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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과 함께 나이를 같이 먹는 것임을 알게됐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켜켜이 쌓여진 먼지의 두께만큼이나 책도 그 값어치를 계속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맨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그 제목에 마음이 쏠려, 그리고 책의 첫장에 시작되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대립항에 매몰되어 모든 내용이 그것을 주제로 한 변형으로만 보였다. 그래서 토마스를 주축으로 가벼움의 대변자 사비나, 무거움의 대변자 테레사의 삶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의 삶이란 그토록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혹은 무거움이었던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책을 접하게 되니 주인공은 이들 외에도 카레닌이 더 있음을 알게됐다. 토마스와 테레사가 키우던 개, 카레닌. 그(그녀)는 행복했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행복이란 반복을 갈구하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맴돌지 않고 직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인간은 키취적 발상을 하게됐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1회적이며 그 1회적 인생 또한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어 자신이 그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한 번 결정된 사항은 돌이켜지지 못하고 그것으로 끝나게 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처음 만나는 두려움, 이것이 인간의 삶을 가볍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러기에 인간은 반복, 재생산되는 키취의 욕구를 통해 행복을 갈구한다. 반복에의 욕구는 실은 예측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예측가능하다는 것은 그 안에서 점진적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낙관적이다. 무거운 것은 실은 낙관적이며 밝은 것이다. 반대로 한번만으로 끝나버리는 인간의 삶은 어찌됐든 일단 선택되어지면 그것으로 끝나버리기에 가벼운 것이지만 그속에선 비관적이며 어두운 색채를 띠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의 삶은 그토록 가벼우면서도 우울한 모습을 띨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우리네 삶은 무겁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지금도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놓여진 나는 선택의 순간을 계속 거쳐야 하며 그것이 되돌이킬 수 없음을 알기에 그 고민의 무게가 나의 어깨를 세차게 짓누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때론 울부짖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