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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평점 :
N22140
"그리고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너나 내가 어떤 직책을 맡게 되든 간에, 또 우리의 형편이 어떻게 되든 간에, 네가 나를 진지하게 불러주고 필요로 하는 그런 순간에 내가 너에게 침묵하지는 않을 거야.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어떤 사람을 이성적이다, 또는 반대로 감성적이다 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쪽으로만 편향되어 있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다만 한쪽 끝에 이성을, 한족 끝에 감성을 놓는다면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는 쉽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감성에 더 가까운 ENFJ다 ㅋ)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정직한 제목의 작품이다. 이것 말고 더 좋은 제목을 떠올릴수는 없다. 나르치스는 이성의 극단을, 골드문트는 감성의 극단을 상징한다. 한 수도원에서 젊고 유능한 생도였던 나르치스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매력적인 소년 골드문트는 만난다.
[군계일학처럼 외로운 존재였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모든 면에서 자기와 상반된 존재인 듯하면서도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나르치스가 어두운 성격에 깡마른 체격이었다면 골드문트는 눈부시게 화사한 존재였다. 또 나르치스가 사변가요 분석가였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로서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의 그러한 대립적 측면보다는 공통점이 더 컸다. 둘은 훌륭한 인격자였고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재능과 개성은 다른 생도들에 비해 두드러졌으며, 또 둘은 숙명적으로 그 어떤 특별한 경고를 받으며 태어난 존재였던 것이다.] P.31
사람의 마음을 꽤뚫어 보는 능력이 있는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보자마자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임을 알아보았고, 그는 결코 수도사가 될 수 없음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끌린다. 결코 다다를 수 없다는걸 알지만, 서로는 같은 길을 갈수 없다는걸 알지만.
[그래,골드문트. 난 너와 같은 부류가 아냐. 네가 생각하는 그런 부류가 아냐. 물론 나도 말로는 하지 않은 서약을 간직하고 있지. 그건 맞아. 그렇지만 단연코 너와 같은 부류는 아냐. 오늘 너한테 해줄 말이 있는데, 언젠가는 이 말이 생각날 거야. 모름지기 우리의 우정에는 네가 얼마나 완벽하게 나와는 다른 존재인가를 너한테 보여주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목표도 의미도 없어.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야.] P.56
골드문트는 모든걸 아는것처럼, 모든걸 초월한것처럼 말하는 나르치스를 반박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에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나르치스를 통해 자신의 영혼, 자신의 성향을 알게 되고, 잊고 있어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수도원을 떠나서 기나긴 반랑을 시작하게 된다. 과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르치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마치 해와 달, 바다와 육지가 가까워질 수 없듯이 말이야. 이봐,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서로가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P.70
책의 중반부는 골드문트의 기나긴 여행기를 그리고 있다. 잘생기고 외향적인 골드문트는 어느곳을 가더라도 사람들과 잘지내고 여성들의 마음을 마구마구 훔친다. 한량도 이런 한량이 없다. 그는 여행을 하는 동안 죽을 고비도 있었고, 흑사병이 창궐해서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예술가적 기질을 확인하고, 감옥에 갖히기도 한다.
[제가 원하는 것은 생생한 삶을 맛보고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여름과 겨울을 느끼고, 세상을 구경하고, 세상의 름다움과 혐오스러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겪고 싶고, 이곳 선생님 밑에서 생활하고 배운 모든 것을 다시 잊고 벗어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의 마리아 상처럼 아름답고 가슴 깊이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처럼 되어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P.281
하지만 이 모든 여정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긴 여정의 끝에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르치스를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책의 결말부는 결코 만날수 없었던 이성과 감성의 진실한 대화가 펼쳐진다. 이성과 감성은 하나로 융합된다. 그들은 스승과 제자가 아니었다. 친구였다. 서로 대등한 관계로 함께 있지 않아도 의지가 되는 그런 사이였던 것이다.
[나르치스의 생각에는 이러한 의문들이 맴돌았다. 오래전에 그가 충격과 경고를 주면서 골드문트의 청춘에 개입하여 그의 인생을 새로운 영역으로 옮겨놓았듯이 이제 골드문트가 돌아온 후부터는 오히려 골드문트가 그에게 생각거리를 주고 충격을 주었으며, 자신이 믿던 것을 회의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골드문트는 그와 대등한 존재인 것이다. 나르치스가 그에게 무엇을 주었든 간에 나르치스는 그 모든 것을 다시 골드문트에게서 되돌려받은 것 같았다.] P.425
세상을 통일된 모습으로 바라보았던 나르치스의 생각도, 세상을 분열된 형태로 바라보았던 골드문트의 생각도 다 맞다고 본다. 세상의 모습과 모순에는 답이 없으니까. 동전은 양면이지만 그 양면은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오늘은 내가 자네를 얼마나 좋아하며, 자네가 늘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자네가 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털어놓아야겠네. 이런 이야기가 자네한테는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지. 자네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익숙해 있고, 자네한테는 사랑이라는 것이 진귀한 게 아닐테니까. 자네는 그토록 많은 여성들한테 귀찮을 정도로 사랑을 받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다르다네. 내가 살아온 인생에는 사랑이 빈곤하고, 나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랑일세.] P.469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그의 자전적인 작품이며, 종교와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모님이 바라던 헤세의 모습이 나르치스였다면, 헤세가 바라던 자신의 모습은 골드문트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네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지나쳐 보지 않고 거기에 자신을 바친단 말일세. 그렇게 스스로를 바침으로써 덧없는 것이 최고의 존재로, 영원을 닮은 존재로 숭고해진다네. 우리 같은 사상가들은 하느님의 존재에서 세속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쓰지. 그런데 자네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사랑하고 재창조함으로써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일세.] P.445
[세상에 등을 돌리고 손을 씻은 채 정결한 삶을 살면서 조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사상의 정원을 꾸며놓고 잘 가꾸어진 화단 사이로 죄를 모르고 거니는 것보다는 어쩌면 세상의 끔찍스런 흐름과 혼돈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러다가 죄를 짓기도 하고 죄의 쓰라린 결과를 감수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더 당당하고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P.457
너무나 극단적인 두 사람의 기구한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은 그냥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적당히 표현할 말이 없는것 같다. 헤세의 최고의 책을 꼽으라고 하면 난 이 책을 꼽겠다.
Ps 1.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의존적인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Ps 2. 이 책을 읽고나서 이 노래가 생각났다.
<전람회 - 이방인>
https://youtu.be/2HThbSD7DsM
"네 삶의 의미는 나이기에 보내는 거라며
그 언젠가 내 꿈을 찾을 때
그때 다시 돌아올 날 믿겠다 했지
수 많은 세월 헤매이다가
험한 세상 끝에서 숨이 끊어질때
그제야 나는 알게 될지 몰라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머물곳은 너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