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주는 풍경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 한겨울 보름달이 눈에 반사되는 풍경이나, 이곳저곳에 오색빛깔 야생화가 피는 봄, 억새와 단풍이 어우러지는 가을, 녹음과 시원한 계곡이 뿜어내는 여름의 풍경...

또 시간에 따라서는 어떤가. 특히 아침풍경은 안개와 구름이 빚어내는 모습이 장관이다. 구름바다에 빠져 수영을 하고 싶거나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는 다른 모습. 무릉도원 또는 선계.

내가 먹고 자고 마시는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마저도 산의 아침풍경을 대하면 그 그림자조차 사라지고 만다. 욕망 마저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새벽녘 오르기 시작한 산은 그냥 산이 아니게 된다. 나를 잊어버리게 하는 곳. 때론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무한한 충만감을 안겨준다.

비움의 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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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송 2018-02-0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이번에 홍천군청에서 산에대해 게시물을 올리려고하는데 공작산 사진을 너무 멋지게 찍으셔서요! 괜찮으시면 사진 한장 게시글에 함께 올릴수있을까요? 출처남기고 사용하겠습니다 ^*^ 답변 부탁드립니다! ㅎㅎ

하루살이 2018-02-10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출처만 꼭 남겨주세요.
 

야생 리얼리티 버라이어티 쇼가 인기다. 1박 2일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야생이란 무얼 말하는 걸까.

최근 여름 휴가라고 하기에는 조금 늦은 휴가를 보냈다. 강원도 홍천의 공작산 자연휴양림 펜션에서의 하룻밤. 통나무와 황토로 지은 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보일러가 아닌 장작을 때는 구들장과 함께 과수원에서 자라난 과수가 아닌 야생에서 농약없이 마음대로 자란 사과와 복숭아를 맛보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주인장 또한 이윤과 별 상관없이 생활하다 보니 모든게 자유로웠다.



 

특히 통나무집 주변에서 자라는 복숭아나무에서 잘 익은 복숭아를 따 먹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향기는 일반 복숭아와 사뭇 달랐다. 그 진한 향기에 행복감을 느낄 뿐이다. 야생의 향기란 이런 것일까.

보호받지 못한다는 조건에서 생존을 향한 몸부림은 경쟁이다. 죽는냐 사는냐의 문제다. 그 생존의 갈림길이 맛과 향기를 돋보이게 만든 걸까.

항상 탈출을 꿈꾸는 도시인으로서 살아가는 나란 존재에게 있어 야생의 삶은 로망이다. 이번 휴가에서 맛본 복숭아와 사과는 그 로망을 강하게 자극했다. 정돈되지 않은 삶. 자연에 휩쓸려 상황에 따라 대응해야 하는 삶. 그런 삶이 도시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 속도를 높이는 삶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대형마트에서 사 먹는 복숭아보다 훨씬 달콤하고 향긋한 야생의 복숭아가 그 대답을 대신 해준건 아닐까.



 

내 몸에서 야생의 향기가 날 수 있기를 바란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만의 향기를 남기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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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어린얘와 같아진다고 하던가. 이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가 함께 있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새 애니메이션 <언덕 위의 포뇨>는 그의 작품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을듯하다. 물론 그가 창조해내는 캐릭터들의 귀여움은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할 정도로 여전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 작품은 그야말로 인어공주의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동화같은 이야기다. 문명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비수보다는 따스한 가슴으로 보듬으려 한다. 그래서 깊은 슬픔이나 아픈 갈등은 무뎌지고 행복한 미소가 깊어진다.

그 행복한 미소는 오로지 사랑에 달렸다. 그런데 사랑을 할 때 그 대상은 무엇일까. 내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과연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일까.

꼬마 주인공 쇼스케는 포뇨를 사랑한다고 한다. 그 사랑은 포뇨의 정체와 전혀 상관없다. 우리의 사랑은 타인의 정체와 상관없이 사랑이 가능한 것일까. 미야자키 감독은 그럴 수 있는 세상만이 구원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 애니메이션은 동화같은 이야기가 돼 버렸다. 그리고 사랑은 또 하나의 신화가 되어 버린다.

정말 사랑은 그렇게 위대한 것인가. 사랑을 알지 못하기에 대답은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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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뚜껑을 연다. 깻잎이 숨죽여 있다 몸을 부풀린다. 넘쳐날듯 꽉 담긴 이 깻잎 반찬은 고향집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싸 주신거다.

고향집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엔 으레 한바탕 실갱이가 벌어진다. 배낭에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시려는 어머니와 무겁다며 하나라도 덜어내려는 아들 간에 웃지못할 상황이 반복된다. 특히 김치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아들이 내려오기 전 몇일동안 몸이 아플 정도로 김치를 담그신다. 하지만 꼭꼭 눌러 담아주신 김치는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한번은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집까지 돌아가는 동안 김치국물이 새 옷이 다 젖었다. 그리고 버스 안에 풍기는 김치냄새는 어떻게 해볼 도리조차 없다. 민망합에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 뿐이다. 고속버스나 기차안에선 또 어떤가. 김치냄새가 퍼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또 신경을 써야만 한다.

결국 아들은 어머니를 설득시켜 택배라는 좋은 제도를 이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도 미안하기는 매 한가지. 택배를 배달하는 배달원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어찌하랴. 그것이 다 사랑인 것을. 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실제론 온몸으로 감성으로 그닥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겨우 반찬통에 김치를 담아 냉장고에 집어 넣으면 1주일이 지나 김치국물이 새면서 냉장고 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냉장고 공간도 부족하고 반찬통도 부족하니 꽉꽉 담다보면 벌어지는 일이다. 넘친 김칫국물을 화장지로 훔치고 행주로 닦아내지만 여전히 흔적이 남는다. 이 흔적은 결국 가끔 찾아오는 어머니의 손길로 사라진다.

깻잎을 한 장 들어 밥을 싸 먹었다. 이제서야 어머니의 사랑을 잔뜩 먹고 있음을 느낀다. 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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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9-04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표현하긴요, 계속 냉장고에 시큼한 냄새 배게 하면서도 웃으며 맛있게 먹어주는거죠.

하루살이 2008-09-05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어머니 김치맛이 변하는 것에 어머니가 나이를 드신다는 것도 느낀답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죠. ^^
 



소오강호 주제곡  창해일성소  滄海一聲笑

滄 海 一 聲 笑  푸른파도에 한바탕 웃는다
滔 滔 兩 岸 潮  도도한 파도는 해안에 물결을 만들고
浮 沈 隨 浪 記 今 朝   물결따라 떴다 잠기며 아침을 맞네
滄 天 笑 紛 紛 世 上 滔  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잊는다
誰 負 誰 剩 出 天 知 曉  이긴자는 누구이며 진자는 누구인지 새벽 하늘은 알까
江 山 笑 煙 雨 遙  강산에 웃음으로 물안개를 맞는다
濤 浪 濤 盡 紅 塵 俗 事 知 多 少  파도와 풍랑이 다하고 인생은 늙어가니 세상사 알려고 않네
淸 風 笑 竟 惹 寂 寥  맑은 바람에 속세의 찌든 먼지를 모두 털어 버리니
豪 情 還 잠 一 襟 晩 照   호걸의 마음에 다시 지는 노을이 머문다
蒼 生 笑 不 再 寂 寥  만물은 웃기를 좋아하고 속세의 영예를 싫어하니
豪 情 仍 在 癡 癡 笑 笑   사나이도 그렇게 어리석고 어리석어 껄껄껄 웃는다 하하하~!

영화 동방불패는 소오강호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때 흘러나왔던 창해일성소라는 주제곡은 동방불패에서도 계속된다. 영화의 분위기는 이 노래가 다 말해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화산파 영호충(이연걸 분)은 사부의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며 사제들과 함께 강호를 떠나고자 한다. 강호를 떠나기 전 회포를 풀고자 만나려 했던 일월신교 임아행의 딸 임영영
(관지림 분)과는 끝내 사랑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대신 비급인 규화보전을 익히면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하게 된 동방불패(임청하 분)를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원수가 되면서 서로 싸워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위 영화의 줄거리에서도 느껴지지만 허무주의적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동방불패는 영호충과 임아행의 대화 속에서 인간사회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이야기한다.

강호를 떠나고자 하는 영호충에게 임아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원한이라는 게 생기는 법이다. 원한은 복수심으로 가득차 서로 싸우게 만든다. 그러니 강호란 바로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 강호를 떠날 수 있겠는가.

전편이라 할 수 있는 소오강호에서는 반대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졌었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면 영호충 자네가 아무리 무공이 뛰어난다 해도 지켜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칼을 버리려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에서는 도덕성이 뛰어난 사람들만 선발해 우주선에 태워 새로운 행성으로 떠난다.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난다. 우주선 안 사회를 구성하는 인물들 간에 사랑이 싹트면서 질투도 같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질투는 결국 살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 사랑이야말로 다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희망임을 넌지시 내비치며 끝을 맺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수많은 감정이 흘러간다. 그 감정은 격랑을 일으키며 성난 파도가 되고 폭풍우가 되기도 한다.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때론 그 폭풍우에 휘말려 거스르지 못하고 온몸을 내맡겨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때론 비극이 되고 때론 희극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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