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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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90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꿈을 꾸지 않으면 미쳐버려. 책에 그렇게 나와. 그건 배출구리구, 사람들은 잠잘 때마다 모두 꿈을 꿔 꿈을 안꾸면 돌아버려.˝


레이먼드 카버를 다시 만났다. 작년에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었는데 아마 그때 별 세개를 줬던것 같다. 그때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대성당>은 첫번째 만남보다 확실히 더 좋았다. 책을 읽었던 시기의 문제인걸까? 내가 문제인걸까?


총 12개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단편집 <대성당>을 읽다보면 약간은 일관된 흐름이 느껴지는데,

일단 단편들은 모두 새드앤딩이고, 결말 부분은 상당히 모호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일관되게 등장하는 소재인 술과 이혼, 그리고 체념, 체념, 체념.


인상적인 몇편의 단편을 소개해 보자면,


<깃털들>의 경우 ‘잭‘과 ‘프렌‘ 부부가 ‘버드‘의 집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끝나는데, 도대체 ‘버드‘의 집에서 어떤 감정을 경험했기에 아기를 원하지 않았던 ‘잭‘과 ‘프렌‘이 아기를 가지려 했는지 갸우뚱 했다. 못생긴 ‘버드‘의 아기를 봐서? 아님 ‘버드‘ 집에 있는 공작 때문에? 아님 ‘버드‘와의 비교를 통한 현실에 대한 자기만족 때문에? 정확히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왠지 알듯 모를듯한 감정을 느꼈다.

[버드와 올라의 집에서 보낸 그날 저녁은 특별했다. 특별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이 여러모로 썩 괜찮다고 느꼈다. 내가 느낀 걸 프랜에게 말하고 싶어서라도 나는 어서 둘만 있고 싶었다. 그 저녁에 내게는 소원 하나가 생겼다. 식탁에 앉아서 나는 잠시 두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했다. 소원이란 그날 저녁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것, 혹은 다시 말해 그날 저녁을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소원은 실제로 이뤄졌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은 내게는 불행이었다. 하지만, 물론, 당시에는 그걸 알 도리가 없었다.] P.40



<셰프의 집>은 마무리가 더 아련하다. ‘셰프‘라는 지인이 별장을 ‘웨스‘에게 빌려주고, 주인공은 그곳에서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고, 전 부인(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처음으로 마주한 행복한 장소.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셰프의 딸이 별장을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웨스‘는 집을 비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행복했던 순간이 다시 찾아올까? 하지만 왠지 이 행복이 마지막일 거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가 눈을 떴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는 그대로 가만히 앉아서 창문을 바라봤다. 뚱땡이 린다 라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녀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미했다. 그저 이름일 뿐, 웨스는 일어나 커튼을 쳤고 바다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러 갔다. 아이스박스에는 아직 물고기가 몇 마리 남아 있었다. 다른 건 별로 없었다. 오늘밤에 다 먹어치워야겠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P.53



<칸막이 객실>은 감정이 변하는 한순간을 포착해서 그린 멋진 작품이다. 부인과 이혼하고, 아들과는 서로간의 폭언과 폭행을 통해 영영 사이가 멀어져 버린 주인공 ‘마이어스‘는 부인과 아들의 소식도 모른채 살아간다. 그렇게 8년을 살아가던 중, 아들에게서 편지가 온다. 자신은 프랑스에 살고 있다고,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너무나 갑작스런 편지에 당혹함과 안도감을 느낀 ‘마이어스‘는 아들을 만나러 프랑스로 간다. 그리고 프랑스에 가기 전 이탈리아에 들려서 아들에게 줄 선물로 시계를 산다.


하지만 기차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들에게 선물할 시계가 없어진 걸 알게 된다. 누군가가 훔쳐갔겠지만, 갑자기 그의 심경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시계를 잃어버린 것과 동시에 과거 아들에 대한 분노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그는 시계를 잃어버린게 아니라, 아들이 보고싶은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는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기차역을 지나쳐 그냥 지나간다. 불행했던 과거는 다시 조우하더라도 또 불행일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삼켜버렸고, 그가 연애해서 결혼한 젊은 여인을 신경과민의 알코올 중독자로 바꿔놓고는 번갈아가며 병도 주고 약도 줬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이 먼길을 나섰단 말인가. 마이어스는 자문했다. 그는 아이의 손, 자기 인생의 적인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싶지도 않았고 어깨를 토닥거리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는 아이에게 엄마에 대해 묻고 싶지도 않았다. ] P.82



하지만 이 책의 많은 단편들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은 <열>이었다. 주인공인 선생님 ‘칼라일‘은 온갖 불행을 겪는다. 아내인 ‘아일린‘은 남편의 직장 동료와 바람이 나서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멀리 떠나버린다. 베이비시터는 불량하기 그지없고, 그의 인생은 그저 패배자로 전락한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에겐 불행일 수 밖에 없는 관계의 불균형.

[여름 동안, 아일린은 아이들에게 몇 장의 카드들과 편지들과 자기 사진들과 집을 나간 이후에 그린 펜화 몇 개를 보냈다. 그녀는 또한 칼라일에게 이 문제이 문제를 이해해달라며, 하지만 자신은 행복하다는 내용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행복. 마치 행복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투로군, 이라고 칼라일은 생각했다. 그녀는 늘 말한 대로, 그리고 자신이 정말 믿었던 것처럼 자신을 사랑한다면ㅡ자신도 그를 사랑했다는 걸 잊지 말라며 모든걸 이해하고 일어난 일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진실로 맺어진 것은 절대로 다시 풀리지 않아.˝] P.227



하지만 잠깐의 행복이 찾아온다. 새로 구한 노년의 베이비시터는 그의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준다. 아이들은 엄마의 공백없이 밝게 지내고, ‘칼라일‘도 여자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돌아들어온게 있으면 돌아나가게 있는걸까? 칼라일‘은 심한 열병에 빠지고, 게다가 베이비시터는 개인사정으로 곧 일을 그만두게 된다.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짧다.

[그동안, 칼라일의 인생은 몇 번의 변화를 겪었다. 하나를 들자면, 그는 아일린이 떠났으며, 그가 이해하는 바,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상황이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 캐럴과 함께 보내지 않는 밤에만 오직 그런 밤들의 아주 늦은 시간에만, 아일린에 대해 그가 여전히 지니고 있는 애정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게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P.241



하지만 열병은 곧 치유된다. 그리고 베이비시터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왠지 모르게 홀가분해지는 기분. 베이비시터는 떠났지만 ‘칼라일‘과 자녀들의 삶은 어쨋든 계속될 것이다. 미래가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모르지만 그냥 어떻게든 살아가지는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P.253


이 모든 것 또한 결국 지나간다.
Everything mus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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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땡 2022-08-12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부끄럽지만 사놓고 안 읽은 책인데 단편집이었군요 ㅠ <열> 기억하고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좋은 책 추천 감사해요 즐거운 연휴보내세요~ ^^

새파랑 2022-08-14 10:28   좋아요 0 | URL
저도 부끄럽지만 안읽고 쌓아둔 책이 백권이 넘는거 같아요 😅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초란공 2022-08-14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분명히....언젠가 저도 읽었을 텐데, 기억이 안납니다. ㅜㅜ 급하게 소화도 시키지 않고 후루룩 읽어버리고 덮었나 봅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집니다. ㅋ

새파랑 2022-08-15 11:39   좋아요 0 | URL
이 책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신 책이더라구요. 그래서 저 리뷰가 좀 부끄럽긴 합니다 😅 축하 감사합니다~!!!

2022-09-20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0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1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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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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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88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여기서 나간 사람은 아직 없어요………˝


인생이라는 집은 어쩌면 모래위에 쌓은 성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쌓아도 쌓아도 옆으로만 퍼지지 높아지기는 쉽지 않고, 운좋게 높게 쌓았더라도 한순간이면 무너져버리니 말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어딘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 아베코보의 <모래의 여자>는 모래성 같은 인생을 표현한 작품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니키 준페이˝는 학교 선생님이자 희귀 곤충을 수집하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어느날 그는 휴가를 내고 희귀곤충을 수집하기 위해 어느 해안가의 사막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현지인들의 권유에 의해 깊은 모래 웅덩이 아래에 있는 집에서 하룻밤 묶게 되는데 그 집에는 한 여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응?) 게다가 그 집은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어딘가 이상한 집, 이상한 주민들, 가장 이상한건 모래의 여자.



하룻밤만 자고 가려했는데, 맙소사, 사다리가 없는거다. 누가 치운걸까? ˝준페이˝는 뭐 까짓거 걸어 올라가면 되지 하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너무 가파른 모래 언덕을 올라갈 수 없었다. 오르려고 노력할 수록 발은 모래에 빠지고, 모래를 퍼낼수록 오히려 점점 쌓이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왜 나를 이런 사막 깊은곳에 나를 가둔걸까?

[미친 듯 소리를 지른다.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몰라,의미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그저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른다. 그렇게 하면 이 악몽이 놀라서 눈을 번쩍 뜨고 뜻하지 않은 실수에 벌벌 떨면서 그를 모래 구멍 속에서 꺼내줄지도 모른다는 듯이. 그러나 튀어나온 목소리는 가냘프고 맥이 없었다. 게다가 도중에 모래에 빨려들고 바람에 흩날려, 어디에 닿을지 허망하기만 하다.] P.53



이후 ˝준페이˝와 ˝ 그녀의 이상야릇한 동거가 시작된다. 하루라도 모래를 퍼내지 않으면 집이 모래로 덮여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밤새 모래를 퍼내야 했고, 그 모래를 퍼낸 댓가로 마을사람들은 그녀에게 생필품을 제공해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그녀가 답답하기만 하다. 왜 이곳에 남이서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하는지, 왜 이곳을 떠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다. 오히려 삶에 대한 더 현실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벗어난다고, 다른곳으로 간다고 해서 더 나을게 있을까?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면서 왜 이 부락에 눌러붙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군……… 모래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모래를 거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오. 어이가 없어서!……………이런 짓은 못하겠어, 못해… 나 참,동정의 여지가 없군!] P.44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빠져나가도 다시 모래늪으로 빠질텐데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거 같은데...그래도 나가야 한다. 시도해 보는게 안하는 것보다는 후회는 남지 않기에. ˝준페이˝는 모래의 여자 몰래 탈출을 시도한다. 남아있는 그녀가 신경쓰이지만, 그녀 스스로 이곳에 있겠다고 선택했으니 어쩔수 없다. 아래를 보지 말자, 돌아보지 말자.

[…………아래를 보면 안 된다, 아래를 보면 안 된다! 등산가든 빌딩 청소부든 텔레비전 송신탑의 전기공이든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든 발전소의 굴뚝 청소부든, 아래에 신경을 쓰면 그때가 바로 파멸의 순간이다.] P.165



과연 ˝준페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납득이 안 갔어……… 어차피 인생이란 거 일일이 납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모래의 여자>를 읽는 내내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벗어날 수 없는 모래늪에 있다면 그냥 체념하고 살아가는게 답인걸까? 그건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모래의 여자‘가 더 현명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탈출을 꿈꾼다. 다시 떨어질지라도.


책 자체는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는데 좀 많이 암울하다. 우울할때는 이 책 읽기를 피하는걸 추천한다. 대신 기분 좋을때 읽으면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낄거란 생각이 든다. 간만에 읽은 신선한 작품이었다.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 게 뻔하지만………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왠지 좋을 듯한 기분이 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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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08 2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새파랑님 밝은 날 읽어야 하는 암울한 책 *^^* 타타르인의 사막을 읽고나서 전 모래의 여자 떠오르더라고요.

새파랑 2022-07-08 22:13   좋아요 2 | URL
아 그러고 보니 <타타르인의 사막>이랑 <모래의 여자>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의 대비도 좀 느껴지고요. 오 역시 미니님. 혹시 천재? ^^ 깜짝 놀랬습니다~!@

미미 2022-07-08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부터 흥미 돋는걸요?^^
상징적인 것들이 많이 담겨있을것 같아요. 암울한대신 얇으니까 우울하지 않은날 읽어야겠습니다ㅎㅎ

새파랑 2022-07-08 22:15   좋아요 2 | URL
저 잠깐 카페 갔다가 그자리에서 계속 읽었어요. 한번에 다 읽기가 너무 아쉬워서 200페이지 뒤쪽은 아껴두고 나왔습니다 ㅋ 미미님 좋아하실만한 책입니다 ^^

프레이야 2022-07-09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아베 코보 실종 삼부작 중 모래의 여자
제일 재미있었어요. 암울하다기보다 유머러스한 느낌이요. 영화랑 겹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희망적으로 볼 수도 있고요. 그래봤자 신의 손바닥 안에서겠지만. ^^ 아베 코보는 인간의 그런 운명을 실컷 농담하는 것처럼 흥미로웠습니다. 망언을 일삼던 그 아베가 아니라 다행.

새파랑 2022-07-09 10:47   좋아요 1 | URL
요것도 시리즈가 있군요~!! 좀 유머스런 부분이 있긴 있던데 전 좀 우울했어요 ㅋ 찾아보니 오래된 영화도 있더라구요 ㅋ 인상적이던데 ㅎㅎ 저도 아베는 깜짝 놀 랐어요 😅

프레이야 2022-07-09 11:33   좋아요 2 | URL
영화 강추에요. 미학적 에로틱 그렇습니다 ^^ 나머지 둘은 타인의 얼굴, 불타버린 지도. 스릴감 있고 묘한 분위기를 풍겨요.

Yeagene 2022-07-09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도 이 책 우울하게 느끼셨군요 ㅎㅎ 저도 그렇게 느껴져서,많은 분들이 상찬하는 작품인데 마냥 좋아만할 수가 없더라구요 ㅎㅎ 작품 자체는 신선하고 의미하는 바도 있었는데요;;;;;

새파랑 2022-07-09 11:32   좋아요 1 | URL
제가 좀 우울한 성향(?)이 있어서 그런거 같아요 ㅋ 이 책 읽고 검색해보니 영화가 있던데 오히려 영화에서 어떻게 그릴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

바람돌이 2022-07-09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정이 재밌는데요. 말씀하신대로 좀 우울하기도 하겠지만요. 인간이 살아가다보면 저렇게 느닷없이 모래늪같은 곳에 빠질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인간의 심리랄까 뭐 그런게 좀 멋지게 그려졋을듯한 느낌.. 하여튼 그런 느낌이 드네요. 조만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새파랑 2022-07-09 21:54   좋아요 0 | URL
아직 안읽으셨군요. 전 몰랐었는데 나름 인기가 많은 책이더라구요. 정말 특이한 느낌입니다. 일본의 카프카라고 하던데 틀린말은 아닌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2-07-09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리뷰를 읽으니 정말 암담하고 막막하네요. 근데 이것이 또 우리네 인생같기도 해요~~
매번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고 사는 인생들!
우울할 때 말고 정신 좀 말짱할 때 읽겠습니다.
타타르인의 사막도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새파랑 2022-07-09 21:56   좋아요 1 | URL
둘다 좋긴 하지만 전 <모래의 여자> 보다는 <타타르인의 사막>이 더 좋더라구요. 뭔가 반복되는 일상이 좀 힘들긴 하네요 ㅋ
 

N22087

˝사랑이 눈먼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너한테는 눈먼 상태가 어쩌면 세상을 보는 한 방식인지도 모르겠구나.˝


사링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다. 거기에 어떤 합리적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일단 마음에 들어왔다면, 연이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로맹 가리의 마지막 작품인 <노르망디의 연>은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이 집결된 사랑의 서사시이다. 이 책에서 그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핵심은 남여간의 사랑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노르망디이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부모님을 여윈 소년 ˝뤼도 플뢰리˝는 삼촌인 ˝앙브루아즈 플뢰리˝와 함께 사는데, 삼촌의 직업은 우체부이지만, 그 지역에서는 연(Kite)의 장인(또는 미치광이)으로 알려져 있다. 삼촌은 각양각색의 연을 만들어 하늘에 날린다. 삼촌이 연을 통해 날리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나를 미친사람으로 여겼다는 거냐. 생각해보거라. 그 멋진 신사들과 아름다운 숙녀들이 옳아. 한 평생을 연에 바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광기가 있는 게 분명해. 다만 해석이 문제 될 뿐이지. 그것을 ˝광기˝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숭고한 불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그 둘을 구분 하기가 때론 어렵지. 하지만 네가 정말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심지어 너의 전부를 바치거라. 그리고 그 나머지엔 마음 쓰지 마라.]  P.18



그러던 어느날 숲에서 한적하게 낮잠을 자고 있던 ˝뤼도 플뢰리˝는 금발의 한 소녀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로, 폴란드 귀족의 딸이었다. 단 한순간에 사랑에 빠진 ˝뤼도˝, 하지만 첫 만남 이후 ˝릴리˝는 폴란드로 돌아가고, 몇년동안 그녀를 보지 못한다.

[6월 중순에 배가 잔뜩 불러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샛노란 금발의 소녀가 보였다. 그 아이는 나를 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뭇가지 아래엔 응달과 양달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내 눈엔 이 명암의 유희가 릴라 주위에서 한 번도 그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이유도 본질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동적인 순간에 나는 어떻게 보면 예고를 받은 셈이었다. 본능적으로, 어떤 내적 힘인지 약점인지 모를 뭔가에 이끌려 행동을 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 되리라는 건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였다. 그 엄격한 금발의 환영에게 딸기 한 줌을 내밀었던 것이다.]  P.25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는데, 주인공의 혈통인 ˝플뢰리˝ 집안은  대대로 기억력이 엄청 좋아서 과거의 일을 현재처럼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릴리˝를 볼 수 없었지만 ˝뤼도˝는 그녀를 마치 옆에 있는것처럼 느낀다. 매일매일 그의 앞에 찾아오는 그녀, 하지만 실체는 아니다.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그녀. 이것도 병인걸까? 하지만 그런 좋았던 기억을 박제할 수 있다는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나는 공부를 했고, 작업실에서 나의 후견인을 도왔다. 하지만 흰옷 차림으로 손에 밀짚모자를 든 금발의 소녀가 내 곁에 찾아오지 않는 날은 드물었다. 에르비에 선생님이 아주 정확히 말했듯이 이건 분명히 ˝기억력 과잉˝이었다.]  P.27

[내가 ˝나의 귀여운 폴란드 여자˝라고 부르던 그 애를 보지 못한지 거의 4년이나 되었지만 내 기억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그 애는 손을 대보고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가 아주 섬세했고, 움직일 때마다 조화로운 생동감이 느껴졌다.]  P.32



4년이 지났지만 ˝뤼도˝는 여전히 그리워하며,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숲으로 간다. 그리고 눈을 감고 환상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실제의 ˝릴리˝가 있었다. 믿어지지 않은 일, 하지만 매일매일 그녀를 기억속에서 봤기 때문인지 지금의 재화가 마치 어제 일처럼 낯설지 않았다.

[4년 전부터 나를 기다린 것 같네………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설탕도 잊지 않았네!  /  난 절대 아무것도 잊지 않아. /  나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잊는데 네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아..]  P.33



이후 ˝뤼도˝와 ˝릴리˝는 연인이 된다. 꿈 많고 경쾌한 귀족집안의 ˝릴리˝에 반해, 부모 없이 가난하게 자란 ˝뤼도˝는 그녀에게 썩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번 시작한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집착에 가까운 ˝뤼도˝에 비해 ˝릴리˝의 사랑은 강도는 약했지만, 그녀 역시 ˝뤼도˝를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의 불균형은 한쪽을 애타게만 할 뿐이다.

[널 사랑해. 하지만 사랑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야. 나는 너의 절반이 되고 싶지 않아. 너, 이 끔찍한 표현 알아? ˝나의 반쪽은 어디에 있나?˝ ˝나의 반쪽을 못 보셨나요?˝. 5년, 10년 뒤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때 나는 심장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싶어.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너를 보면 심장에 충격을 받을 일은 없을 거야. 벨소리밖에 못 듣겠지….]  P.152



그러던 중 마침내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한다. ˝릴리˝의 집안은 전쟁의 포화속에서 소식이 끊기게 되고, ˝뤼도˝는 그녀의 소식을 여기저기 찾아 해맨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잘 버텨내야만 했고, 릴라도 내게 그러길 요구했다. 내가 포기한다면 절망에 빠질 게 분명했고, 그건 그녀를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P.180



노르망디 역시 독일의 지배하게 들어가게 되고, ˝뤼도˝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합류한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 있는 신성한 일에 몰두하면서도 언젠가는 그녀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과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났을 때는 그시절의 모습과 감정이 남아있을까?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용서하지.]  P.162

[-네가 계속 나를 잊는다면 끝이 될 거야, 뤼도, 끝이라고, 네가 나를 잊을수록 나는 점점 더 그저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말 거야.
-난 너를 잊지 않아. 너를 감추는 것뿐이야. 너도, 타드도, 브뤼노도 난 잊지 않아. 너도 알잖아. 독일 군인들에게 자기 삶의 이유를 들킬 때가 아니라는 것. 저들은 그런 걸로 사람들을 총살하고 있어
- 아주 자신만만하고 아주 평온해졌구나. 자주 웃네. 마치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듯이 말이야.
-내가 자신만만하고 평온한 한 너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거야.
- 네가 뭘 알아? 그리고 내가 죽었다면 어쩔 거야?]  P.270





로맹 가리의 <노르망디의 연>은 2차세계대전 이라는 암울한 비극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희망을 꿈꾸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요리를 통해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는 프랑스인도 나오고, 전직 포주이지만 귀부인으로 변신하여 독일군의 첩보를 빼내는 프랑스인도 나오며, 히틀러의 악행을 두고볼 수만은 없어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실행하는 독일인까지 그들은 저마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나아간다.


전쟁이라는 것 자체는 너무나 비극적이고 모든 걸 파괴하지만, 그럼에도 추락시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정의, 자존심, 연민, 그리고 사랑... 로맹 가리가 ‘노르망디의 연‘을 통해 하늘로 띄우고자 했던건 바로 이런게 아니었을까? 전쟁은 참혹하지만 인간은 절대 참혹하지 않다. 그리고 로맹가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놓지 않았다.


[희망이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치곤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그런 장난 덕에 산다. ]  P.277





Ps 1. <노르망디의 연>은 크게 ‘뤼도와 릴리의 만남과 이별‘,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 ‘독일군의 몰락‘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실제 책에서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상세하게 그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뤼도와 릴리‘ 이야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리뷰도 이걸 위주로 써봤다.


Ps 2. 이 책은 여러모로 로맹 가리의 첫번째 장편소설인 <유럽의 교육>과 닮아 있다. 두 작품 모두 전쟁속에서 피어나는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노르망디의 연>이 좀 더 사랑에 치우쳐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노르망디의 연>이 더 좋았다. 로맹 가리의 작품에서 사랑은 절대 뺄 수 없는 소재인것 같다.


Ps 3. 지금까지 읽은 나만의 로맹가리 Top 3
1. 노르망디의 연
2. 새벽의 약속
3.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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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7-05 0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군요.
새벽의 약속 새파랑님 강추로 사놨는데 이 책도 보이면 사야겠습니다. 근데 저는 사랑은 별로라...😅😅

새파랑 2022-07-05 08:05   좋아요 1 | URL
다행히 이 책은 품절이라고 합니다~!!! 전 중고로 구매 ㅋ
사랑이야기보다는 레지스탕스(?) 이야기가 주류고 더 재미있습니다 ㅋㅋ 새벽의 약속은 좀 감동이고 이 책은 좀 애틋함?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중고에서 보이면 냉큼 구매하세요 ^^

미미 2022-07-05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프사 바뀌셨네요? ^^
p.277도 그렇고 멋진 말들이
많이 담긴 소설이군요?! 품절이라니 미리 사두길 잘했습니다ㅋㅋㅋ

새파랑 2022-07-05 11:35   좋아요 1 | URL
역시 책부자 미미님은 가지고 이미 가지고 있으시군요 ㅋ 프사는 너무 더워서 바꿔봤습니다 ^^ 좋은 문장이 많더라구요 ㅋ

바람돌이 2022-07-05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 때마다 최애작이 갱신되다니 역시 로맹가리가 대단한거겠죠?
노르망디의 연도 킵해놓습니다. ^^

새파랑 2022-07-05 16:51   좋아요 0 | URL
제 스타일은 에밀 졸라보다는 로맹 가리 인거 같습니다 ^^

그레이스 2022-07-05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도 많이 읽으셨죠?
새로 읽은 책이 계속 1위 탈환을 하는군요^^
저는 collection 인 상태 그대로예요.

2022-07-05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06 0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07-06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 작품 중 1번, 당연 읽어야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 불행하기는 하지만 또 그런 시절에도 사람들이 살아내는 걸 보면 인간의 힘이 위대한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7-07 08:37   좋아요 1 | URL
로맹가리 본인이 2차세계대전에서 드라마틱하게 활약해서인지 이야기가 더 진실되게 느껴지더라구요. 역시 로맹가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

희선 2022-07-07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 본 걸 잊지 않는다니 부럽네요 책읽기에 아주 좋은 재주군요 한번 보고 기억하고 다시 만났는데 전쟁이 일어나서 슬펐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사람은 살아가기도 하는군요 사랑이 있기에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07-07 08:38   좋아요 0 | URL
사랑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 기억력이 너무 좋은것도 안좋은거 같아요. 잊어야 할건 좀 잊어야 하는데 ㅎㅎ

페크pek0501 2022-07-07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망이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치곤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그런 장난 덕에 산다. ] P.277
-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고 봅니다. 희망이 있는 동안은 살만 하거든요. 어젠가 실망할지라도...

277쪽의 표현이 좋네요.^^

새파랑 2022-07-07 18:14   좋아요 2 | URL
전 로맹가리의 저런 감성적인 문장이 너무 좋더라구요 ㅋ 가능성은 낮더라도 미약하나마 희망이 있는게 좋겠죠? ^^
 
우울의 고백 인문학 클래식 3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이건수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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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86

"남들 마음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네, 사랑도 아름다움도, 영원에게 되돌려 주려고..."


우울한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 봐서는 밝아 보이더라도 내면에는 우울이 한가득 쌓여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어느정도 우울한 감성이 있다. 겉으로 봤을때는 활발하고 운동하는걸 좋아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우울이 약간은 있다. 그래서 밝은 노래 보다는 슬프고 우울한 노래를 좋아하고, 해피엔딩 보다는 새드엔딩에 더 끌린다.


가장 결정적인 건 이제는 혼자 있는걸 즐긴다는 거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혼자 있는게 더 편하다.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 맞춰줄 필요도 없다는게 이렇게 좋아질 줄 몰랐다. 혼자인 시간이 점점 편해진다. 이건 선천적인걸까? 아니면 시간이 이렇게 나를 바꾼걸까?



보들레르의 편지 모음집인 <우울의 고백>을 읽으면서 나의 우울을 생각하게 되었다. 보들레르 처럼 많은 시련과 고통, 사랑의 아픔, 사람에 대한 배신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마음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보니 보들레르랑 나랑 얼굴도 약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는 고통 없이 자살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고통이라 부르는 혼란스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빚이 있다고 고통받은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런 혼란들은 제겐 별것이 아닙니다. 제가 자살하려는 진짜 이유는 잠들고 깨어나는 삶의 피곤함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남들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이며, 나 스스로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 P.56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읽고 내가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나와 비슷한 감정선을 가진 작가의 책이 오히려 힘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간 보들레르 역시 살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애썼는데, 내 우울 쯤이야 보들레르의 우울에 비할수야 있을까?

[당신을 잊는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애지중지하는 이미지 하나에 매달려 두 눈을 고정한 채로 평생을 살아온 시인들이 있다고 말들 합니다. 정말이지 이 점에 관련되어 있는 저로서는 변함없는 사랑이란 천재의 특징들 중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P.100



고등학생 때 (20여년 전?) <악의 꽃>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읽고 우와! 했었는데, 이후에 재독을 못했다. 이번 기회에 멋진 양장본의 <악의 꽃>을 구매해야 겠다.


보들레르의 일대기에 대해 모른다면, <악의 꽃>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우울의 고백>은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한 남자가 평생 쓴 편지를 훔쳐보는 기분만 느낄 수도 있다. 이 책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악의 꽃>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다른 이들보다 더 잘 짐작도 못했던 당신에게 악의 꽃 이라는 이 잔혹한 책 속에 내 모든 심정과 내 모든 애정과 내 모든 왜곡된 종교와 내 모든 증오를 담았음을, 그런 당신께 말해야 하나요?]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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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6-27 22: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보들레르의 삶과 특이한 성격을 모르는 상태에서 편지를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될 거예요. 서울국제도서전 때 이 책을 샀어요. 중간 정도 읽었는데 편지 속 구절에 대한 역주가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새파랑 2022-06-27 23:09   좋아요 4 | URL
벌써 구매하셨군요? ㅋ 저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막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닌거 같아요. 그런데 제목이랑 표지는 아주 좋습니다~!!

그레이스 2022-06-28 00: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들레르의 시 보다는 짧은 글들이지만 미술비평이 더 인상적이예요.
고등학교때 불어쌤이 보들레르의 시를 소개해주셔서 그때 접했었어요.
그때는 어려웠죠^^

얄라알라 2022-06-28 01:12   좋아요 4 | URL
와. 그레이스님의 고등학교 시절 불어쌤은 진정 불문학을 학생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으셨군요! 멋지세요^^ 저는 보들레르 이름 써보라하면 ...못하겠네요^^;;;;;

새파랑 2022-06-28 05:32   좋아요 3 | URL
제2외국어 불어셨군요~!! 전 독일어였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ㅋ 전 지금도 어려운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2-06-28 06:34   좋아요 4 | URL
저 포함 여학생들이 불어쌤 좋아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생기진 않으셨는데 멋있으셨어요. 😂

저 다음 입학생부터 남녀공학이었는데 제2외국어가 독어로 바뀐걸로 기억해요.^^
좀 웃기죠?
그 무슨 말도 안되는 편견인지...^^

새파랑 2022-06-28 06:35   좋아요 3 | URL
역시 공부는 사적(?) 감정이 개입되어야 잘되는군요 ^^

2022-06-28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8 0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06-28 02: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보들레르를 보려면 《악의 꽃》을 먼저 봐야 하는군요 보들레르 이름만 아는군요 보들레르 우울한 사람이었다니... 사람은 살면서 그렇게 바뀌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안 좋은 일을 겪어도 밝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도 그냥 되지는 않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06-28 05:37   좋아요 4 | URL
저도 보들레르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젤 유명한 <악의 꽃>은 읽어보는게 좋을거 같아요~!! 사람은 안바꾼다고 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것만은 아닌것 같고 😅

coolcat329 2022-06-28 0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보들레르랑 닮은거 같다하셔서 사진 찾아보고 왔습니다. ㅋㅋ
보들레르 글은 그의 삶을 알아야 이해가 쉽겠어요. 보들레르도 인생이 참 짧고 굵었던거 같습니다. 자살하겠다는 저 글은 시인의 고독과 슬픔이 느껴지네요. ㅠㅠ
‘변함없는 사랑이란 천재들의 특징‘ 이라는 말도 그냥 지나칠 수 없구요.
새파랑님 덕분에 아침을 보들레르의 시로 시작했네요.

새파랑 2022-06-28 07:42   좋아요 2 | URL
저런 형(?)의 얼굴인거 같아요 ㅋ ‘변함없는 사랑이란 천재의 특징‘ 이거 정답인거 같아요~!!
아침부터 보들레르의 시라니 좀 우울해지셨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2-06-28 09: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보들레르를 읽으셨다니 새파랑님은 그때부터 문학청년이셨군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이 있기에 혼자가 더 편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새파랑 2022-06-28 09:56   좋아요 3 | URL
그냥 멋있어 보여서 구매했던거 같아요 ㅋ 그 책 이제 어디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대학교때는 심심하면 도서관에서 책 꺼내본거 겉아요 ㅋ

거리의화가 2022-06-28 09: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신간을 벌써 읽으신겁니까^^ 추천에 따라 만약 읽게 된다면 악의 꽃 먼저 읽고 읽을게요^^
우울이란 감정은 정도의 차이일 뿐 사람마다 모두 있을 듯해요^^

새파랑 2022-06-28 09:57   좋아요 2 | URL
알라딘 쿠폰 할인 받으려고 급하게 신간을 한권 담아서 읽었습니다. 인간은 모두 외로운 존재인거 같아요 ^^

mini74 2022-06-28 13: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 남자가 평생 쓴 편지를 훔쳐보는 기분만 이라니 ㅠㅠ 전 악의 꽃 어려웠어요. 새파랑님 글 읽으니 악의 꽃 한 번 읽어보고싶네요 ~

새파랑 2022-06-29 06:11   좋아요 2 | URL
미니님은 눈 안좋은거 말고는 어려운게 있을 수 없습니다~!! 저 중고책 <악의 꽃> 열심히 찾아보고 있습니다~!!

scott 2022-06-30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들레르와 새파랑님의 공통점 겸손 ㅎㅎㅎㅎ

새파랑님 아뒤를 바꿔바여!
독 📖파랑으로 !ㅎㅎ
우울함이 확 !

새파랑 2022-06-30 11:27   좋아요 1 | URL
보들레르는 자발적 겸손, 전 가진게 없어서 강제적 겸손? 😅
 
비밀요원 대산세계문학총서 53
조셉 콘라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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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85 조셉 콘래드가 쓴 심리 스릴러이자 스파이 소설의 원조격인 <비밀요원>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왜 함께 있으면서도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는 걸까? 진심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상대방에게 비밀요원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암흑의 핵심>, <로드 짐> 보다는 별로였지만 콘래드 특유의 냉소적인 문장과 아이러니한 상황 설정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나한테는 나를 치명적인 존재로 만드는 수단이 있소. 그러나 당신도 알겠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오. 효과적인 것은 사람들이 내가 그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데 있소. 이것이 그들이 받는 인상이오 완벽하지. 따라서 나는 치명적인 존재인 것이오.˝ P.85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관해 그럴듯한 환상을 간직할 수가 없는 법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싫어하고, 또한 그 일이 매력 없어 보이는 것은 결국 자신의 개성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완전한 자기기만의 위안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행위들이 우연히도 우리의 기질과 딱 맞아떨어질 때뿐이다.˝ P.136

Ps. 책을 다 읽고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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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6-26 20: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비밀요원의 활약이 궁금한데요.
진심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기 싫어하는 사람 아닌가요. 포장하고 더 좋은 것만을 보이려는 사람 같아요^^

새파랑 2022-06-26 21:01   좋아요 5 | URL
비밀 요원의 활약은 전혀 없습니다 ㅜㅜ 불쌍한 사람들만 죽어나가더라구요 ㅋ 당시 혁명세력과 공권녁에 대한 아이러니가 그려집니다~! 웃프면서도 슬픈 작품이었어요~!!

그레이스 2022-06-26 20: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에 이르는 흐름이 궁금합니다^^

새파랑 2022-06-26 21:03   좋아요 4 | URL
거창해 보이는 스파이 노릇을 하려고 해도 일단 가정이 안정적이여야 한다는? 😅

미미 2022-06-26 20: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ㅎㅎ
이 작품 배경 시기에는 이념갈등
때문에 더 진심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을것 같아요. 스파이들은 더더욱? 그때 태어나질 않아 다행입니다. 저는 다 티나거든요^^;; 살해당했을지도ㅋ

새파랑 2022-06-26 21:04   좋아요 4 | URL
미미님같이 싸움(태권도?)은 잘하지만 순수(?)한 분은 스파이랑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리뷰 쓰려고 하다가 잠자냥님이랑 쿨캣님이 리뷰를 잘 써놓으셔서 전 간단히 200자평으로만 썼습니다 ^^

mini74 2022-06-27 0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셉 콘래드가 스파이소설을 ? 했다가 새파랑님 진심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상대방에게 비밀요원이란 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새파랑 2022-06-27 13:19   좋아요 2 | URL
스파이 소설인데 제임스 본드 같은 스파이는 없고 혁명세력은 다 어딘지 모나있고, 공권력은 다 계산적입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인 느낌도 듭니다 ^^

레삭매냐 2022-06-27 1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읽겠다고 사두긴 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습니다.

새파랑 2022-06-27 13:29   좋아요 2 | URL
저도 사놓고 한참 놔뒀다가

이번에 안읽은책 박스에 옮겨놓으면서 찾았습니다.안읽은 책이 백권 정도 되더라구요 😅

바람돌이 2022-06-27 12: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결론이 너무 고전적이어서 어맛 하고 놀랐어요. ^^

새파랑 2022-06-27 13:17   좋아요 3 | URL
제가 그래도 좀 나이(?)가 있습니다 ^^

희선 2022-06-28 0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을 말하면 좋을 텐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은 비밀요원이라니...


희선

새파랑 2022-06-28 05:40   좋아요 2 | URL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50퍼센트 정도는 말해줘야 짐작이라도 할텐데 이 책의 주인공 부부는 0퍼센트 였던거 같아요 ㅋ 그게 결국 불행을 부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