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갓바위 앞에서 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2005. 10. 24(월)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다. 수능을 앞두고 많은 수험생 어머니들이 오르내리는 곳. 분명 효험이 있다고 하는 불상을 찾기 위한 길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짐작했건만, 고개는 계속해서 깔딱고개였다.

마침내 보게 된 갓바위. 난 아미타여래나 석가모니 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피커에선 계속해서 약사여래불이라는 염불만이 반복된다. 그 염불에 맞춰 아주머니들의 절은 계속되고, 난 의아심을 가졌다. 분명 약사불이라면 호롱병(약병)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안내판을 보니 약사불이 맞다. 왼손의 약병은 바람과 비에 마모되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 약사불에 대학합격 기원을 그다지도 바라는가? 원래 약사불은 건강을 기원하던 불상이지 않았을까? 물론 그 것 이외에도 여러가지 서원들을 들어주었겠지만, 그럼에도 이 약사불에 유독 대입합격을 기원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소원이 되었든 아마도 이 불상은 그 소원을 들어줄듯이 세상을 지긋이 바라본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어내는 것들이 어떤 형상을 지니고 있을때, 또 그것이 특정한 상징성을 간직한채 인고의 세월을 이겨냈다면 이미 그것은 신묘한 힘을 지니고 있게된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월이 그 속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팔공산 갓바위에는 그런 세월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갓바위에 절을 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한다면 불국정토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동화사 쪽으로 길을 향한다.

중간에 마주치는 암자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차 있는 불상들. 그런데 이 불상들은 금박으로 화려하다. 동화사가 조계종사중 손에 꼽히는 부자인줄은 알지만 도대체 산 속 암자 불상을 금박을 입혀 놓은 것은 누구의 발상인지 참 안타깝다. 부처를 죽여야 부처가 될수 있다는 화두. 추위를 이기고자 불상을 태워버렸던 선종의 고승 등등. 불상이 우상이 되는 순간을 경계했던 정신은 사라지고, 오로지 크고 화려한, 돈으로 칠해놓은 불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심어주려 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곧 부처이거늘 왜 부처에게 금옷을 입힌단 말인가? 갓바위 오르는 길이 그렇게 험한 이유 또한 끊임없이 땀 흘리며 오르는 나를 바라바도록 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우상을 만들고 싶어하는가? 내가 스스로 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힘으로 운명을 거슬러보겠다는 욕망의 끝이 무섭다.

그런 속세의 욕망은 동화사에서 마주치는 통일기원약사불에서 절정을 이룬다. 오,이런. 저 거대한 불상을 지워놓고 정말 통일을 기원했더란 말인가? 저 크기만큼 통일을 빨리 다가올 것이라 생각하며 보다 더 크게크게만을 생각했으려나?

팔공산은 인간의 욕망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산이다. 갓바위와 통일약사불이 공존하는 곳. 과연 불토정국은 어디에 있는가?

 

 

 

 

 

 

 

이 거대한 약사불이 과연 통일의 염원을 다 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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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3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군요.
저도 산에 오르기 너무 좋아하는 사람 입니다.
기회가 없어서 많은 산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산에 오르는 일이 무지 행복하답니다.

하루살이 2005-10-3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산을 특히 좋아한답니다. 올 겨울은 과연 얼마나 자주 눈꽃을 대할 수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 시간과 건강이 허락해줄지, 그리고 마음의 게으름을 이겨낼 수 있을지...

icaru 2005-11-0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속세의 욕망은 동화사에서 마주치는 통일기원약사불에서 절정을 이룬다. 오,이런. 저 거대한 불상을 지워놓고 정말 통일을 기원했더란 말인가? 저 크기만큼 통일을 빨리 다가올 것이라 생각하며 보다 더 크게크게만을 생각했으려나?

이 줄을 읽으면서...너무너무 하루살이 님 답다는 생각을 ^^;;; =3=3=3

그나저나..
와아~ 하루살이 님이시다!!!!

하루살이 2005-11-02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비(?)하게 남아있어야했는데...^^

icaru 2005-11-0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비함의 절반은 남아 있당게요~
아슴프레 하게 보여요...(의도하신 거 같당게...!)

하루살이 2005-11-0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gracina 2005-11-0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게다가 하루살이님을 드러내 주시니 반갑고도 반갑네요^^


하루살이 2005-11-0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갓바위의 세월의 흔적을 잘 보여주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 속에서 영험함이 힘을 가질텐데...
 




가야산 정상 상왕봉을 앞두고

 

2005.10.25.(화)

경상도 합천에 있는 가야산에 올랐다. 가야산은 조선 8경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도대체 조선 8경이 어디인지는 알수가 없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해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를 모를 뿐더러 또 제각각이라 도무지 어느 곳이 8경에 속한지 나로서는 감도 잡을 수 없다. 다만 그만큼 감탄을 자아내는 비경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생각만 들었다.

가야산에는 해인사가 있다. 해인사는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법보 사찰이다. 물론 8만대장경이 이곳에 있으니 당연한 이유일터다. 해인사라는 절 자체는 그다지 크다는 느낌을 주고 있진 않으나 주변의 고목들이 이곳이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을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다. 더군다나 붉은 색을 자랑하는 굵직한 소나무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어 왠지모를 청정한 느낌을 준다. 소나무 기둥 하나하나엔 모두 숫자가 쓰여진 조그만 팻말을 붙여놓았다. 아무래도 최근 소나무들에게 치명적인 병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관리를 철저히 하고자하는듯이 보여진다.

가야산은 돌산이다. 흙을 밟으면서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계속해서 돌길을 걸어야만 한다. 마애불상이 놓여있는 산 중턱 900미터 정도까지 올랐을때 언뜻 보여지는 정상은 그야말로 이 산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보여진다. 위의 사진은 그 정상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돌더미 위에서 찍은 것이다.  (산 위에 조그마한 점이 바로 나.)900미터 정상에서 다시 뚝 떨어져 600미터까지 내려섰을때 아, 지금부터 치닫고 올라가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했다. 최고 1400미터에 가까운 상왕봉까지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가보자 마음 먹고 가다 밑에서 바라보던 돌산과 다른 분위기에 순간 발걸음을 멈춘다. 하루종일 안개에 쌓여 먼 풍경은 그다지 잘 보이진 않았으나 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정상에서 칠불봉으로 가는 순간 합천에서 성주로 넘어서는 순간이다. 산은 하나인데 그것을 가르는 인간의 잣대는 산 위에 가상의 선을 그어놓았다. 산은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그 선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선은 산을 내려온 순간 힘을 발휘할 것이다. (성주쪽으로 넘어가서 다시 해인사를 가기 위해선 군이 바뀐다는 이유로 택시 값이 엄청 비싸다고 한다. 그 거리에 상관없이) 칠불봉에서 다시 해인사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백운동 쪽으로 떨어질 것인지 고민이 됐다. 백운동 쪽은 대중교통이 불편해 오늘 안으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와 산에 오를땐 대부분 같은 길로 내려오지 않았기 떄문에 이번에도 과감히 백운동 쪽을 택했다. 해인사 쪽보다는 단풍이 많이 들어있고 색깔도 곱긴 했지만 올해 전반적으로 단풍은 그다지 예뻐 보이진 않는다.

백운동으로 내려오니 염려했던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버스는 2시간 후에나 있다니 음, 어쩐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걸어보자.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걱정은 많이 됐다. 대학생이었을땐 차 얻어타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시커먼 남자 2명이서 차를 얻어탄다는 것은 그닥 만만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세상이 그것을 점차 어렵게 만들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세상 탓에 나이탓에 얼굴 탓까지 해본다.

그런데 다행히도 국립공원관리공단  차가 해인사까지 갈 일이 있어서 그 차를 얻어탔다. 1주일에 한두번 간다고 하는데 마침 우리가 그걸 얻어탔으니 운도 좋다. 백운동 쪽에 지어지고 있는 야생화 화원이며, 단풍 이야기며, 성주 참외 이야기 등으로 얻어탄 고마움을 아저씨에게 건넨다. 해인사 가는 중간에 내려 고령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탄 후 고령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산을 오르면서 정상까지 어떻게 올라가나 겁을 먹은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아마 오늘은 어제 팔공산에 오른 이후 아직 피곤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오르다 보니 다소 다른 생각을 떠올렸나 보다. 자신의 처지에 따라 전혀 예상치 못한 심리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산의 정상은  나에게 언제나 그대로의 감성을 준다. 때가 낀 가슴과 마음을 시원한 바람으로 깨끗이 씻어준듯한 느낌. 이 느낌을 갖지 못한다면 아마 산에 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바람과 하나가 되는 순간, 난 행복하다. 산의 줄기줄기를 내려다보며 그 사이사이 사람들의 흔적을 바라보며 집착을 벗어던진다. 깍이고 깍여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주는 산처럼 깍이고 깍여도 아파하지 않을 것임을 마음 속에 다지며...


                                      

 

 

 

 

            가야선 정상에 올라서기 전

            마주치게 되는 불상

            난 무슨 소원을 빌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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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10-3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후~ 가야산 이제보니 돌산이네요~
한번도 안 가봤다지요...
무슨 소원 비셨는지..이제 생각나셨는가요오?

하루살이 2005-10-3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하지 못하는 소원이 더 애틋합니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계속 소원을 바라던 그 상황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얽매이지 않을 잠깐 동안의 소원. 그것으로 족합니다.
 

앵자산은 1779년 우리나라에 천주교를 본격적으로 소개했던 소장파들이 관리의 눈을 피해 강학회를 열었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700미터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산이지만 그곳까지 들어가기 위한 길은 생각보다 깊었다. 더군다나 계획없이 갑자기 오르게 된 산이다 보니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조차 쉽지 않았다. 승용차를 타고 갔다면 길을 헤매더라도 결국 목적지에 도달할수 있었을테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자칫 목적지를 지나치거나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번 앵자산행은 전자의 경우인지 후자의 경우인지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첫 출발부터 뒤죽박죽이었다.

광주시외버스를 타고 천진암으로 향하던 길, 얼핏 앵자산행 표지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버스는 지나쳐버리고,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았지만 전혀 알지 못했다. 어쨌든 천진암이라는 곳이 목표지라 생각하고 종점에 내리니, 마침 성지라는 곳을 보여주는 듯 거대한 십자가가 보였다. 그곳은 한창 새로운 성지개발을 위해 새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고 안도하고 겨우 산길을 찾아 올라서는데, 아무래도 걱정스럽기는 하다. 30분쯤 올랐을까? 중년부부가 산중에서 도토리를 줍는라 바쁜 모습이다. 이 산중엔 정말 도토리 천지라 다람쥐 먹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듯하다. 부부는 마을 사람들 같이 보여 얼른 앵자산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지금 오르고 있는 산은 무갑산이며 앵자산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라 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남아있고해서 걸어가다보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실망하지 않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간에 갈림길이 왜 이리 많은 건지. 더군다나 이정표 하나 없으니 이건 정말 눈감고 오르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다. 계속되는 선택의 순간순간마다 시계를 쳐다보며 아직 여유가 있으니 가볼데까지 가보자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2시간을 오르다 이제 서서히 내려서는 순간,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곳이 앵자산인지 무갑산인지 전혀 알지 못한채 하행을 준비했다. 내려가보면 어떤 산을 올랐는지 그리고 산행의 경로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며 내려서다 우뚝 발걸음을 멈출수밖에 없었다. 앞이 온통 덤불에 가시나무 투성이었다. 길은 사라지고, 다시 돌아서자니 한참을 가야하고, 이제 별 수 없었다. 밀림을 통과하듯 무조건 돌파하는 수밖에. 일단 큰 산이 아니니 계곡 쪽으로만 가면 분명 마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내려섰다. 아, 팔은 가시에 긁히고, 다리를 묶는 덩굴들, 그리고 얼굴엔 거미줄과 뒤엉킨 가지들. 계속 내려설 수 있을까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다리에 힘도 빠지기 시작했다. 팔은 가시에 긁힌 자국으로 부어 오르고, 신발은 완전히 젖어버렸다.

길은 보이지 않는데, 마냥 헤쳐가야만 하는 기분. 그렇다고 절대 포기하고 주저앉을수도 없는 상황.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순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은 과연 누가 이 산중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찾으러 올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런 막막함도 잠시 조금 더 내려가다 갑자기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큼직한 동물이 지축을 울리며 도망간다. 이런! 멧돼지다. 막막함은 온데간데 없고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한다. 저 놈이 뛴 쪽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지만 결국 막혔다. 할 수 없다. 놈과 가까이 가더라도 그쪽이 그나마 길을 낼 수 있는 곳이니 죽음(?)도 각오하는 수밖에. 두려움에 발걸음을 떼어놓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찌하랴. 제발 맞닥뜨리는 일만 없기를 바라며 다시 길을 뚫으며 내려가길 20분 정도 드디어 사람이 다니는 길이 보인다. 그리고 비닐하우스. 아~ 살았다. (오! 나의 이 프런티어 정신이여. 전국의 산악회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 나에게 상이라도...)

3시간의 산행이 이토록 짜릿한 적은 없었다. 최근 산에만 올랐다 하면 왜 길을 잃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는 핑계로 예상루트보다 더 먼 길을 택하다 결국 고생을 자초했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이 언제나 문제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욕심은 욕심이라기 보다는 의지로 표현해야 하겠지. 그 의지가 없었다면 멧돼지와 막다른 길에서 오도가도 못했을터이니 말이다. 막혔다고 생각한 순간 터진 곳을 찾을 수 있음을 배운다. 막혔다고 생각하며 주저앉아버리는 순간 모든게 끝이다. 그렇기에 살아간다는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이라고 생각한 바로 순간 모든게 끝이나 버린다. 살아가는 것은 그래서 항상 진행중이다. 삶은 무한하다. 아니 무한한 것이 삶이다. 멈추섬에 이미 진행중이 아니기때문이다. 삶이 진행중이라면 그래서 무한한 것이리라. 그 무한을 살아가는 방법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생각도 마음도 흐르도록 두자. 때론 격렬하게 때론 잔잔하게. 아~ 살아간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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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8-29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햐...실감납니다...
실화군요...!
폴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가 뜬금없이 생각나네요...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포기할까 말까 고민할 때, 그 순간 난데없이 다시 걸을 수 있는 길의 앞자락을 희미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조물주가 우리를 길들이는 방식인 걸까?

하루살이 2005-08-3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길들여지고 있었더군요. 무지 고생하면서 말이죠. 흑흑.
 

4월 30일 서울, 기상관측이래 100년만에 4월 최고 더위인 29.8도를 기록.

아침 9시 20분 상봉터미널에서 용문사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오늘도 산에 오르기전 치러야하는 의례, 화장실엔 물론 들렀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타진 않는다. 점점 더 사람들이 자가용으로 움직이다보니, 상봉터미널서 움직이는 시외버스의 횟수가 줄어들거나 노선이 사라지고 있다. 뚜벅이의 마음은 안타까울뿐이다. 더군다나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을 생각하면 왠지 분노마저 치솟는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가 과연 어디서 그 끝을 보일련지 모르겠다. 물론 편안함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중 하나일 것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과연 그 댓가로 무엇을 지불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11시가 조금 못되어 용문사 도착, 안내책자들과 등산지도를 챙겨들고 오르기 시작한다. 입장료가 1800원. 국립공원은 아니지만 관광단지라 그런지 조금 비싼 편이다. 요즘 산불이 많이 났기 때문일까? 등산로 입구서 라이터와 같은 화기류 임시 보관소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본다. 대부분 그냥 형식상으로 박스만 놔둘뿐인데 말이다. 쓸데없는 형식을 버리고, 실제로 필요한 것들만이라도 제대로 운영된다면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을텐데...

용문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법경의 구절들을 적어놓은 푯말들이 중간중간 세워져 있다. 계곡에는 물이 졸졸 흐르는데 최근 비가 오지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흐르는  걸 보니 상당히 물이 많은 산인 것 같다. 용문사 앞. 1100년 먹은 은행나무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 30호. 높이 63m라고 하나 눈짐작으로 보아 그 정도는 안될 것 같다. 40~50m정도 쯤. 둘레는 11m,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이지 않을까? 거대함이 주는 압도감과 함께 신성함마저 풍긴다. 오래 묵어서 좋은 것들도 참 많다. 장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고, 이렇게 살아있는 나무도 그렇다. 사람들은 이 나무에 얼마나 많은 전설과 신화를 만들어내고 세대를 지나 이야기되어질 것인지...

마당바위쪽을 향해서 오른다. 햇볕은 생각보다 따갑다. 하지만 옆에 계속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니 좋다. 마당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 돌무더기로 된 길이 가파르다. 한 호흡 한 호흡 점점 거칠어지는 숨을 잡고 발을 내딛는다. 이제 정상까지 1km남짓. 바위들이 절경이다. 기암괴석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으나, 흔히 그렇게들 부르니 기암괴석이라고 부르자. 로프가 매달린 바위들이 몇개 오른다. 이쯤 정상이라 생각하고 발길을 멈추는데 저기 저 높이 암벽이 또 다시 보인다. 산정상 군부대의 철조망 아래로 삐죽 나온 암벽. 아~ 생각보다 힘들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렇게 왔으니, 올라보자.

결국 정상, 전망이 좋다. 1100m가 넘어서는 높이. 그렇게나 높았나 깜짝 놀랬다. 경기도에선 화악산, 명지산 다음으로 높은 산. 저 멀리 안개가 쌓인 듯 뿌옇지만 그래도 오른 보람이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백운봉의 삐죽한 모습과 정확히 어떤 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둔산 정도로 보이는 독특한 산의 실루엣도 보기 좋다. 산새는 먹이를 구하려는듯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바위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시원한 정상의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아랫배 깊숙히 보낸다. 세상이 막힘없이 확 트이기를 바라며...

내려오는 길. 보통 등산객들은 같은 길로 내려가다 상원사쪽으로 빠지겠으나, 난 장군봉으로 해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장군봉까지 가는 길. 마주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게다가 장군봉서 내려오는 길, 중간에 길이 사라져버렸다. 아니 사라졌다는 것은 나의 핑계일터다. 분명 길은 놓여져 있었을테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다보니 뚜렷한 흔적을 보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맨다. 이번이 등산하면서 2번째로 겪는 혼돈이다. 물도 이미 떨어졌고, 비상식량도 없는 상태에서 뙤약볕까지. 힘들다. 길이 아닌 곳은 무릎까지 쌓인 낙엽과 잡목들로 헤쳐나가는데 무척 힘이 든다. 그래도 계곡 저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어떻게든 계곡쪽으로 내려가 밑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될듯 싶다. 원래의 목적지보다 한참 오른쪽으로 비껴간 것 같다. 선택은 목적지는 다르지만 일단 내려가는 것과 능선을 타고 넘어가 목적지쪽으로 향하는 2가지. 하지만 물이 없다는 것이 약점이니 빨리 내려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상은 참 희한하다. 물과 비상식량을 염려해 대부분 돌아갈 땐 남을 정도의 분량을 싸 가기 마련인데, 이번 용문산은 관광단지였다는 생각에 조금 만만하게 본 것이었을까? 높이에 놀라고, 길을 잃고, 게다가 식량과 물 부족. 또 날씨는... 항상 어려움은 예상하지 않았을때 닥치는 법일까?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맞이하는 어려움은 마음이 그것을 맞이하고자 하는 전투상태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까? 예상치못한 어려움은 그 크기마저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두렵다는 것은 모험이 주는 매력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은 길 잃음이었지만,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는 모험을 끝마쳤다는 이상한 안도감에 기분이 괜찮다. 개울가에 앉아 족탁. 으, 발이 얼것 처럼 물이 시원하다. 아, 이 맛에 산에 오른다.

마을 입구, 무지하게 큰 전원주택을 지나 펜션을 겸하고 있는 산골밥상에서 더덕주와 함께 식사. 아~ 배 터질것 같다. 아주머니가 그 귀한 두릅까지 주시니, 신선이 따로 없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 시간이 맞지 않았지만 뭐 대순가? 일단 살아있음을 배로 먼저 느끼니, 만사가 평온하다. 원래 돌아가야 할 4시 반 차를 탈 수 있는 용문사쪽도 아니고 다른 곳이니, 용문까지 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조금 아깝지만 시간에 쫓기기 보다는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발을 뻗고 술을 거푸 들이킨다. 더덕주 한동이를 친구와 비우고, 콜택시를 부른 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난다. 10000원이 좀 아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선놀음에 비하면야...

돌아오는 길, 용문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청량리로. 오랜만에 타보는 완행열차. 앞 좌석에 대학생이 MT 사전답사를 다녀온 모양이다. 그들의 들떠 있는 모습이 좋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물도, 그리고 빨간 빛으로 변해가는 태양도. 오늘도 잊지못할 또 하나의 산행을 기억과 마음 한쪽에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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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토요일 하늘이 무척 파랗다.

쉬는 날이면 두번씩 잔다. 한번 일어났다가 잠시 창문을 열어놓고 다시 눕는다. 오늘은...  글쎄 오늘은 왠지 꼼지락거리고 싶지 않았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전날 산에 오르리라 마음먹은 것도 있고.

7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청량리에서 1330번을 타고 가평 현리터미널로 가기 위해 조금 서두른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마다 출발시간이 달라 조금 초조하다. 게다가 청량리에서 지하철을 내렸을 때 화장실이 급해진다. 이상하게도 최근엔 산에 오르기전 꼭 화장실에 가는 버릇이 생겼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 중에 꼭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화장실을 가라는 부분이 생각난다. 낭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들여야 할 습관중에 하나. 다행히 낭패를 당하지는 않았다. 현대코아 앞에 세워진 1330번은 좌석에 앉자마자 출발했다. 왠지 뭔가 잘 들어맞는 기분이다. 그런데 차가 무지무지하게 막힌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가? 구리를 지나면서부터는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문다. 현리에서 운악산 가는 버스는 10시 20분 출발이다. 놓치면 한시간을 공치게 된다. 10시쯤 되자 나 말고도 초조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할머니 두분이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차 놓치면 안되는데... 기사 아저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인가? 그런데 이것도 궁한 것인가? 도시의 부산스러움에서 벗어나 느긋함을 즐기기 위한 여행에서 차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태운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무튼 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10시 17분 터미널 도착, 운악산 현등사로 가는 버스를 용케 탔다. 그리고 35분 운악산 앞에 도착, 슬슬 산을 오를 준비를 한다.

운악산은 경기 5악(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관악산, 가평 화악산) 중의 하나라고 한다. 935.5m의

 산으로 가히 악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산이었다. 매표소에서 눈썹바위로해서 만경대 정상까지 2시간 남짓 걸렸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에 오르는 기분이 최고다.  산의 연한 초록색 잎들에

마음마저 가벼워진다. 마음에 걸린 것은 산아래 놓인 골프장. 이 좁은 땅덩어리에 농약을 듬뿍 묻혀 키워내야할 잔디들을 거느린 저 골프장이 정말 필요한 걸까? 물론 여가와 놀이라는 측면에서 무엇인들 안괜찮겠는가마는 결코 얻는것보다는 잃는게 많은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으~ 잊어버리고 오르자. 입에 고구마를 문채 거친 숨을 몰아쉰다. 병풍바위의 아찔한 낭떠러지에 현기증이 인다. 꼬마 녀석 하나가 잘도 쫓아온다. 그래도 아직까지 산에 오르면서 나를 추월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장하다. 정상에 오르는 길, 바위들마다 철심이 박혀있다. 사람들이 쉽게 오르도록 만들어놓은 철심을 볼때마다 난 왜 일본이 일제시대때 맥을 끊어놓는다면서 설치해놓은 쇠말뚝이 생각나는 것일까?  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계단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철심이 왠지 눈에 거스른다. 하지만 덕분에 쉽게 산을 오를 수 있긴하다. 철심이 없었다면 엄청 고생했을것을 생각하면 필요악같기도 하고...

정상서 한숨 돌리고 절고개를 지나 현등사로 내려온다. 현등사 입구에 세워진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다. 이런, 요즘 무진장 고민하고 있는 나의 화두도 저 글자인데... 절에 들어가보면 화두를 세겨놓은 돌조각을 볼 수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중에 하나는 '이 뭐꼬'다. 현등사에 들어가보니 절이 주는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산에 오를때마다 느끼지만 산속 명당 자리는 군부대와 절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현등사의 관음전엔 주련이 한글로 되어있다. 오호라, 한글 주련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그래서 여기 그 주련을 옮겨 적는다.

부처님 몸이 누리에 두루하다

모든 중생 앞앞에 나타나시니

인연따라 어디에나 두루하건만

본래의 보리좌를 여의지 않으시니

누군가가 이도리에 의심 없으면

만나는 일 모두가 살바야이리라.

 

살바야는 일체지를 말하며, 모든 것을 아는 사람, 즉 부처님을 이르는 것이기도 하다.

만나는 일 모두가 살바야이니, 지금 이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 속에서도 부처가 가득하시겠군... 부처의 자비로 넘쳐나길, 나무아미타불.

다시 매표소로 내려오니 1시 45분 할머니 집에 들어가 순두부를 시켜 먹는다. 아~ 이 순두부라는 것이 순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손으로 마구 뜯은 것 같이 거칠다. 하지만 맛이 순하니 좋다. 할머니들의 여유로움과 정이 넘쳐보인다. 좋게 보려면 좋게 보이기 마련. 산 속에서 땀을 흘리고 나서인지 모르지만 맛있게 한기를 때우고, 자 이제부터가 고민이다. 터미널까지 가는 차는 2시간 정도 비어 있는데, 에라 모르겠다. 한 7km정도 거리지만 걸어보자. 이런 날씨도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시골길을 걷기로 한다. 조금 다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걸어보자.

한 2,3km정도 갔을까? 자꾸만 힐끗힐끗 뒤를 쳐다본다. 히치하이킹을 위해서. 아, 이 나이에 시커멓게 생긴 도둑놈 마냥한 사람에게 누가 차를 세워줄 것인가? 그럼에도 계속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힐끔힐끔. 아 좋은 풍경 다 놓치게 생겼다. 도대체 난 지금 왜 걷고 있는거야? 마을의 개들은 짖어대고, 소똥 냄새 진동하고...

히치하이킹을 포기하니 그제서 풍경은 다시 내 마음으로 돌아왔다. 몸이 고생해도 마음은 편안타. 엔돌핀이 솟으면 몸도 가뿐해질텐데, 그것은 몽상일뿐이고... 그래도 터벅터벅 걷는 길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길가에 아저씨, 여중생 모르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한참을 걸어 터미널 도착, 마음을 놓고 서울로 돌아온다.

눈속에 푸른 하늘을 담고서. 마음의 요동침을 절실히 느끼며, 무엇에 쫓겼는지 허겁지겁한 모습에 스스로 웃으며 말이다. 길을 떠날 땐 차라리 시계마저 벗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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