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다. 어느 경우에서든 쓰기가 읽기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 내 마음속 최고의 일타강사 정희진쌤도 진정한 '공부'란 다름 아닌 '쓰기'라 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러나.













어떤 책들은 읽는 것만도 벅차서 사람의 마음을 짓누를 뿐 아니라, 쓰기를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리뷰를, 페이퍼를 쓸 수 없다. 그런 책들을 기억하자면,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 차일드』 등이다. 거기에 이 책 한 권을 더할 수 없어서, 간단하게라도 기록을 남긴다.











나는 비교적 최근에 『왓 이즈 섹스』를 읽었다. 하지만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라는 이 단순한 문장을 쉽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알게 됐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사실, 나의 무지와 내 무지의 확인은 변동될 수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됐다. 챗GPT를 가끔 이용하는 큰아이에게 말했다. **야, 이거, 걔한테 좀 물어봐. 10초도 안 걸려 찾아낸 해답. 그 결론.

남성과 여성(혹은 두 주체)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다르고, 서로 완전히 소통하거나 충족될 수 없다. 인간은 상징계(언어와 문화)의 제약 속에서 욕망을 표현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결핍이 남는다.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성적 관계"를 이상적이고 완벽한 것으로 묘사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결핍과 욕망의 비대칭성을 감추려는 환상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환상을 통해 타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만, 그 환상은 결코 실재계(the Real)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혹은 주체와 주체) 사이에 "완벽한 관계"나 "상호 완전한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관계는 없다.

아, 챗GPT의 문장을 읽고 나니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알 것 같애. 그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도 모르겠더니.

이런 나를 슬퍼하며, 이 두꺼운 책을 이어 읽는다. '성관계는 없다', 이렇게 써놓고.

그런데, 그 없다던 성관계가 있단다. 있다고 한다. 없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알겠다 했는데, 있다고. 성관계는 있다고.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반복하겠다. 신의 여자가 되어, 신에게 안겨, 말씀인 신의 아이를 낳는 것. 즉, "세계"를 낳는 것. 그것이 "여성의 향락=대타자의 향락의 극점이다. "성관계는 있다." 그렇다. "성관계는 없다"란 '이 세계에는 마리아가 없다. 따라서 예수가 출현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 다른 뜻은 없다. 한 사회를, 한 정치체를, 한 "세계"를 새로 낳지 않는다. 그래서 "성관계는 없다"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이다.(210쪽)











신의 여자가 되어 세계를 낳는 건 여성의 향락이며 또한 대타자 향락의 극점이다. 이를 사사키는 글쓰기의 향락이라고 부른다. 종교가 세계를 지배하고, 남성이 종교를 지배하던 시절, 그건 지금도 이어져 오는 시간이기는 한데, 여성이 자신의 향락을 극점으로, 최대한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건 바로 '글쓰기'라는 것. 페미니즘 초기 역사에서 '신과의 합입'로 남자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위치, 신의 여자가 되는 위치에 다다른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나(거다 러너의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일단 잠시 미뤄두고.

나는 오히려 '죽음'에 대한 챕터가 인상 깊었다. 죽음-영혼-영생 류의 생각은 언제나 나의 주된 관심사이다. 죽음과 관련된 책, 그것만으로 승부한 책들을 읽어보아도 '뾰족한' 정답은 없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논증은 이렇게 전개된다. 1) 죽음은 피할 수 없다 2) 죽었다가 살아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건 진정한 죽음이었다기보다는 일시적 코마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경우다. 3) 죽음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여 왔다 3.1) 과학적 노력에 의해 조만간 죽음을 피할 방법이 발견될 것이다 (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이니 당신과는 상관없다) 4)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엥?) 5) 죽음을 받아들여라.


나는 우주에 대한 의문과 삶에 대한 회의, 그리고 인생사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 '죽음'에 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외면하고 대면할 수 있는 '삶의 진실'이란 없다. 하지만, 인문, 교양, 사회심리학 등의 영역에서는 '죽음'을 위의 논증으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물론 과학은 좀 다르게 말한다. 나는 별의 일부, 우주의 먼지로써 치열한 진화의 과정에 등장한 '찰나'의 혼합물이며, 그런 '나'의 의식을 포함한 나의 육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산이 부서진다. 흔적 없이. 나는 이 책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건 '시체 인형'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완료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부가 아니다. 죽음, 그것에서 폭로되는 것은 너의 진리는 없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나의 죽음"을 지켜보고, 받아들이고, 완수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이다. 내가 죽었는지 여부조차 "이 나"는 모른다. 절대적인 비진리, 비-확실성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진리로 확정하는 것은 이 내가 없는 세계의 "타인"이다. "전부"를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타인, 죽어가는 내 몸을 끌어안고, 그 시체를 애도하는 타인뿐이다. (231쪽)


너의 죽음을 바라보는 이는 '너'가 아닌 타인이며, '너'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 역시 '너'가 아닌 '타인'이라는 설명이다. 죽음은 내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다. 죽음은 나의 슬픔이 아닌, 너의 슬픔이며, 나의 한계가 아니고, 바로 너의 한계다. 나는 그 죽음과 '상관'이 없다. 내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을 이미 완수했으므로. 나는 그때 존재하지 않음으로. 그때 등장하는 것이 '시체 인형'이다. 숨, 마지막 숨이 떠나간 뒤, 이 사람, 이 육체는 내가 사랑했던 '그'가 아니다. 시체 인형 속에 갇혀 있는 '그 무언가'는 떠나간다. 그 이후는 '그'는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죽음'에 대해 이렇게 길게 쓸려고 했던 거 아닌데, 어쩔 도리가 없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살펴보자. 그녀는 가장 최근에 출간한 소설에서 이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녀(죽은 자)는 어디로 갔지? 그녀는 바로 저기 있었어. 그런데 이제 그녀는 가버렸어.'









AT THREE O'CLOCK that morning Bob was woken by a phone call from Jim. "She's gone," Jim said.

JIM HAD BEEN sitting beside Helen's hospital bed in the living room when he heard her take her last breath. Jim was not aware that he was waiting for any breath at all, but then her breathing stopped. It just stopped. And he was absolutely stunned. He kept staring at her, and her eyes were partly closed, and she did not take another breath. Where was she? She was right there, but she was gone. He could not believe it.(『Tell me Everything』, 139p)

이제, 푸코. 물 한 잔 마시고. 가성비의 측면에서 볼 때, 『감시와 처벌』은 그 어떤 책보다 가성비가 높다. 푸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나였음) 1독 해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사사키 아타루는 『감시와 처벌』을 중심으로 푸코의 이론을 정리한다. 그걸 더 간단히 정리해 보자.

<제55절 세 가지 풍경>에서 사사키는 『감시와 처벌』이 "주권 권력의 신체형에서 규율 권력에 의한 교정·관리로" 요약된다고 소개한다. 첫 번째 '신체형'은 신체에 직접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주권을 확증한다. 신체형은 의례(483쪽)로서 현장에서 이를 목도하는 민중을 통해 잔인한 의식이 완성된다. 두 번째는 '형벌의 기호학'(489쪽)으로서 죄인의 신체에 영속적인 인쇄(인상)을 새겨넣는다. 이는 '처벌의 기호 기술'로 일컬어지는 '표상'의 처벌로서, 노동형을 통해 완성된다. 세 번째가 '감옥'이다. 이러한 처벌은 기호가 아니라 '훈련'으로 작동한다. 시간표, 일과시간 할당표, 의무적인 운동, 규칙적인 활동, 혼자 하는 명상, 공동 작업, 정숙, 근면, 존경심, 좋은 습관 등의 기술(493쪽)이 "복종하는 주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제일 흥미로운 지점은 503쪽이다. 권력이 시간을 대상으로 삼게 되면서, 직선적인 시간의 탄생을 가져왔고, 진화, 진보의 시간이 탄생했다고 본다. 이것이 규율 권력의 동일화, 동질화, 균질화를 촉진했고, 감옥의 운영 매커니즘이 학교, 병원, 군대, 공장과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밝혀낸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규율적이다. 그 무기는 규율의 성능, 규율의 효능이다"(521쪽)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자본주의의 무한 자기 계발과 자기 착취의 철학적 근간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그러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이렇게 책 3권을 찜해 둔다. 집에 2권이나 있어서 나도 놀랐다.













푸코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게 된 듯한데, 르장드르나 라캉에 대해서는 아직도 오리무중, 깜깜무소식이다. 110쪽이 남았는데, 다 읽고 나면 쓰지 못할 것 같아 아쉬운 대로 감상을 남겨둔다. 내가 뭐라고 썼는지 모르겠는 그 무엇을 쓰는 이 과정조차 배움의 과정이 될 거라 믿고 싶지만, 그게 항상,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그래도 사사키의 이런 문장을 만나서 기뻤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예를 들어도 좋다.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쓴다. 이 막막하고 어떤 결론에 이를지 전혀 모르는 작업, 저 새벽의 작업, 신앙과 무신앙 사이에 있는 저 잿빛 공간의 작업을 그녀는 어찌어찌 마무리하게 된다. 믿고 있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믿지 않는 것도 아닌, 이 자기가 쓴 것이 그 순간 "돌연"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이 된다. 이를 읽은 타인 또한 당연히 그녀가 이것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리라.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 써 있으니까. 그리고 불현듯, 돌연 그녀는 깨닫게 된다. 어느새 자신도 믿고 있다는 것을. 자기도, 자기가 쓴 것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말았음을! (417쪽)

내가 쓴 것을 의심의 여지 없는 신념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내가 믿는 것은 내가 쓴 것,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어찌 마무리했다.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라캉은 분명하게 말했다. 대상 a는 "쪼가리 같은 대상objet dedecher"이고 "불가능한 것"이라고. 쓰레기, 똥, 욕망의 진정한 원인이고 주체의 진리이나 도달 불가능한 "그 무엇". "우리가 대상 a라고 부르는 저 특이한, 견줄 데 없는, 역설적인 대상." 그것은 본질이나 실체가 없고, 자기에 반해 항상 반전하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인" 것이다. - P172

처음부터 우리는 시체의 인형이고, 시체의 인형에서 나온 찌꺼기를 핥고, 시체의 인형에 붙은 작은 팔루스에 환희하고, 시체가 되자마자 자신과 닮은 시체의 인형으로 대체되어 이 인형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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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3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서야, 저도 블랑쇼 인용였던가요. 결국에 죽음은 죽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혹은 죽은이의 죽음을 받아들여야하는 사람들에 의해 선언되어야 한다는 뉘앙스의 부분에서 곰곰해졌던 기억이 났어요! (그런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 채 샤이가이 푸코에만 하트 치고 자빠져있었다 ㅋㅋㅋ)

맞아요. 정말 맞아요. 작년에 읽었던 버틀러의 위태로운 삶과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라는 책도 생각이 납니다. 죽음은 죽는 자가 아닌 타인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태도는 타인에 대한 태도와도 뗄 수 없을 것 같네요.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그녀는 없습니다. 그도 없고요. 그리고. 그게 죽음이네요.

단발머리 2025-01-13 09:50   좋아요 1 | URL
저는 내세를 믿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어떠하다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답을, 그러니까 ‘딱 떨어진‘ 답을 피하는 다른 책들에 비해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부딪힌거 같아요. 그 점에서 저는 점수를 주고 싶어요.

죽음은 ‘죽는 자‘가 아닌 타인의 것이구요. 그래서, 의미 있는, 혹은 나를 뒤흔들 수 있는 죽음이란 나의 죽음이 아니라 타인(반려동물 포함)의 죽음이 될 테고요.
아침 일찍 부고 소식을 접했어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오후에는 나가봐야겠습니다.
쟝님도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독서괭 2025-01-15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저도 챗지피티 요약글 읽고 오 뭔지 알겠어 했는데 그 밑에 인용문 읽으니 전혀 모르겠네요 ㅋㅋㅋㅋ 와 ㅋㅋㅋㅋ
요즘 드는 생각인데 여성주의 책을 못 읽다보니 점점 멍청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예요. 한창 여성주의 책 따라 읽을 때 썼던 글들 보면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싶네요 ㅜ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5-01-17 10:08   좋아요 1 | URL
저는 다른 건 모르겠고요 ㅋㅋㅋㅋㅋㅋㅋ(여성주의책 어려우니깐요, 인정할 건 인정하는 스타일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여성주의책 읽을 때 파바박!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앗?! 이럴 때요. 저는 그 순간이 참 좋아서 여성주의책 읽기가 좋아요.
멋지고 야무지게 여성주의 비평을 써내려가시던 독서괭님을 여성주의 책 읽기에 다시 한 번 초대합니다! 어서 오소서!!
 
















진짜 무서운 건 아픈 게 아니라 죽는 거다, 라고 생각한다. 생각했다. 아파보니 다르다. 진짜 무서운 건 아프다가 죽는 거다. 죽을 만큼 아픈 것. 아픈 데도 죽지 않는 것. 그런 게 진짜 무서운 일이다.

마지막 주에 너무 바쁘기도 했지만, 그간 피로가 쌓여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출근하는 날, 퇴근 인사를 할 때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아, 아, 아.... 안녕히 계세요!"를 말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도 그날만은 아플 수 없어서 알약 털어먹고, 물약 마시고, 뜨거운 물 마시고, 입안이 화~안 사탕을 세 개 물고, 마스크 쓰고, 네발로 기어서 교회에 갔다. 그렇게 송구영신예배를 무사히 마치고 와서는 계속 밥-잠-밥-잠-병원-밥-잠의 시간을 보냈다. 다시 주일이 한 번 지나가고, 정신을 차리니, 그러니까 달력을 쳐다보니 1월 6일이었다. 1월 6일? 그렇게 나의 새해는 1월 6일이었다. 그렇게 1월 6일을 1월 1일처럼 보내고 화요일이 돼서야 책을 펼쳤으나 갈 길이 멀었고. 친구가 보내준 라떼와 스트로베리 초콜릿케이크(사실 친구가 보내준건 아메리카노와 아이스박스)와 함께 즐거운 독서 시간을 마침내 보냈다.








그리고 그 길고 어려운 책을 읽는 사이사이, 쉬는 시간마다 이 책을 읽었다.


진짜 무서운 건 아픈 게 아니라 죽는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픔이 죽음으로까지 가는 과정이 괴로운 일이고, 그게 바로 노화라고 했을 때, '세월의 무게를 덜어주는 경이로운 노화 과학(부제)'이 궁금해서가 아니고. 아니고! 이 책을 번역하신 배동근 님이 정희진쌤의 매거진에 출연하셨을 때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 책을 찾아보게 된 거다. 어떤 글에서, 그 책을 '어떻게' 해서 읽게 됐는지 쓰는 건 초보 리뷰어가 하는 일이라고 쓰였던데, 이렇게 나는 초보 리뷰어다.

과학과 관련된 새로운 용어가 많이 나온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외워야 할 필요도 없고, 외울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써 본다.

전장유전체 연관성 분석genome-wide association study(GWAS): 어떤 사람의 성향에 대해서 유전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작은 효과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것 (49쪽)

적대적 다면발현antagonistic pleiotropy: 어떤 유전적 변이가 생애 초반에는 유익하게 작용하지만 후반이 되면 해롭게 작용한다고 가정하는 것. (63쪽)

호르메시스 효과hormesis effect: 역경을 통해 오히려 더 강인해지는 생물학적 현상(77쪽). '스트레스는 생명체를 강건하게 만든다.'

헤이플릭 한계Hayflick's limit: 인간의 세포도 정해진 횟수만큼 분열하고 나면 죽는다는 것. 레너드 헤이플릭이 입증해 냄.(122쪽)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화'의 열쇠를 찾는 데에 골몰한다. 키와 수명과의 연관성뿐만 아니라, 항노화 약물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노력. 늙지 않는 혹은 늙지 않게 하는 혹은 생체시계를 뒤로 감을 수 있는 세포를 찾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과 노화와 '피'와의 과학적 연관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200페이지까지 계속된다. 눈길을 끄는 건 세포자살과 좀비 세포에 대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자신의 상태를 세심하게 점검한다고 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했을 때,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고, 세포는 말 그대로 '팍' 죽어버린다. 아폽토시스라 불리는 세포자살인데, 이는 암을 예방하고 감염에 맞서기 위한 메커니즘이라고 한다.(132쪽) 몸 전체를 구하기 위해 사심 없이 자살. 만약 손상된 세포가 자멸하지 않고 세포노화라 불리는 상태로 진입하게 되었다면, 이런 상태의 세포를 좀비세포라고 부른다고 한다. 좀비세포가 되면 세포는 일상적인 활동을 중지하고 당연히 세포분열도 멈춘다고 한다. 다음 단계인 자살을 결행하지 않고 미적거리며 뭉개기만 한다고. 문제는 그다음이다. 몸에 해로운 잡다한 분자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노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모든 일의 사단은 아폽토시스 없음 때문에 일어난다. 제때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생로병사,의 흐름이 막혀버려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과학 정보들의 향연인지라, 그쪽으로 관심이 있거나 이미 가진 정보가 많은 사람이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천생 문과인 나는, '아~~ 그렇군요. 그런 거군요~.'하면서 따라 읽을 뿐이다. 진짜 궁금한 건 뒷부분에 나온다.

<파트 3. 유용한 충고>


취미 삼아 굶어보기, 단식, 식이요법, 콜레스테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화를 대하는 마음가짐.

결국 부자들, 그냥 부자말고 진짜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 부자들은 과거의 권력자들이 그러했듯이 불사의 길을 찾아낼 것이고,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냉동 상태'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돈 없는 나는 내 몸의 생체시계를 거스를 수 없기에 일단은 오늘의 생체시계만이라도.

정시에 맞춰보려고 한다.

친구의 가르침대로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득 마셔야 하는데 그건 안 되고 반 잔 마신다.

기상 후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기. 지금의 생체시계 제대로 맞추기.


호르메시스 효과는 결국 정도의 문제다. 아예 운동을 전폐하는 것보다는 조깅으로 몸에 자극을 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나친 운동은 금물이다. 과훈련 증후군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같은 논리로 바람에 노출된 나무가 더 튼튼하게 자란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치게 강하면 튼튼하게 만드는 건 고사하고 나무를 거꾸러뜨리거나 부러뜨릴 것이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유발한 손상에서 자신의 몸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정도 내에서만 호르메시스 효과를 누릴 수 있을 뿐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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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1-10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깅 미친듯 하는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안 늙으려고 하는 건가. 우리도 본받자!!!

단발머리 2025-01-10 09:38   좋아요 1 | URL
태그 보세요 ㅋㅋㅋ 미친듯 하면 오히려 부작용 납니다 ㅋㅋㅋ 그거 모르시네요, 그 분은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1-10 09:31   좋아요 0 | URL
폰이라서 안 보여요 태그🫢

단발머리 2025-01-10 09:38   좋아요 1 | URL
응 그럼 ㅋㅋㅋㅋ 요기 위에 인용문ㅋㅋㅋ지난친 운동은 몸에 해롭대요 ㅋㅋ미친듯 조깅은 건강에는 엑스!! 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1-10 09:43   좋아요 0 | URL
우린 그런데 그렇게 잠깐 해야 돼, 너무 안 움직여 ㅋㅋㅋ

2025-01-10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10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5-01-10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비세포 🧟 나의 세포들아 어서 죽어라! 새로 태어나라! 뿅뿅

단발머리 2025-01-11 10:45   좋아요 1 | URL
필사즉생 필생즉사 ㅋㅋㅋㅋㅋㅋ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화의 포인트는 좀비세포의 창궐과 면역세포들의 초과근무 ㅋㅋㅋㅋㅋ 좀비세포들이 사고 치고 다닐 때 면역세포들이 따라다니며 해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면역세포들 왕피곤. 하여 나이들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고, 질병에 취약해지며...
이거 재미나요. 다 읽고 노화에 대항하는 비법 나오면 또 제가 페이퍼로 정리를.... (사사키가 울고 있다) ㅋㅋㅋㅋㅋㅋ메롱!

그레이스 2025-01-12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픈거 그리고 치료과정이 무서워요.

단발머리 2025-01-15 09:5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아픈것이 무섭고 주사도 무섭고 약은 쓰고요. 안 아픈게 최고입니다^^
 
토니 모리슨의 말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생애 처음과 마지막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마음산책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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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 뽐뿌의 제 1요소는 바로 이 사진. 출처는 수이님.



토니 모리슨 뽐뿌의 제2요소는 바로 이 100자평. 출처는 유수님.


모리슨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빗발치는 궁금증은 적나라한 응시와 동시에 어떻게 이런 거리를 유지하는지, 에 대한 것이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정 부분 해소되었다. 다만 인간적으로 여전히 궁금하다. 극단을 다루면서도 그에 시달리지 않고 의연하게 지켜내는 인간애에 대해서. 내가 오독한 게 아니라면 작가는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영역이라 내내 힘주어 말하고 있다. (출처: 유수님 100자평)

나도 그게 궁금했다. 유수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적나라한 응시와 동시에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게 궁금했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아프리칸-아메리칸 여성의 삶.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그리고 그 위에 백인 남성을 지배자로 두고 살아야 했던 삶. 역사 속에 아로새겨진 고통과 슬픔을. 그 억울함을, 토니 모리슨은 어떻게 잊었던 걸까. 어떻게 이겨낸 걸까.

젠더, 계급, 인종은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어느 한 가지 요소가 다른 한 가지를 압도하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교차해 작용한다. 젠더와 인종이라는 측면, 특별히 흑인 여성의 입장에 대해서는 『여성, 인종, 계급』을 읽고 정리한 적이 있다. (흑인 여성과 선택의 문제: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364842)

토니 모리슨의 말을 따라 읽다가, 그녀가 예술의 영역에서 이루어낸 바로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이미 완성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여기 있고 떠나기 전에 존중받을 만한 일, 남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누군가를 돌보는 일, 타인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일은 아주 흥미롭고 까다로우며 지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무척 힘든 일입니다.

한편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희생자의 위치에 놓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위험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45쪽)


그러니깐, 토니 모리슨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순수한 피해자라는 옷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자신의 맨얼굴만으로 나설 수 있었을까. 원망하지 않으면서.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고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아픔과 고통에 직면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깐, 어떻게. 어떻게 그녀에게는 그 일이 가능했을까.


이런 인용이, 이런 접합이 적당한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라 이 책의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나는 미국에서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삶을 이해하는데 이것만큼 적절한 이론이 없을거라 생각한다.


권력은 획득할 수 있는, 손에 넣을 수 있는,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지점에서 진행되는 게임 속에서 행사되는 것이다. 권력관계는 다른 여러 관계에 내재해 있다. 경제 과정, 지식의 전수 관계, 성적 관계의 모든 요소에 그것은 존재한다. 권력은 그때마다 그것이 발생하는 장소에서 작용하고,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산출한다. 권력은 아래로부터 온다. 위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체의 모든 곳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역학 관계" 그 자체다. (『야전과 영원』, 621쪽)


백인은 흑인을 지배했고, 이는 노예제도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말하는 가축쯤으로 여겼기에 흑인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강탈이 가능했다. 하지만, 백인은 흑인을 지배함과 동시에, 흑인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백인은 가능한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흑인을 억압했지만, 동시에 흑인을 무서워했고, 두려워했다. 흑인은 백인이 자신들의 노동력에 기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라는 걸 알았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권력은 위로부터 오지만, 아래로부터'도' 온다.

그래서 내가 찾은 해답은 이거다. 그녀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를 '승리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 자신들이, 흑인들이 승리했다고 믿었기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고통을 밟고 일어설 수 있었다. 피해자라는 위치에 멈춰있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무언가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요점은 우리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마침내 승리한 아주 흥미로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수세기 동안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우리가 다 죽어 없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우리의 이야기는 단지 생존의 이야기가 아닌, 상상을 초월하는 번영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그 모든 고초를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세요. 그 결과 우리는 지금의 아주 특별한 문화를 갖게 되었고 이것은 토착의 문화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새로운 세계 문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138쪽)


그녀가 말하는 '우리'에 흑인 남성이 포함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당연하다. 흑인 여성은 그 모든 고통의 시간 속에 흑인 남성들과 함께했다. 아들을 둘 낳아 혼자서 기른 싱글맘의 위치에서, 모성에 대해 비관적이었던 제2물결 페미니즘에 대한 저어되는 마음을, 아이 둘의 엄마인 나도 100퍼센트 이해한다.

식민지 경험, 전쟁 폐허의 땅에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발전 이면에 강요되어왔던 '억척스런 어머니상'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모성의 신비화에 한결같이 반대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항상 흑인 남성을 보호해야만 했던(167쪽) 흑인 여성에게 모성이 작동된 방식은 우리의 그것과는 또 다른 역사이고, 그림자일 것이다. 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아이가 내게 주는 기쁨에 대해서. 두 사람만의 사랑과 숨겨둔 비밀 이야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테니. 언제나, 한결같이. 모성은 어려운 문제다. 해답으로서의 사진을 여기에 남겨둔다.



왜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신지는 모르겠다. 듬직한 토니 모리슨과 보호해 주고 싶은 그녀의 두 아들이다.




흑인 페미니스트는 스스로를 ‘우머니스트‘라고 불렀습니다. 간극이 있었죠. 둘은 달랐습니다. 역사적으로 흑인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보호했어요. 남자들이 일선에 나가 있었고 죽을 확률이 더 높았거든요. 실제로 저는 이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출판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많은 여성이 대학을 가기 위해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아들은 당연히 공부를 시켰지만 딸은 공부를 하려면 몹시 애를 써야 했어요. - P167

아프리카게 미국인 사회에서는 정반대였습니다. 딸은 공부를 시켰지만 아들은 시키지 않았어요. 딸은 언제든 돌봄노동을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교사라든가, 간호사라든가. 하지만 아들에게 공부를 시키면 갈등에 직면하거나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었어요. 결코 쉽게 성공할 수가 없었어요.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상황은 이제 바뀌었지만 당시에 우리는 자기를 보존하려는 하나의 유기체 같았어요.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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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9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9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5-01-09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 유수님 백자평 찰진 거…

헤헤. 저는요. 토니 모리슨을 읽어보진 않았지만요, 저 잘못 읽으면 ‘정신 승리’로 읽힐 저 승리의 지점이요…, 언어를 (텍스트..! 르장드르식 텍스트!! 춤, 음악, 랩, 그림, 생산, 또…) 가졌다는 지점과도 매우 공명할 거라고 여겨집니다. 설명할 필요가 없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과 그 반복… 그러면서 삶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 허튼 소리에 피식 비웃어버리는 것. 나는 거기에 사랑과 경외를 담습니다. 저 강인한 작가님과 그를 알아보는 안목있는 독자님께 박수를 치고 싶어지는 글였다요.

단발머리 2025-01-09 20:40   좋아요 0 | URL
찰진 백자평 아주 야무져요. 너무 좋죠~~~~

그러고 보니 흑인들은, 승리라고 불릴만한 것을 가진 흑인들은 그 모든 걸 가졌네요. 언어, 춤, 음악, 그리고 음식 문화. 이 책 읽으면서 그냥 제가 느낀 부분이에요. 오바마를 정말 친족처럼 생각해요. 거의 내 아들급.... 각 개인은 특별하고, 또 개인의 특성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겠지요. 근데 흑인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공동체 의식‘에 대해서 저는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삶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 살아내는 건 모리슨님처럼 열심히 사신 분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 (이쯤에서 베짱이 눈물 한 번 닦고요)
안목 있는 독자가 될거에요. 제 꿈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5-01-11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11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회에서는 원래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 저번 주 금요일에도 똑같은 순서를 따랐는데, 나는 <1번> 나라를 위한 기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으니. 사실 나도 내 코가 석 자다. 갈 길을 모르는,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귀한 영혼이 우리 집에도 있다. 근데 나는 내 자식을 위해, 내 아들을 위해 기도할 수가 없다. 당최. 엄청난 패악질을 일삼던 1인이 계엄을 선포해 놓고는, 찬바람에 국민들 아스팔트에 앉게 한 것도 부족해,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이러는 형국이라서. 그래서 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데, 그다음 기도로 넘어갈 수가 없다. 찬찬히, 진지하게 나도 내 일상을 돌보고 싶다. 내 아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싶다.

지난달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샀다. 크리스마스 카드 받아본 사람만 안다. 아! 크리스마스 카드구나~ 봉투를 열 때의 두근거림, 단정한 글씨. 따뜻한 인사와 전해지는 사랑. 받아본 사람만 안다. 그래서 결심을 했더란다. 나도 올해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야지. 카드를 샀다. 심사숙고했다. 내용과 글씨가 자신이 없으니까, 외모로 승부를 보자 해서 숙고를 거듭했다. 그러나 이놈의 패악질(현재로서는, 다 나라 탓입니다) 때문에 차분히 앉아 카드를 쓸 시간이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올해 내내 고마웠다는 말을 결국 쓰지 못했다. 내년에는 꼭!을 3회 복창하였고. 올해 산 카드 내년에 보내도 되나요? 누군가에게인지 모르게 혼잣말로 물어본다.

근데 올해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많이도 만들었다. 1년 내내 너무 빡빡한 선생님 아니었나 싶어 1학년 아이들 공부 마치고 짬짬이 카드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인터넷에서 트리 이미지 찾아보고, 학습준비물실에서 검은 도화지랑 색종이, 별 스티커를 가져와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하트 만들어 달라 하면 검색해서 하트 접어주고, 흰색 바탕 카드 만들고 싶다고 하면 도화지를 접어 건네주었다. 그렇게 카드를,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다.

우리 학교는 알라딘이 아니라 그래24를 애용한다. 거래 업체를 바꾸기에는 나는 너무 힘이 없... 아이들 선물로 줄 책을 샀다. 내 돈으로 산 거 아니지만, 내가 고른 책이라 흐믓하고. 무엇보다 책이 너무 이쁘다. 책은 자고로, 예뻐야 한다.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평안이 알라딘 이웃님들 가정 가운데도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삶은 엉망이고, 꼬이고, 이상한 인간들을 종종 만나게도 되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리고 내일만큼은 크리스마스의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시기를 바란다.

내가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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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4-12-24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인간들…… 나? 🙄

단발머리 2024-12-24 12:0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님은 귀여운 인간! 사랑스러운 인간!

유수 2024-12-2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꺄아 발구르게 되는 포인트가 너무 많은 페이퍼예요. 단발머리님께도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단발머리 2024-12-24 15:51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 포인트 중에 최고는 <해피버쓰데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란 원피스, 저도 필요하고요.
유수님과 유수님 가정도 깜찍하고 포근한 메리 크리스마스 되시길요!

독서괭 2024-12-24 16: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피버쓰데이 샀습니다! 아직 못 읽었지만요 ㅎㅎ 단발님이 가정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새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단발머리 2024-12-26 09:03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시간 보내셨기를 바래요~
저, 해피버쓰데이 제 꺼는 안 샀는데, 제브리나 컬렉션 맘에 쏙 들어서 저도 사고 싶어요^^

blueyonder 2024-12-24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평안이 단발머리 님 가정에도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4-12-26 09:05   좋아요 1 | URL
blueyonder님~ 따뜻한 성탄 인사 감사해요.
예수님의 사랑과 평안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절인거 같아요.
그 특별한 은혜가 blueyonder님 가정에도 가득하시기를 바래요!!
 
























1. 무지의 즐거움/ 유대문화론 /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우치다의 책을 몇 권 읽었는지 모르겠어서 세어 봤다. 이 책까지 3권(찾아보니 4권)이기는 한데, 최근에 레비나스를 다룬 책도 한 권 대출해 두어서 그 책도 읽게 될 예정이다.

싱글맘의 독박육아와 싱글대디의 독박육아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친구(참고 사항:미혼)는 매우 흥분해서 설파했는데, 친구의 말이 대부분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싱글대디로 12년을 주양육자로 살아간다는 건 엄청 힘든 일이라는 점을 꼭!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러운 지점은 12년을 주양육자로 살아낸 뒤에 자기 일을 찾았다는 것. 그게 제일 부럽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지 못하고, 나도 그렇다. 그 시간이 헛된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수도.


<밀리의 서재> 구독이 끝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런 문장들을 캡처해 두었더랜다.



앎이라는 건 결국 내가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안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알아 가는 과정일 테고. '목적 없이 걷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목표를 정해두고 걸었을 때 동기부여도 쉽고 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의 어느 순간에는 안다는 사실 보다 중요한 건 '이게 뭔지 모르겠다'는 사실 같기도 하고. 그럴 때도 멈추지 않고 '걷는 일'이 중요한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잘 쉬는 사람이고 잘 멈추는 사람이기는 한데, 그래도 이 문장이 맘에 와닿는다. 오로지 길은 걷는 것만이 중요하다.











2. 한나 아렌트

바로 지금 읽어야 할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 상부의 지시에 따라 착착 계엄 작전을 실행했던 방첩사, 수방사, 정보사, 경찰들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매일의 뉴스가 새롭고 놀랍고 공포스럽다. 금기어라 여겨지는 계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던 맥락. '북한 돌발 상황'에 출동 명령을 받은 줄 알았던 군인들이 자신들의 업무가 국회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했을 때의 감정. 그 머뭇거림.

한없이 냉정하게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려는 군인이 있었는가 하면, 부당하고 이해되지 않는 명령 앞에서 뒤로 물러서는 군인이 있었다. 윤가와 ㄱ용현의 닦달전화에도 현장 지휘관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부하들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오래오래 생각하고 또 연구해 봐야 할 주제임이 분명하다.

이 책에서 높이 사고 싶은 부분은 '권위주의 체제', '폭정(독재)'와 '전체주의'를 비교한 부분이다. 아직 정확하게 그것들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겠는데, 도표로 설명하니 훨씬 더 명확하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을 찾아볼까 싶다.
















3.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겁 없이 두 쪽을 읽고, 내가 읽은 것이 맞는 것인가 놀라 다시 읽었다. 맞았다. 그래서 한 번 더 놀라고. 고통은 말할 수 없다, 혹은 누구든 다른 사람의 고통을 100% 이해할 수 없다,를 예상하면서 읽고 있는데, 글은 나를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크게 소리를 높이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화를 내거나 이런 성정이 아니라서(그러기엔 나는 기 자체가 약하다. 다른 말로 에너지가 딸린다),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사춘기 시절이 살짝 떠오른다. 질풍노도라 왜 이름 붙였는지 알 수 있는 시절들.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무난하게 그 시절을 보냈다고 기억하지만, 수직 낙하하는 감정의 동요, 잊고 싶은 말실수, 후회와 한탄, 부끄러운 기억들이 선명하게 소환된다. 읽기 어려운 책이라 한 챕터를 끝낸 후에 그만 읽을까,를 2번 정도 고민했다. 2번째 챕터를 읽고 있다.













4. 읽고 있어요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는 요즘 마리아 미즈님 덕분에 약간 밀린 형국이다. 비비언 고닉을 다 읽을 테다,의 나의 계획은 일단 2025년으로 미루기로 한다. 『마을과 세계』에서 이제 막 마리아는 여성 운동에 눈떴다. 곧 종교를 버리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펼쳐질 거라 궁금한 마음인데, 책을 학교에 두고 왔다.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일이다)


『Nexus』는 영어라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한글책으로 갈아탈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밤마다 읽는 책은 『야전과 영원』이다. 온 가족이 이 책을 알고 있는데, 책을 펴기만 하면 고개를 떨궈대니 들고 있던 책을 한 번은 큰애가, 한 번은 작은애가 빼앗아 갔다. 나름대로 조심했는데도 두꺼운 책인지라 밑부분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찢어졌다. 테이프로 붙이고 다시 독서대 위에 올려둔다.


고개는 자꾸 떨어지지만.... 읽고 있다. 읽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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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12-2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번 고쳤는데도, 처음 책 2권이 이미지로만 나오고 책이 안 담기네요. 북플에서가 아니고 서재에서 했는데도 왜 그런지 나는 잘 모르겠어요. 아시는 분, 있나요? 허허허.

2024-12-23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4-12-23 11: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그렇게 ㅋㅋㅋㅋㅋㅋㅋㅋ 3번 해보았거든요. 지금 한 번만 더 해볼까 합니다.

다락방 2024-12-23 1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마리아 미즈 왜이렇게 좋죠? 저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더 연구하기 위해 각자 연구할 나라로 떠나는 장면에서 진짜 너무 짜릿해서요! 그렇게 다시, 마리아 미즈는 인도로 떠납니다. 다시!! 진짜 마리아 미즈 너무 좋아요 단발머리 님 ㅠㅠ 최고야 ㅠㅠ

단발머리 2024-12-23 12:43   좋아요 1 | URL
걸음걸음마다 박수갈채 쏟아집니다! 저도 마리아 미즈 너무 좋구요.
마리아 제일 먼저 좋아한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라는 거 좀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락방님 마리아 미즈 엄청 좋아하기를 제가 승인합니다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12-23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전과 영원은 그런 책이군요.... 수면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12-23 14:1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생긴 것도 두께도 내용도 모두 수면용이지요. 담주에는 수면용 독서를 풀어볼까 합니다. 여성의 향략, 죽음 ㅋㅋㅋㅋㅋㅋ 막 이런 것들인데... 재미있다는 함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12-23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넥서스 한글책은 잘 읽힙니다! 갈아타시죠 ㅎㅎㅎ
<야전과 영원>은 뭐길래 고개가 떨어지실까 하고 표지 확대해서 소개글 보고 납득했습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12-23 14:09   좋아요 1 | URL
넥서스 갈아타야겠네요. 일단 독서괭님 안내 따라가는 것이 정석이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전과 영원>, 꿀잠과 수면 공격, 고개 뚝!의 세계로 독서괭님을 초대합니다!!

- 2024-12-24 0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모 왜 왜 왜 뭐 뭐! ‘ㅇㅑ전과 영원‘ 읽으면서 한번도 졸아본 적 없는 자 올림 ㅋㅋㅋ

단발머리 2024-12-24 11:00   좋아요 1 | URL
어제는 좀 일찍 시작했더랬죠. 9시가 되기 전에 고개를 떨구니 득달같이 달려와 책을 빼앗고 나는 힘없이 빼앗기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번도 졸아본 적 없음!이라니 완전 짱입니다.

- 2024-12-24 11:40   좋아요 0 | URL
그 가족드라마 넘나 탐나네요. 책 앞에서 조는 엄마를 준엄하게 꾸짖는 아들과 딸ㅋㅋㅋㅋ 저는 푸코 읽는 중이고요, 사사키가 말아주는 푸코는 좀 덜 매력적이네요. 원체 푸코가 매력적이라서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12-24 12:10   좋아요 1 | URL
제가 그저께 ‘성관계는 없다‘를 물었거든요ㅋㅋㅋㅋㅋㅋㅋ 알려주더라구요. 지난 학기에 라캉 수업 들은 아이가 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강의를 들어야 하나. 나 올해 관련책 2권 읽었는데 나는 아직도 오리무중 ㅋㅋㅋㅋㅋ
매력적인 푸코, 가지세요~~

- 2024-12-25 11:48   좋아요 0 | URL
우와... 딸롱이 리스펙..... ㅠ..ㅜ 딸롱씨 넘나 멋진 거예여... 으힝힝.
나는 푸코 좋아하고 갖고 싶지만, 푸코는 나한테 관심없고.. 죽었습ㄴ다..

건수하 2024-12-25 04: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치다 타츠루가 독박육아 싱글대디인건가요? 우와-

이 호감으로 (언젠가) 그의 책을
시작해봐야겠습니다.

- 2024-12-25 11:49   좋아요 2 | URL
그쵸그쵸. 수하님. 바로 그 독박육아싱글대디 부분에서 그동안 이퀄리스트라고 팼던 저는 가드를 내리기로 해버린 것입니다. 물론. 저는 육아는 남자에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은 그것은 pass하고...ㅋㅋㅋ

메리크리스마스에요. 수하님. 뿅뿅.

단발머리 2024-12-26 10:54   좋아요 0 | URL
건수하님 / 독박육아 싱글대디에게 제가 후한 점수 줬습니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무지의 즐거움>에서 펼쳐지구요. 이 분 전문가가 한국에 있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 번역자인데 이 분에 관해 책도 쓰셨다는 ㅋㅋㅋㅋㅋㅋ<우치다 선생에게 배우는 법>. 책이 많으니깐 취향대로 골라 읽으시면 좋습니다.

쟝쟝님 / 저희 교회에 아주 활달한 아이가 있어요. 무대 난입하고 소리 지르고 진짜 온 교인들의 귀염둥이인데, 그 아빠가 헬스장을 운영하실 것 같은 체형과 외모에요 ㅋㅋㅋㅋㅋㅋ 저는 잘 모르는 분인데. 그 분이 딱 그래요.
육아는 남자에게 더 적합하다의 실사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