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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자서전에 가까운 것 같다. 릴리 프랭키로 불리는 일본인 나카가와 마사야의 삶이 그려져 있다.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작사 작곡가이며 방송인, 구성 연출가, 포토그래퍼 등등 그의 이력엔 끝이 없다.
어머니와 자주 이사를 하며 살았던 마사야에게 아버지는 간혹 찾아오는 사람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는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비로서 조금씩 알게 된다. 아들을 위해 한없는 사랑을 퍼주은 어머니의 모습은 눈물겹다. 먹을 것 입을 것 하나만큼은 집안이 아무리 어려워도 풍족하게 해주었던 어머니. 아버지는 자신의 스타일대로만 산다. 그것도 가끔씩 찾아오면서. 우리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은 실상 아주 조그만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소설은 그래서 웃음과 울음이 함께 한다. 어영부영 결정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진학한 대학. 전공 또한 우연에 가깝게 선택된다. 미술을 전공하고나서 딱히 할 일도 없어 5년 가까이 백수로 전전. 하지만 점차 일거리를 얻게 되고 경제적으로도 자리를 잡아간다.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도쿄에서 살아가는 마사야.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그릇을 꼭 먹여보낸다. 유쾌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어머니. 손님들은 아들보다도 어머니 때문에 집으로 찾아오곤 한다. 이런 어머니가 암에 걸리고 눈물겨운 투병생활을 하게된다.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전달하는 이 부분을 읽다보면 더이상 진도가 나가기 힘들다. 어머니가 돌아가고나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된 마사야.
세상은 빙글빙글. 내 삶도 빙글빙글. 사랑도 빙글빙글. 삶과 죽음도 빙글빙글. 원심력에 의해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으려는 발악. 끝까지 버텨내다 결국엔 빙글빙글 도는 세상. 그래도 빙글빙글 즐거운 곳. 책을 읽으면 눈물이 핑, 웃음이 활짝 핀다. 내 정신도 빙글빙글이다.
아이들은 유쾌한 범죄자들이다. 모럴보다 즐거움이 항상 앞선다. 하지만 완전범죄를 관철해낼 만한 지혜는 없었다. ...개구리 꿈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면 나쁜 짓을 하는 게 점점 무서워진다. (38쪽)
성장한다는 건 그런 걸게다. 즐거움이 두려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가난은 비교할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띤다. 부자가 없으니 가난뱅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쿄의 엄청난 부자처럼 유독 두드러진 존재만 없다면, 그 다음은 죄다 도토리 키재기 같은 것이어서 누구든 먹고 살기 힘든 정도가 아닌 한, 필요한 것만 채워지면 그리 가난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47쪽)
상대적 박탈감이야말로 가장 큰 상실감이다. 빈부격차가 커져가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에서 자신은 위로 올라갈 것이라는 희망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 살아가는 것이 더 힘겹다. 그 격차를 줄여보는 삶을 꿈꾸는 것은 몽상에 불과한 것인가?
어린 아이의 하루와 한 해는 농밀하다. .. 그들에게는 그냥 어쩌다보니 지나가는 시간 같은 건 없다.... 어른의 하루와 한 해는 덤덤하다. 단선 선로처럼 앞뒤로 오락가락하다가 떠민 것처럼 휩쓸려간다. ... 순응성은 떨어지고 뒤를 자꾸 돌아보고 과거를 좀체 끊지 못하고 광채를 추구하는 눈동자는 흐려지고 변화는 좋아하지 않고 멈춰서고 변화의 빛이라고는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지나가는 시간이 덧없이 흘러간다. (81쪽)
또하루 지나가고 있다. 그냥 어쩌다보니 지나간다. 어린 아이였던 시절, 농밀한 하루가 가능했던가 돌아본다. 그때처럼 알찬 하루가 주어질까, 아니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미 노쇠해졌을까
이제 겨우 뛰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가 닿을 곳, 그 끝에 과연 행복이 있을것인가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능력이 성공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는 할수 없지 않은가.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이미 끝장이다....결국 파랑새는 내 집 새장속에 있다. 이법칙에서 인간은 도망칠 수 없는 것일까?(86쪽)
파랑새만을 원하는 사람 속에서 불새 한마리 원한다면 세상은 또 행복으로 가지 못하는가? 가끔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무엇이 알 수 없어진다는 작가의 고백은 나의 고백과 맞닿아있다.
꿈을 만들어낸 방법은 대략 저기 저 텔레비전이나 잡지 책에 자신의 너절한 욕망을 대충 갖다 붙인 것뿐. ..도쿄에 올라가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내 미래가 활짝 열릴 거라고, 그러면서 기실은 도망쳐온 것뿐이다.(161쪽)
내가 도대체 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뭘 찾아 이곳에 온 것이지? 모른다. 그냥 도망쳐왔을 뿐인지도 모른다.
취직 결혼 법률 도덕. 귀찮고 번거로운 약속들. 금을 그어 갈라놓은 룰. 자유는 그런 범속한 곳에서 찾아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자유의 냄새를 풍풍 풍기는 곳에는 기실 자유 따위는 없다. 자유 비슷한 환상이 있을 뿐이다. (191쪽)
그래서 탈출하기보다는 이 자리에서, 묶여있다고 생각하는 이곳에서 자유를 갈구하고 찾아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탈출의 장소 또한 사슬은 있다. 현실은 살아있다는 것은 결코 완전한 자유를 주지 않는다.
인생, 항상 한 탕을 노리며 살아온 사람이 이제야 착실하게 쌓아가는 것에 승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들, 그걸 과연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더 먼 곳을 꿈꾸었기 때문에 비로소 그 희생에 존재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317쪽)
도대체 이건 무슨 소리인가.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 덕분에 착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인가.
좋은 집이라는 건 으리으리한 저택 같은 게 아니라항상 사람들이 찾아주는 집이라고...(377쪽)
수양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고요와 적막 속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무리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깨쳐가는게 더 소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혜는 시장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행복한 집이란 사람들로 시끌벅적 하는 곳이 맞을성 싶다.
사람의 마음이란 매 초마다 변화한다. 언뜻 말을 흘린 참에 뒤바뀌기도 한다. 굳게 결심했던 일도 때로는 흔들리고 번복하고 원래로 돌아가기도 하고, 늘 그런 일이 되풀이된다.(405쪽)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항상 행복은 흔들흔들 거린다. 그래도 바람이 잠잠해지면 마음도 잠잠해진다. 이때 행복은 저 깊숙히 감추었던 모습을 드러낸다. 간혹 그 행복을 보는 순간 입가엔 미소가 떠오를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어머니는 아들 앞에서 항상 웃음을 띄우려 했다. 어머니의 미소가 그립다면 당신은 그래도 행복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