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사의 순간, 짜릿한 액션과 추격, 거기에 우정, 의리, 약속에 대한 감정적 몰입까지. 최근 본 영화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 강추.


2021년 미군은 18년 여의 긴 전쟁을 끝내고- 아니 패하고-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것을 결정한다.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점령 하에 들어가게 되고, 탈레반은 미군에 협조했던 이들을 해치지 않겠다는 평화협정을 깨고, 통역관을 살해하는 등의 보복에 들어간다. 미국은 통역임무를 수행했던 이들과 이들 가족들을 포함 약 1만 8천명 정도의 아프간인들에게 특별이민비자를 내주고, 미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하지만 이 약속은 아직까지도 온전히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영화 [더 커버넌트]는 이 상황 속 미군과 통역관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아프간 철수 전 미군 존 킨리(제이크 질렌할)는 임무에 나섰다가 탈레반의 함정에 빠져 대원을 대부분 잃고 통역관과 함께 겨우 피신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고, 통역관의 목숨을 건 도움을 받아 미군기지로 돌아온다. 미국으로 돌아간 존 킨리는 자신을 도와 준 통역관이 비자를 받지 못하고, 아프간에서 탈레반에 쫓겨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것을 알게 된다. 존 킨리는 통역관에게 비자를 발급하라고 군과 정부에 항의하며, 직접 아프간으로 돌아가 통역관의 탈출을 돕는다.


영화 전반부는 존 킨리와 탈레반과의 전투, 중반부는 통역관의 도움을 받은 탈출, 후반부는 아프간으로 돌아가 통역관을 구출하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영화는 초반과 종반 액션 장면에서도 짜릿함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추격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숨소리가 들릴만큼 급박하고 긴장된 연출을 자랑한다. 여기에 더해 미국으로 돌아온 존 킨리가 통역관을 데리고 나오지 못한 미안함과 미국 정부의 모호한 태도에 대한 분노, 직접 데리러 가기 위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심리를 담담하면서도 때론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액션과 감정 묘사 모두 심장을 흥분케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미국이 통역관들을 미국 본토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스며 나오도록 만드는 연출의 힘도 크다. 재미와 감동 모두 잡은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


(국가의 약속은 왜 공수표가 되는지, 약속의 엄중함에 대해 묻게 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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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양영순의 지극히 짧은 에피소드 중 하나가 떠오른다. 누군가 피를 흘리며 죽기 일보 직전인데, 그 몸을 끌고서 어딘가로 향한다. 최종 목적지는 바로 자신의 집. 그리고 살아 생전 마지막으로 행한 것은 컴퓨터에 저장된 야동 지우기. ^^


죽어서까지 생각한 것이 바로 평판이다. 넷플릭스 영화 [루터 태양의 몰락]은 평판에 금이 갈 수 있지만, 남에게 숨길 수 있는 최적의 매체로서 온라인이 오히려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 빌런은 온라인을 통해 숨겨온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사람들을 협박, 온갖 범죄에 끌어들이고, 죽음을 택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은밀한 취향을 이용해 돈벌이에 나선다. 


주인공 형사 루터는 범인을 찾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빌런의 잔꾀로 인해 오히려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빌런이 형사가 감옥에 갇히기 전 맡았던 실종 사건의 피해자가 죽는 과정을 담은 녹음을 들려주자, 탈옥을 해서 빌런을 잡기 위해 나선다. 


현대인의 숨겨진 욕망과 민낯, 목숨만큼 또는 목숨보다 중요한 체면 또는 평판, 이 모든 것이 행해지는 온라인 세상을 범죄의 소재로 삼아, 형사와 빌런과의 대결을 끌고 가는 재미는 있지만, 영화를 마무리 짓는 방식이 너무 서투르다.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궁리하다 해결 못한 채 촬영과 편집을 끝낸 모양새다. 칼을 맞고 사는 것이야 주인공이니까 하며 넘어가더라도 디테일에 너무 신경을 안 쓴 것이 티가 난다. 기름으로 불난 공간에 물로 불을 끄고, 얼음 호수에 죽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잠수복을 입은 구조원들이 등장하는 등등 그야말로 허겁지겁 마무리를 짓는 모습에 끝까지 참고 영화를 본 것을 허탈하게 만든다. 어차피 화려하지 않은 액션에 어중간한 공을 들이기 보다는 형사와 빌런 간의 심리에 보다 치중했으면 그나마 낫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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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2]에 이어 [범죄도시3]도 천만 관객을 넘었다. 요즘 같은 OTT 홍수 속에서 영화관에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범죄도시] 시리즈는 연속해서 천만 관객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었다. 


나름 [범죄도시]의 성공을 분석해보면 시리즈 1의 성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700만 관객 조금 못 미치는 스코어였지만, 장첸과 위성락이라는 빌런 만큼은 확실히 각인된 영화였다. 2와 3편의 빌런은 안타깝게도 1편의 빌런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관객몰이에 성공한 것은 마 형사의 주먹 한 방이 주는 통쾌함과 불쑥 불쑥 터지는 웃음 덕분이라 보여진다. 


그런데 이 통쾌함과 웃음이 4편 이후에도 천만 관객을 끌어들일 만큼의 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솔직히 3편을 보면서 4편 이후의 행보에 의문이 든다. 3편에서 보여지는 마 형사의 주먹 액션은 이제 카메라 위치를 통한 트릭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 형사에게 맞고 쓰러지는 빌런은 스턴트맨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채게 된다. 액션이 주는 통쾌함에 집중하지 못하고 트릭에 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뭐,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그나마 불쑥 터지는 웃음은 여전히 마 형사의 매력으로 남지만, 과연 이것 만으로 관객을 붙잡을 수 있을지는 의심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주는 매력은 어떨까. 1편에서는 조선족 조직폭력배들이 두목 장첸을 중심으로 부산, 창원을 거쳐 서울까지 점령하고, 각종 지저분한 짓을 다 저지른다. 악랄하기가 그지없어 관객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인다. 2편에서는 무대를 베트남으로 옮긴다. 강해상(손석구)이라는 빌런이 등장하는데, 납치와 살인을 밥 먹듯이 한다. 아마도 장첸보다 더 악랄한 빌런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였을테지만, 그 행위의 잔혹성에 비해 강렬함은 다소 떨어진다. 3편은 신종 마약사건을 소재로 나쁜 경찰 주성철(이준혁)이 빌런으로 등장한다. 기존의 빌런에 약아빠진 머리까지 첨가한 막강 빌런으로 보이지만, 마 형사와의 싸움에서 보여지듯 다소 맥이 빠지기도 한다. 다만 일본 야쿠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얼개가 살~짝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범죄도시]의 매력은 유쾌, 상쾌, 통쾌함에 있다. 중간 중간 터지는 유머의 유쾌함과 상쾌함, 빌런을 주먹 한 방으로 잠재우는 통쾌함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영화를 매력적이게 만든다. 복잡한 플롯이 숨어 있거나, 반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 명쾌하다. 그런데 이 단순 명쾌함이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계속 매력적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마 형사는 과연 단순 명쾌함으로 계속 승부를 걸 것인지, 아니면 진화를 할 것인지, 4편이 꽤 궁금해진다. 제작자이기도 한 마동석은 8편까지 계획하고 있다는데, [범죄도시4]가 이 긴 행보의 갈림길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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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마나 귀신, 좀비를 소재로 하는 영화를 찾아 볼 정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때론 악마나 좀비를 바라보는 시선의 신선함, 해석의 재미가 있는 영화들은 꽤 즐기는 편이다. 


영화 <엑소시스트;더 바티칸>은 실제 유명 구마사제인 가브리엘 아모르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 인물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것이다. 게다가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러셀 크로우라고 하니 관심이 갈 수밖에. 그리고 영화는 그 관심만큼 꽤 재미있다. 


** 스포일러 주의

구마사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악마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마가 있다는 것은 세계 역사 속에서 악마가 저지른 사건들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 <엑소시스트;더 바티칸>은 이런 관점에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해석한다. 또한 바티칸에서 벌어졌던 성추행과 같은 추악한 사건들도 살짝 다루고 지나간다. 


우리가 빙의라고 부르는 현상은 일종의 정신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우리의 세계를 100%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고,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대부분은 아직도 (서양)의학으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설명되어지지 않는 어둠의 부분을 우리는 악마나 외계 생명체 등등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로 풀어내곤 한다. 아직 해명 되어지지 않는 부분이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도 어렵다. 다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들에 대한 나름의 대처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떻게든 현상을 해석해내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니까 말이다. 


구마사제 가브리엘 또한 빙의라 의심되는 사람들을 만나 진단을 내리는데, 98% 정도는 의술이나 심리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나머지 2% 정도를 구마사제가 필요한 일이라 여기며 활동해 왔다. 이런 부분이 꽤 합리적이라 여겨진다. 과학과 의술이 담당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하려 하는 것이니까. 

그러면 도대체 악마는 왜 사람에 빙의를 하는 걸까. 영화는 구마사제의 활약상과 함께 악마의 존재 이유에 대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악마는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즐긴다"(?)는 구절이, 영화적 상상력과 더해져 꽤 힘을 얻는 듯하다. 인간의 죄책감과 악마의 유혹 등, 생각보다 영화적 재미가 쏠쏠하다.   

사족

영화적 재미와 별개로, 악마나 귀신의 존재 유무를 증명하는데 힘을 쏟기 보다는 공자님 말씀 "사람을 섬기는 것도 다하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는 것을 논하는가?"처럼 살아있는 생명을 섬기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구마의식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고통받는 생명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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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6부작 <택배기사>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행성의 충돌로 지구가 불모지가 되고 한반도에도 소수만이 살아남았다. 물과 공기가 부족해진 곳에서, 코어지역, 특별구역, 일반구역, 난민구역으로 사람들이 나뉘어 거주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기계를 통해 지역별로 산소의 공급이 차등을 이룬다. 한 번 나뉘어진 구역별 거주자 계층은 세습된다. 택배기사는 국민들에게 물과 산소 등의 생필품을 건네주는 역할을 한다. 택배물류와 산소 공급을 담당하는 것은 대기업 천명이다. 천명의 회장 아들인 류석(송승헌)은 난민들을 제거하고, 한정적 자원을 소수의 계층이 나눠쓰도록 세상을 재편하고, 그 재편된 세상의 중심에 천명이 있게 하기 위해 권력과 폭력을 사용한다. 택배기사 5-8(김우빈)은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한 혁명을 꿈꾼다. 


드라마의 설정과 전개에서의 과학적 진실과 오류는 따지지 말자. SF의 말뜻 그대로의 과학적 상상력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적 상상력이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즐겨보자. 


영화 <기생충>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콘텐츠의 주제는 '빈부격차'다. 자유경쟁시장의 결과는 이 격차를 자꾸만 키워가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경쟁은 '나도 저 위에 서겠다'는 욕망을 부추기며 동력을 얻고,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 격차의 간격이 커지면 커질 수록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해 '저 위에 서겠다'는 욕망이 불가능해지고, 모든 것을 갈아엎겠다는 분노가 폭발할 지 모른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는 이런 임계점에 대한 예리한 예측 또는 생활 곳곳에 알아채지도 못할만큼 자연스레 스며있는 차별의 흔적을 찾아낸다.   


[택배기사]는 빈부격차의 대상을 산소로 만들어 바로 생명과 직결되도록 만들었다. 거기에 '우리가 가장 기다리는 사람' 1위로 꼽는 택배기사가 정말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산소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도록 구성했다. 거기에 더해 [헝거게임]류의 택배기사 선발전을 집어넣는 영리함까지. 그야말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성할 모든 요소를 갖춘 것이다. 그럼에도 [택배기사]를 보는 내내 다음화가 기다려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티를 팍팍 내는 CG나 다소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액션의 스케일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가 설정하고 있는 구역의 차별과 새로운 이주계획에 대한 설득력의 부족이라 여겨진다. 드라마의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류석의 매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냥 나쁜 놈, 악당이 아니라, 악당일 수밖에 없는 이유나, 다른 시선으로 봤을 때는 악당이 아닐 수도 있는 다층적 얼굴을 가졌다면 훨씬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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