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밍버드 클래식 M 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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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어떤 책은 어린 시절 읽었을 때와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읽는 느낌이 다르다라고 표현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뭐랄까,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을 때와 사랑을 경험했을 때의 읽는 느낌이 다르다.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의 서막이었다.

약혼자가 있는 그녀에게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진심으로 빠진 그는 그의 마음조차 스스로 컨트롤할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알았듯이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간단하게 축약해보았는데, 이 네 줄의 글이 이 책의 전부를 담았다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읽다보면, 베르테르가 얼마나 그녀에게 빠져있는지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로테를 만난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상쾌하게 찬란한 해를 바라볼 때면 외치곤 한다.

"그녀를 만난다!"

하루 종일 달리 바랄 것이 없다. 이 기대가 다른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고 고전 속 구절들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참 깊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린 나이에 읽고선 이후에 재독했던 책이었는데 이번에 또 읽고 나니 참 좋았다.

(갑자기 생각하려니 기억이 안 나는데) 외국 영화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살짝 나왔었는데 그 때 그 영화를 보고선 바로 재독했었었다.

읽고 또 읽었던 책이었지만 이렇게 또 읽는 이유는 책마다 번역이 살짝 다른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근래 완역본이 나오면 꼭 읽곤 하는데 아무래도 말할 때 'ㅏ' 다르고 'ㅓ' 다르듯이 약간의 변화도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새는 출간된 책마다 번역이 잘 되어있어서 이 책 말고도 더 많긴 하는데 책을 고를 때 있어서 표지 디자인도 굉장히 중시하는 나이기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인디고 고전시리즈처럼 읽기도 좋고 소장가치 있는 책들은 책장에 쪼르륵 모아져 있는데 이 책은 허밍버드 클래식 M 시리즈 중 하나이다.

아직 리뷰를 쓰다 말아서 못 올렸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읽기 전에 이미 『오페라의 유령』을 진즉 구매해 읽었었다.

신간을 소개하는 메일을 읽다가 허밍버드 클래식 M시리즈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때 눈에 띄던 책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중 오페라의 유령을 정말 좋아해서 외국에서 만든 뮤지컬과 영화 다 섭렵하고 CD까지 소장중이다.)

『오페라의 유령』,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전에 시리즈 두 권이 더 있는데 곧 '하나의 책장'에 데려올 예정이다. (여기서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M 시리즈의 M은 MUSICAL의 약자이다.)

뮤지컬하니깐 '베르테르' 뮤지컬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나 또한 꼭 보고 싶은 뮤지컬 중 하나가 바로 '베르테르'인데, 아직 나도 '베르테르'는 보지 않았지만 뮤지컬 유경험자로서 뮤지컬 보기 전에 소설로 먼저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보는 느낌이 확연이 다르다.)


서평을 쓰다보면 내 생각을 고스란히 글로 옮기다보니 어느순간 자연스레 경험담이 흡수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과 관련된 소설이다보니 애써 다 쓴 글들을 읽다가 문득 화들짝 놀라며 절반 이상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필독서 목록에는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책이긴한데 은근히 읽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어 줄거리를 다 쓸 순 없기에.)

예전에는 독서를 한 후에 (나만 보는) 글쓰기 노트에 감상문을 남기곤 했는데 어느순간 이렇게 타이핑을 치다보니 뭐랄까, 다 담아낼 수 없는 한계점이 있는 것 같다.

이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읽게 된 계기를 적으며 본격적인 감상문의 서막을 올린 뒤에 간략하게 줄거리를 쓰고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남기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 것, 그것이 간단하지만 형식적인 나의 감상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기가 아닌 타이핑을 치게 되면서 설령 소설을 읽더라도 앞서 말했듯이 읽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텐데 선뜻 줄거리를 다 담아내기에도 고민이 된다.

또, 이야기가 산으로 가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읽는 책은 언제나 옳은 것 같다.

어느 정도의 텀을 두고 재독을 하게 되면 분명 그 때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나름의 짜릿함을 느끼기도 한다. '또 배웠구나.'라고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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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17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두 번 읽은 소설입니다. 처음 읽었을 땐 그저 그랬는데 긴 시간 뒤에 두 번째로 읽으니
왜 명작인지 알겠더군요. 이런 게 또 배웠구나, 하는 느낌이겠죠.

하나의책장 2020-08-18 20:52   좋아요 1 | URL
오오 저도 두번이나 읽은 소설이에요! 처음에는 크게 안 닿았던 게 사실인데 이제서야 다시금 읽고 나니 감상의 깊이가 달라지더라고요^^
 
좋은 감각은 필요합니다 - '센스 있는 사람'이 되는 생활·일·마음가짐 단련법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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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좋은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들이 있다. _"센스있게 행동하자.", "센스있는 사람이 되자.", "알아서 센스있게 해봐."

그만큼 감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서점들에서 신간을 다루는 메일들이 오면 거의 보는 편이다. 전혀 관심 없었던 책이어도 우연히 한 구절로 인해 읽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좋은 감각은 필요합니다』, 아래 구절들을 보고선 책을 바로 펼치게 되었다.

→일상 속 사소한 것까지 자신의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 봅시다.

→판단력이 둔해지고 흐려졌다 싶으면 미술관에 갑니다.

→때로는 아름답거나 근사한 것보다 이상한 것이 사람을 매혹시킵니다.

→일하기 전 1시간, 집중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권합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나 '역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감각은 결국 선택 혹은 판단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수많은 보기중에서 옳은 선택을 할 때도 있고 그른 선택을 할 때도 있다.

또한,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올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또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때도 있고 제대로 되지 못한 판단을 할 때도 있다.

즉, 선택과 판단, 둘 다 간단한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감각을 단련시킨다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

덧붙여, 타인과 함께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잘 살아나간다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좋은 감각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 때, 우리는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공통된 특징을 살펴보면 된다.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몇 가지만 나열해보자면, 좋은 감각을 지닌 이들은 자신의 주변에 관해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바라보며 머리와 마음을 조화롭게 사용할 줄 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히 판단한다.

이 부분에서 분명 취약한 이들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경계선을 그어야 할지 참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 때, 실제 상대에 따른 적절한 거리감을 조절하는 감각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 경험해보고 시도해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일상 속 사소한 것까지 자신의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고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좋은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한다.

(뒤에 나열된 부분들은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 생략한다.)


좋은 감각이라는 것이 한 번에 뚝딱 하고 생길 순 없다. 이는 무조건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센스있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몇 가지는 생략했었는데 현재 나의 루틴과 많이 겹쳐 생략한 이유도 있었다.

누구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꼭 지킨 나만의 루틴이라는 것들이 있다.

귀찮다고 대충하지 말고 '항상' 단정하게 바르게 꾸미는 것을 시작으로 경어체를 사용하는 등의 예의를 항상 갖추는 등등 나만의 루틴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흠 잡히지 않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좋은 감각을 키울 수 있다고하니 이를 잘 유지하면서 부족한 점은 더 채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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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미술관



'자주'라고 표현하기보단 '종종'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단골 미술관이라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어떤 전시회가 열리느냐에 따라서 다르긴한데 한가람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자주 가는 편이긴하다.

특히,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의 7-80%는 다 보는 편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은 예전에 자주 가긴 했었는데 이전에 비해 지금은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다.

대림 미술관과 디뮤지엄은 서너번 밖에 가보질 않아서 고민했는데 빈칸보단 나을 것 같아 끝 순위에 넣어보았다.


미술관 나들이가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팁을 좀 드리자면.

첫번째, 관심이 생기는, 재미있을 것 같은 전시회를 택하라.

전공자가 아닌 이상, 전시회에 대한 흥미가 없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수밖에 없으니 (전시회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흥미가 있으면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두번째, 도슨트를 활용하라.

전시회에 가기 전, 난 항상 도슨트의 시간을 체크하곤 한다.

그냥 보았을 때와 알고 보았을 때의 차이가 분명하게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도슨트가 말해주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나면, 작품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이해도 또한 높아진다.

그 속에서 자연스레 예술의 범위를 넘어 역사 공부까지 되니 막상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나면 그 흥미도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그렇게 관람을 마치고 나면 전시회의 굿즈들이 '날 사고싶지 않니?'하는 눈빛으로 유혹을 한다.

나같은 경우는 다른 것에는 관심 없고 오롯이 '엽서'와 '마그넷'만 소장한다.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작품 세 점 정도가 담긴 마그넷과 엽서를 구입해 소장하곤 하는데 이후 상자에서 가끔씩 꺼내보면 당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작품은 감상하고 싶은데 미술관 가는 것은 귀찮다하는 분들에게는 역시나 책을 추천한다.

요새는 다양한 주제, 작가를 토대로 만들어진 국내서적도 굉장히 많아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덧붙여, 특정 작가의 작품들은 외서를 추천한다. 솔직히 두껍고 무겁긴한데 그만큼 볼거리가 넘쳐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게 된다. (PINTEREST를 활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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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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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방송을 통해 '허지웅'이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후 방송을 통해 그가 아프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병을 이겨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출간된 작가 '허지웅'의 책을 또 읽게 되었다.

저자의 전작인 『나의 친애하는 적』,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출간되자마자 읽었었고, 이후 『버티는 삶에 관하여』가 리커버 나무 에디션으로 나왔을 때도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덤덤하지만 읽다보면 콕 콕 박히는 글들이 가득한데, 아마 그래서 그의 글을 좋아했나보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살고 싶다는 농담』은 투병 이후 자신의 변화된 감정과 생각들부터 故 김영애 배우분과 같은 실존인물과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그의 솔직한 생각을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거실에서 가족들이 TV를 보고있었다.

나도 모르게 TV로 시선이 향했는데 「나혼자산다」에서 허지웅 편이 나오고 있었다.

보자마자 '많이 좋아졌구나.'와 동시에 '많이 아팠었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쓴 제목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든다.

『살고 싶다는 농담』, 농담이 아니다. '나 (허지웅은) 살고 싶다.', 아니, '나 (허지웅은) 살 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당시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선 항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뒷전이고 자신의 병명을 SNS에 올리며 잘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허나 그런 생각은 그 때뿐이었다. 이후 모르핀도 소용없는 극심한 고통에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너무 오래되어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이다.

한 아이가 암 진단을 받고선 병원에서 항암중이었는데 밤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가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한다. 가고 싶다고, 본인을 제발 보내 달라고.

그걸 보는 나도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는데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까. 얼마나 아팠으면 아이가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그저 숙연해진다.

예전에 몸이 아파 응급실에 갔다가 우연히 한 환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기억에서 꺼내고 싶진 않아 중략한다.) 많이 아픈 환자였다.

그 당시, 내게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_'아, 아프다는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

아픔이라는 것이 어찌되었든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고통이기에 홀로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본인이 거부한다 할지라도 가장 필요한 것은 '기댈 수 있는 존재'이다.

아무리 삶은 혼자 개척해 나가는 삶이라지만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아프면 '누군가의 품'이 절실해진다.

당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저자는 그 누구에게 기대지도 않고 홀로 싸웠다고 한다. 아픔과 외로움 모든 것을 감내하며 말이다.

항암치료를 받던 도중에 한 간호사에게 '털모자'를 선물받았는데 그 때는 병원에서 다 주는 것이라 생각한 것도 있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제대로 고맙단 인사도 못했다고 하던데 그것이 참 후회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털모자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창피하다. 나는 왜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 그 털모자를 준비한 마음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것인지에 관해 나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죽음이라는 결론에만 몰두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결론 앞에 다른 것들은 한없이 사소한 소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즉, 결론에 사로잡히면 중요한 것들이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소중한 것들을 사소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하찮게 보아서도 안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이 결국 삶을 망치기 때문이다.


입원부터 퇴원까지 눕는 것이 병원 생활이기에 느껴지는 것은 천장과 바닥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노들섬을 지날 때면 항상 지나치며 보는 것이 한강대교에 새겨진 문구이다.

몸이 아프면 어떻게든 나으려고 한다는데 마음이 아프면 보이지 않기에 어떻게든 나으려고 하기는 커녕 방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방치된 마음은 결국 한계점에 이르면 자제력 또한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들이 이 문구를 읽으면 잘못된 마음이 과연 돌아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몸도 아프면 자연스레 마음도 아프기 마련이다.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필요한 치료제는 아마 '털어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털어놓지 못해 쌓이게 되고 그 쌓인 마음이 결국 터져 버려 아픈 것이기에 털어놓는 것만이 답인 것이다.

즉, 그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번 용기내어 '털어놓는' 것만이 해결로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그 첫 번째가 될 것이다.


다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어느 누가 '불행', '절망', '슬픔'을 바라겠는가.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은 결코 잘못된 생각이다.

그만큼 (나를 포함한) 우리네 삶은 남들처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나를 포함한) 우리만큼 초라하다.

나에게 닥친 불행의 인과관계를 되짚어봐도 그 또한 고통이고 슬픔이다. 망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찾을 수 없는 원인을 찾아가며 무언가를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하자.

그러면 다음에 불행과 마주했을 때 조금은 더 수월하게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그럴 때가 있다.

평소처럼 일어나고, 평소처럼 생활하고, 평소처럼 밥을 먹고, 평소처럼 잠을 자고.

그렇게 평소처럼 생활하다 어느 날, 문득 나의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혹은 (어떠한 일로 인해) 내게 닥친 불행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런 감정과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데 스스로 '탁' 잘라내지 않는 이상 하염없이 길어질 뿐이다.

그럴 땐, 생각을 멈추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그 혹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용기를 내보자. 사람이라는 대상이 힘들다면 책이라도 말이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꼭.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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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 모든 행위는 그 사람의 감각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즉, '좋은 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따로 학습하지는 않는다.

일과 생활 모두 내몰리는 느낌이 든다면 그 때, 우리는 꼭 재정비를 해야 한다.

지니고 있는 감각들을 마주하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으며 '나만의 감각'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면 어느새 나만의 감각이 만들어질 것이다.


붓을 잡기 전 붓펜을 먼저 쥐어보았는데 붓펜 또한 오랜만인지라

정자로 써야 할 글씨가 참 어색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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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8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