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할 땐 사랑한다고 말하라는 <동사서독>을 지나, 사랑도 통조림처럼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라는 <중경삼림>을 넘어, 이제는 사랑은 타이밍이라 말하며 왕가위는 <2046>을 내놓았다. 개인적으론 전작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운 영화였다. 그러나 그의 장점이자 단점인 너무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음악으로 인해, 초반 넋을 잃고, 이야기를 쫓아가지 못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이별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왜 헤어져야 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채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에 온 마음을 뺏기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랑의 불가능성을 얼핏 본다. 이렇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타이밍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왕가위의 설명은 일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내가 너를 향해 있을 때, 너도 나를 향할 수 있는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니 사랑을 완성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운명이 도와줬다는 것으로 밖엔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린 왜 어긋나는 시간 속에서 타인을 향해 마음을 줄 수밖에 없을까? 그것 또한 운명이려니.... 그렇다면 이 운명의 가혹함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왕가위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답을 내놓는다. 친절하게도. 내가 계속해서 상대를 향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상대도 나에게 얼굴을 돌릴 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1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사랑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순간도 나에게도 얼굴을 돌리지 않는 상대라면...

2. 이번 영화 또한 화면만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왕가위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화면의 중앙에 자리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주인공들. 도대체 이들은 왜 기울어져 있을까? 생각해보다 이내 그 답을 바로 그 화면들 속에서 찾아본다. 중앙에 자리잡고 있지 않다는 것은 혼자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와 상대방이 함께 있을때 나와 상대는 화면의 맞은편에 서 있어야 한다. 따라서 비록 화면 속에서 주인공 혼자 서 있을때조차 그 맞은편엔 항상 상대방이 있는 것과 같다. 누군가 그 화면 속으로 들어왔다가 또 그 화면 밖으로 나간다는 것. 사랑이 오고 감이 그 한구석에 표현되어지고 있는 듯이 보여진다. 쓸쓸하고 허전한 듯한 느낌도 이내 꽉 채워질 것이라는 조그만 희망을 품고 있어 오히려 따뜻해보이기도 한다. 빈자리, 언젠가는 채워질 그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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