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토요일 하늘이 무척 파랗다.

쉬는 날이면 두번씩 잔다. 한번 일어났다가 잠시 창문을 열어놓고 다시 눕는다. 오늘은...  글쎄 오늘은 왠지 꼼지락거리고 싶지 않았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전날 산에 오르리라 마음먹은 것도 있고.

7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청량리에서 1330번을 타고 가평 현리터미널로 가기 위해 조금 서두른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마다 출발시간이 달라 조금 초조하다. 게다가 청량리에서 지하철을 내렸을 때 화장실이 급해진다. 이상하게도 최근엔 산에 오르기전 꼭 화장실에 가는 버릇이 생겼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 중에 꼭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화장실을 가라는 부분이 생각난다. 낭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들여야 할 습관중에 하나. 다행히 낭패를 당하지는 않았다. 현대코아 앞에 세워진 1330번은 좌석에 앉자마자 출발했다. 왠지 뭔가 잘 들어맞는 기분이다. 그런데 차가 무지무지하게 막힌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가? 구리를 지나면서부터는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문다. 현리에서 운악산 가는 버스는 10시 20분 출발이다. 놓치면 한시간을 공치게 된다. 10시쯤 되자 나 말고도 초조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할머니 두분이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차 놓치면 안되는데... 기사 아저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인가? 그런데 이것도 궁한 것인가? 도시의 부산스러움에서 벗어나 느긋함을 즐기기 위한 여행에서 차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태운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무튼 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10시 17분 터미널 도착, 운악산 현등사로 가는 버스를 용케 탔다. 그리고 35분 운악산 앞에 도착, 슬슬 산을 오를 준비를 한다.

운악산은 경기 5악(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관악산, 가평 화악산) 중의 하나라고 한다. 935.5m의

 산으로 가히 악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산이었다. 매표소에서 눈썹바위로해서 만경대 정상까지 2시간 남짓 걸렸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에 오르는 기분이 최고다.  산의 연한 초록색 잎들에

마음마저 가벼워진다. 마음에 걸린 것은 산아래 놓인 골프장. 이 좁은 땅덩어리에 농약을 듬뿍 묻혀 키워내야할 잔디들을 거느린 저 골프장이 정말 필요한 걸까? 물론 여가와 놀이라는 측면에서 무엇인들 안괜찮겠는가마는 결코 얻는것보다는 잃는게 많은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으~ 잊어버리고 오르자. 입에 고구마를 문채 거친 숨을 몰아쉰다. 병풍바위의 아찔한 낭떠러지에 현기증이 인다. 꼬마 녀석 하나가 잘도 쫓아온다. 그래도 아직까지 산에 오르면서 나를 추월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장하다. 정상에 오르는 길, 바위들마다 철심이 박혀있다. 사람들이 쉽게 오르도록 만들어놓은 철심을 볼때마다 난 왜 일본이 일제시대때 맥을 끊어놓는다면서 설치해놓은 쇠말뚝이 생각나는 것일까?  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계단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철심이 왠지 눈에 거스른다. 하지만 덕분에 쉽게 산을 오를 수 있긴하다. 철심이 없었다면 엄청 고생했을것을 생각하면 필요악같기도 하고...

정상서 한숨 돌리고 절고개를 지나 현등사로 내려온다. 현등사 입구에 세워진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다. 이런, 요즘 무진장 고민하고 있는 나의 화두도 저 글자인데... 절에 들어가보면 화두를 세겨놓은 돌조각을 볼 수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중에 하나는 '이 뭐꼬'다. 현등사에 들어가보니 절이 주는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산에 오를때마다 느끼지만 산속 명당 자리는 군부대와 절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현등사의 관음전엔 주련이 한글로 되어있다. 오호라, 한글 주련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

그래서 여기 그 주련을 옮겨 적는다.

부처님 몸이 누리에 두루하다

모든 중생 앞앞에 나타나시니

인연따라 어디에나 두루하건만

본래의 보리좌를 여의지 않으시니

누군가가 이도리에 의심 없으면

만나는 일 모두가 살바야이리라.

 

살바야는 일체지를 말하며, 모든 것을 아는 사람, 즉 부처님을 이르는 것이기도 하다.

만나는 일 모두가 살바야이니, 지금 이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 속에서도 부처가 가득하시겠군... 부처의 자비로 넘쳐나길, 나무아미타불.

다시 매표소로 내려오니 1시 45분 할머니 집에 들어가 순두부를 시켜 먹는다. 아~ 이 순두부라는 것이 순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손으로 마구 뜯은 것 같이 거칠다. 하지만 맛이 순하니 좋다. 할머니들의 여유로움과 정이 넘쳐보인다. 좋게 보려면 좋게 보이기 마련. 산 속에서 땀을 흘리고 나서인지 모르지만 맛있게 한기를 때우고, 자 이제부터가 고민이다. 터미널까지 가는 차는 2시간 정도 비어 있는데, 에라 모르겠다. 한 7km정도 거리지만 걸어보자. 이런 날씨도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시골길을 걷기로 한다. 조금 다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걸어보자.

한 2,3km정도 갔을까? 자꾸만 힐끗힐끗 뒤를 쳐다본다. 히치하이킹을 위해서. 아, 이 나이에 시커멓게 생긴 도둑놈 마냥한 사람에게 누가 차를 세워줄 것인가? 그럼에도 계속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힐끔힐끔. 아 좋은 풍경 다 놓치게 생겼다. 도대체 난 지금 왜 걷고 있는거야? 마을의 개들은 짖어대고, 소똥 냄새 진동하고...

히치하이킹을 포기하니 그제서 풍경은 다시 내 마음으로 돌아왔다. 몸이 고생해도 마음은 편안타. 엔돌핀이 솟으면 몸도 가뿐해질텐데, 그것은 몽상일뿐이고... 그래도 터벅터벅 걷는 길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길가에 아저씨, 여중생 모르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한참을 걸어 터미널 도착, 마음을 놓고 서울로 돌아온다.

눈속에 푸른 하늘을 담고서. 마음의 요동침을 절실히 느끼며, 무엇에 쫓겼는지 허겁지겁한 모습에 스스로 웃으며 말이다. 길을 떠날 땐 차라리 시계마저 벗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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