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무서운 건 아픈 게 아니라 죽는 거다, 라고 생각한다. 생각했다. 아파보니 다르다. 진짜 무서운 건 아프다가 죽는 거다. 죽을 만큼 아픈 것. 아픈 데도 죽지 않는 것. 그런 게 진짜 무서운 일이다.
마지막 주에 너무 바쁘기도 했지만, 그간 피로가 쌓여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출근하는 날, 퇴근 인사를 할 때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아, 아, 아.... 안녕히 계세요!"를 말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도 그날만은 아플 수 없어서 알약 털어먹고, 물약 마시고, 뜨거운 물 마시고, 입안이 화~안 사탕을 세 개 물고, 마스크 쓰고, 네발로 기어서 교회에 갔다. 그렇게 송구영신예배를 무사히 마치고 와서는 계속 밥-잠-밥-잠-병원-밥-잠의 시간을 보냈다. 다시 주일이 한 번 지나가고, 정신을 차리니, 그러니까 달력을 쳐다보니 1월 6일이었다. 1월 6일? 그렇게 나의 새해는 1월 6일이었다. 그렇게 1월 6일을 1월 1일처럼 보내고 화요일이 돼서야 책을 펼쳤으나 갈 길이 멀었고. 친구가 보내준 라떼와 스트로베리 초콜릿케이크(사실 친구가 보내준건 아메리카노와 아이스박스)와 함께 즐거운 독서 시간을 마침내 보냈다.
그리고 그 길고 어려운 책을 읽는 사이사이, 쉬는 시간마다 이 책을 읽었다.
진짜 무서운 건 아픈 게 아니라 죽는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픔이 죽음으로까지 가는 과정이 괴로운 일이고, 그게 바로 노화라고 했을 때, '세월의 무게를 덜어주는 경이로운 노화 과학(부제)'이 궁금해서가 아니고. 아니고! 이 책을 번역하신 배동근 님이 정희진쌤의 매거진에 출연하셨을 때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 책을 찾아보게 된 거다. 어떤 글에서, 그 책을 '어떻게' 해서 읽게 됐는지 쓰는 건 초보 리뷰어가 하는 일이라고 쓰였던데, 이렇게 나는 초보 리뷰어다.
과학과 관련된 새로운 용어가 많이 나온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외워야 할 필요도 없고, 외울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써 본다.
전장유전체 연관성 분석genome-wide association study(GWAS): 어떤 사람의 성향에 대해서 유전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작은 효과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것 (49쪽)
적대적 다면발현antagonistic pleiotropy: 어떤 유전적 변이가 생애 초반에는 유익하게 작용하지만 후반이 되면 해롭게 작용한다고 가정하는 것. (63쪽)
호르메시스 효과hormesis effect: 역경을 통해 오히려 더 강인해지는 생물학적 현상(77쪽). '스트레스는 생명체를 강건하게 만든다.'
헤이플릭 한계Hayflick's limit: 인간의 세포도 정해진 횟수만큼 분열하고 나면 죽는다는 것. 레너드 헤이플릭이 입증해 냄.(122쪽)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화'의 열쇠를 찾는 데에 골몰한다. 키와 수명과의 연관성뿐만 아니라, 항노화 약물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노력. 늙지 않는 혹은 늙지 않게 하는 혹은 생체시계를 뒤로 감을 수 있는 세포를 찾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과 노화와 '피'와의 과학적 연관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200페이지까지 계속된다. 눈길을 끄는 건 세포자살과 좀비 세포에 대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자신의 상태를 세심하게 점검한다고 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했을 때,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고, 세포는 말 그대로 '팍' 죽어버린다. 아폽토시스라 불리는 세포자살인데, 이는 암을 예방하고 감염에 맞서기 위한 메커니즘이라고 한다.(132쪽) 몸 전체를 구하기 위해 사심 없이 자살. 만약 손상된 세포가 자멸하지 않고 세포노화라 불리는 상태로 진입하게 되었다면, 이런 상태의 세포를 좀비세포라고 부른다고 한다. 좀비세포가 되면 세포는 일상적인 활동을 중지하고 당연히 세포분열도 멈춘다고 한다. 다음 단계인 자살을 결행하지 않고 미적거리며 뭉개기만 한다고. 문제는 그다음이다. 몸에 해로운 잡다한 분자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노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모든 일의 사단은 아폽토시스 없음 때문에 일어난다. 제때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생로병사,의 흐름이 막혀버려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과학 정보들의 향연인지라, 그쪽으로 관심이 있거나 이미 가진 정보가 많은 사람이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천생 문과인 나는, '아~~ 그렇군요. 그런 거군요~.'하면서 따라 읽을 뿐이다. 진짜 궁금한 건 뒷부분에 나온다.
<파트 3. 유용한 충고>
취미 삼아 굶어보기, 단식, 식이요법, 콜레스테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화를 대하는 마음가짐.
결국 부자들, 그냥 부자말고 진짜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 부자들은 과거의 권력자들이 그러했듯이 불사의 길을 찾아낼 것이고,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냉동 상태'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돈 없는 나는 내 몸의 생체시계를 거스를 수 없기에 일단은 오늘의 생체시계만이라도.
정시에 맞춰보려고 한다.
친구의 가르침대로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득 마셔야 하는데 그건 안 되고 반 잔 마신다.
기상 후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기. 지금의 생체시계 제대로 맞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