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를 한 권 샀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2.5번 정도 읽었는데, 그래픽으로 나온 책이 읽고 싶어 근처의 구립 도서관 2개, 작은 마을문고까지 합치면 20개가 넘는 도서관에서 찾아봤는데, 모두 대출 & 대출대기 중이고, 예약조차 불가능한 정도라서 그냥 샀다. 한 권 사면 안 되는데, 택배기사님에게 죄송한데, 그래도 한 권만 샀다. 장바구니에서 대기하고 있는 책들 많은데 모른 척 하고 샀다. 지난 번, 작은 보조배터리 나온 거 받으려고 이러저리 재다가 잠깐 한눈 판 사이에 그 사은품이 없어져버려 이제 그것도 못 받으니 에라 모르겠다, 한 권만 샀다.
며칠 전에는 큰애 베프가 집에 놀러왔다. 집 치우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버려야할 것 제때제때 버리지 못한 상태라 더운 여름 지나고 바람 불고 선선해지는 가을에 초대하자 했더니, 안 된다고 꼭 그날이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집을 치웠다. 처음에는 현관에 안 신는 신발 치우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대청소 비슷하게 되어서 33도에 3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을 치웠다. 집에 다녀간 큰애 베프가 집에 책이 많다고, 진짜 진짜 책이 많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알라딘 생활자인 나로서는 내가 책이 많다는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큰애 베프가 진심 놀라며 그런 말을 했다고 하니 진짜 책이 많은가 싶어 책장 앞에 서보았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큰애 베프가 돌아가서 나서 달력 종이를 제자리에 놓아 두었다. 먼지 방지용 & 햇빛 가리개이다. 새로 산 책들도 가릴 수 있고(어떤 사람이 어느 집에서 책 사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을 때 유용함), 로맨스 소설 가리기에도 좋다(나의 다짐: 이제 제발 그만 좀 사자). 처음에는 나름 원칙에 따라 읽은 책은 아래쪽에 깔아두고, 읽어야할 책들은 세워놓고는 했는데(이게 원칙 맞나요?), 이제는 막 뒤섞여서 선물 받은 책, 신간, 페미니즘 고전들이 서로 껴안고 난리 부르스다.
그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책을 한 권 꺼내 거실 탁자에 놓아 두었다. 일전에 사두었는데, 나는 도서관 희망도서로 읽어서 이 책은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책이라 선물하면 되겠다 싶었다. 큰애는 책선물 싫어하는 현세태의 심정을 고발하면서 싫다고, 베프도 그 책 싫어할거라고, 자기가 그 책 치울 거라고 그리 말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책을 내놓고 집을 나섰는데, 다녀와서 보니 책을 전해주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큰애 베프에게 선물한 책은 내가 최근에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의 책이다. 최신간은 아니고, 비교적 신간이다. 책사진을 안 찍어 두어서 등장인물로 그 책을 묘사하자면. 그렇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책, 바로 그 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