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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인 것의 슬픔
정재서 지음 / 살림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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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을 통해 서구의 관점으로 왜곡되어진 동양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책마저도 동양인의 손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체적 시각을 지니고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한국은 중국의 변방정도로 취급되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는 없는 문제일 것이다. 또한 이런 서구의 삐딱한 시각이외에도 동양권내에서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그 주변국들을 바라보는 횡포 또한 만만치 않아 이레저레 치이고 사는 약소국의 슬픔을 느끼게 된다.

뭐 남들이야 어떻게 바라보든 무슨 상관이랴? 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이 과거의 일이 과거로 그냥 끝나지 않고 항상 현실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또 문화적으론 주변국가들을 억압하고 강대국들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런 왜곡된 관점에서 벗어나 주체적 사고를 갖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편협한 국수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옛무서 <산해경>과 고구려 시대 무덤벽화등의 비교를 통해 동양적인 것, 특히 한국을 중심으로 한 극동아시아의 독특한 문화관을 보여줌으로써 변방으로서의 소국적 관점을 벗어난 고유의 다양성을 밝히고 있다. 이런 지난한 연구를 통해 옛 사람들의 세계관과 또 그들 사이의 다양함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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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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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혼자 산다는 것은 말없이 산다는 것과 일맥상통할련지도 모르겠다. 역으로 함께 산다는 것은 어쩌면 남들과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 수 많은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와 딸이 선배와 후배가, 또는 동년배의 학자로서 등등 때론 어울린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짝을 지어 대담을 나눈다.

깃털처럼 가볍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바위처럼 무겁게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윤기씨 부녀간의 신화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최장집씨의 이성에 대한 믿음으로 끝나는 이 책의 구성은 그야말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윤기씨가 집착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정재서씨가 주목하는 산해경을 비롯한 동양 고전속의 환타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고대사람들의 상상의 세계속에서 한쪽은 인간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꿈틀대는 본성의 탐구를 행하며, 또 다른 한쪽은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감성의 확장을 바란다.

신화와 판타지의 맞은편에선 세상을 향한 이성의 외침이 있다. 여성의 평등권을 가져올, 좀 더 나은 사회를 이룰 마지막 저격수, 탈이성의 시대라 불리며 이성이 찬밥신세가 되었다 할지라도 결국 진흙속의 연꽃을 피우는 건 이성임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끔 만든다.
그러고 보면 책의 마지막에 이성에 대해 언급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신화를 해석하는 것도 디지털의 논리도 문학이라는 것도 결국 세상을 향해 외치는 함성이라면 뜨거운 가슴을 전제로 차가운 이성의 숨결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저 메아리에 그칠 뿐일지도 모른다. 직접 대담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음성을 듣지는 못하지만 글이로나마 그들의 생각과 인생의 한켠을 조금 훔쳐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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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와의 대화
송두율 지음 / 한겨레출판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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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은 개인의 심미적 체험을 중시하는 탈현대로 흐르고 있다고 한다. 내가 우리가 되던 공동체의 삶은 어느새 과거의 일이 되어있고 도덕이나 윤리를 이야기하면 고리타분한 시대가 온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쾌락이요 안녕일 뿐이다. 그게 무에 그리 문제가 될 것인지 의심의 눈을 치켜뜨고서 쳐다보면 방금 말한 것들이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듯이 보일 수도 있다.

정말 현재의 나의 삶이 아무 불편없이 행복함을 만끽하고 있는가 돌이켜보면 항상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가 부~자 되는게 꿈인 세상에서 지상최대의 관점을 돈을 모으는 것이지 그 돈은 어떻게 쓸 것인가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예전의 규범대로 성실한 삶이 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부름으로써 부와 빈의 차이만이 극대화 되고 있을뿐이다.

자신의 땀을 통한 노동의 댓가보다는 오히려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고 주식이 터져주기를 바란다. 노동의 가치는 그야말로 땅에 떨어져 있고 그저 돈돈돈 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부에 대한 꿈이 결코 개인의 운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뒤엔 사회나 국가 더 크게는 세계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저 마이 웨이 만을 외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거시적 관점으로 메스를 들이댄다. 현대와 탈현대, 한반도의 분단, 지구화와 정보사회, 민주주의, 생태학, 인문학, 미학 등 20가지 테마를 가지고 한국과의 연관성을 밝혀준다. 숲속 오솔길을 걷고 있는 각각의 개인에게 잠시 멈춰서서 숲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숲이 살아남고 그 길이 아름답기 위해선 숲을 가꾸려는 태도가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각자의 개성을 살린 숲가꾸기와 함께 전체와 조화로운 관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바로 화해의 정신이요, 소통의 방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개인에 묻혀버린 사고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껍질은 21세기가 진행되면서 보다 두꺼워지고 있으니 과연 어떻게 그곳에 금을 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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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
하타무라 요타로 지음, 정택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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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은 정말 꿈으로 끝나고 말까? 히딩크 감독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최근의 평가전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나약한 모습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감독을 바꿔야 하지 않는냐는 극단적 의견을 포함해 그가 한국축구를 잘 모른다는 비아냥까지 그에 대한 신뢰의 축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원래 우리 축구의 현주소가 이것뿐이었다고 자조하며 16강 보다는 국가 대사인 월드컵 자체를 잘 치루어내야 한다는 타협적 의견도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 이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히딩크가 실패학을 전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금 마음 속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게 됐다.

실패학에선 실패란 결코 감추거나 비난받아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지식과 지혜를 얻어내 새로움을 창조해 낼 밑거름으로 쓰라고 한다. 또 품질관리 향상에 맞춘 조직원들의 전문화 이외에 전 부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짜 베테랑을 육성해야 한다고 한다. 실패를 예방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상황연습과 전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을 때에야 가능하다.

히딩크 감독이 토털축구를 지향하고 전선수들의 만능 플레이어화에 애를 쓰는 건 그가 항상 말했던 창조적 축구와 일맥상통한다. 즉 아무리 다양한 전략을 짜고 그것을 피나게 연습해 습득하더라도 실제 경기장에선 그 훈련때와 똑같은 상황은 천에 하나 주어질까 말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훈련을 바탕으로 상황이 변했을 때 임기응변의 묘를 터득해야 하는데 이는 모든 선수들이 만능플레이어가 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있다. 즉 무턱대고 작전대로만 이행하려는 우둔한 소에서 상황상황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여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계속된 실패는 우리의 고질적 약점을 보완할 수있는 약이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다만 그 실패를 거울삼아 지식과 지혜로 다듬을 시간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실패에 대한 자세의 변화는 꼭 이번 월드컵에서 성과를 드러내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그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성공은 99%의 실패와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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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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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홀로 서있는 상상을 해본다. 내리쬐는 햇볕, 주위엔 물웅덩이 하나 없다. 모래바람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 또 다른 길을 만든다. 사막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걷는 길밖에 없다. 사막이 끝나는 지점 또 다른 사막을 만날지라도 난 꾸준히 걸어야만 한다. 그 속에서 난 또 다른 나를 수없이 만난다. 눈물이 난다. 나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소설가의 길을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피가 끓어오르는 감동을 주어야 하는 소설가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에세이는 오직 소설 한길만을 걷고 있는 마루야마 겐지의 무너지지 않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인생 최대의 감동은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미지의 존재이며, 앞으로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은 빛을 발하고 충만해지는 것이며, 또한 영원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펼쳐나가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마음의 명령 따위에 일일이 따를 수가 없다. (P208)

삶이 주는 평온함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느림'의 미학을 제멋대로 해석해 얼토당토 않은 게으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굼벵이에게 갑자기 내려치는 청천벽력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형이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상의 자세를 어떻게 다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의 문제다.

결코 문학의 거창함이나 소설가의 위대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학권력, 예술권력에 대한 경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소설가가 아니라도 자신의 삶에 얼마나 부단한 채찍질을 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엄격성에 있다 하겠다. 그런 삶이 비록 고단할 지라도 그것이 바로 인생이지 않을까 노소설가는 조용히 자신의 삶으로써 웅변하고 있다. 사막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누구나 건널 수 있는 것이 아닐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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