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의 반역과 로마의 철저한 응징으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대땅 전역이 폐허가 된 후, 말 한 마리보다 싼 값에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노예로 팔려나갔다. 생존자는 뿔뿔이 흩어졌다. 유럽 여기저기에 흩어진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안정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정해진 구역 안에서 살았고, 정해진 직업군 안에서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 왕, 귀족, 지역 유지들과의 관계를 통해 지위를 보장받았지만, 반유대주의의 폭풍이 몰아치면 그들은 유대인들을 모른 척하기 일쑤였고, 유대인들은 자신의 힘으로 이룩한 재산을 쌓아놓은 근거지에서 쫓겨나고, 재산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
지속적인 반유대주의를 가능케 한 가장 주된 요인을, 나는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보았다. '똑똑한 사람들'에 대한 질시.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성공으로 귀결된 운명을 지닌 사람이, 최종 역사의 주인공이 자신들이 아니라 저들, 유대인일거라는 불안한 예감.
유대인은 시대의 첨단을 걷는 초월적 사상, 즉 윤리적인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었다. 거의 모두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또 당시로서는 세계 유일이라 할 만한 복지 제도까지 갖추고 있었다. (253쪽)
유독 똑똑한 사람, 똑똑한 유대인들. 어제 읽은 <사피엔스>의 이 사진이 겹쳐지는 지점이다.
<호모 사피엔스> 특징: 자신들이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함.
또 하나의 요인으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유대인의 인구 팽창.
유대인은 농업 및 무역 경제의 급격한 성장, 경이로운 인구 증가라는 특징을 보인 거대한 식민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기능했다. 대략 1500년경 폴란드에 거주하는 전체 인구 500만 중에 유대인은 2-3만 명 정도였다. 1575년에 이르러 전체 인구가 700만 명으로 증가했고 유대인 수는 15만 명으로 치솟았으며 이후 증가 속도는 더욱 급격해졌다. (432쪽)
남의 나라에서 거주와 이전의 자유 없이 극히 제한된 직업군에 종사하는 유대인들은 무역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경이로운 인구 증가의 맨 선봉에 선다. 불리한 조건, 척박한 환경에서도 유대인은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놀랍도록 번성했다. 초저출산의 현시대와 비교해 보았을 때도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일이 성경에도 기술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내용이기는 한데, 그래도 한 번 써보자.
애굽(이집트)이 아프리카 북부 인근 지역의 패권을 가지고 있던 시기, 이스라엘인들이 대흉년을 피해 애굽 땅으로 대피한다. 초반의 화해 무드도 잠시,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너무 많아지자, 애굽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불안의 이유가 숫자다. 저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있어. 이는 미국에서 백인 여성들에게 출산이 책무로 강제되는 반면, 흑인 여성들에게는 각종 보조금을 통해 피임을 권장하는 일련의 일들과 비교된다. 나그네이며, 이방인이며, 외국인인 유대인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출애굽기 1장 7-12절, 개역개정)
일을 더 많이 시켰는데도, 밤일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강인한 체력의 이스라엘 여성과 남성. 언제나 가장 두려운 건 숫자다.
인구수. 돈. 수학. 통계. 평수. 배기량. 시험점수. 근무시간. 연차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