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 라즈니쉬의 강연 중에 나오는 우화 하나.

한 남자가 자동차를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고 있다. 그때 뒤따라온 경찰 오토바이. 자동차를 멈추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자동차와 나란히 서게 됐을 때 땅에 발을 내딛다 그만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이유는. 오토바이가 정지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속한 자동차와 엎치락 뒤치락 하다 둘이 속도가 같아지자 순간 정지한 것이라 생각한 것.

그렇다면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은? 상대적 비교에서 벗어나자는 거다.

그런데 상대적 비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흔히들 부부싸움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것으로 옆집과의 비교를 꼽기도 한다. 뭐 부부싸움뿐이랴. 오죽 했으면 엄친아가 등장하겠는가. 

흔히들 자신에 대한 평가는 과하기 마련이고 타인에 대한 평가는 과소하게 된다. 이런 평가가 과거로 흘러가면 "왕년에" 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고 미래로 향한다면 "마음만 먹는다면" 이라는 단어를 동원한다. 이것도 일종의 남과 비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려나. 어쨌든 이런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타인에 대한 과소평가와 이루어져 헛된 꿈을 꾸게 만들기도 한다. 이때 주위에서 쏟아지는 말 한마디가 '눈높이'다. "넌 눈이 너무 높아" 말이다.

타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그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모아 이리저리 점검해 보는데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평가들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여기서 또 삐딱하게 등장하는 것이 소위 '뒷담화' 아니던가. 그리고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냐에 따라 평가 또한 시시각각 변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 평가를 듣고 있는 당사자에 대한 이해 또는 평가에 따라서 의도가 개입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타인의 평가를 새겨 들어야 하는 것은 내 스스로의 평가는 대부분 과대 포장 됐거나 과소폄하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그래서 너와 나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가 된 순간 상대적 비교는 어디에서나 튀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상대적 비교가 한없이 늘어나게 된다면 조금은 상대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끊임없이 부딪쳐 소통하는 것만이 그나마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지지 않는 비결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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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맘마미아>는 참 유쾌하다. 소피는 자신의 결혼식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우연히 보게 된 어머니의 일기장을 통해서 자신의 아버지가 세 명 중 한 명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피는 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이들을 직접 보면 자신의 아버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서. 이 세 명의 남자가 도착하고 나서 어머니와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그리고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를 <아바>의 노래로 이어간다.

영화의 메시지는 이런 해프닝과는 무관하게 소피가 자아를 찾아 보금자리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간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 메시지 이외에도 관객의 마음을 슬프게 하면서도 흡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랑과 소유에 대한 관계다.

<the winner takes it all> 사랑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짝사랑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사랑을 얻어야지만 비로소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승자가 다 갖는 거에요. 패자는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죠. 승리의 옆에서.

승자가 다 가지는 거에요. 패자는 몰락해야 하는 것. 그건 간단하고 명백한 거죠.

게임은 다시 시작됩니다. 연인이든 친구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승자가 모든 걸 갖게 되어 있는걸요.

정말 사랑은 물론 이 사회도 모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의외의 일이 일어난다. 세 명의 남자가 모두 1/3의 아빠, 1/3의 사랑이라도 갖겠다고 나선다. (실은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은 유전자 입장에선 최상은 아니라하더라도 차상은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유아살해인데 자신의 자식일지 모른다는 상황은 이 유아살해를 쉽게 일어나지 못하게 해준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선 이런 상황이 아내의 자발적 도발로 일어난다.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 보면 그녀 혼자만이 승자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사랑게임은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그런데 사랑은 정말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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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8-11-09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좋았지요?
맘 편하고 아주 유쾌하게 봤어요. 전 영화본후 한참을 이 영화속에서 살았다지요..

하루살이 2008-11-1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를 흥얼거리면서요 ^^
귓가에 노랫가락이 한동안 머뭅니다
 



KBS2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엔 가족이 없다. 송혜교도 현빈도 혼자 산다. 그들의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서울 토박이일듯 한데 가족과 함께 사는 것 같진 않다. 드라마 속에서 그들이 대화하는 상대에서 가족은 빠져 있다.

그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라는 조직과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는 연인들간의 관계로만 읽혀진다. 물론 이 조직생활과 연애생활은 무척 닮아 있다. 1회와 2회에서 보여진 적과 아군의 경계, 권력다툼은 사회를 살아갈 때도 사랑을 키워갈 때도 부닥쳐야 하는 문제들이다. 모든걸 의연하게 대처할듯한 현빈에게도, 천방지축 뛰어다닐듯한 송혜교에게도 문제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그들의 대처 또한 시시각각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사는게 그렇게 힘든 거라고. 또는 반대로 이 세상이 그렇게 진중하게 살아갈 만한 것이냐고.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 가족이 없다는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바로 그게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일련지도 모른다. 하나만 낳아져 자란 이들에게도 그렇지만 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그렇다. 그들이 날마다 대하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답도 해답도 알지 못하는 인생살이에 나만의 답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답대로 살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리워진다. 비록 외롭고 고달퍼 눈물을 흘릴지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세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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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신령님이라 불리는 할아버지는 꿈을 통해 미래를 예지한다. 그는 한때 유행했던 볼링이 다시 부활할 것을 믿으며 남은 여생을 보낸다. 그가 뱉어내는 말은 삶의 지혜가 번뜩이는데 그것은 모두 볼링의 경험을 통해 쌓아온 것이다.

볼링을 할 때 도랑으르 빠지라고 굴리는 놈은 없어.
스트라이크를 노리고 굴려야 게임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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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운데로 굴리기보다는
조금은 빗나가게 굴려야 스트라이크가 될 확률이 높아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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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레인은 폭 1.06m 야
다들 스트라이크를 노리며 공을 던지지
누구나 공을 레인에 놓는 순간은 한가운데로 갈 줄 알지
하지만 맨 처음의 각도가 2,3도만 틀어지면...
18.28m의 핀까지 갔을 땐 엄청나게 방향이 틀어지거든.
헤드 핀에서 한쪽 끝까진 53센티미터
스트라이크와 골로 빠지는 공의 차이는 기껏해야 그 정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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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때리려고...
한가운데에 힘껏 던지면...
양 끝에 핀이 남아서, 빅 2라는 스플릿이 되지.
그렇게 되면 좀처럼 점수 내기가 힘들어.
한가운데에서 비껴 나갔다고 너무 걱정마,
약간 비끼는 정도가 좋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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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스트라이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간다면 모를까, 그래도 볼을 굴릴 때는 스트라이크를 꿈꾼다. 하지만 정확하게 가운데로 굴러간 볼은 스플릿이 된다. 스페어 처리라는 두번째 기회조차도 날려버릴 만큼 어려운 핀 두개가 남는 것이다.

스트라이크라는 욕심이 볼링공(인생)을 굴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한가운데라는 과욕은 스페어(도전)의 기회조차 날려버린다. 욕심과 과욕 또는 탐욕과의 구분점을 알 수 있다면 우린 즐거운 볼링(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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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를 따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 독서의 영향으로 세상을 저절로 시인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뜻인가요?

어느 날 보니 내가 시를 쓰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이게 시일까?’ 의심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시’냐고 어디 물어볼 데가 있나. 어쨌건 그때는 그냥 계속 써지더라고요. 나중에야 이게 ‘시’인가보다 싶어 다시 읽어보니까 감동이 ‘딱’ 생기는 거라…. 시는 자기 감동이 가장 중요해요. 그 후에 스스로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한 시를 골라 잡지사에 보냈더니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시집에 실어주겠다는 거예요.

Q 스스로 시에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잘사는 방법은 자기가 잘사는 길을 가는 것이겠죠. 그러고 보면 지금 이게 내가 잘사는 길이다 싶으니, 책 읽고 글 쓰는 재주가 어디에 숨어 있었겠죠? 문학을 배운 적은 없어요, 자연에서 배웠죠, 자연은 시시때때로 주는 말이 많아요.

Q ‘자연이 주는 말은 어떤 말’인지요?

음…. 뭐랄까. 젊을 때는 자연이 너무 많은 말을 주니까 헤맸어요. 이 시기가 자연과의 갈등 시기지. 소쩍새가 울어도 왜 우나 싶고, 물소리가 들려도 가슴을 흔들어 버리는 그런 시기야. 그러다가 자연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편안해지는 시기가 오는 거야. 그냥 소쩍새는 소쩍새로, 강은 강으로 보이고 들리는 거지. 이 순간이 아마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을 얻은 순간이었을 거야.

Q 선생님의 시는 비판을 하되 ‘익명 비판’을 한다는 폄훼도 있어요. 예를 들면 ‘몹쓸 정치인들’이라고 하지 ‘몹쓸 ○○○’와 같은 비판을 피해 서정성의 그림자 뒤에서 그저 박수만 받으려 한다는 거죠.

사사로운 비판은 시인의 몫이 아니야. 정치인들이 할 일이지. 나는 사적으로 좌·우, 진보·보수의 대립도 정권을 잡기 위해 자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해요. 시대착오적이지. 21세기적 사고는 문화·환경에 대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요구하는데, 시인의 역할은 고치고 대안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지. 거기까지가 시인의 역할이야.

Q.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통제 불능이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통제를 못하는 것은 위험한데, 파탄으로 가는 거지. 이미 위험한 길로 들어섰어. 새로운 시대정신이 도래했는데 우리만 외면하고 무시하고 짓밟고 있는 거지.

Q 새로운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생명정신이지. 예를 들면 기후 변화, 생태 순환, 환경 지향과 같은 거예요. 세계가 그렇게 변하는데 우리는 기껏 토목공사나 하려고 들지요. 나는 우리가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실체적 위협으로 느껴요.
Q 일생을 한 지역에서 일선 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임하셨는데, 우리의 교육은 어떻습니까.

심각한 문제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학생·부모·교사 간의 갈등은 조절하지 못할 만큼 커지고 파탄 상태지. 특히 교사 집단은 자기 개혁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어. 세상에 무심한 거지. 사회와 세계에 일어난 일에 가장 반응하지 않는 집단이 교사들이지. 교장 중심의 교육이 교사 집단을 가장 민주화가 안 된 후진 집단으로 만든 것이고. 시키는 대로 잘하는 교사들이 교육을 맡고 있으면 교육에 처방이 없어.

Q 교사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교육’, 그건 주입식 교육 같은 것인가요?

성과 중심이지, 성적 지상이고. 창의성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 요즘 학생들이 시험은 잘 봐. 혼자는 무지 똑똑해. 그러니 나중에 회사에서 일은 잘할 거야, 그런데 문제는 살 줄을 몰라. 인간이 없어. 더불어 살지를 못해. 그러면 인생이 없어지지. 지금 봐,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어. 전부 공부하러 가고 없어. 놀이터에도 없고 운동장에도 없고 전부 학원에만 있어.

Q 그렇다고 섬진강 아이들처럼 그런 아이들과 달리 자라면, 그 아이들의 미래는 행복해 질까요? 경쟁에서 도태될 게 뻔한데, 그래도 ‘행복하다, 행복하다’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 아이들은 자기 선택과는 무관하게 여기 있는 아이들이야. 사회에서 힘들겠지. 하지만 사람은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받는 영향이 있어. 어떤 선생으로부터 받았건 나름의 영향이 잠재돼 있을 테지. 경쟁하며 힘들더라도 혹은 경쟁에서 지더라도, 감성적인 부분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믿어.

Q 시상이 그냥 ‘딱’ 하고 떠오를 때만 시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쓰겠다고 생각하고 쓰면 말장난이지. 시란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형식으로 가져온 것이거든. 안 살아보면 쓸 수가 없어. 안 살아보고도 아주 시를 척척 쓰는 시인을 보면 신기해. 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 현상을 종합한 내용을 시의 형식으로 형상화해낼 따름이거든.

Q 그럼 시인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면을 보고, 그것을 시를 통해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건가요?

시는 세상을 종합하는 일이고, 시인이 시를 배우는 일이 세상을 배우는 일이에요. 시인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해석하지. 세상이 썩어도 시만 정신을 차리면 세상은 안 썩어. 그래서 시인이 현상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하는 게 가능하지. 그러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시인의 역할이 아니야. 철학자나 정치가가 할 일이지. 그런데 시인까지 안 본 것을 가지고 시를 쓰고, 시인이 대안을 내세우기 시작하고…. 그러고 다니면 큰일 나.

Q 선생님에게 독서는 어떤 의미입니까.

요즘은 독서하는 사람이 드물어. 특히 대학생들이 책을 놔 버렸어. 하지만 나중에는 책을 읽는 사람만 살아남을 거야. 책은 정신작용에 영향을 미쳐서 새로운 것을 찾도록 충동질하거든. 그러면 사람이 변하지. 독서로 정신이 풍요로우면 당당하고 자신만만해져. 비루해지거나 저자세일 필요가 없지.

[출처]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9> 교사 정년 퇴임한 시인 김용택|작성자 시골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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