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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2 ㅣ 소설 보다
김병운.위수정.이주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평점 :
N22099
소설보다 봄의 의미는?
1. 소설보다는 봄이 좋다는 말?
2. 봄에 소설을 본다는 말?
처음에는 1번을 생각했는데, 표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니 2번의 의미였다. 요새 좀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이해력이 떨어진것 같다 ㅎㅎ
북플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설보다‘ 시리즈를 드디어 한편 읽었다. 요즘에 한국문학을 즐겨읽지 않아서 인지 세편의 단편을 쓴 작가분들의 작품은 처음 접했다. 그런데 세편 모두 나쁘지 않았다. 특히 모국어여서 인지 확실히 문장들이 잘 이해가 되고 가독성도 좋았다.
<윤광호 : 김병운>
게이 인권운동가인 ‘윤광호‘라는 인물과 과거에 그를 알았던 화자인 ‘나‘의 이야기이다. 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작가인 ‘나‘는 어떻게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고 하고 작품에 게이 이야기기를 쓰지 않았지만, 이런 나에게 ‘윤광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고 충고한다.
[˝저기요, 광호 씨. 모든 사람이 광호 씨처럼 용감할 수는 없어요.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요.˝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에요.˝ 광호 씨가 내 말을 자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시간의 문제죠. 중요한 건 시간이에요.˝] P.25
˝윤광호˝와의 대화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윤광호˝가 ˝윤광호˝라는 닉네임(윤광호가 본명이 아니었다.)을 쓰게 된 배경인 이광수의 [윤광호]를 읽게 되고,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을 느낀다.
[남들과는 다른 욕망을 지녔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신체에 수치심과 모멸감을 적립해온 사람이라면, 반복되는 혼란과 부정 속에서도 기어코 규범을 거스르는 쾌락 쪽으로 향하는 자신에게 진저리 쳐본 사람이라면, 제아무리 벽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한들 이 소설에서 자신의 어떤 시절을 겹쳐보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p.32
이후 몇년이 흐르고 ‘나‘는 퀴어소설을 절대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폐기하게 되고, 소설에 진짜 내 모습을 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이야기는 결국 출판되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윤광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윤광호‘에게 당신의 말이 맞았다고, 문제는 용기가 아니라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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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퀴어문학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읽을때마다 그 특유의 절박함에 공감을 했다. <윤광호> 라는 작품은 다른 퀴어문학과 달리 우울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느껴졌다. 중요한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름은 결코 틀림이 아니다.
PS. 이광수의 [윤광호]를 읽어보고 싶다.
<아무도 : 위수정>
˝희진˝은 11년간 함께 산 남편 ˝수형˝과 별거하기로 결정하고 집을 나간다. 그리고 원룸을 구해 산다. 어머니는 딸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는 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마음의 상념을 없애기위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희진˝이 집을 나온 이유는 더이상 ˝수형˝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언제나 ˝희진˝의 머리속에는 ˝수형˝이 아닌 그가 있었다. ˝희진˝은 그에게 메세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이사온 자기 원룸 주소만 보낸다. 하지만 그의 답장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거절의 말이라도 보내줬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에게 연락이 오고 그는 와인을 사가지고 ˝희진˝의 집으로 온다. 하지만 그는 ˝희진˝에게 거리를 둔다. 그리고 ˝희진˝에게 ‘나는 아내를,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미 모든걸 알고 있는 ˝희진˝이었지만, 이렇게 직접 그에게서 들으니 마음이 더 아팠다. 그와 만나기 위해서 집을 나온건데. 오히려 그녀는 더욱 외로워져 버렸다.
[나는 이러려고 집을 나온 거예요. 그런데, 왜 나를 볼때마다 아내 얘기를 하는 거죠? 그건 당신 아내한테 해야 하는 말이잖아요.나는 그의 상처받은 얼굴을 보았다. 한참 후에 그가 입을 열었다.
희진 씨, 나는 1999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P.81
그녀의 이런 혼란스러움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던 남편 ˝수형˝은 그녀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수형˝에게 나는 1999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여전히 ˝수형˝보다는 그에게 마음이 가는 ˝희진˝. ˝희진˝은 지금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꿈에서 결코 깨어나고 싶지 않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서 꿈에서 깨어나 돌아오라고 할 뿐이다.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거지. 그렇지?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미래가 당연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건가? 그러나 이 모든 말을 나는 할 수 없었다.]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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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세편의 단편 중에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이었다. ˝희진˝의 방황하는 마음이 그녀의 행동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봤을때 ˝희진˝은 아주 이기적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 밖에 없지만,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되는건 아니다. 아무도 ˝희진˝의 마음을 이해하진 못할 것이고, ˝희진˝ 역시 이해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PS. ˝희진˝이 안쓰럽긴 하지만, 그래도 젤 불쌍한건 ˝수형˝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걸 알면서도 돌아오라고 하는 그의 마음과 앞으로의 그의 삶은 얼마나 망가질까?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 이주혜>
가끔 몸이 안좋을 때 유체이탈을 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느낀 적이 있다. 이 작품이 시작도 유체이탈이다. 주인공인 ˝구은정˝은 유체이탈하여 수술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지나간 과거를 떠올린다.
열여덟살에 그녀는 소녀가장이 되어 목재회사의 임시직으로 들어간다. 우람한 체력의 그녀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처녀 장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억세게 살아간다. 스물한살이 되자 그녀는 정식 사원이 된다. 이제 업무도 익숙해질 무렵, 사장이 그녀를 부른다. 그리고 사장과 단 둘이서 일본 출장을 가게 된다. 그녀가 이력서 특기란에 ‘일본어‘라고 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사장의 일본출장에 동행한 것이었을까?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안좋은 소문을 낸다. 그녀와 친했던 사람들도 그녀에게 등을 돌린다. 하지만 절대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것처럼 이상한(?)일은 그녀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장은 그녀와의 거리를 뒀으며, 그녀에게 돈을 주면서 혼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사장은 일본에 애인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렇게 기이한 출장은 20여년간 매년 계속된다. 이제 노인이 된 사장은 죽고, 자식도 아닌 그녀에게 오동나무 서랍장을 유산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난 20여년간 사장이 감춰왔던 비밀을 알게된다. 과연 그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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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결말 부분에서 벙 찐 느낌을 받았다. 너무 개연성이 없다고 느껴지면서도, 아 그럴수도 있겠다, 왜 사장이 ˝은정˝을 출장에 데리고 갔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시선 역시도 중요하니까. 주변사람들에게 사랑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믿을만한 친구랑 함께 만나서 노는 그런 느낌? (연예뉴스에서 자주보던 그런 ㅎㅎ) 오해로 희생된 그녀의 인생이 어느정도 보상을 받았기를 바란다.
PS. 그녀는 수술 후에 과연 살았을까?
개인적으로는 <아무도>가 가장 좋았고,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는 장편으로 쓰면 더 좋지 않을가란 생각이 든다. 역시 책은 선물받은 책이 가장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