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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 생명체, 우주여행, 행성 식민지를 둘러싼 과학의 유감
아메데오 발비 지음, 장윤주 옮김, 황호성 감수 / 북인어박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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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의 저자 박문호는 기나긴 진화의 과정을 겪어온 인간의 다음 거주지는 우주라고 주장했다. 지구를 망쳐 놓은 환경 파괴범, 더 이상 지구에 거주하기 어려운 인류의 후손들은 우주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최초 육상 동물의 출현, 즉 물에서 생활하던 동물이 육지로 발을 내디딘 사건과 비견될 정도로 생명 진화의 중요한 사건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너무 오래 걸릴 일이고 너무 미래의 사건이어서 나와 큰 상관은 없어 보이는데, 아무튼 인간이 그렇게 진화한다니. 그럼 진짜 사이보그 모습을 갖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1초간 했다.

책의 제목이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결론을 제목으로. 정면으로 부딪히기. 그렇겠지, 나는 화성으로 떠날 수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럼 나 말고 나 다음. 내 다음다음, 다음다음 다음다음 다다다다다다음 인간은 어떨까. 그 사람은 화성에서 살 수 있을까. 제목이 스포일러다.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화성, 하면 아무래도 화성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연대기>가 떠오른다. 지구인과 화성인의 만남, 화성을 둘러싼 흑인들과 백인들의 갈등은 신대륙 개척 이후 침략자와 선주민 간의 갈등으로 읽기 쉬우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고, 레이 브래드버리님의 깊은 뜻은 내 알기 어려울 것이다. 백 번 정도 말한 듯한, 내가 완전 애정하는 단편 중의 단편은 <2005년 9월, 화성인>이다.

화성, 하면 또 <마션>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전 세계적인 히트에 힘입어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영화는 안 보았다. 맷 데이먼 좋아했는데, 그런데도 안 봤다. 예고 영상에서부터 느껴지는 '로빈스 크루소' 느낌 때문이었는데, 이 문장을 쓰고 있노라니 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고 및 소개 영상 4-5개 보고 돌아옴)



돌아가자, 화성으로.

제1장 <지구 종말의 각본>은 얼마 남지 않은 지구의 수명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지구를 떠나야 살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서술한다. 제2장 <가고 싶은 곳 - 화성과 달, 그리고 우주 식민지>는 인간이 지구 이외의 장소에서, 이 척박한 우주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서술한다. 과학적 지식과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다. 일단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래 정착지로 가장 큰 기대를 받는 화성에 대한 설명은 스포일러의 기억을 오늘에 되살린다.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특히 <지구의 남극도 그곳에서는 천국이 된다> 챕터는 지구의 환경이 생명체에게 얼마나 호의적인지, 지구 환경을 근거로 한 지구 생명체의 진화가 얼마나 찰떡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우주를 파는 상인들>은 바로 그 영화,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과 리들리 스콧의 동명의 영화를 비판하면서 시작하는데, 화성 여행을 터무니없이 쉬운 일로 묘사한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화성으로의 편도 여행을 제안하고 일반인들에게까지 큰 호응을 얻었던 네덜란드 민간 기업 마스 원의 화성 이주 프로젝트가 돈을 목적으로 한 장사꾼의 사기 행각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우주비행사들이 화성 도착 후 68일 만에 질식할 것(131쪽)이라는 치명적인 예측과 명백한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헛된 희망을 품게 했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중점적으로 다루는 건 당연히, 일론 머스크. 약 100만 명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는 자급자족 정착지를 꿈꾸는 머스크의 계획에 대해 저자는 우주 여행에서 겪는 문제와 화성 내 생존에 필요한 엄청난 어려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고 지적한다. 머스크 역시 화상 탐사와 지구인의 화성 이주를 사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 핵심이다.

다시 화성으로 돌아온다. 이 책의 제목대로 '우리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면, 화성이 우리 인류의 차기 거주지가 되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인류는 무슨 선택을 해야 할까. 제3장 <태양계 너머의 세계; 거주 가능한 행성과 성간 여행>은 지구라는 요람에서 떠나 우리 태양계를 넘어, 우리은하 그 너머를 탐험하고 탐사하는 미래를 그린다.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거주 가능 영역에 프록시마 b라는 행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행성이 실제로 거주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4.2광년의 거리에 있으니, 빛의 속도로 여행해도 4년 이상이 걸린다. 인류는 아직 빛의 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속도로 비행한다. 보이저 탐사선의 속도가 초속 약 17킬로미터지만, 이는 광속의 약 1만 8,0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하니(197쪽), 아직도 인류에게는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다고 하겠다.

우주 방주로서 '세대 우주선' 발상은 영화에나 나올 법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다시는 지구에 돌아오지 못해도 괜찮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 그 우주선에 탑승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세대가 그 우주선 안에서 태어날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문단이 있어서 옮겨 본다.

장기간의 성간 여행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우주선 추진 기술이 꾸준히 발전한다고 가정할 때, 먼저 출발한 세대우주선이 훗날 개발된 더 빠른 우주선에 의해 추월당할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여행하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훨씬 나중에 출발한 인류가 먼저 도착해 새로운 행성을 이미 점령한 사실을 알았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더 편안하고 빠르게 여행했을 뿐만 아니라, 더 발전된 기술을 보유했으며, 더 많은 것을 알고, 먼저 떠나고 늦게 도착한 이들을 옛날 사람들로 여길 것이다.(220쪽)

수백 년 동안 심연과 같은 우주를 여행하고 바라던 바로 그곳에 도착했는데, 훨씬 나중에 출발한 인류가 먼저 그곳에 도착해 이미 그 행성을 점령한 것을 확인하는 상황. 더 발전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더 빠른 사람들, 결정적으로 더 젊은 사람들 앞에서 먼저 출발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이제 진짜 쓰려고 하는 데까지 왔다.

태양의 탄생과 지구의 탄생, 그리고 생명체의 출현에서 각 동물의 진화, 그리고 현재 인류의 문명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은 이 모든 것이 '충분한' 시간 속에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1000년도 못 가는 문명이 허다하게 오고 갔지만, 지구에게는 46억 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고, 무한에 가까운 확률 속에서 인간은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지구 밖 외계 생명체, 정확히는 지적인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하지만, 인류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조사 및 관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어디에 있나?"(240쪽)

물리학자 엘리코 페르미가 이렇게 물었다는 건데, 기술적으로 진보된 문명의 은하 제국이 존재하고 항성계 사이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가. 적어도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문명이라면 전자기 통신을 활용한 신호가 우리에게 도달했어야 했다. 알려졌어야 한다. 의도적으로든 혹은 실수이든. 현재까지는 그런 신호가 없다. 모두 어디에 있나.

나는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은하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우주는 너무 넓고, 하나님은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주 저편 어딘가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형태의, 우리가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거대한 문명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자연선택을 통해 과학을 발명하고 기술을 사용하며 우주 비행에 이를 수 있는 생명체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더 길고 특별한 우연이 필요하다. 전 우주 역사에서 몇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라는 존재가 이러한 도약을 한 몇 안 되는 종 중 하나이며, 이 우주 시대에 유일한 종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241쪽)

나는 가끔 나 자신이 신의 존재를 확신했던 시대에 과학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억지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가끔 그런 착각이 든다. 모두가 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인간이 신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가장 중요한 존재,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시대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우리의 지구 역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하나의 작은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과학자는 미친 사람이라 여겨졌다. 신학이 온 사회를 지배했던 시대였다. 신학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했던 과학은 오랜시간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지만 결국 승리했다. 이제는 명실공히 과학의 시대다. 이제 사람들은 안다. 우리 지구는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은 우리은하의 중심이 아니고, 우리은하는 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별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우리 인간은 우주의 저 한쪽 구석의 작고 작은 지구별을 잠깐 스쳐 가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계속 반복되는 '잠재적으로 거주 가능한(potentially habitable)'을 곰곰 따져볼 때, 지구라는 우리의 우연, 인간이라는 우리의 현재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생명체가 존재하는데 꼭 필요한 세 가지 요소, 에너지원과 화학 원소, 그리고 액체 상태의 물. 이 중에서 '물의 존재'는 '거주 가능성'과 동의어로 여겨질 정도로 중요하다. 태양 주변 거주 가능 영역에는 세 행성 즉 금성, 지구, 화성이 존재하지만 호수와 바다가 있는 곳은 지구뿐이다. 행성의 평균 온도는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지만 역시 대기가 가장 중요하고, 대기와 관련해서는 별과의 거리가 중요한 요소지만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어쩌자는 건가.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널리 받아들여졌던 개념, 지구가 특별할 것 없는 여러 행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믿음은 이제 상식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지질 활동, 판 구조, 강력한 자기장, 풍부한 산소 대기와 심지어 위성의 존재 등을 고려했을 때, 지구와 같은 조건으로 생명체가 살아갈 만한 환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결론 지은 고생물학자 피터 워드와 천체물리학자 도널드 E. 브라운리의 '희귀한 지구' 역시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간사 괴로움과 고통은 비대한 자아 때문이다. 혹은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만, '특별하다'를 제일 중요하다,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아에 대한 이런 인식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나 자신이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구는 우주 한쪽 구석의 아주 작은 행성에 불과하지만, 이제까지 우리가 겪어온 이 모든 경험과 사건의 조합, 환경과 상황이 전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존엄하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단어 그대로 '우아하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면서 또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을 테고, 그에 더해 내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감격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지구는 생명을 품은 행성이다. 행성이 공전하는 중심별의 유형, 우주 방사선의 양, 초신성 폭발이나 다른 잠재적으로 해로운 천체물리학적 현상과의 거리와 빈도, 소행성 및 혜성과의 출동 가능성, 자기장과 화산 활동의 존재(21쪽) 등이 모두 제때 정확하게 조절되고 조정되었고, 그 결과와 결론으로서, 지구는 생명을 품은 파란 별, 인류의 거처가 되었다.




지구의 환경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얼마나 호의적인지, 얼마나 미세하게 조정되고 있는지, 그 균형이 46억년 동안이나 이렇게 잘 맞춰져 온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왜 나만 감동받는 것이냐. 왜 나만 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우연과 확률이라고 말하는 세계에서, 과학적 탐구와 그 결과만 인정받는 세계에서, 노사연의 노래는 진실의 이면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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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9-06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절반 읽은 상태 ㅋㅋㅋ 다 읽고 읽을게요. 우리 만남은 우연은 아니고 바람이라요. 간절히 간절히. 온 우주가.

단발머리 2024-09-06 23:56   좋아요 1 | URL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라고 박근혜가 그랬었죠 ㅎㅎㅎ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설명하기 무척 힘들지만, 경험상 나는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 (204-5쪽)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9-07 12:43   좋아요 1 | URL
고마워요 단발님 간직할게요 ㅋㅋㅋ 지지 말 ㅋㅋ

단발머리 2024-09-07 13:12   좋아요 0 | URL
간직하면서 푸코도 잘 챙겨욬ㅋㅋㅋㅋㅋㅋ푸코는 챙기고 김연수는 간직(😜)
 
한국의 여성과 남성 현대의 지성 39
조혜정 엮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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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 패러다임: https://blog.aladin.co.kr/798187174/7637637

전업주부 페미니즘: https://blog.aladin.co.kr/798187174/9339011




한국 사람이 쓴 글을 한국어로 읽는 기쁨에 더해, 어려운 이론을 술술 풀어주는 것에 더해, 이 책의 백미는 '정리'에 있다. 이제까지 읽어왔던 여성주의 이론과 대략적인 역사, 여성주의 운동 뿐 아니라, 이것이 우리 사회, 분단된 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접목'되어 왔는지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잘 읽힌다는 특장점은 저자에 대한 존경심을 더욱 진지하게 만들어준다.




사람마다 공명하는 지점이 다르겠지만, 공통으로 이야기되는 부분은 역시 제주도를 다룬 6장, <'발전'과 '저발전' : 제주 해녀 사회의 성 체계와 근대화>일 것이다. 스스로가 베짱이라 생각하는 나는, 심사가 단정하지 못한 나는, 제주 여성들이 겪어온 삶의 굴곡과 어려움에 대해 느낀 분노의 감정보다 제주 남성들이 살아낸 '고귀한(?)' 삶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오히려 압도적이다.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 아이들을 건사하는 아내, 고된 물일과 끝없는 밭일, 집안일을 전담하는 아내에게 받은 돈으로 '작은각시'와 생활하는 그런 인생. 그런 삶을 정당화하는 문화. 그 문화를 당연시하면서 살아가는 삶. 그 일생. 그 인생.




텔레비전의 보급이 제주도민들의 생활 변화를 가져온 부분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섬에 고립되어 살고 있는 자신들과 다른 삶, 육지에 대한 동경이 극도로 계급화된 모습으로 그려질 때, 그것이 텔레비전이라는 권위를 등에 업고 나타났을 때, 고단한 삶을 탈출할 하나의 답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더 쓰고 싶은 부분은 '전업주부'에 대한 부분이다.




가정일을 실제로 누가 주도하든 경제적 자립 가능성이 없고 가사일이 정당한 사회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정에 고립되어 잇는 비취업 주부는 통괄권을 쥔 남편에게 궁극적으로는 종속될 수 밖에 없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227쪽)



장기적으로 볼 때, 비취업 가정 주부의 삶의 형태는 없어지거나, 있더라도 순수한 선택에 의한 하나의 삶의 형태로 남아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258쪽)




2015년에 권인숙 씨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간통제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전업주부'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에 나는 전업주부였고, 그 이후로도 오랜 기간 전업주부였다. 지금은 일당제 단기 계약일을 하고 있지만, 자동으로 계약 연장이 되지 않는 일이라 내년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처지이기는 한데, 일단 현재로서는 전업주부는 아니다. 그때의 나, 2015년의 나는, 권인숙 씨의 그 말이 조금 아쉬웠는데, 이 부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고 계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 좀 서운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2015년의 내 글은 그런 나를 변명하는 의미가 강했고, 그때로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내 삶에 대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이해해야 했고,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이 책에서 조한혜정 선생님의 비슷한 표현을 읽고 난 후에도, 나는 그때처럼 발끈하지는 않았는데, 그건 나의 위치가 바뀌어서라기보다는, 내 생각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여성의 노동, 재생산 노동을 위시한 각종 돌봄노동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을 뿐이지 엄밀하고 적확한 의미에서의 '일'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노동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계약 관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할찌라도, 이 사회를 작동케 하는 강력하고 의미 있는 활동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여성이 '남편을 살뜰히 보살피고, 아이들을 잘 건사하고, 부모님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일'에 기쁨을 느낀다면, 그 와중에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한다면, 나는 그러한 삶, 그러한 결정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간순간의 작은 생각들과 자기만의 것이라 여겨지는 소소한 판단과 결정을 지배하는 문화의 힘과 자본의 거대한 압력 속에서 어느 영역에서 타협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본인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나는 마리아 미즈의 마지막 충고를 기억하고야 만다. 여성성에 대한 중산층적인 이상화를 비판해야 한다. 네, 그럼요. 비판해야지요. 일단 저는 저를 좀 비판하고, 저의 게으름을 한탄하고, 저의 배고픔을 달래야겠습니다. 그 담에 제가 야무지게 중산층적인 이상화를 비판할게요. 진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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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8-05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변화에 닿기까지 치열하게 사유해 오신 단발님께 박수를 짝짝짝! 내 감정에 적합한 분석 섞인 말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끔 감정이 변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고급스럽게 말하면 내가 나의 조건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것일텐데….

저는 그게 어떤 해방감을 주는 것 같고…. 그래서 여성주의 읽기가 참 좋아요!

2015년의 글을 읽어봐야하겠는데… 졸립니다… 베짱이를 꿈꾸는 개미는 뚠뚠 노동하다 열두시 알람이 울려 댓글달고 갑미다 :)

단발머리 2024-08-06 12:29   좋아요 0 | URL
저는 여전히 전업주부에 대한 그런 시선이 불편하고 또 기분 나쁘지만... 네, 예전보다는 덜 기분 나쁘네요. 제가 현재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고요. 쟝님 말대로 조건에 대한 해석이 바뀐건데..... 온 세상이 그렇게 보고 있다는 걸 받아들인 거니까 일종의 체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성주의가 주는 해방감을....... 누려할 시간입니다. 허나 그럴려면 먼저 읽어야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8-05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읽기를 잘한 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나 제주도 여성들에 대해서라면 막연하게 제주도 여생들이 억세다, 강하다는 말을 듣는 그 배경에 대해 알게된 게 좋더라고요. 억세다, 강하다 라는 말로는 감히 다 담을 수 없는 그들의 삶이요.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4-08-06 12:31   좋아요 0 | URL
제주도 여성들 어떻게 살아왔던건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놀라울 뿐입니다.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저도 많이 기쁩니다. 다락방님이 계셔서 이 모임이 이렇게 오래 착착 야무지게 진행되고 있네요!!

2024-08-05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05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4-08-05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지막 두줄 왜 이리 귀여우십니까? ㅋㅋ
이 책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많이들 칭찬하시는 거 보니 다시 페미니즘 책 읽을 때 읽어봐야겠군요..
그런데, 커피 두 잔 다 단발님 거예요?

단발머리 2024-08-06 12:37   좋아요 1 | URL
이 와중에 저의 귀여움을 발견해주시는 독서괭님은 진정 매의 눈이시며, 안목의 여왕, 이 시대의 참 알라디너되십니다!!
이 책 정리 잘 되어있어서 전 강추이고요. 아쉬운 점은 편집과 디자인이 많이 올드하다는 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른쪽 바닐라라떼가 제것이고요 ㅋㅋㅋㅋㅋ 왼쪽은 머스캣 피치 아이스티인데 큰아이꺼입니다. 전 한 번에 한 잔 마시는 사람이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8-06 14:21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한 번에 두 잔 주문도 마다않는 다락방 입니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8-06 14:23   좋아요 1 | URL
☕️🍺🍷🍹🍾🍸🍵🥤🍶🧋 두 개만 고르세요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8-06 14:40   좋아요 1 | URL
🤣🤣🤣🤣🤣 책 읽으며 두잔 마실 수도 있죠 뭐!! ㅋㅋㅋ

단발머리 2024-08-06 14:42   좋아요 0 | URL
☕️🍺🍾🍷🍹🥂🍸🍵🥤🍶🧋중에서 세 개 고르세요 ㅋㅋㅋㅋ
 
깜박깜박 도깨비 옛이야기 그림책 13
권문희 글.그림 / 사계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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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베스트셀러>는 작년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고, 나 혼자 꾸준히 썼는데, 올해는 많이 못 썼다. 아니, 거의 못 썼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닌데, 글을 쓸 시간은 부족했던 거 같다. 그냥 물리적으로.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지금 이 순간 뽑아보는 이 주의 베스트셀러. 사실은 지난주의 베스트셀러.


이 책은 <줄줄이 꿴 호랑이>로 유명한 권문 희님의 책이다. 나는 그분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 그 분의 동화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의 그림도 마음에 든다. 특히 도깨비의 불꽃 머리가 마음에 드는데, 요즘 핫이슈 홍명보 감독의 헤어스타일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혼자 사는 한 아이가 단기 알바(최저임금 10,000원 돌파 축하합니다. 문재인 정부 첫해에 16.4% 인상해서 가능한 일이에요)로 받은 일당 돈 서 푼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도깨비를 만난다. 돈 서 푼 빌려달라는 도깨비. '도깨비는 잘 잊어먹는다던데...' 그래도 어쩌리. 아이는 도깨비에게 꼭 갚으라 한 마디를 더하고 돈 서 푼을 빌려준다. 다음날 찾아온 도깨비, 돈 서 푼을 갚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도깨비는 돈 서 푼을 갚으러 온다. 너 돈 갚았어. 언제? 어제. 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제 빌렸는데 어떻게 어제 갚니?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도깨비는 돈 서 푼을 갚으러 온다. 없는 살림의 찌그러진 냄비가 안쓰러워 보인다며 요술 냄비를, 나뒹구는 방망이를 보고는 도깨비 방망이를 가져다준다. 돈 서 푼, 요술 냄비, 도깨비 방망이가 차곡차곡 아이네 집에 쌓여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도깨비가 찾아와서 엉엉 운다. 도깨비네가 파산 선고를 받았는데, 살림을 너무 헤프게 써서 그렇다는 거다. 들어보니 돈 서 푼, 요술 냄비, 도깨비 방망이를 모두 아이한테 가져와서 그런 거 같다. 내가 모아놓았어, 이거 다 다시 가져가! 돈 못 갚아서 미안해, 요술 냄비도, 도깨비방망이도. 미안해! 하늘의 벌 받고 와서 내가 다 갚을게! 울며 뛰쳐나가는 도깨비. 그 후로 그 아이는 예쁜 각시를 얻어 결혼하고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도깨비야! 도깨비야!" 도깨비를 부르며 죽는다. 하늘나라에서 벌 다 받은 도깨비는 그 아이의 집으로 찾아오고.... 아, 걔네집이 어디더라? 이 근처 같은데? 그렇게 이 동화는 끝이 난다.



그저께 큰아이랑 침대에 누워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핸드폰으로 찍어둔 그림을 보게 됐다. 이 책 기억나지? 큰아이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되는 베드타임 스토리. 옛날에 혼자 사는 아이가 있었대. 근데 그 아이가... 도깨비... 돈 서 푼, 요술 냄비, 도깨비방망이... 도깨비야, 도깨비야. 이 책 읽어줄 때 아이들한테 꼭 물어봐. 왜 그 아이는 죽으면서 "도깨비야! 도깨비야!" 했을까. 너무 고마워서. 고마운데 그 말을 못해서. 고마운 마음을 도깨비한테 전하고 싶은데 그걸 전할 수 없어서. 그래서...



이 책을 몇 번쯤 읽었을까. 7번? 8번? 그림이 귀엽고, 도깨비가 귀엽고, 돈 서 푼도 귀엽고. 요술 냄비에서 연어초밥과 돈까스, 커피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읽는 그림책.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책. 그런데 마지막 따옴표에서 전해지는 애절함. "도깨비야, 도깨비야!" 마지막 말 속에 담긴 아이의 마음.


큰아이에게 도깨비 이야기를 하면서, 도깨비가 '부모'의 비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내어 천천히 일곱, 여덟 번을 읽었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정말 도깨비는 부모의 비유일까.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다. 그런 부모가 아니라는 걸 안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그럴 수 없다는 것도, 그것 역시 부모에 대한 이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도깨비를 생각하면서 내 부모를, 엄마와 아빠를 떠올린다.



아이는 혼자 사는 아이다. 아이는 세상에 혼자 왔고,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그 애 앞에 도깨비가 나타난다. 도깨비는 아이에게 돈 서 푼을 달라고 한다. 줘야 해서 줬지만 못 받아도 괜찮다. 그날 하루 돈으로는 큰 돈이지만, 아이가 다 큰 후에는 그렇게 큰 돈이 아니다. 아이는 돈을 빌려준다. 준 것도 아니고 빌려준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도깨비가 돈을 갚는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도깨비는 빌린 돈을 갚으러 온다. 매일 갚으면서도 도깨비는 갚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갚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돈 서 푼을, 요술 냄비를, 도깨비 방망이를 매일매일 가져다 주면서도, 자신이 그 좋은 걸 주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헤어질 때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다음에는 꼭 갚겠노라고, 다음 번에 만날 때는 돈 서 푼을 꼭 갚겠노라고 말한다.


아이는, 도깨비 덕분에 결혼을 하고, 도깨비 덕분에 행복하게 알콩달콩 살 수 있었던 아이는, 도깨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네 덕분에 편안히 살았다고, 네 덕분에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도깨비는 없다. 도깨비는 떠났다. 미안해하며, 돌아오겠노라고 말하며 떠났다. 영원히, 영영 아이를 떠났다.



돈 서 푼을 갚겠다는 도깨비의 마음과 '도깨비야!'를 부르는 아이의 마음은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 엄마, 아빠의 딸이고 아이들의 엄마인 나는, 도깨비보다는 아이의 마음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좋은 것을 주고도 잊어버리는 도깨비가 되지 못한 나는, 미안해하는 아이가 된다.


"도깨비야, 도깨비야!" 도깨비를 부르는. 고맙다는 마음을 끝내 전하지 못한. 도깨비에게 닿지 못한 마음을 가진.

아이. 남겨진 아이. 도깨비를 부르는 남겨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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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4-07-13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단발머리 2024-07-13 10:33   좋아요 1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좋은 날 되세요!

독서괭 2024-07-13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알고 있던 이야기인데 도깨비 건망증 심하네.. 이러다가 단발님 글 읽으니 정말 부모의 비유 같네요!! 뭐 저도 주고 또 주면서도 미안해하는 엄마는 아닙니다만ㅎㅎ 그저 그 마음을 고맙게라도 생각하는 아이라서 다행이다 싶네요.

단발머리 2024-08-02 16:13   좋아요 1 | URL
아이고, 제가 답이 늦었어요 ㅠㅠ 독서괭님은 이 책 아실거라 생각했어요. 여러 번 읽어도 좋은 책이에요.
저도 그 마음을 고맙게 생각하는 아이 될려고요. 쪼금이라도요 ㅎㅎ

건수하 2024-07-13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줄줄이 꿴 호랑이는 재미있게 봤는데 이 책은 모르고 지나갔네요. 도서관에서 빌려가야겠어요 😊

단발머리 2024-08-02 16:13   좋아요 1 | URL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빌려 읽고 벌써 반납까지 하셨을듯....
최근 저의 최애 동화책입니다 ㅎㅎ

건수하 2024-08-03 13:01   좋아요 0 | URL
전 까먹었… 죄송합니다. 집앞 도서관에 있나 확인해봐야겠어요 ^^

라파엘 2024-07-13 2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혼에 대한 생각은 들지 않지만, 아이를 기르는 것에 대한 생각은 종종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아닌 한 사람을 나 자신만큼 (아마도 그 이상으로) 사랑하고 양육하는 그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는 어떤 마음들이, 우리 인간을 진정으로 인간답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해서요 ㅎㅎ

단발머리 2024-08-02 16:19   좋아요 1 | URL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어디 다녀왔나봐요 ㅠㅠㅠ
라파엘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 경험을 통해 체득되는 마음이 있더라구요. 근데 모성/돌봄 조차 사회적으로 상상되고,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거라서.... 전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깐 제 요는.... 아이를 자기 손으로 키워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은 또 배우더라구요. 저는 직접 아이를 키웠고, 그리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는 하는데.... 제 애정과 혼합된 다종다양한 욕망이 저를 가끔 다른 길로 인도하기도 한답니다. (느닷없이 라파엘님께 고해성사 ㅎㅎㅎㅎ)

다락방 2024-07-15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아가 조카 만나 줄줄이 꿴 호랑이를 읽어줬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읽어주지는 못했어요. 아가 조카가 벌떡 일어나 제 방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그런데 첫 표지 열자마자 나오는 참깨들을 보고 뭐냐고 물었고 글쎄 뭘까? 여동생도 갸웃하고 이미 책을 읽은 저는 그건 책을 읽어보자, 하다가 드디어 참깨가 나왔어요! 그러자 아가 조카는 어? 하더니 첫장으로 돌아가서 이게 그거라고 했답니다. 너무 귀엽죠? (그냥 다 귀엽습니다). 이 페이퍼 보니 줄줄이 꿴 호랑이 읽던 주말의 아가 조카 생각이 납니다. (주섬주섬 이 책도 장바구니로..)

단발머리 2024-08-02 16:20   좋아요 0 | URL
이게 그거라고 할 때........ 아, 얼마나 귀여울까요? 이 귀여움은 진짜 말로 다 할 수 없는 ㅋㅋㅋㅋㅋㅋ 극강의 귀여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직도 몰타이신 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급 안부 묻기)

다락방 2024-08-02 18:24   좋아요 0 | URL
로마입니다!!

단발머리 2024-08-02 18:45   좋아요 0 | URL
앗! 로마 페이퍼 봤는데 ㅋㅋㅋ 몰타가 로마 근처인 거죠? ㅋㅋㅋㅋ좋은 시간 보내세요~~~ 😘😍🥰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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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읽었다.



예상되는 이야기이고, 예상되는 대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의 현실이 이러함을 확인하며 묘하게 안심이 되어서 조금 놀랐다. 희망의 말도 있었다. 나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좋은 시간이 올 거라는 말, 그런 말들이 나는 좋았다. 언니, 보지 않으려 하면 끝까지 진실을 볼 수 없어. 라고 말하며, 현재의 위기가 모두 문재인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아~~ 그래? (내 표정이 어땠는지를 볼 수 없어서 나는 유감이다)라고 말하는 나는, 그렇게 유시민의 이 책을 다 읽었다.




윤석열의 무모함과 언론의 비겁함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보탤 말이 없을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언론에 대한 유시민의 비판에 동의한다. 한겨레에 대한 이야기, 정확히는 한겨레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이어진 포기의 마음에 대해서는 나도 1-2장 쓸 수 있지만, 오늘은 이만해서 정리하고.




나는 가식과 위선에 대해서만 한 마디(진짜에요, 딱 한 마디) 보태고 싶다.




조국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 나는 여러 번 조국에 대한 글을 썼다. 조국은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지 않으면 감옥에 갈 것이다.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해 조국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절차와 판단에 대한 생각이 나와는 다르지만, 나의 생각과 상관 없이 법절차는 그것대로, 그렇게 진행될 것이다. 조국과 관련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신랄하게 조국과 그의 행동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나는 내가 말할 바를 말했고, 그가 말한 바를 들었다. 그가 조국을 옹호하는 내게 말할 때, 내 계급에 대해 언급할 때,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고, 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거야, 라고 말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조국은 감옥에 갈 수도 있다. 범죄자로서의 낙인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내 생각, 그의 생각과는 상관 없이. 법 적용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법대로라면 그는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의 범법 행위를 옹호하는게 아니다. 범법 행위를 어떻게 옹호하겠는가. 다만, 기소독점하는 검찰의 나라에서 그에게 피할 곳이 없었다는 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든 마찬가지다. 검찰의 눈에 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죄든지 기소될 수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건 다른 문제다.



완벽하게 훌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조롱당해야 한다면, 조금의 약점만 드러나도 기소되고 유죄판결을 받아야 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죽음으로 책임져야 한다면, 누가 감히 진보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정치검찰과 보수 언론은 말했다. "완벽하게 선할 수 없다면,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수치와 불명예의 구렁텅이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고 싶지 않다면, 정의니 공정이니 평등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말라. 노무현과 노회찬과 조국의 최후를 보았지 않았는가!" (43쪽)




나는 조국 사태의 주요한 감정적 동인은 '조국도 자식을 위해, 자식의 입시를 위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는 지점이 아니라고 본다. 정확한 발화 지점은 '말은 그렇게 해놓고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이라고 본다. 그 이야기를 풀어가자면, 한국에서 '입바른' 소리를 할라치면, 그집 아이는 정시로 대학에 들어가거나 혹은 아예 아이가 없거나, 아니면 아예 한국에 살지 않거나... 라고 쓰면, 또또 극단적인... 이라는 소리가 아련히 귀에 메아리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거 같다. 사회의 변화와 말 그대로 진보, 지금보다 살만한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왜 이렇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부여되는가. 트럼프의 성희롱, 성추행에 대한 이야기가 소문이 아닌 사실로 확정더라도 사람들은 그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왜? 트럼프는 원래 그런 놈이니깐. 삐뚤어진 마음으로 살라치면, 이 세상 가장 졸렬한 악인이 되어 선행을 하나씩 베풀어가자면 온 세상이 기립해서 박수칠 상황이다. 완벽할 자신이 없다면 말하지도 말아야하는가.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제언이 오로직 완벽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면, 왜 그치들은, 불법과 부정을 일삼는 그치들의 목소리는 그다지도 크단 말인가. 그다지도 높단 말인가. 왜, 하이에, 화음에, 옥타브까지, 자기 마음대로 불러 재낀단 말인가. 그 노랫소리에 발맞춰 탭댄스 추는 언론은 또 뭐란 말인가.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전망은 더 암울하기는 하다. 나는 박근혜와는 달리 윤석열은 '순순히' 탄핵 절차를 따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는 막판까지도 그 놀라운 '그립감'을 잃지 않으려 애쓸 것이다. 경제나 외교 파탄이 아니라, 나는 전쟁을 염려한다. 주로 전쟁을 걱정하고, 짬짬히 독도를 걱정한다. 내 나라의 현실. 내 나라의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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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7-10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너무 뻔할 것 같아서 읽을 생각 안햇었는데 단발머리 님 리뷰 읽고나니 뻔하지만 읽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담아갑니다.

단발머리 2024-07-10 10:29   좋아요 1 | URL
뻔하다는 예상을 완전히 넘어설 수는 없을거 같은데요. 근데 분석이..... 유시민 아닙니까. 저는 좋게 읽었어요.
그의 예상이 너무 잘 들어맞아서 약간 짜증이 나기는 한다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망고 2024-07-10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놓기만 하고 안 읽고 있어요 요즘 짜증나서 뉴스도 못 보겠는데 그걸 글로 접한단 생각에 스트레스라ㅠㅠ

단발머리 2024-07-10 18:35   좋아요 1 | URL
네, 망고님.... 짜증나는 일들이 엄청나기는 하죠. 전, 반면교사의 실천자로서 ㅋㅋㅋㅋ 정말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었을 때, 어떤 사람들도 지금의 나처럼 생각했겠지? 이런 생각이요. 누구 때문에 이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요.
글로 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한데, 한 번 정리하기는 해야할 거 같아서 전 읽었는데 이미 알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라 금방 읽을 수 있더라구요. 제일 폭발하는 부분은 당연히, 언론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저한테는 그랬어요. (먼 산)

독서괭 2024-07-10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지적하신 부분 정말 그래요. 흰옷에 튄 작은 얼룩이 눈에 잘 띄는 것처럼, 깨끗해 보이는 사람에게 더 결벽을 요구하죠.. 안타깝네요 ㅠㅠ
저도 짜증나서 못 읽을 것 같은데 단발님이 리뷰 써주셔서 감사하지 말입니다 ㅎㅎㅎ

단발머리 2024-07-11 09:15   좋아요 0 | URL
저는 깨끗해 보이는 사람에게 더 결벽을 요구하는 건 이해하는데, 우린 너무 깨끗하기를 바라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뭐, 거의 락스물에 들어갔다 나와라, 이 정도요.

짜증나서 미뤄두신 분들이 많네요. 감사하지 말입니다,는 오랜만에 보는 댓글이지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7-11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나라 국민의 위치성에서는 저도 동의해요. 그러나 계급적 포지션에서는 전혀 이입이 (심지어 조국반대 대학생들에게도) 안됨요 ㅋㅋㅋㅋㅋㅋㅋ 여성으로서는 민주당에 이입 못하는 것 처럼요! 그러니 민주당이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ㅋㅋㅋ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저는 어쩔 수 없이 반윤이지만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다는 현실이 민주주의 일 수는 없고… 다가진 남자를 정치지도자로 앉히는 것은 배아파서 (별 수 없다) 뭐시 없어도 너무 없는 자를 찍는 시민권은 앞으로 계속 탐구하겠습니다. 저는 정치가 그나마 역동적이던 시절을 잠깐이나마 지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투표로 아이돌 뽑는 지금시절에서 자라난 z세대에게 선거는 어떤 퍼포먼스인지 가끔 궁금합니다. 그들에게는 정치 지도자라는 개념이 있을까?하는 질문. 정치의 효력이라는 측면에서 반발짝 쯤에.

단발머리 2024-07-11 12:54   좋아요 1 | URL
두 가지 선택지일 수 밖에 없는 건 우리 내면의 강고한 이분법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그 이분법의 현실인 분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우리의 정치 지도자가 비극적인 역사의 결과인 분단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에 전, 여전히 그 남은 선택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이유는 드는 거, 비겁하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전쟁 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전쟁은 그 자체로 비극이니까요.

유시민님 책에 대한 리뷰고 댓글이니 유시민님의 표현을 가져오자면(완벽하게는 기억이 안 나네요 ㅠㅠ), 민주주의 확립, 중산층 확대, 한반도 평화. 김대중 대통령님의 정치 철학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러시더라구요. 정치 지도자라는 개념이 없이도 말이지요.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람 없어도 자신의 미래에 중요한 결정을 내릴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다고, 있을 거라고 전 생각해요. 제가 가진 표본이 워낙 적기는 합니다만....

공쟝쟝 2024-07-11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니까… 저는 노무현은 사랑할 수 있었는데 조국은 그럴 생각조차 든 적이 없어요… (우리는 좋아하고 애착을 가진 대상 쪽으로 움직이잖아요? ㅋㅋ 잔인한 낙관 읽는 중)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게 정치이고 그게 정치라면. 한국은 어떤 시절이 끝났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제도는 유지되겠죠? 이상 수도권 적응 실패한 지방수저의 변이고 책 읽어볼게요~

단발머리 2024-07-11 12:56   좋아요 1 | URL
한국에는 어떤 그런 시절이 끝났죠.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통령 윤석열.
정치 지도자를 사랑하고 말 그대로, 좋아하고 애착을 가지고... 이런 세대는 전 40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준석 참 특이하다 생각합니다. 주는 것 없이, 20대 남성들이 이준석에 애착을 가지더라구요. 여러분, 이준석 40대임요. 잊지들 마시라~~~~~

공쟝쟝 2024-07-11 15:43   좋아요 1 | URL
나도 곧 40대가 된다. 아, 그러니까 불렀군요. 이준석이.(호명) 그들을…. 아무도 안불러준 그 청년들을… 하버드 나온 그가요.
 
인계철선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 / 오픈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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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마지막 ‘그 사람‘이 꼭 나일 필요는 없지만, 나는 그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네. 나였으면. 근데 당신은 예쁜 여자들만 좋아하더라. 사귀던 여자들 내가 다 봐왔잖아. 나쁘다, 당신. 리처 당신,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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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7-01 0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요 왜왜 무슨일이야 왜왜 왜요 ㅠㅠㅠㅠㅠㅠㅠㅠ왜 여기서 리처가 뭘 어떻게 하는데, 누구 만나는데요, 만나서 뭐하는데요!! 아놔 ㅠㅠ 저 아직 안읽었는데 이 백자평으로 제가 미칠 것 같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4-07-01 09:37   좋아요 1 | URL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제가 접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접습니다, 왜요? 이건 모두 다 다락방님을 위한 것.
저는 리처를 좋아합니다. 얼굴 생김새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옵니다. 전체적인 느낌이나 혹은 상상하는 걸 넘어서 제 생각에는 제일 자세한 묘사가 아닌가 싶어요. 제 스탈이고요. 암튼 좋아합니다.
그러나, 전 이 책을 마치며 무척 슬펐고요. 난 잭 리처의 행복을 바라지만ㅠㅠㅠㅠㅠㅠㅠ 히이잉! (뛰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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