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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Slumdog Millionair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모르는 것 빼놓고 다 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모르는 것 빼놓곤 다 아는거. 그래서 만약에 다 아는 문제만 퀴즈로 나온다면 물론 다 맞힐 것이다. 퀴즈왕은 식은 죽 먹기인 셈.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줄인다면 퀴즈왕이 된 억세게 운 좋은 인도 빈민가 출신 청년의 우여곡절이라고 해야할까.
붐베이에서 자란 형제의 서로 다른 인생역정과 사랑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그 희비극의 결말이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인 동생 자말의 해피엔딩은 그야말로 영화가 제시한 퀴즈의 정답처럼 '영화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반면 형의 인생은 인도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는 자말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실은 형이 걸어간 길이야말로 또다른 영화보기의 한 방법일 수 있다.
퀴즈의 정답을 맞힐 수 있었던 것이 과거 자신이 겪었던 운명적 순간들과 얽혀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 과정 속에서 드러난 인도의 현실은 그야말로 참혹하다. 종교전쟁으로 죽음으로 내몰린 부모와 아이들을 구걸시키도록 만들기 위해 눈을 멀게하는 폭력배, 여자아이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남자들, 부동산 재벌이 된 악덕 조직폭력배 두목, 하층민에 대한 편견에 휩싸인 퀴즈 진행자와 경찰 등등.
자말과 함께 고난을 맛본 형은 소년가장이라는 위치가 주는 압박감에 자말과 다른 가치관으로 인생의 길을 선택한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애썼던 그가 한순간 동생마저 저버린 것은 그가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도덕심은 결국 그를 비극으로 몰고 간다.
영화는 형을 통해 현실에 적응하는 삶도 또는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삶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마치 로또 같은 한방만을 기대하는 행운만을 바랄 수밖에 없음을 동생을 통해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영화의 해피엔딩을 해피엔딩으로 보지 못하는 것도 병이다). 9000만 인도의 하층민들이 퀴즈왕에 열광한 것은 바로 그 이유때문일 것이다(세계 10대 재벌에 인도가 가장 많다. 그들은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부를 창출했다. 마치 적립한 돈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계속 퀴즈에 도전하는 자말처럼. 그러나 그 길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길은 아니다. 영화 속 형이 바로 방증이다).
벼락맞을 확률보다 낮아도 누군가는 벼락맞듯 행운을 거머쥔다. 우리는 그 행운이 나에게 떨어지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영화는 눈감고 싶은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유쾌하게 농담 한마디를 건네며 끝을 맺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왔고 아마 또 그렇게 살아갈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