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서울, 기상관측이래 100년만에 4월 최고 더위인 29.8도를 기록.

아침 9시 20분 상봉터미널에서 용문사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오늘도 산에 오르기전 치러야하는 의례, 화장실엔 물론 들렀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타진 않는다. 점점 더 사람들이 자가용으로 움직이다보니, 상봉터미널서 움직이는 시외버스의 횟수가 줄어들거나 노선이 사라지고 있다. 뚜벅이의 마음은 안타까울뿐이다. 더군다나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을 생각하면 왠지 분노마저 치솟는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가 과연 어디서 그 끝을 보일련지 모르겠다. 물론 편안함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중 하나일 것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과연 그 댓가로 무엇을 지불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11시가 조금 못되어 용문사 도착, 안내책자들과 등산지도를 챙겨들고 오르기 시작한다. 입장료가 1800원. 국립공원은 아니지만 관광단지라 그런지 조금 비싼 편이다. 요즘 산불이 많이 났기 때문일까? 등산로 입구서 라이터와 같은 화기류 임시 보관소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본다. 대부분 그냥 형식상으로 박스만 놔둘뿐인데 말이다. 쓸데없는 형식을 버리고, 실제로 필요한 것들만이라도 제대로 운영된다면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을텐데...

용문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법경의 구절들을 적어놓은 푯말들이 중간중간 세워져 있다. 계곡에는 물이 졸졸 흐르는데 최근 비가 오지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흐르는  걸 보니 상당히 물이 많은 산인 것 같다. 용문사 앞. 1100년 먹은 은행나무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 30호. 높이 63m라고 하나 눈짐작으로 보아 그 정도는 안될 것 같다. 40~50m정도 쯤. 둘레는 11m,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이지 않을까? 거대함이 주는 압도감과 함께 신성함마저 풍긴다. 오래 묵어서 좋은 것들도 참 많다. 장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고, 이렇게 살아있는 나무도 그렇다. 사람들은 이 나무에 얼마나 많은 전설과 신화를 만들어내고 세대를 지나 이야기되어질 것인지...

마당바위쪽을 향해서 오른다. 햇볕은 생각보다 따갑다. 하지만 옆에 계속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니 좋다. 마당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 돌무더기로 된 길이 가파르다. 한 호흡 한 호흡 점점 거칠어지는 숨을 잡고 발을 내딛는다. 이제 정상까지 1km남짓. 바위들이 절경이다. 기암괴석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으나, 흔히 그렇게들 부르니 기암괴석이라고 부르자. 로프가 매달린 바위들이 몇개 오른다. 이쯤 정상이라 생각하고 발길을 멈추는데 저기 저 높이 암벽이 또 다시 보인다. 산정상 군부대의 철조망 아래로 삐죽 나온 암벽. 아~ 생각보다 힘들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렇게 왔으니, 올라보자.

결국 정상, 전망이 좋다. 1100m가 넘어서는 높이. 그렇게나 높았나 깜짝 놀랬다. 경기도에선 화악산, 명지산 다음으로 높은 산. 저 멀리 안개가 쌓인 듯 뿌옇지만 그래도 오른 보람이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백운봉의 삐죽한 모습과 정확히 어떤 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둔산 정도로 보이는 독특한 산의 실루엣도 보기 좋다. 산새는 먹이를 구하려는듯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바위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시원한 정상의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아랫배 깊숙히 보낸다. 세상이 막힘없이 확 트이기를 바라며...

내려오는 길. 보통 등산객들은 같은 길로 내려가다 상원사쪽으로 빠지겠으나, 난 장군봉으로 해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장군봉까지 가는 길. 마주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게다가 장군봉서 내려오는 길, 중간에 길이 사라져버렸다. 아니 사라졌다는 것은 나의 핑계일터다. 분명 길은 놓여져 있었을테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다보니 뚜렷한 흔적을 보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맨다. 이번이 등산하면서 2번째로 겪는 혼돈이다. 물도 이미 떨어졌고, 비상식량도 없는 상태에서 뙤약볕까지. 힘들다. 길이 아닌 곳은 무릎까지 쌓인 낙엽과 잡목들로 헤쳐나가는데 무척 힘이 든다. 그래도 계곡 저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어떻게든 계곡쪽으로 내려가 밑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될듯 싶다. 원래의 목적지보다 한참 오른쪽으로 비껴간 것 같다. 선택은 목적지는 다르지만 일단 내려가는 것과 능선을 타고 넘어가 목적지쪽으로 향하는 2가지. 하지만 물이 없다는 것이 약점이니 빨리 내려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세상은 참 희한하다. 물과 비상식량을 염려해 대부분 돌아갈 땐 남을 정도의 분량을 싸 가기 마련인데, 이번 용문산은 관광단지였다는 생각에 조금 만만하게 본 것이었을까? 높이에 놀라고, 길을 잃고, 게다가 식량과 물 부족. 또 날씨는... 항상 어려움은 예상하지 않았을때 닥치는 법일까?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맞이하는 어려움은 마음이 그것을 맞이하고자 하는 전투상태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까? 예상치못한 어려움은 그 크기마저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두렵다는 것은 모험이 주는 매력이기도 하다. 뜻하지 않은 길 잃음이었지만,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는 모험을 끝마쳤다는 이상한 안도감에 기분이 괜찮다. 개울가에 앉아 족탁. 으, 발이 얼것 처럼 물이 시원하다. 아, 이 맛에 산에 오른다.

마을 입구, 무지하게 큰 전원주택을 지나 펜션을 겸하고 있는 산골밥상에서 더덕주와 함께 식사. 아~ 배 터질것 같다. 아주머니가 그 귀한 두릅까지 주시니, 신선이 따로 없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 시간이 맞지 않았지만 뭐 대순가? 일단 살아있음을 배로 먼저 느끼니, 만사가 평온하다. 원래 돌아가야 할 4시 반 차를 탈 수 있는 용문사쪽도 아니고 다른 곳이니, 용문까지 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조금 아깝지만 시간에 쫓기기 보다는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발을 뻗고 술을 거푸 들이킨다. 더덕주 한동이를 친구와 비우고, 콜택시를 부른 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난다. 10000원이 좀 아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선놀음에 비하면야...

돌아오는 길, 용문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청량리로. 오랜만에 타보는 완행열차. 앞 좌석에 대학생이 MT 사전답사를 다녀온 모양이다. 그들의 들떠 있는 모습이 좋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물도, 그리고 빨간 빛으로 변해가는 태양도. 오늘도 잊지못할 또 하나의 산행을 기억과 마음 한쪽에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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