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연수 작가의 단편. 어느 하나 안좋은 것 없이 독창적이다.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헤하러 든다는 것은 무모한 열정이였다. 하지만 그런 열정의 대상이 된다는 건 확실히 부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때 나는 그녀가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 P49

이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거지? 이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거 맞지? 기억 속 어딘가에서 내가 소리친다. 및아. 점점 흐릿해지는 낮빛으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더없이 깊은 밤과 꿈결처럼 아득한 어둠 속으로 나는 떠난다. - P61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 이런 면에서 인류가 비겁해진 결과, 삶에 끼친 피해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환상‘이라고 하는 경험, 이른바 ‘영적 세계‘라는 것, 죽음 등과 같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 것들이, 예사로 얼버무리는 사이에 우리 삶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러는 사이 그런 것들을 느끼는 데 필요한 감각들은 모두 퇴화되고 만 것이다. 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 P126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그 하얀 봉우리들은 여름밤의 뒤척이는 잠 속으로 밀려들었다가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꿈의 형상을 닮아 있있다. 완전히 잠들지도, 그렇다고 깨어 있지도 않은 그 어렴풋한 경계에서 간절히 원하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 꿈들은 우리 영혼을 유혹한다. 좌절을 모르는 그 꿈들은 자신을 갈구하는 인간들에게 그 모든 패배의 순간을 전가했다. - P131

하지만 그즈음, 그는 어럼풋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러니까 꿈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패배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것을. - P133

하지만 그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해도,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상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 P141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념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니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 - P177

마흔 살이 넘어서면서 성재는 세상의 일들을 짐작히는 버릇을 그만됐다. 세상의 일들은 늘 짐작과는 달랐다. 하늘을 날던 그 새들이 갈매기일 수 없듯이. 해림에는 바다가 없듯이. 더이상 세상의 일들을 집착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인생이란 그저 사소한 우연의 연속처럼 보였다. 이제 성재에게 인생이란 납득하는 일이지, 따져보는 일이 아니었다. - P230

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집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비망록이 씌어지는 곳은 그 사람의 마음속이니 사랑하고 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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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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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12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써내려간 정치소설인 <악령>은 오늘날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미래를 예측한 것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급진주의와 허무주의는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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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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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11 선동(표트르), 공허(스타로브긴), 허황(스테판), 무신(키릴로프), 허영(바르바라)이 난무한 혼돈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대답. 아이러니속에 숨어있는 진지함을 찾는 재미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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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2-08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으론 도선생님 전집 사놓으셨고 완독하신 새파랑님 이제 민음사로 다시 시작하시나요?
문학동네 죄와벌도 좋다고 하던데요?

새파랑 2025-02-09 18:23   좋아요 1 | URL
<악령>은 열린책들로 읽었었는데 다른 출판사 책도 나와서 재독하고 있습니다 ㅋ 다시 읽으니까 확실히 더 이해가 잘되네요~!!
<죄와 벌> 저는 문학동네로 읽었었는데 나쁘지 않았었던거 같습니다~!!
 

완벽한 작품이다~! 감탄에 감탄

여러분의 발걸음은 당분간 오직 모든 것이, 즉 정부와 정부의 도덕성이 와해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오직, 권력을 접수하기로 미리 예정된 우리만 남게 될 겁니다. 현명한 자들은 우리에게 합류시키고 멍청한 자들이라면 그 위에 올라타고 갑시다. 이 점을 곤혹스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세대를 자유에 걸맞도록 재교육해야 합니다. - P261

"하지만 정확하게 대답해 줘요. 우리가 이 세상 딱 하나만의 유일한 5인조인가요, 아니면 정말로 수백 개의 5인조가 있는 건가요? 고상한 의미에서 물어보는 겁니다, 표트르 스테파노비치. - P263

정말 멍청한 인간이로군! 정말이지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텐데, 하나든 수천 개든. - P264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그의 의지이고 나는 그의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없다면, 모든 것이 나의 의지이고 나는 자유 의지를 천명할 의무가 있어. - P278

"나에게는 신이 없다는 것보다 더 높은 관념은 없다. 나를 위해서 인류의 역사가 존재한다, 인간은 자살하지 않은 채 살기 위해 신을 고안해 내는 일을 했을 뿐이다, 여기에 지금까지의 전 세계사가 모두 들어 있다, 나는 전 세계사를 통틀어 신을 고안해 내는 것을 처음으로 원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모두 단번에, 영원토록 알게 될 것이다." - P279

‘마침 그곳 산기숙에는 놓아 기르는 돼지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마귀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마귀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가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읍내와 촌락으로 도망쳐 가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보러 나왔다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예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이 일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마귀 들렀던 사람이 낫게 된 경위를 알려 주었다." - P341

오, 내가 누구든, 무엇을 했든! 기필코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행복을 알아야 하며, 매 순간 어딘가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위한 완전하고 평온한 행복이 이미 존재함을 믿어야 합니다. - P357

"아니, 종잇장들의 공표 이후가 아니라 공표 이전에 하루 전, 한 시간 전, 어쩌면 위대한 발걸음을 내틴기 직전에 흡사 출구를 찾듯 새로운 범죄에 몸을 내던질 겁니다, 오직 종잇장의 공표를 피하기 위해서!"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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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라니.


"가령 당신이 달나라에 살았다고 칩시다." 스타브로긴은 상대의 말은 듣지도 않고 가로막더니 자기 생각을 계속 얘기했다. "그리고 당신이 그곳에서 온갖 웃기고 추잡한 짓거리를 했다고 칩시다. 그곳에서 천년 동안 영원히, 달나라 전체를 향해 당신을 비웃고 당신의 이름에 침을 뱉으리라는 것을 당신은 여기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서 달을 올려다봅니다. 당신이 거기서 무슨 짓을 저질렀든, 그곳 사람들이 천년 동안 당신에게 침을 밸든 여기 있는 당신에게 무슨 상관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 P58

모든 것이,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오직 그 때문이죠. 이게 전부, 전부입니다! 알기만 한다면, 그는 지금 당장 이 순간 행복해질 겁니다. - P61

"왜 모두, 다른 사람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단가를 나에게서 기대하는 겁니까? 왜 아무도 참지 않는 것을 나는 참아야 한단 말입니까, 왜 아무도 견딜 수 없는 그런 짐을 기꺼이 짚어져야 합니까?" - P149

"그놈이 사람들이 있는 데서, 또 내가 있는 데서 정부는 일부러 민중에게 보드카를 잔뜩 마시게 하여 민중을 짐승처럼 만들고 그로써 폭동을 방지하려 한다고 주장할 때는 도무지 관용을 베풀 수가 없어. 모두가 있는 데서 이런 애기를 들어야 하다니, 내 역할도 좀 생각해 줘." - P190

사건을 미리 일러 두는 차원에서 한 가지 지적하자면, 율리야 미하일로브나의 자만심과 공명십이아니었더라면 이 고약한 작자들이 우리 도시에서 한바방 못된 짓을 벌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일에 관한 한 그녀는 많은 점에서 책임이 있다! - P197

"내가 유용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건데, 만약 내가 자살한다면, 즉 당신들이 여기서 무슨 사고를 치고 범인을 찾고 있을 때 내가 갑자기 권총으로 자살하고 그 모든 짓은 내가 한 것이라고 유서를 남기면 당신들에게는 일 년 내내 혐의를 두지 않을 테니까 말이오." - P294

"왜, 왜 싫다는 겁니까? 두려워서요? 내가 당신을 붙잡은건 당신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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