 남자가 내 친구의 애인이 되어 나타났다.

심장이 멎는 듯한 그와 그녀의 눈맞춤.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두 남녀.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단어들이 있다면 그 중에서 단연 '사랑'을 꼽을 수 있겠다.

『12월의 어느 날』을 보며 크리스마스의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절로 떠올랐다.

내용은 다르지만 주제는 fall in love이기에.

주인공 로리는 정류장에 앉아있던 한 남자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버스 안에 있던 그녀, 정류장에 있던 그.

그 남자 또한 로리에게 첫눈에 반했는지 순간 버스를 타려 일어섰지만 버스는 야속하게도 출발하고 만다.

그렇게 그들의 만남은 거기서 끝인 줄 알았다.

1년 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로리는 절친인 세라의 남자친구인 잭을 소개받게 된다.

​그 순간,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오르는 듯한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대체 어떻게 일이 이렇게 개판으로 꼬일 수 있지? 그가 세라의 것일 리 없어. 그는 내 거야. 꼬박 1년 동안 내 것이었어.


세라의 남자친구인 잭은 분명 1년 전에 첫눈에 반했던 그 남자였던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온 듯한 로리는 당시의 눈맞춤을 자신만 기억하는 것 같아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러나 로리의 생각과는 달리 잭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서로의 끌림을 서로가 1년 동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세라는 로리의 세상에서 둘도 없는 절친이었기에 아무리 고통스럽다해도 그를 향한 마음을 내밀지 않기로 다짐한다.

과연 로리와 잭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절친인 세라의 우정이 우선일까? 1년 전 첫눈에 반했던 잭과의 사랑이 우선일까?

 

단숨에 읽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을 본 것 같다.

크리스마스의 사랑 이야기인 것 같아 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절로 떠올랐는데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니 「러브 액츄얼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스케치북으로 자신의 진심어린 사랑을 전했던 그 명장면이 떠올랐는데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영화로 나온다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읽는 내내 가슴 몰캉해지는 그런 로맨스는 아니다. 조마조마함이 느껴지는, 폭풍이 몰아칠 것만 같은 로맨스라 할 수 있겠다.

우정과 사랑이 얽힌 복잡한 로맨스이지만 그만큼의 긴장감과 재미는 있으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에 읽기 좋을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에 내게도 사랑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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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알못, 외항사 승무원 & 1등 영어강사 된 공부법
장정아 지음 / 서사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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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영알못, 외항사 승무원&1등 영어강사 된 공부법』

 

 

 


 

『하나, 책과 마주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라는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과 어떻게 다를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저자는 대학 시절, 일본 전공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에 머물러 있으면서 한식당에서 문화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젓가락으로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건네려다 모두가 놀라며 제지했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그 이유를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죽은 사람에게나 젓가락으로 음식을 건네기 때문에 절대 젓가락으로 음식을 건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지금 안 사실이다.)

생명 공학 전공이었기에 당연히 대학원이 목표였지만 일본의 한식당에서 직접 마주했던 문화 차이 경험이 저자에게 큰 변화를 안겨다준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에 문화 차이를 느끼며 전세계는 우리나라와 얼마나 다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인 승무원이 되기로 마음먹게 된다. 그녀의 나이 스물두 살이 되던 해였다.

허나 승무원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였다. 앞서 말했듯이 생명 공학 전공이었던 저자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어학연수도 가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첫 면접부터 완벽하게 성공하진 못했다. 영어 실력도 부족했거니와 영어 울렁증이 심했기에 첫 면접부터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굴하지 않고 더 단단해지리라 다짐한 그녀였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전쟁을 치르게 될지 모르지만, 그 시간만큼 단단해질 거라 믿었다. 아니, 오기가 생겼다.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실패 따위가 나를 압도할 수 없다.' _오그 만디노


끝까지 내 발목을 잡았던 영어 울렁증이 오히려 나를 더욱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듯이 말이다. 약점 앞에 무릎 꿇지 말자.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저자는 카타르 항공과 홍콩드래곤 항공에 최종 합격하게 된다.

이후 카타르 항공에서 4년간 근무하며 하늘을 누빈 후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영어회화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또한 영어권에 연수 한 번 간 적도 없고 회화 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다.

오롯이 학창 시절에 배운 영어가 나에게는 전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평생 끌고 가고 싶은 언어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곤 있다.

만 개의 영단어가 적힌 수첩을 외우고 또 외우던 때에는 그래도 자연스레 문장을 떠올리곤 했는데 사용하질 않으니 짤막한 문장 구사도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영어 실력도 부족하지만 무엇보다 저자처럼 영어 울렁증이 있는 게 흠이라면 흠일 수 있겠다.

나의 외국어 목표는 '자연스러운 회화 구사'이다. 책에서도 정말 많은 팁을 얻었는데 승무원을 준비하는 혹은 영어실력을 키우고 싶은 이들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승무원 합격 팁도 들어있어 승무원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필독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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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는 딸에게 조용히 공감하며 생각했다. 그래, 내 가엾은 딸아, 빨리 익숙해지는 편이 좋아. 끊임없이 그런 태도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니.

“이전 시대에는 여성 예술가가 없었다는 얘긴가요? 독립적인 여성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혹은 성적인 자유를 고집한 여자들이 없었다? 말씀을 좀 드리자면, 당신 뒤편에는 과거로 쭉 이어지는 위대한 여성들의 계보가 있어요. 그들을 찾아내고, 당신 안에서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을 의식해야 해요.”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우리 시대의 어두운 비밀이죠. 아무도 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어딘가 문을 열면 그 안에서는 늘 날카롭고 절박한, 알아듣기도 힘든 비명 소리가 귀를 때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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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여자를 지켜주는 여자들만의 기사도가 있는 법이고, 이것은 다른 어떤 충성심보다 강력하다.

모두 스스로에게 의혹을 품고 있었다. 자신이 행복하다는 이유에서 죄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예외 없이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선거운동 본부로 돌아와 나는 그날 오후의 책임자인 여자에게 이 여자들 얘기를 꺼냈다. 그녀는 말했다. “그래요. 선거운동 나갈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는 심정이 되죠. 이 나라엔 자기 혼자 미쳐가는 여자들이 정말 많아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럽게 나아간다고요?”
“그래, 꿈은 매번 더 강력해지니까. 사람들이 뭔가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일을 쟁취할 때가 오는 법이야.”
“뭘 상상한다는 거죠?”
“네가 말한 그거. 선량함 말이다. 친절함. 더이상 짐승으로 살지 않기.”

내 안의 긴장이 시작되었고 평화는 이미 사라졌다. 스위치가 켜지고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재닛에게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낸 다음 마이클에게도 아침을 차려줘야지, 차가 다 떨어졌다는 거 잊지 말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 쓸모없지만 틀림없이 불가피한 긴장과 더불어 원망의 스위치도 함께 켜진다. 무엇에 대한 원망일까? 불공평이겠지. 세세한 것들을 걱정하느라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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