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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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방송을 통해 '허지웅'이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후 방송을 통해 그가 아프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병을 이겨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출간된 작가 '허지웅'의 책을 또 읽게 되었다.

저자의 전작인 『나의 친애하는 적』,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출간되자마자 읽었었고, 이후 『버티는 삶에 관하여』가 리커버 나무 에디션으로 나왔을 때도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덤덤하지만 읽다보면 콕 콕 박히는 글들이 가득한데, 아마 그래서 그의 글을 좋아했나보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살고 싶다는 농담』은 투병 이후 자신의 변화된 감정과 생각들부터 故 김영애 배우분과 같은 실존인물과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그의 솔직한 생각을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거실에서 가족들이 TV를 보고있었다.

나도 모르게 TV로 시선이 향했는데 「나혼자산다」에서 허지웅 편이 나오고 있었다.

보자마자 '많이 좋아졌구나.'와 동시에 '많이 아팠었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쓴 제목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든다.

『살고 싶다는 농담』, 농담이 아니다. '나 (허지웅은) 살고 싶다.', 아니, '나 (허지웅은) 살 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당시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선 항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뒷전이고 자신의 병명을 SNS에 올리며 잘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허나 그런 생각은 그 때뿐이었다. 이후 모르핀도 소용없는 극심한 고통에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너무 오래되어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이다.

한 아이가 암 진단을 받고선 병원에서 항암중이었는데 밤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가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한다. 가고 싶다고, 본인을 제발 보내 달라고.

그걸 보는 나도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는데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까. 얼마나 아팠으면 아이가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그저 숙연해진다.

예전에 몸이 아파 응급실에 갔다가 우연히 한 환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기억에서 꺼내고 싶진 않아 중략한다.) 많이 아픈 환자였다.

그 당시, 내게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_'아, 아프다는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

아픔이라는 것이 어찌되었든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고통이기에 홀로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본인이 거부한다 할지라도 가장 필요한 것은 '기댈 수 있는 존재'이다.

아무리 삶은 혼자 개척해 나가는 삶이라지만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아프면 '누군가의 품'이 절실해진다.

당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저자는 그 누구에게 기대지도 않고 홀로 싸웠다고 한다. 아픔과 외로움 모든 것을 감내하며 말이다.

항암치료를 받던 도중에 한 간호사에게 '털모자'를 선물받았는데 그 때는 병원에서 다 주는 것이라 생각한 것도 있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제대로 고맙단 인사도 못했다고 하던데 그것이 참 후회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털모자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창피하다. 나는 왜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 그 털모자를 준비한 마음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것인지에 관해 나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죽음이라는 결론에만 몰두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결론 앞에 다른 것들은 한없이 사소한 소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즉, 결론에 사로잡히면 중요한 것들이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소중한 것들을 사소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하찮게 보아서도 안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이 결국 삶을 망치기 때문이다.


입원부터 퇴원까지 눕는 것이 병원 생활이기에 느껴지는 것은 천장과 바닥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노들섬을 지날 때면 항상 지나치며 보는 것이 한강대교에 새겨진 문구이다.

몸이 아프면 어떻게든 나으려고 한다는데 마음이 아프면 보이지 않기에 어떻게든 나으려고 하기는 커녕 방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방치된 마음은 결국 한계점에 이르면 자제력 또한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들이 이 문구를 읽으면 잘못된 마음이 과연 돌아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몸도 아프면 자연스레 마음도 아프기 마련이다.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필요한 치료제는 아마 '털어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털어놓지 못해 쌓이게 되고 그 쌓인 마음이 결국 터져 버려 아픈 것이기에 털어놓는 것만이 답인 것이다.

즉, 그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번 용기내어 '털어놓는' 것만이 해결로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그 첫 번째가 될 것이다.


다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어느 누가 '불행', '절망', '슬픔'을 바라겠는가.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은 결코 잘못된 생각이다.

그만큼 (나를 포함한) 우리네 삶은 남들처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나를 포함한) 우리만큼 초라하다.

나에게 닥친 불행의 인과관계를 되짚어봐도 그 또한 고통이고 슬픔이다. 망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찾을 수 없는 원인을 찾아가며 무언가를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하자.

그러면 다음에 불행과 마주했을 때 조금은 더 수월하게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그럴 때가 있다.

평소처럼 일어나고, 평소처럼 생활하고, 평소처럼 밥을 먹고, 평소처럼 잠을 자고.

그렇게 평소처럼 생활하다 어느 날, 문득 나의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혹은 (어떠한 일로 인해) 내게 닥친 불행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런 감정과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데 스스로 '탁' 잘라내지 않는 이상 하염없이 길어질 뿐이다.

그럴 땐, 생각을 멈추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그 혹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용기를 내보자. 사람이라는 대상이 힘들다면 책이라도 말이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꼭.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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