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심리학 1 - 내 마음 속 미로를 찾아가는 109가지 심리 이야기
박지영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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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심심풀이로 보는 심리학과 딱딱한 교과서적인 심리학 사이에 서 있는 가볍지만 결코 무시못할 책이라고 할까? 일상의 사례나, 재미있는 실험결과들을 보여주면서 심리학의 다양한 이론들을 펼치고 있다.

텔레마케팅의 설득 수법등을 읽어보면 자신의 경우에도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무릎을 치게 만든다. 더군다나 최근의 군훈련소 인분 사건이나, 이라크 포로학대 사건 등이 개인의 문제일 것인지, 구조적 문제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의 힌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재미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구조가 가져다주는 상황으로 몰고가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군훈련소의 모든 장교들이 인분사건과 같은 일을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포로 학대가 모든 곳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닐터이니 말이다. 물론 이런 현상을 일개 개인으로 돌려 마녀사냥하듯 개인을 악마화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구조와 개인에 대한 균형점을 찾아낼 필요는 분명 있다. 더더군다나 심리와 관련된 실험의 결과들에 대한 해석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고리 식이 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는 점에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책에서도 어떤 한 현상에 대해서는 가능한 설명이 그것이 다른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그때 그때 달라요> 같은 코미디가 될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 같다. 무임승차의 가능성을 무시한 125쪽의 예시나, 자극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는 전제의 변경필요성 등등 곳곳에 허점이 가득하다. 특히 170쪽의 선택의 폭이 많으면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상품에 대한 구매자로서의 선택에 있어서는 설명가능할뿐더러, 그것을 이용한 상품의 다양화를 어느 선까지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다양성이나 문화의 다양성의 문제까지 이러한 심리적 경향을 대입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인간의 심리가 그러하더라도 인간의 의지로 이러한 심리적 상황을 극복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국적자본이나 제국주의적 사고가 깃들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을 인간의 심리적 경향이 방패막이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심리를 밝히는 심리학이라는 것이 으례 인간은 그런 상황에서 그럴수밖에 없다는 체념적 생각을 가져온다거나, 잘못된 것에 대한 변명거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구조적인 상황의 잘못을 파악하고, 그 상황 자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점은 물론 살려야하겠지만, 애시당초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라는 체념의 상황으로 몰고가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인간의 의지로 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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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라고 내려온 집. 나이 먹은 아들을 반기는 어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밝다. 모든 것을 알릴 수 없는 아들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걱정만 앞선다. 물론 이 걱정은 순전히 아들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 명절때면 꼭 그 걱정의 무게를 더하는 결혼앞에서 아들은 변명거리만을 찾는다.

함박웃음 속에서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한숨소리를 뒤로 하고 욕실로 들어간다. 그 때 문득 눈에 들어온 빨래판. 원래 4각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모서리가 닳고 닳아 둥글어지고 얇아진 모습에 시선을 뺏긴다. 문득 세탁기의 텃세에 제 할일 못하고 서 있던 나의 자취집 빨래판의 잘 생긴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빨래판이 닳을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았을까? 어머니의 힘에 실린 손길이 몇천번 아니 몇십만번 거쳐야지만 비로소 그 모습을 갖췄을 빨래판을 대하니, 순간 웬지 모를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그렇게 닳아빠진 빨래판만큼이나 어머니의 뼈도 닳아빠져나갔을 것이다. 손목 어깨 허리의 뼈가 욱신거릴 때까지 계속되었을 그 몸짓이 눈에 선하다. 세탁기보다는 직접 손으로 빨아서 건네주신 속옷을 입으면서 어머니의 체온을 느껴본다.

고향이란 아마 이런 것인가보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해본다. 그저 명절이면 어김없이 와야만 했던, 지겹고 힘든 고속도로 속의 차안이 먼저 떠오르곤 했었던 고향이었지만, 이젠 아마도 빨래판이 떠오를듯 싶다. 집안 곳곳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없는 곳. 이제 고향은 나에게 어머니의 손때로 다가온다. 닳아버린 뼈를 원상태로 돌릴 순 없겠지만 어머니의 마음 만큼은 조금이라도 닳지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해져 온다. 고향에서 아무 생각없이 푹 쉬다 마침내 서울로 돌아와 빨래판을 물끄러미 한번 쳐다본다. 고놈 참 허여니 뺀질맞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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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2-1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또...짠해지고...
하루살이님 서재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와야 한다니까요....정말...

하루살이 2005-02-14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한 살 더 먹어가니 눈물 한 방울 더 늡니다...
 
중국에서 온 편지 - 작가정신 소설향 10 작가정신 소설향 10
장정일 지음 / 작가정신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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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소설(장정일은 그저 읽을거리라고 말하지만)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나온 단 2단락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가 아버지의 미움을 받아 변방으로 쫓겨났다는 사실과, 자결을 강요받는 아버지의 유서로 인해 목숨을 끊는 장면. 이 두줄의 서술이 한권의 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책의 말미 비평을 쓴 이의 말마따나 '검은 구멍'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잘 메꿔준 듯하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구멍. 숱한 이야기들이 쌓여 있는 가운데서도 홀로 뻥 뚫린 채 나를 기다린 구멍. 오직 나만이 채울 수 있는 구멍. 주위가 밝으면 밝을수록 더욱 어두워지는 구멍. 그 구멍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는 역사소설을 쓸 수 없다.(100쪽)

이러한 구멍메우기는 김훈의 소설<현의 노래>에서도 보인다. 삼국사기였는지 삼국유사였는지 모르겠으나 우륵이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도망쳤다는 단 몇줄의 기록만으로 소설은 탄생한 것이다. 이런 구멍메우기는 역사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이런 구멍 메우기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 제격이 아닌가 싶다. <뇌>나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 보여주는 과학적 사실과 이론들 사이의 구멍을 현란하게 메우는 그의 소설들은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구멍 메우기는 먼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가 없는 구멍메우기란 쓸데없는 짓거리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재미가 없다면 구멍메우기는 땀만 흘리고 마는 허사로 끝난다. 차라리 메우지 않은 구멍속으로 사람들이 빠져, 끝간데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남겨져 있는 것이, 고갈되지 않는 상상의 샘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재미란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구멍을 메워야지 재미가 있을 것인가? 이것 또한 사람마다 다를터이니 개인적인 재미를 말하련다. 구멍은 분명 현대의 삽으로 메워져야 한다. 그 구멍이 과거든 미래든 현재의 흙을 파서 현재의 삽으로 메워지지 않는다면 구멍은 그저 구멍으로 남는다. 구멍이 지금의 나에게 자극을 가져다 주어 뒤통수를 후려 갈기거나, 멱살을 잡아채지 않는다면 시간낭비다. 현재의 삽이 아니라면, 생전 듣도보도 못한 삽으로 메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중국에서 온 편지>는 재미있다.

어떤 평론가의 말마따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이기를 거부하고 여자로 변신해버린다는 발상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살부가 아닌 성적 변모라니...

권력, 힘을 빼앗길까봐 자식을 변방으로 내쫓은, 하늘 아래 유일한 태양을 자처하는 진시황. 그리고 힘없이 쫓겨난 아들 부소. 아들은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대들어봤자 꺾일게 뻔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모를 어떻게 견딜것인가? 부소는 여자이기를 선택한다. 힘의 싸움이라는 전제를 없애버린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힘을 누리소서. 나는 당신의 권력을 조금만큼이라도 찬탈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나의 목숨을 그대로 놔 주시구려. 당신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구려. 그러나 그런 여자되기는 아버지를 향해 있어야 했다. 진짜 아버지가 아닌 가짜 아버지 몽염 장군을 향함으로써 기어코 그는 힘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제를 뒤집었으나 결과를 뒤집진 못했다. 그것은 만리장성 안이라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진시황의 세상에 여전히 발을 딛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전제가 뒤집혀진 새로운 세상 속에서 살았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사랑을 이루지 않았을까? 양성자로 변했어도 그 또는 그녀는 여전히 진시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진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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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펌]내 인생을 바꿀 한 장의 누드사진



위 사진의 주인공은 랜스 암스트롱이라는 자전거 선수입니다.
부시(-_ㅡ;)가 주지사를 했던 텍사스주에서 태어난 미국 선수입니다.
집이 그리 풍족하지 않아 몸뚱이 하나로 돈을 벌기위해 철인3종 경기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사이클에 전념하면서, 9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등 촉망받는 엘리트선수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6년에 고환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이미 암세포가 온 몸에, 심지어 뇌에까지, 퍼진 말기상태였지요. 생존률 3%라는 극악한 진단까지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뇌수술을 비롯한 종양절제술과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암 말기에 이르러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시인 김남주는 "내 고환을 끊어내 바위에 놓고 짓이겨 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표현을 했겠습니까. 그래서 병원에서는 말기암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마약류의 약물을 이용하기도 한다더군요. 뿐만 아니라 항암치료에 수반되는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견디기 힘들다는데 암스트롱은 그런 모든 고통을 의연히 이겨내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자전거 핸들을 붙잡고 세계 최고 권위의 프랑스전역자전거일주대회(뚜르 데 프랑스)에 도전합니다. 그 대회는 자전거선수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면서 또 가장 영광스러워 하는대회입니다. 몇 주에 걸쳐 자전거 하나로 프랑스 전역을 질주해야하는 죽음의 레이스.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간당간당해 보이던 랜스암스트롱이 그 위대한 대회에 도전하는 모습을 본 주치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고 인터뷰를 했을 정도입니다.
 
결국 랜스암스트롱은 1999년 대회에서 우승을 한 이래, 지난해 2003년까지 내리 우승함으로써 대회 5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얀 율리히라는 아름다운 2인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대단하고 대단하고 또 대단합니다.

 
 
--- 정말 그렇군요. 그의 굽은 등은 안장 위의 시간을 대변해주는 듯 합니다. 바람의 저항을 피해 진화한것처럼 변한 모습. 저의 몸의 어떤 부분이 과연 저렇게 변모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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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2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02-0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워낙 인색하다보니... 펑펑 퍼오고, 팡팡 추천하고 그래야 할텐데. 돈드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인심 쓰는게 어려워서야. 쯧쯧.
 
오체 불만족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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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몇 년 전 TV에서 화제가 됐던, 사지가 없는 청년의 인생기다. 이미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순전히 다치바나 다카시 때문이다. 그가 픽션보다 재미있는 논픽션을 말하면서 언급되어졌던 책들 중 한국에 소개되어진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책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성격의 것인지가 궁금해서 읽게됐다. 그리고 읽고 난 느낌은 그래도 소설이 더 재미있지 않나?라는 생각??!! (난 지적 호기심보다는 쾌감에 대한 욕구가 더 큰가 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구김살없이 자라난 모습, 그리고 그를 보통사람처럼 키워낸 부모님들, 정말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사지가 없는 오토다케를 평범한 아이처럼 대하는 어머니는 능청맞다기 보다는 그로 인해 오히려 눈물을 자극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 눈물뿐이던가? 느닷없는 폭소를 터뜨리게도 만드는 그 가족들의 낙천성에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장애는 불편하다. 그러나 불행하지는 않다라는 헬렌 켈러의 말대로 오토다케의 삶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불편하면서도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모든 나라가 다 똑같은 상황 속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토다케가 미국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불편함마저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그의 말처럼 장애인을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는 무의식의 습관을 버려야 가능하다.

먼저 건물이나 운송수단이 장애인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애시당초 만들어졌다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 휠체어를 옮겨주어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어떤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겠는가? (사회 내 직업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일터이다.) 어떤 동정이 끼어들겠는가? 또 하나,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조금 다른 것에 당황해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난처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저 구성원의 일부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의 철저한 교육을 바탕으로 했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오토다케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다들 마음씨가 따뜻했던 모양이다. 그가 장애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성인이 다 될 무렵에서야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현실 속이라기 보다는 동화 속 상상의 세계에서 살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그가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선생님의 순수한 배려가 그를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주었다.

사회라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그림자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힘없는 소수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우리의 곁에 세워두기 위해선 오토다케를 둘러싼 사람들이 보여주듯이 살아가면 될 것이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동정심이 아닌 것이다. 나와 조금 다른 것에 대한 포용의 능력은 장애와 편견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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