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주택은 100프로 단독주택이고 대지면적은 한국의 그것보다 작거나 비슷한데 재밌는건, 실내가 매우 좁고 앞쪽으로 길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백야드로 정원을 만들려고 보니 자연스럽게 실내공간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정원이라 해봐야 사실 별게 없는데 내가 있는 집같은 경우 바베큐 화덕이랑 잔디, 돌멩이 몇개,,뭐 이런게 전부인데, 1층 거실을 나가면 부엌으로 연결되고 이 부엌의 유리창을 통해서 이 정원이 꽤 잘 보여서 그 날의 날씨를 나가지 않고도 바로 알수 있다. 여기 사람들은 조경(landscaping)이 취미라고 써놓은 경우가 많은데,,이 정도를 사실 조경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라면 식용채소를 일용노동자처럼 해대는데다 나무 몇 그루 화분 몇 개는 조경축에도 못 끼지 않나??
여튼 아직 이 정원에 나가서 특별한 체험을 하진 못한 것이, 거실에서 봐도 날씨가 정말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의 차갑고 깨끗한 대기의 가을날씨처럼 맑긴한데 유리알처럼 차가운 느낌 바로 그것인데 실제로 나가봐도 공기가 그렇다..춥긴한데 매섭게 춥진 않아서 오한이 들진 않고, 내내 어설프게 추운느낌..실내도 난방을 팡팡 틀어놓는 경우를 거의 못 느꼈다. 물론 대형 쇼핑몰에서를 제외하고서는 여긴 주택들이 라디에이터 같은 걸 창문쪽에 설치하는 국부난방식이다. 바닥을 데피는 스탈이 아니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금요일 밤에 도착해서 다음날 8시쯤 기상했다. 생각보다 잠이 당췌 오지 않았다. 커피를 잔뜩마시고(기대와는 다르게 드립커피를 부엌에 상시로 놓고 향을 풍겨대지 않았다. 이 집은 한국처럼 인스턴트 커피 파우더로 타서 마신다. 대실망ㅠㅠ) 한국에서 큰맘 먹고 준비해온 고어텍스 재질의 윈드 브락커를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뭔 배짱인지 집주소나 전화번호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길 잃지마라는 주인여자의 당부를 조크로 받아쳤다.. 이럴땐 한 배짱한다니깐..
물론 집을 걸어나오면서 주소 싸인을 확인하면서, 헨젤과 그레텔 처럼 빵조각 떨어트리듯이 사진을 조각 조각 찍어대는 걸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주택가에서 그러지 않았따는 점이고 더 심각한 문제는 여기는 아파트가 아니라 온통 단독주택 단지 투성이라 당췌 집들이 구별이 안된다는 점이다. 집의 구조나 설계디자인, 페인트 색, 울타리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집 현관문에 집 번호를 새겨 놓긴 했지만, 그 주택가에서만 집주소로서 유효한 것이다. 어떤 구역은 집번호가 200번대에 이르고 어떤 구역은 그보다 적다.
여튼 날씨는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자켓을 여미고, 길을 가는데 한 사발 들이킨 카페인 덕분인지 발걸음이 시차문제에도 불구하고 꽤 가벼웠다. 결국 이게 화근이었다. 피곤하기라도 하면 멀리 가지도 못했을텐데, 마치 분홍신처럼 뒷축이 이미 헤지도록 닳아버린 내 검은 운동화는 악마처럼 나를 낯선 골목으로 이끌고 갔다. 이럴 떄 보면 나는 정말 대책이 없이 용감하다. 평소의 나라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구글 어스를 확인하고 지도를 챙기고 심지어 나침반까지 가지고 다닐 나다. 그런데 간혹 이런 평소의 궤도를 확 이탈해 버릴 떄가 있는데 바로 이 날이 그랬다.
더 민망한 것은 내가 이 집 동네에서 완전히 확 벗어나지도 않았으면서(사실 이 동네자체가 구멍각만하다..외국인한테만 미로처럼 보일뿐이지...작아서 더 헷갈리는지도 모르겠지만)길을 잃었다는 사실이고, 이 사실을 아주 늦게서야 깨달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산책만 할 생각이었고, 로드, 에비뉴, 스트리트 싸인등을 개 닭보듯이 그냥 지나쳤다. 중간 중간 얼토당토한 거리 모습을 찍어둔게 그나마 똑똑한 짓거리였다. 그 사진들은 레일 크로스, 아이언 디자인 컴퍼니 상호(대체 왜 찍은 거지?)그리고 오렌지 쥬스 광고판,,이때는 모든 것이 신선했고 유쾌해 보였다 ㅋㅋ,,자전거 도로 싸인, 말이 나와서 말인데 자전거 도로가 상당히 후진적으로 보인다. 기대와는 다르게 차량들의 주행속도도 한국에 못지 않고 상당히 불관용스럽게 차들을 몬다.. 미국의 시골에서 마주친 승용차들과는 적잖이 비교가 되어 실망스럽다.
자전거를 타기에 프랜드리한 환경도 아니면서 또 요구하는 것은 왜케 많은지 헬맷착용 의무에, 형광색 자켓,(이건 정말 웃긴다.그런데 이걸 다 걸치고 타는 사람도 간혹 있긴 하더군) 각종 야광 보호대.. 그럼에도 쿨하게 이런거 다 무시하고 타는 영스타들도 상당수다.. 영한 것들은 어디서나 반항적이거든..
이렇게 별로 영양가 없는 사진들만 좋다고 찍어대다가 평범한 모습들에 지루해진 나는 하이 스트리트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이스트리트는 당장으로는 투머치인듯해서 대안으로 테스코로 향했다. 그 테스코가 이곳의 메인 스팟이고 그게 또 큰 길로 이어져서 하이스트리트로 연결되긴 하나본데 정작 테스코 광장에 들어서서 스포츠 용품 샵에서 발길이 멈췄다. 각종 스포츠 브랜드 제품, 자전거, 헬쓰 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아침 댓바람부터 온 바람에 손님도 없는 매장을 혼자 좋다고 쏘다니면서 나이키니 아디다스니 트레이닝 복을 입었다 벗었다 혼자 난리 부르스를 한참 떤 다음에서야 벌써 오후 1시가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는 안고픈데 꽤 피곤하고 뭣보다 졸리기 시작했따. 옳다구나하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눈에 확 띠는 랜드마크가 그나마 몇 개 있어서 테스코 근처는 구분이 쉬웠다.
그런데 메인 스트리트와 점점 멀어지는 주택가로 들어올수록 갈수록 태산이었다. 모든 집들이 비슷비슥해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내가 Nikon coolpix에 담아놓은 사진들을 돌려보기 시작했다.말그대로 backward,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홈스테이 집 현관사진 바로 다음에 찍힌 것이, rail -cross였다. 사진을 확인하기 전에도 이미 여기 부근까지는 기억이 선명했으므로 그 주위를 어슬렁 거렸다. 그런데 골목이 문제였다. 그 주변에 방향도 맞게 어느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들어서 보니 '이게 아닌갑다'하는 느낌인 것이었다. 그 후로부턴 방항감각과는 영영 작별이었다. 결국 다시 빠져서 메인 로드로 나와보니 분명 사진에도 찍혀 있긴 하고 이 길을 거쳐 오긴 했는데 그전에 어느 골목을 통해서 집을 빠져나왔는지가
미궁에 봉착했다. 결국 다시 테스코 근처까지 왔고, 그 주변의 주택단지를 모두 훑게 되었다.. austine croft, road, avenue,,등등 어떤 주택가의 집들은 한국처럼 번호 키에 철통 경비를 갖춘 모양새였고, 대부분의 다른 집들은 허름했고, 몇 십년간 시간이 멈춘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듯은 그 등급을 매기자면 중간쯤될까?
그런데 이러한 평가 자체도 수많은 집을 지나면서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사진에 찍어놓지 않았다면 그 현관문이나 번호가 여하하였는지도 수많은 다른 데이터들에 묻혀서 바래져 버렸을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나의 최종 무기, 길 묻기가 시작되었다.. 그 즈음에 나는 내가 아주 어처구니 없이 위험한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 집에서 십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처럼 그 집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채로 그집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무식한 용감함에 치가 떨렸다. 거의 패닉 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할 즈음에 아마 나는 세 명정도의 여자에게 길을 물었을 것이다. 대부분은 상냥한 얼굴을 가지고 상냥하게 가르쳐 주었지만, 집이 위치한 도로명이나 전화번호, 그들의 surname없이 그 집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그들이 내게 더 미안해 하며 멀어져갔다.
그러던 와중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와 마주치고는 그 중 남편에게 길을 물었더니, 이번에는 집이 아닌 경찰서가 어디냐고 물었다,,내 판단에 이런 경우 내 희망은 경찰서밖에 없었으므로,,그는 내가 길을 잃었음을 이해하고는 경찰서 대신 바로 옆 pub으로 데려갔다. 펍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6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펍주인남자는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고는 내가 말하는 앤과 더그라는 사람에 대해서 물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성이 뭔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주인 부부에게 몇 번이나 성이 뭔지를 물을까 하다가 말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전화번호부로 찾아봐 달라고 하니 전화번호부 책을 펼쳐서 보여주었지만, 성을 모르면 그런 흔한 이름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아내까지도 가세해서 너무도 진지하게 내 문제를 해결해주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펍에 손님들에겐 소 닭보듯이 하면서 말이다. 겨우 레지스터만 딸깍거리며 계산을 하곤 이내 내곁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곤 그는 내 집묘사에 따라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고 그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건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이 문을 나서면 , 이미 시계까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내가 집을 나설때는 오전 11시였다.. 더 어두워지면 끝장인 것이다..다행히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나는 더 이상의 대안이 없었다. 다시 돌아와서 경찰서에 대해서 말하자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경찰서는 거기서 한참 멀었다. 그렇지만 전화로 한참을 설명한 이후로도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고, 또 한참을 그와 그의 아내와 탐정처럼 희박한 단서를 가지고 김서방 찾기를 계속했다..내가 읽었단 체스터튼이나 크리스트 등의 영국 탐정소설이 아이러닉하게도 내 뇌리를 스친다.. 그들이 탐정소설에 탐닉하는 건 우연이 아니야..나는 지금 폐를 끼치기 보다는 그들의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야..라며 자가당착적인 착각에 빠져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집 주인 여자의 얼굴과 몸집은 꽤 피로해 보였다..이는 영국 중년, 노년 여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듯.. 그들이 웃지 않거나 말하지 않으면 다들 화나 보인다..몸 조차도 한 덩치들이라 화나 보이고 ㅠㅠ
결국 기다리던 경찰은 화장실 옆 문을 통해서 어느 순간 슬그머니 들어와 내 옆에 서 있어서 나는 감지조차 못했다. 알아 보기 쉬운 경찰복을 입은, 조금 놀랍게도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녀는 바로 나를 그녀가 운전하는 경찰차로 인도했고, 이내 골목 골목을 와일드한 운전태도로 훑기 시작했다..역시나 그녀 역시 내 묘사만으로는집을 못찾았다.. 결국 그녀는 조금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포기하고는 경찰서에 가서 동료에 물어봐야겠다고 했다. 역시나 경찰도 찾을 수 없었다..조금 언덕에 있고, 주변 집들의 모양새는 여느 집들과 다르게 다 크기, 색이 달랐고, 울타리는 낮은 벽돌이었고,집 사이의 로드는 매우 좁고 차들이 거의 지나지 않았다.. 이게 내 인상의 전부였으니 기대하는 게 무리다.
경찰서에 오니, 두 남자가 컴퓨터 앞에서 그날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듯 보였고, 그 중 한 남자에게 다가가 대학에 전화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역시 날 데러온 경찰이 전화를 했지만, 토요일 오후라 불통인듯, 물론 나는 그들이 보내준 문서에 24시간 비상 연락망을 갖고 있었으나, 역시나 무게를 줄인다는 핑계로 집에 놓고 나온 상태였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진짜로 상시로 이 전화번호에 누군가를 대기시키고 있었다. 결국 대학에 알아보는 건 포기하고, 내게 누가 나를 여기로 보냈는지, 누가 픽업을 했는지를 묻기 시작했는데, 나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다..나중에 대학에 가서야 한씨성을 가진 한국남자가 중간에서 모든 것을 어레인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알았다고 해도 나는 그의 번호를 몰랐다. 여경찰은 다른 대안으로 내 사진에 찍힌 엠뷸란스를 토대로 여자 동료들에게 구글 어스를 훑으라고 한 모양이었다.(엠뷸런스가 있었던가?? 난 금시초문이었다..역시 사막에서 낙타찾기..) 나를 위층으로 데려가서는 컴퓨터로 주택가들을 보여줬다..테스코로부터 10분, 대학으로부터 15분..이라는 미약한 거리 정보를 가지고 추정된 주택가였는데 입체 사진을 봐도 당췌 구분이 안 되었는데..결국 나는 사진기를 다시 가져와 홈스테이 방에서 창문으로 찍은 바로 앞집과 그집 옆집 사진을 다시 보여주고, 줌인을 해서 크게 보여줬는데 그제서야 그들은 유레카를 외쳤다! 그 사진을 줌인하자, 그 집 앞에 주차된 차량의 번호판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또 왜 경찰은 디카의 줌인 기능에 대해 전혀 몰랐을까?? 여튼 그녀는 차량 번호를 조회했고 이내 주소를 알아냈다.. 모든 것이 사실 정말 간단했던 것이다.. 다만 내가 이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정말 찍는 순간에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에 따른 사진이었다. 내가 이집들을 도찰하거나 몰래 들어갈 작정이 아니었다면 왜 이웃집을 찍겠는가..나의 어린애같은 태도와 행동이 쓸모있을 데가 있는 것이다 ㅋㅋ
결국, 그녀가 나를 그 집 문앞에 데려다 놓았을 때, 나는 거의 감격한 채 그녀를 얼싸안고 키스를 퍼붓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그냐가 원치 않는듯 보여서 참았다..
그 동안 주인집 부부는 거실 창으로 내가 경찰차를 타고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나는 너무나 피곤했으므로, 연기자처럼 과정되게 상황을 설명해줬다. 저녁같은 건 생략하고 바로 침대로 돌진하고 싶었지만,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우니 배가 고파서 견딜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한그릇을 깨끗하게 먹어치우고 길고 장황했고 어처구니없었던 하루를 유쾌하게 마감했다.. 왠지 영국식 코메디같아서 재밌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