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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 ㅣ 조용헌의 백가기행 1
조용헌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풍수학이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바로 명당이다. 명당을 찾아서 거기에 집 짓고 살면 된다. 그렇다면 어떤 곳이 명당인가? 무릇 명당이란 일단 거기에 살면 사람이 건강해져야 한다. 그다음에는 영성이 밝아져야 한다. 명당은 건강과 영성이다. 영성은 뭔가? 자유다. 영성이 밝아질수록 자유가 확대된다. 영성과 자유는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식으로 이야기하면 명당에 살면 구원에 가까워진다. ... 자기에게 맞는 집터는 어떻게 구하는가? 어떻게 그 장소가 명당인지를 확인한단 말인가? 이 같은 의문에 대한 필자 나름의 해답은 두 가지다. 우선 그 장소에서 잠을 잘 수 있으면 한번 자봐야 한다는 것이다. .. 잠을 자고 나서는 숙면을 취했는가가 관건이다. 깊이 잠들고, 자고 난 후 몸이 개운하면 그곳은 나에게 맞는 터 또는 명당이라 볼 수 있다. 205쪽
이 책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집들을 직접 찾아 그 집의 내력을 담고 있다. 집값 비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서울 평창동의 럭셔리한 집에서부터 한적한 시골의 2평 남짓한 흙집까지 그 스펙트럼이 광범위하다. 그런데 이들을 묶어주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명당이 아닐까 싶다.
지은이는 명당을 건강과 영성으로 말한다. 이때 건강과 영성은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집단적, 사회적 차원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백가기행에 소개된 한옥 중에는 집안대대로 내려온 것들이 많다. 역사적 사건을 수두룩하게 겪으면서도 온전하게 집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집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과의 공존을 꾀했기 때문이다. 즉 자신만의 안위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안위를 생각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다른 한편으론 유독 혼자 사는 남자들의 집이 많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사회라는 울타리로부터 벗어나 철저히 혼자로 산다는 것은 외롭다는 의미와 함께 자유롭다는 뜻도 포함된다. 영성의 확장이라는 뜻의 자유는 소유욕의 감소와도 관련이 깊다. 즉 갖고 싶은 것이 적을 수록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자유가 확장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다.(가족이 생긴다고 해서 욕망이 확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이라는 의무가 욕망의 테두리를 넓히는 것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욕망을 줄이려면 삶이 간소해야 한다. 군더더기를 다 털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 간소함을 추구하다 보면 궁색하게 보일 수도 있다. 궁색은 자칫 속됨으로 갈 수 있다. 이 또한 바라는 삶이 아니다. 소박하면서도 궁색하지 않고 품격이 느껴지는 집. 이 집 주인인 오여 김창욱 선생이 품은 인생관이다. 51쪽
두려움과 근심이 없는데 점을 쳐서 무엇하겠는가. 그만큼 세상살이에서 독립(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다)과 둔세(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근심이 없다)는 어렵다. 166쪽
어떤 삶이 바람직한 것인가? 돈을 쓰지 않는 삶이 바람직하다. 돈을 적게 쓰면 돈을 적게 벌어도 된다. 돈을 적게 벌면 시간이 남는다. 남는 시간에 인생을 즐겨야 한다. 어떻게 인생을 즐긴단 말인가? 나무, 꽃, 돌, 물고기, 구름, 석양, 한가롭게 흩어져 가는 연기를 보면서 즐겨야 한다. 이런 것이 다 나를 즐겁게 해준다. 쾌락의 근원인 셈이다. 174쪽 -하동 시인 박남준
책을 덮고 나니 연립주택과 아파트에서 살아온 내 주거환경이 답답해져 온다. 궁색하지 않으면서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삶, 과연 가능할까. 어떻게 살아야 이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가.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생각과 업보, 나아가서는 운명까지도 관계되는 부분이 바로 이 공간의 문제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공간을 전환해야 한다. 여행이 주는 매력이 여기에 있다. 공간을 바꿔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의 불편함이 따른다. 156쪽
불편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위해 한발 나아가보자고 새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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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내 경험에 의하면 금기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금기에 달려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금기를 금기로 여기고 무서워하면 이야기는 없다. 금기에 달려들어야 이야기가 생긴다. 왜냐하면 스파크가 튀기 떄문이다. 스파크가 이야기인 것이다. 맨땅에 헤딩을 해야 들을 만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러자니 이마에 피가 맺힌다. 81쪽
동정일여라는 말이 있다. 동과 정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것인가? 이것이 동양의 신비가들이 평생 동안 추구한 목표였다. 움직이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면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왜 고요함이 중요하단 말인가? 고요함이 있어야만 긴장이 풀리고, 긴장이 풀려야만 내면 세계로 깊이 침잠할 수 있고, 침잠을 해야만 신비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비 체험은 깊은 행복감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체험의 기본은 정이다. 고요함이 바탕이 되어야만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현대문명은 구조적으로 이 고요함을 얻기 어렵게 되어 있다.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와 같은 문명의 이기는 고요함을 파괴하는 무기다. 우리는 고대나 중세인에 비해 동만 있고, 정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 고요함이 움짃임보다 더 기본이고 우선적인데, 이 고요함이 너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