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장기간 이어진 장마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정밀한 점검을 필요케 만드는 논쟁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또한 지금과 같은 집중호우와는 맞지 않을듯한 기존의 댐 방류 기준에 대한 문제점도 제시됐다. 


한편 이번 장마가 준 피해 중 상당부분은 산사태이다. 어떤 이들은 무분별한 태양광 사업이 산사태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태양광이 불러온 산사태는 채 1~2%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것은 산이 물을 머금은 후 내뱉을 시간적 여유도 없이 쏟아진 비일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이번 장맛비가 준 피해 중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황톳물이다. 재난방송에 비쳐진 물줄기들은 죄다 누런빛이다. 빗물에 흙이 쓸려간 것이다. 워낙 많은 비가 쏟아졌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흙 1cm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100~250년 정도가 걸린다. 전국 곳곳의 황톳물은 수백년의 세월을 걷어간 것이다. 


황톳물의 주된 원인은 맨땅이다. 벌거벗은 땅은 물에 쉽게 쓸려간다. 벌목한 산과 갈아버린 밭의 맨흙들은 비와 바람에 취약하다. 고대문명 몰락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선 중에는 무분별한 개간으로 인한 겉흙의 소실로 식량이 부족해진 것을 드는 주장도 있다. 흙은 맨살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생명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흙이지만 정작 흙을 살리고 보호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황톳물 속 떠내려간 흙이 안타깝다. 흙없이 생명이, 인간이 살아갈 수 있을까. 물 속에서 흙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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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도 아이가 있나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극. 심오한 철학이나 거창한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을 묵직하게 건드린다. 올해 본 영화중 단연 탑3에 꼽을 수 있는 영화. 


2. 마약 카르텔인 산토스 가문의 둘째 아들 후안. 형 대신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가문과는 거리를 두고, 평범하게 살고자 한다. 하지만 딸의 첫 성찬식을 위해 가석방된 날, 뺑소니 사고로 딸을 잃는다. 폭력과 거리를 두려했던 후안은 딸의 복수를 위해 총을 든다. 과연 뺑소니범은 누구인가?


3. 엇갈린 목격자의 증언들. 경찰에게 말한 목격자가 지목한 범인과 같은 동네에 사는 주민이 후안에게 넌지시 알려준 범인이 다르다. 경찰이 쫓던 범인은 차 안에서 죽은채 발견이 됐다. 하지만 후안은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로 범인일까? 영화가 주는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4. 후안의 딸은 이렇게 묻는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에요? 나쁜 사람이에요?"

 "어른은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땐 책임을 져야한단다" "나쁜일을 했으면 미안하다고 해야죠" 그렇다. 어른은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내뱉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들었다면 후안은 처절한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안함도 표현되어져야 한다. 


5. 영화 [아디오스]의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것은 모성애나 부성애와 같은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악의 구렁텅이에도 빠질 수 있고, 목숨마저도 내놓을 수 있다.라고 영화는 말한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 꼭 이런것만은 아니다. 현실 속에서는 아이를 내팽개치고 책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부모의 헌신이 동력이 되어 영화가 진행되는 모습은 마음 저 깊이 울림을 준다.


6. 딸이 죽고나서 흘러나오는 음악 Rosalía canta가 부르는  'Me quedo contigo'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귓가에 맴돈다. 유튜브를 뒤져서 이 음악을 다시 들을 정도였다. 개인적 취향이긴 하지만 영화[아디오스]를 본다면 스페인 영화와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7. [아디오스]는 한국어로 "잘 가"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영화 마지막의 자막은 딸을 보내는 진혼시라 할 수 있다. "천국에 머물렴 지옥을 떨쳐버리고 천사가 된 너를 새가 된다면 볼 수 있을까"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영화 자체가 죽은 딸을 떠나보내는 진혼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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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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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인 빌 브라이슨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나를 부르는 숲]이었다.이 책은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맥 트래킹에 도전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며 그의 유머러스함과 삶을 바라보는 경쾌한 시선에 감탄했다. 책을 읽는 도중 피식피식 웃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고 저자의 탐구정신에 놀랐다. 사적 기록뿐만 아니라 지구의 역사라는 통합적 지식 분야에서도 그의 문체는 탁월하게 빛났다. 


2. [바디 우리 몸 안내서]도 그랬다. 우리 몸에 대한 기존의 지식들을 섭렵하고, 최전방에 서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 인터뷰해서 최신의 정보까지 통합한다. 여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에피소드까지 첨가했다. 새로운 발견이 어떤 우연으로 탄생했는지, 진정 노벨상을 받아야 할 인물이 어떻게 잊혀졌는지 등의 우리 몸을 탐구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물론 이런 이야기 속에서 빛나는 건 그의 유머다. 


3. [바디]를 읽게 되면 우리가 참 우리 몸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을 알게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과 함께, 그 알려진 지식 조차도 우리 몸의 극히 일부분임에 놀라게 된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니 함부로 우리 몸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것(사람, 지식)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4. [바디]가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은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차원이 아니다. 생각의 근원이 되는 감각의 차원에서부터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그 한 예가 바로 '안드로스테론'이다. 지구상 모든 인간의 1/3 정도는 이 호르몬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다른 1/3은 달콤하게 느끼고, 나머지 1/3은 역겹게 느낀다고 한다. 같은 호르몬에 달리 느끼는 사람들. 그러니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타인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우리 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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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르제프 지역에서 벌어진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투를 다룬 영화. 제정러시아에서 소비에트러시아(소련)로 정권의 성격이 바뀐지 채 30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전하게된 인민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또한 화려한 그래픽은 없지만 박진감 넘치는 전투신이 몰입감을 선사한다.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강추. 


2. 초반 전투씬은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쟁의 배경이 해변가가 아닌 설원이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22년전의 영화가 아직도 전쟁영화 전투씬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1942:언노운배틀]의 전투씬은 러시아 설원을 배경으로 다소 굼뜰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기위해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더욱 드러내준다.


3.[1942:언노운배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전령병은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를 연상시킨다. 전쟁 속에서도 쾌활함을 잃지 않는다. 더군다나 영화 중반부 이 전령병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병사들간의 갈등이 생긴다. 갈등의 발생과 해결 과정 속에서 사람에 대한 편견 또는 직업이 주는 편견의 폭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4. 영화 중반부 독일은 소련군의 머리위로 삐라를 뿌린다.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약속과 통행증이다. 전투의 와중에 감찰의 임무를 띤 장교가 나타나 삐라를 지닌 장병들을 색출한다. 이 장교는 오직 나라와 법에 충실할 뿐이다. 고아로 자라 주위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지낸 장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가 전쟁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에 눈을 뜨게 되는지도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5.[1942:언노운배틀]의 전체적인 느낌은 마치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실제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치러진 르제프 전투에서는 150만명의 소련 병사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승리를 가져왔다. 영화는 영웅이 아니지만 전쟁의 승리를 위해 죽어야만 했던 병사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병사들의 군상은 러시아 소설 속 인물들처럼 다가온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인간성을 짓밟는 전쟁 속에서도 지켜질 수 있는 인간미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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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장맛비에 풀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밭에는 들어갈 생각도 않는다. 다만 진입로에 돌을 깔아놓은 곳에서조차 풀이 허리춤까지 자라올라 비가 잠깐 잠깐 멈출 때 풀을 뽑고 있다. 


풀도 어렸을 적에 뽑는게 편하다. 풀이 자라 뿌리가 깊게 박히기 시작하면 두 손으로 잡아당겨도 좀처럼 뽑히지 않는다. 무릎과 허리에 반동을 써가며 잡아채도 꿈쩍않는 풀들도 있다. 


습관이라는 것도 그렇다. 습관이 형성되는 초기엔 조금만 노력해도 바꿀 수가 있다. 하지만 습관이 굳어지기 시작하면 좀처럼 바꾸는 게 쉽지않다. 소위 까르마라고 하는 업도 그렇다.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진 것인만큼 쉽게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풀은 잡아채고 잡아채면 결국은 뽑힌다. 정 안되면 호미라도 동원하면 된다. 굳어진 습관이나 업도 그렇다. 영 바뀔것 같지 않아보여도,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하면 결국엔 바뀌기 마련이다. 다만 끊임없이 행한다는 것이 어려울 따름이다. 이것또한 스스로의 결의가 중요하다. 마지못해, 강요에 의해서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어 그만두기 마련이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마음을 낸다면, 결국은 변하는 것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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