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 정확히는 세 어절로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몇 줄로 써보려고 한다. 긴 이야기를 싫어하시는 모든 분에게 스킵을 권한다.

 

 


최근에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대상화였다. 어떤 사물을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 것. 칸트의 정의를 따르자면 오로지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개인을 이용하는 태도나 행위를 말하고, 캐서린 맥키넌, 안드레아 드워킨 같은 페미니스트들을 통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라는 논의가 본격화되기도 했다.

 


존경하는 정희진 선생님의 정의를 가져와 보면 이렇다. 2022 11 30일 경향신문. 미소지니에 대한 설명과 혼재되어 있고, 대상화에 대한 직접적인 문장은 세 문장뿐이지만 인용해 본다. 전체 글 링크는 여기에 있다. ([정희진의 낯선 사이]: 사진과 총, 캄보디아에서의 대통령 부인 https://www.khan.co.kr/print.html?art_id=202211300300065 )



무엇보다 ‘김건희’는 ‘엘리너 루스벨트’가 아니다. 미소지니는 여성 개인을 혐오하는 행위가 아니다.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당연히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착하지 않다. 미소지니는 한 인간을 동일한 성격을 지닌 집단성으로 조작하는 행위를 뜻한다. 여자는 모두, 그저 여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여성을 어머니와 창녀로 이분화하고 그 스펙트럼 안에서 평가하는 방식이다.

내가 미소지니를 번역하지 않고 사용하는 이유는 혐오라는 단어가 주는 피로감, 남성 혐오라는 황당한 대칭어의 생산, 그리고 이 문제가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 약자 전반에 대한 지배 전략이기 때문이다.

미소지니는 상대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맘대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사고인 가부장제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상상(망상)인 오리엔탈리즘, 이 두 가지가 문명의 두 축이다.

대상과 대상화는 다르다. 누구나 대상일 수 있다. 대상화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타인을 동원한다. 이성애의 정상성은 동성애에 대한 낙인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결혼제도의 정상성은 이혼과 저출산이 문제라는 사고방식이 없다면 작동할 수 없다. 흰 피부의 우월성은 흑인의 존재를 전제한다. 이것이 사고방식으로서 ‘미소지니’다. ([정희진의 낯선 사이])


 



대상화는 를 설명하기 위해 타인을 동원한다. 타인이 나의 설명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과 상황, 환경을 동원하지 않고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너무 어려운 문제라서, 나는 노트에 대상화라고 쓰고, 관련된 글을 찾아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공사다망하여 잊어버렸던 차에, 마사 누스바움의 이런 문장을 만났다.

 
















대상화한다는 것은 그것을 사물로 다루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책상이나 펜을 사물로 다루는 것을 두고 대상화라 부르지는 않는다. 책상과 펜은 그 자체가 사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상화는 사물로 변환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실제로는 사물이 아닌 인간 존재를 사물로 다루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대상화는 그 대상에 인간성이 존재한다고 여기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더 많은 경우 완전한 인간성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까지 의미한다. (<교만의 요새>, 41-2)

 


대상이 가진 인간성을 거부하는 것, 그 속에 깃든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을 대상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을 설명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서, 나는 상황과 환경을, 세상과 사람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가. 혹은 그려내야 하는가. 이를테면, 내가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나는 어떻게 세상을 이해할 것인가. 혹은 나 자신을 설명할 것인가. 아니면 설명하지 말아야 하는가.

 




 













자리에 눕기만 하면 5분 이내에 깊은 수면에 빠져드는 내게도 잠 못 이루는 며칠이 있었으니, 시몬 드 보부아르와 거다 러너와 케이트 밀렛과 실비아 페데리치를 읽은 밤에는 그랬다.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를 읽고, ‘a thinking woman up at night’에 대한 글을 썼다.(https://blog.aladin.co.kr/798187174/91967102017년이었다. 끝없는 고민이 확고한 결정으로 바뀐 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결심을 했고, 올해는 그 결심이 나의 실제가 되었다.

 

 


사회적 고용 관계 속에 있지 않으면서 보냈던 나의 19년을, 나는 부끄러워하지는 않지만, 나의 노동은 여전히 국가 GNP 속에 계산되지 않은 채 남아있고, 가족들이 나의 노동과 노력을 인정해 주고 고마워하는 것과 상관 없이, 나는 여전히 사회 속의 보이지 않는존재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19년 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은 돌봄 노동의 범주 속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하얀 빈칸에 그걸 적을 수는 없었지만, 또한 그것밖에 적을 것이 없었고.

 

며칠 후, 나는 근로복지공단에서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취득 사실 통지서내용을 담은 카톡을 받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존재였던 나는, 비로소 보이는 존재가 되었다. 일을 하면 하는 대로, 일한 시간에 맞춰 돈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는 ‘너를 만나는 사람들은 복 받은 거야라고 말해주어 내게 힘을 줬다. 혼자 있을 때면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어느 금요일 밤에 교회에 갔을 때는, 설교와 찬양, 기도 순서가 끝나고 각자 통성기도를 할 때, 키보드를 치면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게 주신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주신 그 사랑을 제가 나눌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겐 하나님의 사랑이 많으니까, 그 사랑을 조금씩 나눌 수 있게 해주세요. 작은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그러나, 나는 좋은 사람이면서 잘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다정한 사람이면서 실력 있는 사람이어야 했는데.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어렵기는 하지만, 내게는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몇 배 더 힘든 일이었으니. 나는 자주, 아주 자주, 염려와 걱정, 실망과 자괴감으로 점철된 저녁을 맞이하기에 이른다. 내가 이러려고 19년 만의 대탈출을 감행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 아름다운노랫소리에 익숙했던 나. 퇴근하고 그다음 날 출근하는 그 놀라운 다람쥐 쳇바퀴의 삶을 겨우 20여 일 맛본 후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경외감을 느끼기에 이른다. 우리 각자는, 각자 삶의 무게를 견디고 산다. 8살짜리는 8살짜리 대로, 12살짜리는 12살짜리대로, 30대는 30대의 무게를, 40대는 40대의 무게를 각자 지고 산다. 그만두고 싶을 때,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8살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생각했다.

 
















그리고 밤에는 책을 폈다. 10분 뒤에 고개를 떨굴 것을 알지만, 그래도 습관처럼 책을 펼쳤다. 아렌트를 펼치는 밤에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바구니가 함께 하기도 했다. (우리, 아렌트 읽을 때는 옆에 꽃바구니 놓고, 화병에 꽃 꽂고 그러잖아요. 맞잖아요.)

 



 



이 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이 시간을 산다. 내 삶을 어떻게 설명할지, 혹은 설명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고, 또 모르겠지만. 샬럿 브론테를 모방해 내가 쓰려는 그 한 문장을 여기에 쓴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이 문장이다.

 



 

 

 




 

독자여, 나는 취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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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종(種)의 복수를 위해 글을 쓰겠어.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05-06 23:41 
    1.아니 에르노의 데뷔작인 <빈 옷장>을 읽으려다가 또 실패했다. 작가의 낙태 경험으로 시작하는 책의 첫 페이지는 자궁에 막대기를 집어넣는 묘사가 있다. 에르노의 <사건>을 온 얼굴을 찌푸리면서 읽어버리고 다시는 읽지 않고 싶다 냅다 내던졌던 기억이 난다. 독서 경험은 강렬해서 그걸 지우고자 <레벤느망>(은 <사건>을 영화한 작품이다)을 꾸역꾸역 다 보았는데… 그 이미지들은 더 괴로웠다. 프랑스 영화는 역시 좀
 
 
유부만두 2023-04-29 17: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친구여, 그대가 자랑스러워요!

단발머리 2023-04-29 17:08   좋아요 1 | URL
(다다다다다다다) 와락!!!!!!!!!!!!!!!!!!!!!!!!

서곡 2023-04-29 1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응원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3-04-29 20:26   좋아요 1 | URL
응원 감사합니다, 서곡님!! ㅎㅎ

건수하 2023-04-29 19: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새로운 시도 그리고 실천.. 꼬옥 안아드립니다. ❤️

단발머리 2023-04-29 20:27   좋아요 2 | URL
수하님께 포옥~~~~ 안기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수하님 💕

2023-04-29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9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04-29 2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새로운 시작을 하셨군요^^ 어떤 것이든 도전은 쉽지 않은 일이죠. 여러 말을 하면 부담되실테니 다른분들 말씀처럼 한마디 던지고 갑니다. 힘껏 응원해요!!!

단발머리 2023-04-29 21:21   좋아요 1 | URL
새로운 시작이 좀 멋지고 근사했으면 좋을텐데 아.... 전 넘나 피곤한 것입니다 ㅎㅎㅎ 응원의 마음, 응원의 댓글에 힘을 얻습니다.
감사해요, 거리의화가님!!

난티나무 2023-04-29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오옷!!!!!! 20일이나 되셨어요! 일단 추카추카~!!!!!! 이단은 당근 응원~!!!! (실은 늠 열심히 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ㅋㅋㅋㅋㅋ) 꽃바구니는 못 보내지만 응원하는 마음 한가득 두가득 세가득 백만송이가득 천만송이가득~~~~~~~~~~~~ 보내요~~~~~~~~~~!!!!💐🎂🍾

단발머리 2023-04-29 23:50   좋아요 0 | URL
축하말씀 감사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넘 열심히 하지 말라는 그 귀한 충고의 말씀, 제가 몸소 열심히 확실히 실천해보겠습니다.

보내주신 응원의 마음과 백만송이 꽃바구니, 그리고 생크림 케익은 잘 받았습니다. 감사해요, 난티나무님!

DYDADDY 2023-04-30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저 새로운 출발을 축하드려요. 몸에 익지 않은 일을 하시느라 고되시겠지만 결심하신만큼의 결실이 있으시기를 바라요.
대상화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에서 당장 떠오르는 것은 칸트(상대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밖에 없네요. ㅠㅠ (개인적으로는 칸트.. 싫어합니다. ㅋㅋㅋㅋ)
작가여, 당신은 위대했고, 더 위대해질 것이다. 라고 돌려드리고 싶어요. ^^

단발머리 2023-04-30 07:46   좋아요 1 | URL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나서 좋은 시간과 실망의 시간이 빼곡히 들어차네요. 잠깐 시간 날 때 알라딘 이웃님들의 글을 읽는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새삼 깨닫는 요즘입니다.
칸트를 읽을 수는 없을 거 같지만 ㅋㅋㅋㅋㅋㅋㅋ 잘 기억해두겠습니다.
귀한 응원의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대디님! 힘내볼게요!!

책먼지 2023-04-30 1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아 단발머리님 ㅠㅠ 축하드립니다!! 마지막 한 문장까지 갓벽했다!! 정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으셨을지요ㅠㅠ 앞날에 축복있으라!!!!
저 통 큰 꽃바구니 너무 아름답습니다!! 보기만 해도 밝은 에너지가 듬뿍듬뿍 전해지는 느낌💕

단발머리 2023-04-30 16:35   좋아요 3 | URL
으아 책먼지님!! 전 워낙 쫄보에 겁쟁이인지라 이렇게 한 발 내딛는데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어요ㅠㅠ
응원해주시고 축복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꽃바구니는 이제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그런데도 향기는 그대로 남아 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책먼지님도 향긋하고 여유로운 오후 되시길요

공쟝쟝 2023-04-30 18: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던 적 있어요. 정확하게는 나 자신이 쓰고 싶지 않은 글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지만요. 희진샘은 타자화에 대해서는 일종의 ‘조물주 의식‘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최근에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에서 아주 자세히 적어두셨는 데, 제가 따로 옮겨 적어두진 않았네요.

여튼 제가 이해한 바를 쭉 써보자면 대상화는 일종의 물화라면 타자화는 열등화죠. 둘다 결론 적으로는 ‘우월한’ 자신을 재생산하려는 의지를 알게모르게 내포하고 있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를 가진 주체가 자기 안에 어떤 위계를 가지고 그에 따라 급을 나눠 너의 존재를 내가 판단(규정)한다,는 식의 일종의 지식-권력(이건 푸코네ㅋㅋㅋ)을 행사 하는 거죠. 그런데 이건 누구나 그럴 수 있어요. 특히 더 많이 배운 사람일 수록 그렇죠. 그래서 알 수록 어떤 긴장이 필요한 것 같다능. 저는 대상화 보다는 타자화가 더 문제적이라고 보는 데 여기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 볼게요. (저는 매번 한남이라는 용어로 남성을 대상화 시키는 것을 서슴지 않습니다ㅋㅋㅋ)

저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사실 진짜 문제는 타자화하는 시선-> 특히 내가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건데... 여성이나 피식민자의 위치는 지배질서안에서 그 타자화하는 시선을 스스로 내면화하기 쉽죠. 그러니 타자화할까봐 입조심해야하는 사람이 되는 건 어느 정도의 언어를 구축한 뒤의 이야기고... 차라리 나 스스로가 타자화를 하는 글을 쓰지 않으려면 어떤 위치에서 말하는 가, 나는 어떤 위치에서 말하고 있는 가를 물어보는 것이 가장 먼저 일지도 몰라요. 이건 맥락적이고 상대적이기도 하다는 거죠. 보통은 삶에서 부대끼는 문제들을 가지고 글을 쓰는 저는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이 언어가 없어서 일때가 많아요... 음... 내 위치에서 내 시선으로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 저는 그걸 내 몸에 묻은 지배의 시선을 털어낸다고 표현해요. 내가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느정도 글쓰기에 습관이 들고서는 어떤 질문들이 든 게 사실이고... 그래서 이렇게까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알라딘에서는 신나게 떠들지만 페미아닌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는 너는 페미 아니니까 뭘 모른다 이런식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페미니즘 책 몇권 이나 읽었는 데? 이런 말은 남자들이랑 싸울때는 쓸 수 있죠ㅋㅋㅋ (-_- 본심 나옴) 여하튼. 맥락적이라는 것.

타인을 수단, 동원하는 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내 안에서 위계 세워져 있는 그 무의식적인 계열이 문제라는 것. 저는 모든 위계가 문제라고는 생각되지 않고요, 사회에서 통용되는 저열한 위계는 비난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부동산이라던가 서울중심주의라던가 학벌. 여튼 안쓰면 내가 그런 위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고요.... 내 수준을 드러내는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가 혹은 그 글을 읽는 타인은 알게되겠죠. 그래서 읽는 만큼. 아는 만큼. 읽어낼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들어요.

저는 이미 부분적 인식론을 체화ㅋㅋ하셨으며 인간종의 오만함(?)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계시는 단발머리님이 자신의 목소리를 쓴다고 한다면 일단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혹시 타자화하는 글을 쓸까봐 겁이 난다면 고민하는 과정을 쓰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ㅎㅎㅎㅎㅎ 뭐 돈받고 쓰는 글 아니잖아요?

어떤 종류의 사람들에게 어떤 지식을 알고자 하는 건 스스로를 상처내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과 우리는 결국 알 수 없다는 부분적 인식론... 신의 위치에서 내려다 보는 초월하는 그 시선과 총체성에 대한 비판은 해러웨이를 알게 되면서 확실히 더 정밀해졌던 것 같아요. 곧 <상황적 지식>이 재번역되어서 나온다니 기다리는 중이고요. 대화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결국 모두 다를 알 수 없다는 자세를 갖춘다면... 그런 타인은 결국 나의 앎을 비워내게 해주는 앎을 선사하는 고마운 인연이라는 거. 어떤 대화는 내가 모른다는 것이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는 거...

마지막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단발머리님의 앎비앎 친구인게 자랑스럽습니다!

단발머리 2023-05-01 17:00   좋아요 2 | URL
대상화와 타자화에 대한 댓글 너무 반갑습니다. 제가 몰랐던 부분이라 찬찬히 읽었습니다. 저 역시 대상화보다는 타자화가 더 문제라고는 생각하고요. 다만 타자화에 대한 자기 인식이 어느 정도로 필요한가,에 대해서 저는 좀 고민이 많고요. 정희진쌤의 <미투의 정치학>에 대상화에 대한 선생님의 신랄한 비판이 있는데, 그 부분은 나중에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해 보도록 해요. (잊이버리면 안 되니까 쟝님이 좀 적어두세요ㅋㅋㅋㅋㅋㅋ우리 만나면 할말 많아서 까먹을 수 있음요.) (제가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이것과는 좀 다른 결의 문제인 것으로 밝혀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글쓰는 이의 ‘자세‘, ‘위치‘에 대한 것이기는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예전에 ‘글쓰기는 잘난척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글쓰기의 한가지 측면일 수 있지만, 저는 근본적으로는 글쓰기를 그렇게 보거든요. 자기 표현의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형태요. 그 다음에 만났을때 쟝님이 제 말이 맞다고, 정말 맞다고, 박수치며 말했던 거 기억나나요. 푸코의 <상당한 위험>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오히려 글쓰기는 내게 전적으로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잘난 체하는 일이었습니다.˝

글쓰기는 잘난척이라고 푸코도, 쟝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푸코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쓰기가 갖는 힘, 조물주 의식, 목소리, 언어는 근본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고요. 그런 측면에서 글을 쓴다는 건 어디까지나 그럴 수 있는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걸 의미할 겁니다. 여성에게도 그런 힘이 있었음에도 우리가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건 여성의 목소리가 다른 소리(남자들의 헛소리)에 묻혔기 때문이고요. 다만 저의 우려는 남성/여성 중 여성이어서 가려진채 살았던 내가 이제는 또 다른 위치에 속했다는 걸 안다는 뜻입니다.

주인/노예, 어른/어린이, 부모/자녀, 선생/학생, 중년/청년 기타 등등이요. 저는 남성도 주인도 아니지만, 저는 부모이고, 40대 이상의 중년이고요. 쟝님 말이 맞고요. 사실 저는 ˝타자화할까봐 입조심해야하는 사람˝이 될 정도로 언어를 구축한 건 아니니까요. 그냥 그 자체를 서술해도 괜찮을 듯 합니다만, 아직은 여기에 대한 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거 같아요. 그런 경우 알라딘에 안 쓰고 종이일기장에 쓰면 될텐데.... 아, 직장생활로 피폐한 나는, 일기 못 쓰는 몸,이 되었고ㅋㅋㅋㅋㅋㅋㅋ

축하 감사해요 ㅋㅋㅋㅋㅋㅋ 저도 쟝님이 제 앎비앎 친구라 자랑스러워요!

공쟝쟝 2023-05-01 16:44   좋아요 2 | URL
네 더 이야기해보아요! 저도 꼭꼭 대상화에 대해서 생각해볼게요. 확실히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 같아요! 읽을 때도 어떻게 쓰는지도 유심히 보게 되고요 😀 그리고 뭔가 쓴다는 자의식(?)이 생겨버린 지 1년이 좀 넘은 된 것 같습니다 ㅋㅋㅋ 저는 읽기 좋아하는 종류의 글이 확실히 있고, 글 쓸 때 지치고 아직까진 재밌어요ㅋㅋ 푸코의 글을 좋아하는 저는 잘난 척을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확실합니다 ㅋㅋㅋ 한 동안은 괴로웠는 데 언젠가부터는 나의 지적임이 너무 자랑스러워 ㅋㅋㅋ 난 왜 이렇게 지적이며 천재들을 이해하는 가 ㅋㅋㅋ 그건 내가 천재이기 때문인가 이러면서 쓰지롱 ㅋㅋ

단발머리 2023-05-01 16:59   좋아요 2 | URL
쓰는 몸이 된 거 축하드리고요. 앞으로도 우아하게 세련되게 건강하게 잘난 척 하는 글을 많이 쓰게 되길 빌어 마지 않습니다.

다만 기억하세요. 지적인 자극을 주는 푸코나 정희진쌤은 쟝님에게 이렇게나 긴 댓글과 대댓글을 ‘쓰게‘ 하지 않습니다. 그 분들은 자극만 주는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상계는 쟝님과 놀아주지 않아요. 웃어주지도 않고요. (우리 정희진쌤 팟빵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오픈 이후로 가끔 지상계에 나타나신다는 소문은 있지만요) 댓글은 저같은 미천한 지상계가 달아줍니다. 대댓글도 달아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먼댓글도 환영이며 ㅋㅋㅋㅋㅋㅋㅋ 자주 만나요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5-01 17:27   좋아요 3 | URL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ㅋㅋㅋ 지상에서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십시다 ㅋㅋㅋ 명심할게요~

잠자냥 2023-04-30 23: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내일은 노동절입니다. 만끽하시길!

단발머리 2023-05-01 15:59   좋아요 1 | URL
놀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잠자냥님도 오늘 하루 맘껏 누리세요!

2023-05-01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1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5-01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자여 2탄에 준하는 저 문장은 어마어마한 폭탄같은 문장입니다.
와....👍
축하드립니다.
19년만의 재취업!
아...제가 다 떨리네요.
경력 단절을 깨부수는 중년 여성들께 전 너무나 놀라움의 눈빛을 보내곤 합니다.
벌써 20일이나 일 하시고, 근로자의 날도 챙기시고...ㅋㅋㅋ
젊었을 때만큼의 빠릿빠릿함의 체력이 뒤떨어지더라도 단발 님은 분명 똑똑하게 잘 해내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렌트 님도 축하해 주시고, 꽃바구니 속 꽃들도 축하해 주고...아름다운 광경입니다.

단발머리 2023-05-01 16:05   좋아요 1 | URL
사실 자랑할만한 일은 아닌데 저도 19년에 방점을 찍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동자의 날이 저하고 관련있는 날인줄 몰랐어요. 매일 방학만 기다리던 제가 휴일을 기다립니다.
제가 상당히 어벙하고 볼품 없이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지만 책나무님 격려에 힘이 납니다.
책나무님, 진심 매우 간절히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3-05-02 09: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링크하신 기사 읽으면서 ‘존중해서 나쁠 일은 없다.‘에 밑줄 그었거든요. 아마 이 기사에서 제일 중요한 문장은 이것이 아닐까, 하면서요. 그런데 읽다 보니 더 중요한 문장이 맨 끝에 있네요. ‘어차피 관중도 그의 머릿속에 있을 뿐이다.‘ 요.

저는 대상화를 포함하는 미소지니도 역시 약자(여성, 장애인, 유색인)를 머릿속에서만 상정해서 그런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머릿속 여성은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야 하죠. 그러나 실체의 여성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잖아요. 왜냐하면, 여성도 자기 머리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니까요. 머릿속에 있는 여성도 그리고 머릿속에 있는 관중도 다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고요, 그 길의 시작에 이렇게 꽃바구니로 축하해드릴 수 있었고 또 기록을 남길 수 있어서 정말 뿌듯합니다. 단발머리 님이 너무나 자랑스러운만큼, 저 역시 단발머리 님께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3-05-02 20:37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다락방님. 저도 미소지니에 대한 다락방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미소지니가 작동하는 방식이 그런 것 같아요. 여성을 머릿 속에 그려놓고, 그렇게 자신의 예상 혹은 생각대로 반응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발산하는 거죠. 이건 더 오래오래 들여야 보고 생각해볼 주제인거 같아요. 저는 아직 감도 못 잡았거든요 @@

새로운 시작의 출발선에 혼자 서 있는 거 같지 않았어요. 집에 들어올 때마다 향긋한 꽃내음이 ‘내가 여기 있음‘ 이렇게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스펙터클한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냈습니다. 응원과 지지와 격려 감사드려요, 다락방님!
이미 자랑스러운 친구여서 뭔가 더 하실 필요는 없으시고, 앞으로도 계속 쭈욱~~~~~~~ 친구면 좋겠네요. 그거면 만사 오케이!!

2023-05-02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2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