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노유진 정치카페>는 매주 월요일마다 업데이트 되고, <정치카페 테라스>는 매주 목요일마다 업데이트된다. <노유진>을 구독하고는 있지만, 목요일 테라스 방송은 신영복 선생님이 나오셨을 때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듣는 편이다. <정치카페 테라스 19편 : 페미니즘이 불편한 이유, 권인숙>편은 피드를 살펴보다가 우연히 듣게 되었다. 초대 손님 권인숙씨와 함께 성범죄와 이를 대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 성희롱, 성차별 등 일상에서의 성폭력, 군가산점제, 간통죄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고 의견을 듣는 시간이었는데,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런닝타임 1시간 5분 정도 지났을 때, 간통죄가 작용했던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전업주부 패러다임’에 대해 권인숙씨가 한 말이다.
제도나 이런 여러 가지 기획들이, 전업주부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가는 거요. 결혼제도에서도, 결혼제도는 또 다른 면이 있지만, 결혼제도 안에서 전업주부의 삶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저는 좀 많은 회의가 있는 편이예요. 저는 간통제도가 여러 가지 다양한 측면에서 얘기될 수 있지만, 이제까지 가장 버틸 수 있었던 명분은, 그 안에 있는 주부, 주부를 보호하는, 주부의 자기 보호권으로서의 활약에 대한 방점이 굉장히 많이 주어졌다고 보여지는데, 저는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안착해서, 그 안에서 일을 하지 않고도 사회적 고용관계를 하지 않고도, 고용관계 속에서 일하지 않고도, 자기의 삶이 보장되는 식으로 가는 방식은, 사실은 우리나라의 어떤, 여러 가지 일하는 경제활동 참가률, 뭐 여러 가지 이야기했던 것에서, 굉장히 근원적으로 저는 방해가 되는 패러다임이라고 생각을 해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안착해서, 그 안에서 일을 하지 않고, 사회적 고용 관계에 있지 않으면서도 삶을 보장받으면서 살고 있는 1인으로서, 그녀의 말은 불편하다.
할 말은 있다.
일테면 집에 있다고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며, 현대인은 노동에서 소외된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나는 거기에서 한 번 더 소외된 ‘가사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내가 하는 ‘노동’이라는 것은 무리 없이 해냈을 때는 아무 ‘티’도 안 나지만, 하지 않았을 때는 그 빈자리가 확연히 드러나 누구에게도 숨길 수 없다는 것. 이런 이야기 말이다.
두 아이 모두 학습과 관련된 일체의 학원에 보내지 않고 있으며, 영어와 피아노는 내가 직접 가르치고 있다는 것. 아이들 학원비만 계산해도 가정 경제에 미친 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 고용 관계에 있지 않다. 남편의 수입이 우리 가정의 확실한 그리고 유일한 수입원이다. 나는 돈을 벌지는 않지만, 돈 쓰는 일을 주로 한다, 라고 쓰고 나니, 무척이나 스산한 느낌이다.
공지영의 칼럼은 '한겨레 21'에서 챙겨 읽었는데, 최근에 책으로 묶여 나왔다.
몇 회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가사노동도 노동이 아니냐고 묻는 딸에게 공지영씨는, 삶을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정도, 즉 겨울에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을 정도의 보일러비와 통신비 정도는 자신의 손으로 벌어야 한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사회적 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기간이 사회적 계약 관계에 있던 기간보다 훨씬 길어져 이제는 사회 경력 마이너스 11년을 기록하는 지금, 사회적 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나는, 매우 쓸쓸하다.
공지영의 이런 말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네가 만일 누군가에게 반찬을 해주고 옷을 다려주고 말하자면 `엄마 놀이`를 좋아해서라 해도 나는 그것 때문이라면 결혼을 말리고 싶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이 모든 것을 날마다 몸이 아프거나 병들었거나 슬프거나 노엽거나 죽도록 해주어도, 칭찬이나 대가를 받기가 힘든 노동이란다. 아니 험담이나 듣지 않으면 사실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