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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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어요, 『우리와 당신들』



 

『하나, 책과 마주하다』

 

「베어타운」 ▶ https://blog.naver.com/shn2213/221254575573

「베어타운」 ▶ https://www.instagram.com/p/BhpPFDcHCqx/?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

 

 

 

탕, 탕, 탕, 탕, 탕! 총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베어타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베어타운 내에 살고있는 인물들은 각자의 성격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소설 속 한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이야기같지만 결국은 우리의 이야기다.

베어타운은 곧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요, 베어타운에서 살고있는 그들이 곧 우리인 것이다.

베어타운은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시골에 살게되면 도시로 떠나고 싶듯이 사람들은 베어타운이 활성화되길 바란다.

그런 베어타운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청소년팀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키팀이다.

하키만이 이 마을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생각하는 것이다.

마을 내에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베스트 하키팀을 꾸려 우승하게 된다면 나라의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 하키스쿨을 설립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마을이 활성화되고나면 모두들 떠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전에 「베어타운」을 읽고 썼던 리뷰 중 일부분이다.

드디어! 「베어타운」의 그 다음 에피소드를 다룬 따끈따끈한 신작이 나왔다. 바로 『우리와 당신들』이다.

전작에서 다루던 내용이 이어지는 형식인데 굳이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읽는데 어려움은 없다.

베어타운에는 자랑스러운 하키팀이 있었으나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마을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단장 페테르의 딸인 마야가 팀 내 선수인 케빈에게 성폭행당하면서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신고하였고 에이스 역할을 한 케빈이 빠지게 되면서 이후 시합은 지고 만다.

그런데 마을이 이상한 쪽으로 흐름을 타게 된다. 피해자인 마야와 마야의 가족을 보듬어주지는 못할 망정 케빈쪽에 서며 오히려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이스 하키가 가져다준 경제적 영향력이 매우 커서 이제는 그 덕을 못 보기에 마야와 페테르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체 위기에 접어든 아이스 하키팀 앞에 몇몇 인물들이 나타나는데 바로 리샤르트 테오라는 정치인과 사켈이라는 여성 코치가 나타난다.

이간질을 시키며 교활하고 간사함의 끝을 보여주는 정치인과 하키팀에 새로 부임하게 된 여성 코치인 사켈에 초점을 맞추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베어타운」에 유난히 크게 공감하는 이유가 있다. 「베어타운」은 딱 우리 현실과 같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서면 더이상 잃을 것이 없어서 앞뒤 분간 못하고 막 나갈 수밖에 없는데 현재 베어타운이 딱 그 형태이다.

참 안타까웠던 부분은 마야의 가족이였다. 분명 마야와 마야의 가족들은 피해자이다. 그런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손을 내밀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마야의 동생은 누나가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고난 이후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피해자가 구제받지 못하고 피눈물을 삼켜야 하는 씁쓸한 면이 우리 사회와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실업과 빈부격차 더 나아가 성 차별까지 자극적인 요소들이 갈등을 심화시킨다.

그렇다면 베어타운에 거주하는 마을 사람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결국 희망을 본다. 과거로 시간을 돌린 것도, 신이 도와준 것도 아니다.

열쇠는 마을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우리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선한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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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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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하게 된 더럽고 추악한 진실, 『검은 개』

 

 

 

 

 

『하나, 책과 마주하다』

 

책 혹은 영화에서 사회에 대한 온갖 비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은 내 머릿속까지 복잡해져서 요즘은 사회, 정치 관련된 것은 일체 읽고 있지를 않는데 결국은 읽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간략하게 내용만 추리자면 임석(주인공)은 테니스에 두각을 보이는 유망주인데 스폰서의 초대를 받게 된다.

스폰서의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후원을 못 받는다는 의미니깐.

그렇게 주인공은 별장으로 향했고 파티를 보낸 이후 별장에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정신을 잃게 된다.

눈을 뜬 그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어떤 생각도 나지않는다. 그리고 그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그가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되었다는 것 뿐이다.

그는 분명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데 교통사고를 내 동갑내기 친구인 유진이를 차로 쳐서 의식불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그에게 닥친 불행은 바로 형사처분을 받게되면 테니스 선수로서의 수명이 끝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누명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단서를 찾아보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CCTV 기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더 속 터지는 건 별장에 있던 모든 친구들이 임석을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점점 절망에 빠져가는 순간 임지선 변호사가 그를 찾아온다. 그리고 점점 사건의 실마리를 한 가닥, 한 가닥씩 잡으며 더럽고 추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주인공은 성인도 아닌 결국 열여덟살 소년이다. 그런 아이가 마주한 어른들의 세계는 참 더럽고 추악할 뿐이었다.

책을 읽고나니 CSI의 한 에피소드가 문득 생각났다. 책의 내용과 똑같지는 않지만 그 에피소드의 맥락이 비슷하게 흘러가서.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물론 이것이 소설이긴하지만 현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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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뺀 세상의 전부 - 김소연 산문집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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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과 함께 완성하는 나의 삶, 『나를 뺀 세상의 전부』

 

 

 

 

 

『하나, 책과 마주하다』

 

근심, 걱정은 접어두고 다시 나를 일으키게 한 원동력 중 하나가 책이라고 했는데 어제 저녁에 읽었던 책이 바로 『나를 뺀 세상의 전부』였다.

인간의 사랑할 만한 점, 겨울이야기부터 봄 이야기, 여름 이야기, 가을 이야기 마지막으로 다시 겨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짤막한 단편 동화들을 읽은 것 마냥 작가님의 산문집을 정말 순식간에 읽어냈다.

 

어느 날, 작가님이 가르치던 수강생 한 분이 있었는데 그 수강생이 자신에게 정녕 재능이 있는건지 확인하고 싶다고 물었다고 한다.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도중도 위험하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험하고, 덜덜 떨며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인간이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의 사랑할 만한 점은, 인간이 건너감이고 몰락이라는 데 있다. 나는 오로지 몰락하는 자로서만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저편으로 건너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항상 빈손이 아닌 자구마한 선물 하나를 챙겨 만나야 할 때면 그림책을 챙긴다고 한다.

단순히 아무 그림책이 아닌 용감하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험심 가득한 내용을 밝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익살스러운 내용을 말이다.

받는 이가 부담느끼지 않고 씨익 웃을 수 있게 그림이 가득한 책을.

나도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에게는 꼭 책 선물을 한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좋아서, 베푸는 성격 탓에 거의 빈손으로 나가는 일이 없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받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책'이란 결론을 내렸고 나는 그림책을 선물하지는 않지만 내가 읽던 책 중에서 그 사람의 상황이나 성격에 맞는 책을 선물한다. 나도 작가님처럼 그림책을 선물해봐야겠다.

내가 건넨 책으로 독서를 하는 표정을 그 자리에서 지켜볼 수가 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되어서 만남을 시작한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된다는 걸 가장 짧은 시간에 경험할 수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다락방이 비밀기지였다고 한다. 비밀 일기를 적어 아무도 찾지 못하게 구석에 숨겨놓는 짜릿함까지 경험했다고 한다.

우리집에는 다락방이 없었지만 외할머니집에 다락방이 있었다. 항상 외가집에 가면 안방으로 들어가 다락방부터 올라갔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닌 돌리는 전화가 있었는데 매일 그걸 꺼내서 놀았다. 엄청 오래된 멧돌부터 골동품들이 다양했다.

외가집 옆에 뽑기를 하는데가 있었는데 뽑기를 잔뜩 하고선 다락방에 몰래 숨겨놨었다.

예전에는 여름 방학, 겨울 방학에 한 달씩 머물러 있어서 일부러 거기다 숨겨놓았는데 지금은 리모델링을 한 후라 다락방이 없어진지 오래다. 가지고 놀던 오래된 골동품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비밀 기지를 가지지 않게 됐다. 따로 비밀한 시간을 보낼 이유와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 어른들은 어쩌다 그런 감각을 상실하게 된 걸까. 원하던 것들을 하나둘 소유할 수 있게 된 이 어른의 시간. 진심을 드러내어 비밀 일기를 쓰는 시간과 비밀한 장소는 어쩌다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인생이라는 게 원하는 대로만 흘러갈 순 없다. 그렇다고 꼭 어두컴컴한 일만 가득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완성형 인간이 아니기에 언제나 시행착오를 겪고 또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서 움직이려는 이유는 딱 하나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싶어서이다. 단지 그뿐이다.

삶이란 두 번, 세 번이 아닌 단 한 번의 주어진 삶이기에 그냥 단지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달릴 뿐이다.

그러니깐...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으쌰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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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요가 - 낮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시간
산토시마 가오리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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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해요, 『밤의 요가』

 

 

 

 

 

『하나, 책과 마주하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스트레스 받은 몸과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는가?

학교 혹은 직장에서 하루종일 온 신경을 쏟다보면 밤에는 녹초가 되기 일쑤이다.

몸과 마음의 피로는 켜켜이 쌓여만가고 다음날 우리는 커피나 에너지드링크로 힘을 내본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또 일주일을 보내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다.

대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신에게 보상을 주기위해 영화를 보거나 SNS를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야식을 먹는다.

그렇게 나름 자신에게 힐링의 요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의 피로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노트북도 마찬가지로 배터리가 닳으면 충전을 해야하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 또한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정말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잠자기 전 잠깐의 시간도 좋다고 말한다.

실제 요가, 필라테스같은 책들은 홈트레이닝에 맞춰져 있어서 처음에 이 책을 보기 전에 운동에 초점을 맞춘 책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단순히 다이어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실제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회복시킬 수 있게 호흡부터 요가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새삼 집중하며 읽게되었다.

 

휴식을 계속 뒤로 미루는 노력형은 액셀과 '더 빨리 밟는 액셀', 2가지 기어뿐이어서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충분히 노력하고 있으면서도 더 노력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거나, 피곤하면 더 안 좋은 생각이 떠올라 내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구나 불안이 커지면 그 공간을 메우려고 단것을 먹거나 피곤한 몸을 더 움직여서 녹초가 되고 맙니다. …… 일시적인 해소도 좋지만 집에서 여유롭게 편안한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을 소중하게 돌보는 시간을 만들면 자신의 내면에 충족감이 발생합니다. 내면의 공허함이나 외로움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생존해나가려면, 적극적으로 신경을 쉬게 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명상이나 요가, 오일 마사지여도 좋고, 혼자서 멍하니 있는 시간이여도 좋습니다.

호흡은 자신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호흡을 변화시킴으로써 감정의 상태나 기분을 바꿀 수 있습니다. …… 스트레스나 피로를 느끼거나 호흡이 얕은 느낌이 들 때 호흡을 깊게 합니다. 활발했던 교감신경의 활동이 억제되어 자율신경의 균형이 조절됩니다. 하루에 몇 번 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 의사선생님께서 왜 요가를 권했는지 이 책을 보니 알 것 같았다.

요즘 잠자기 전에 짬을 내어 꾸준히 호흡을 하고 요가를 몇 동작씩 하고 있는데 몸이 힘들다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신기해하고 있다.

이참에 요가를 본격적으로 배워야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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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 Va' dove ti porta il cuore
수산나 타마로 지음, 최정화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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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주고 싶은 삶의 진실,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하나, 책과 마주하다』

읽는 내내 마음의 울림을 주는 책이였다.

처음에는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외할머니가 외손녀에게 쓴 편지였다.

그래서인지 더 애잔하고 더 애틋했다.

 

나는 지금 부엌에 앉아 네가 쓰던 낡은 연습장을 펼쳤단다.

유언장을 쓰는 거냐고? 그건 아니야.

내가 필요할 때마다 네가 꺼내 볼 수 있는, 몇 년이 지나도 네 곁에 머물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려 한단다.

 

네 엄마, 너를 임신하게 된 과정, 네 엄마의 죽음, 난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너에게 말해주지 않았었지. 넌 그런 내 침묵을 증오했어. 할머니는 그 일들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 중요한 일조차도 아니었다고, 그래서 그 일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네 엄마는 내 딸이기도 하단다. 그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 해본 적이 있어도 넌 말하지 않고 그냥 덮어두었을 테지.

 

난 어머니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 어머니는 항상 겉으로 완벽해 보이려 애쓰느라 안절부절못했지. 그 거짓된 '완벽함' 때문에 난 늘 내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여겨졌고, 고독해졌단다. 나도 처음엔 어머니처럼 완벽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괴상하고 비참했지. 노력할수록 더 불편해졌어.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결국 자기 경멸에 빠지고 그게 분노로 이어지지.

 

나이가 들어서야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구나. 네 나이 때에는 아무도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지. 모든 일들이 자기 의지대로 된다고 믿으니까. 마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혼자 닦아나가는 일꾼처럼 스스로를 생각하는 거지. 먼 훗날에야 길은 원래부터 있었고, 누군가 나를 위해 흔적까지 남겨두었다는 걸 알게 된 테지. 우리에게 남은 건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일뿐임을 말이다.

 

울지 마라. 물론 내가 너보다 먼저 세상을 뜨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 없다고 해도, 난 네 안에서, 네 행복한 기억 안에서 살아있을 거야. 나무랑 채소들이랑 꽃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내 안락의자에 앉을 때도 그렇겠지. 그리고 오늘 가르쳐준 대로 네가 케이크를 만들 때면, 난 저기 네 앞에서 코에 초콜릿을 묻히고 서 있을 거란다.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 지 모를 때, 그냥 아무 길이나 들어서진 마.

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랬듯이, 자신 있는 깊은 숨을 내쉬어 봐.

어떤 것에도 현혹당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기다려 보렴. 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

 

엄마를 대신해 손녀를 키운 외할머니는 손녀를 미국에 보내게 된다. 미국에 가는 당일 둘은 정다운 말 한마디 못 건네고 사이가 안 좋은 상태로 손녀를 보내게 되는데 그렇게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 손녀에게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멀리 미국에 간 손녀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혹여 자신이 죽은 뒤에 손녀가 오면 이 편지들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담담하게 써내려간 편지에는 할머니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녀의 사랑부터 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그녀는 손녀에게 할머니이기 이전에 엄마였고 여자였다.

35일간 쓴 15통의 편지를 쭉 읽고나니 눈물이 났다.

그녀의 인생도 참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태어나서 심리적인 압박을 받으며 성장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나이 많은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딸에 관한 출생의 비밀과 그리고 딸의 죽음까지. 그녀도 참 힘든 삶이었다.그렇게 그녀는 딸에 관련된 비밀을 펴지에 털어놓게 된다.

손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편지 곳곳에 감정이 묻어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외할머니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1년에 한 두번 명절 때밖에 찾아뵙지 못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들 중 한 분이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와 내 동생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그렇게 기다렸었다. 우리에게는 방학이란 단순히 집에서 노는 것만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방학하는 날이면 방학동안 할 숙제를 바리바리 싸들고 부모님과 함께 외할머니집에 갔다. 부모님은 하루이틀 있다가 서울로 올라가시고 우리 자매는 개학 일주일 전까지 외가집에 머물며 지냈다. 시골에 지내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새벽을 알리는 꼬끼오 소리에 눈을 뜨면 외양간에 있는 소들에게도 마당에 있는 백구와 황구에게도 뒷마당 닭장 안에 있는 닭들과 병아리들에게도 굿모닝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씩 외할머니를 따라 이웃집 할머니들과 뒷산으로 아침 산책을 하며 다람쥐를 심심치않게 보면서 숲 속의 상쾌한 공기를 마셨다. 마당 한 켠에 큰 자두나무에서 자두 하나씩 물고 산책을 마쳤다.

무엇보다 외할머니와 외삼촌은 우리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줬었다. 외삼촌은 우리가 시골에 오고 난 다음 날이면 큰 마대 자루에 과자 몇 십 봉지를 사와 두고두고 먹으라며 방 한 켠에 놔두었다. 꼭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외할머니는 어디 나갈때면 우리를 데리고 다니셨고 항상 맛깔나는 음식들을 차려주셨다. 시골에 있을 때면 집청소는 우리가 도맡아 했었는데 집에서는 당연하게 했었던 일인데 외할머니는 우리에게 하는 행동도 예쁘다며 고마워하셨다.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정말 좋았다. 외할머니와 함께 만두도 빚어서 만두국을 끓여먹고 오이소박이도 만들고 떡도 빚고.

그렇게 날이 깜깜해지면 외할머니는 별구경하라며 마당에 큰 돗자리를 깔아주셨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돈으로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수만 개, 수억 개의 별들이 촘촘하게 줄을 지어 반짝반짝거려 분명 깜깜한 밤인데도 환하기만 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드니 여기서 충분히 만끽하고 가라는 외할머니의 마음이 수억개의 별들보다 더 밝고 밝아 참 따뜻했다.

해가 바뀌기 전 오랜만에 편지 한 통을 써야겠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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