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노인의 일기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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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6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부상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다. 그 부상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초래하더라도 오히려 바라는 바다."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작품의 완성도나 가치를 떠나서 이토록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자신의 성적 취항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아주 재미있고 탐미적으로 쓸 수 있는 작가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정직한 제목인 <미친 노인의 일기>는 다니자키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는 노인이 쓴 일기 형식의 작품이다. 이제 살날이 얼마 안남은 노인이지만 그의 성욕은 왕성하기만 하다. 특히 발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면, 이러한 그의 욕구는 며느리인 사쓰코에게 향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이성에게 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 .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변형된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그와 같은 성욕의 즐거움과 식욕의 즐거움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나의 심경을 사쓰코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채고 있는 듯하다. 이 집안 식구들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사쓰코뿐이다.] P.25



그런데 사쓰코 역시 만만한 며느리가 아니다. 그녀는 노인의 성욕이 자신을 향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위해 노인의 추파를 아주 조금은 맞춰준다. 이미 갑을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쓰코는 노인에게 반말을 한다. 반대로 노인은 며느리를 사쓰짱이라 부르고 싶어한다...

[내 아내조차 사쓰코와 조키치의 결혼을 그렇게 심하게 반대했으니, 그 무렵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반대를 했을까? 아마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 처음부터 댄서 출신과의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그런 혼사가 성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손자며느리의 매력에 빠져 그녀에게 페팅을 허락받는 대가로 300만 엔을 투자하여 묘안석을 사 주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는 아마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나도, 조키치도 의절당했을 터다. 아니 그보다도 어머니가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P.95



며느리에게 온갖 치욕, 멸시를 당하면서도 노인의 구애는 멈출 줄 모르고 오히려 더 왕성한 욕망을 보인다. 노인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성욕이었다. 게다가 사쓰코의 발에 대한 미친 성욕은 그녀의 발 아래에서 죽고싶다는 말도 안되는 미친 욕망으로 이어진다. 노인의 미친 욕망은 이뤄질수 있을까?

[가급적이면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이와 같은 보살상으로 새겨서 몰래 관음이나세지로 보이게 하여 그것을 내 묘비로 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나는 신불을 믿지 않는다. 내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면 사쓰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쓰코의 입상 아래 묻히는 것이 내 소원이다.] P.165





널리 읽힌 작품은 아닌것 같은데, 막 강추하기는 망설여지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인기있는 막장 드라마처럼 읽는 내내 욕나오지만 읽는걸 멈출 수는 없고 매우 재미있다.


Ps. 쏜살문고에서 나온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선집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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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2-12-25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 초기작들이 이런 성애소설이 많다죠?^^
저도 오래전 대표작인 <미친사랑 > 읽다 깜놀했던 기억이 있어요.
거기서도 풋페티시즘이 적나라하게 나오거든요. 참... 뭐라 평하기 곤란한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 다음에 읽었던 책은 에로티시즘과 전혀 닿지않아서 의외였던 경험이 있어요. 흥미로운 작가이긴 합니다.

새파랑 2022-12-26 09:12   좋아요 0 | URL
어디가서 다니자키 준이치로 팬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눈치보이지만 좋아합니다 ㅋ <미친 사랑> 보다 이 작품이 더 충격(?) 적이긴 합니다 ㅋ

그당시에 이런 작품을 썻다는데 놀랍기만 합니다~!!

희선 2022-12-26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미친 노인의 일기》라니... 욕하면서 재미있게 보게 되는 거군요 며느리 발이라니...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기가 바라는 게 있었네요 다른 것 때문에 오래 살면 더 좋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소설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해야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12-26 09:1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준이치로의 일대기를 보면 왠지 실제로도 그랬을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ㅋ 완전 재미있어요 ~!!

coolcat329 2022-12-26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지 않고 살게 하는 원동력이 성욕이라니 괴로울 거 같아요.ㅠ 변태같지만 본인도 괴로울겁니다. 그것도 며느리라니 ㅠ
현실에서 이런 노인은 노망난 변태겠지만 문학은 이런 인물을 그래도 이해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니 참 좋습니다.

새파랑 2022-12-26 09:14   좋아요 1 | URL
이해하고픈 마음이 별로 들지는 않습니다 ㅋ 완전 미친 노인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ㅋ 이게 문학의 힘인거 같기도 합니다~!!

미미 2022-12-26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문학을 매개로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네요. 내년에는 그의 작품을 꼭 읽어야겠어요. 제 생각에 페티시즘을 느끼는 남성들은 여성이 되고싶은 열망도 얼마간 있는것 같아요ㅋ

새파랑 2022-12-26 13:11   좋아요 1 | URL
앗 ㅋ 그런 이유도 있는걸까요? 정신건강(?)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은 안읽는걸 추천하지만, 미미님은 독서기계시니 문제 없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2-12-26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전 미친, 막장 드라마네요.
그래도 이 소설을 욕하면서 읽어갈 수 있다는건 작가의 필력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랑과 욕망은 자기 뜻대로는 제어가 안되어 저런 사람도 존재할 듯 합니다^^

새파랑 2022-12-26 21:40   좋아요 1 | URL
필력이 ㅋ 장난 아닌거 같아요.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수가 없습니다 ~!!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거 같아요 ㅋ

페넬로페님하곤 완전 상극인 작품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 사라진 알베르틴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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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4

"우리가 사랑한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별의 날은 와야한다."



재회할 가능성 1%와 0%의 차이가 이런걸까? 다시는 볼수 없다는 이유가 애틋함을, 추억을, 사랑을 더 크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11권에서는 마르셀의 과도한 집착과 의심이 결국 알베르틴을 떠나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점점 식어가는 마음을 느낀 마르셀은 차라리 헤어지길 바라지만, 또 반대로 집착은 커져만 간다. 헤어지고 싶으면서도 헤에지긴 싫어하는 알수 없는 마음.

[지금까지 나는 습관이 우리 지각의 독창성과 의식마저 제거하고 무로 돌리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습관을 우리에게 고정된 무시무시한 신으로 간주했고, 그 무의미한 얼굴이 그토록 우리 마음속 깊숙이 박혀 있어서, 만일 우리가 거기서 떨어져 나가거나 멀어지기라도 하면 여태껏 거의 알아볼 수 없던 그 신은 어느 누구보다 무서운 고통을 야기하고, 그리하여 죽음만큼이나 잔인한 존재가 된다.] P.17



마르셀은 어떻게든 떠나간 알베르틴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그는 알베르틴에게 계속 솔직하지 못했다. 애써 돌려서 표현하고, 물질을 앞세우며, 질투를 유발하고, 그녀의 마음을 떠보기만 한다. 꼭 그렇게 사랑 앞에서 자존심을 세웠어야 했을까?

[우리 감각 세계의 건물을 떠받치는 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며, 믿음이 없으면 건물은 흔들린다. 우리는 바로 이 믿음이 사람들의 가치와 무용성을 결정하며 또 그들을 만날 때면 느끼는 열광이나 권태의 감정을 결정하는 걸 보아 왔다.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않아 끝나리라고 확신하는 것 만으로도 슬픔이 하찮아 보이기 때문에, 또는 슬픔이 돌연 커져서 한 존재를 우리의 목숨만큼이나, 때로는 그보다 더 가치있는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믿음은 슬픔을 견디게 한다. ] P.57



마르셀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결국 알베르틴은 마음을 돌리고, 그에게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이젠 돌아갈 가망이 없어진다. 완벽하고 갑작스러운 상실. 더이상 알베르틴은 없었다.

알베르틴을 떠나보낸 것도, 알베르틴을 상실한 것도 모두 마르셀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마르셀의 사랑은 예전보다 더 커져만 간다.

[한 존재가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형태를 갖추고 시간이란 틀에 복종해야 한다. 연속적인 순간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존재는 한 번에 한 모습밖에 보여 주지 않으며, 그 모습에 대해서도 단 하나의 사진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오로지 순간들의 집합으로만 이루어진 존재에게 그것은 큰 약점이지만, 또한 큰 힘이기도 하다. 존재는 기억의 영역에 속하며, 또 어느 한순간의 기억은 그 후 일어난 일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그 기억이 기록한 순간은, 그리고 그 순간과 더불어 드러난 존재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여전히 지속된다. 그리고 그런 파편화는 다만 죽은 이를 살아나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이를 무한대로 증식한다.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망각해야 했던 것은 한 명의 알베르틴이 아니라 무한한 알베르틴이었다. 알베르틴을 잃은 슬픔이 견딜 만한 상태에 이르자, 나는 다른 알베르틴, 다른 수백 명의 알베르틴과 더불어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P.110



왜 우리는 항상 떠나 보내고 난 후에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되는 걸까? 왜 항상 후회하게 되는 걸까?

[다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고장에서, 그곳에 갈 때 이미 통과했던 역의 이름과 모습을 모두 알아보게 하는 같은 노선의 기차를 타고 귀갓길에 오를 때면, 그래서 한순간 기차가 그런 역 중 하나에 멈출 때면, 우리가 방금 떠난 장소를 향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기차가 다시 출발하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이런 환상은 이내 사라지지만, 그러나 한순간 우리는 떠난 장소를 향해 다시 실려 간다고 느꼈으며, 바로 이것이 추억의 잔인함이다.] P.24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부터 10권 까지의 긴 여정은 11권 <사라진 알베르틴>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였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마르셀의 상실감이 그대로 와닿았다. 마르셀은 과연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까?



Ps. 잃시찾 11권만 따로 읽어도 괜찮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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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2-22 12: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글 읽으니 헤어질 결심이 떠오르네요. 새파랑님이 전해주시는 마르셀 이야기 상실감. 참 좋네요 *^^*

새파랑 2022-12-22 15:04   좋아요 2 | URL
리뷰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좋았던 부분만 썼습니다 ㅋ 요새 연말 모임이 많아서 책읽을 시간도, 리뷰쓸 시간도 없네요 ㅜㅜ

거리의화가 2022-12-22 1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ps 정보가 무엇보다 좋네요^^ ㅎㅎㅎ
저는 내게 오는 감정들에 모두 올인하면 생각보다 좀 피곤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건 아니어야만해 하며 외면하다 놓치기도 하구요. 아무튼... 사랑이란!
새파랑님 2권만 더 읽으시면 시리즈 완독이시군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12-22 15:05   좋아요 1 | URL
아직 2권 더 읽으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거 같습니다 ㅋ 시간이 없으시면 잃시찾 11권부터 읽어도 괜찮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2-12-22 1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르셀의 변화하는 마음들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 조금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알베르틴의 마지막이 가슴 아팠어요 ㅠㅠ
새파랑님, 잃.시.찾, 완독 화이팅입니다^^

새파랑 2022-12-22 15:07   좋아요 2 | URL
저도 좀 답답했습니다. 왜 이렇게 변덕이 심하고 소심한건지 ㅋ 그래도 저도 이런 비슷한(?) 성향이 있어서 그런지 약간 공감은 했습니다 ^^

독서괭 2022-12-22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잃시찾이 이런 사랑 이야기였나요? 11권만 따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씀에 괜히 희망을 품게 되네요 ㅋㅋㅋ 지금 집에 1-5권 있는데 11권사서 먼저 읽어야 하나 ㅎㅎㅎ

새파랑 2022-12-22 15:08   좋아요 1 | URL
잃시찾의 핵심 키워드는 사랑입니다 ^^ 그런데 독서괭님은 마르셀의 행동을 마음에 안들어하실 수 있습니다 ㅋ

기왕 5권까지 사놓으신거 1권부터 순차적으로 읽으세요 ^^

scott 2022-12-22 15: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르셀 옹이 새파랑님 리뷰 읽은다면
코르크로 막아버린 방에서 뛰쳐 나올 것 같습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

새파랑님의 아뒤
2023년 부터는 새마르셀 ^^

새파랑 2022-12-22 15:10   좋아요 3 | URL
저정도의 허접한 리뷰를 읽고 화가나서 뛰쳐 나가는거 아닐까요?

프루스트옹 하면 스콧님이랑 미미님이죠 ^^

23년에 아이디 바꿔볼까 고민입니다 ㅋ

미미 2022-12-22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집에와서 PC로 읽었습니다. 11권 너무 슬프죠ㅠ.ㅠ
이별의 아픔, 그렇게 드러난 사랑의 진실을 이이상 표현하기
힘들거라고 믿습니다.^^* 새파랑님 리뷰 읽으며 다시금 감동이!

새파랑 2022-12-23 05:34   좋아요 2 | URL
전 지금까지 읽은 잃시찾 중에 11권이 가장 좋더라구요. 역시 잃시찾의 진정한 마니마 미미님~!! 내년에는 다시 정주행? ^^

희선 2022-12-23 0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떠나가기 전에 잘해야 할 텐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못한다면 무척 슬프겠습니다 아니 어딘가에서 살고만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텐데... 알베르틴은 세상을 떠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마음이 이 책을 쓰게 했군요


희선

새파랑 2022-12-23 08:58   좋아요 3 | URL
그렇습니다 ㅜㅜ 완전 이별 (고별)은 너무 슬픈거 같아요 ㅜㅜ 이 책 읽고 좀 많이 슬펐습니다 ~!!

서니데이 2022-12-23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따뜻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일요일이 크리스마스인데, 계속 추울 것 같아요.
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새파랑 2022-12-24 11:3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 주말 많이 춥네요 ㅋ 마음은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12-2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2권 남으셨네요~!

새파랑 2022-12-28 09:36   좋아요 1 | URL
내년에 아껴서 읽겠습니다~!!
 
타라스 불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1
니콜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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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3

"아버지! 어디 계세요! 이 모든 고통을 아시겠지요?" "암, 내가 여기서 보고 있다!"


현재 우크라니인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이 카자크인인데, 고골의 <타라스 불바>는 카자크인의 민족성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고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밀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너희들은 보물처럼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아냐? 너희들의 보물은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이 없는 저 넓은 초원과 좋은 말이다. 그것이 바로 너희들의 보물이란 말이다. 이 칼 보이지? 칼이 진짜 너희들 엄마다! 너희 머릿속에 차 있는 것은 다 쓸데없는 것들이야. 학교, 온갖 책들, 사전, 철학이고 뭐고 말짱 헛것이지! 난 그런 것들에 다 침을 뱉을 거다.] P.10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카자크인은 완전 마초 그 자체이다. 그들에게 사랑은 수치스러운 것이고, 오직 민족과 종교만이 고귀한 것이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한 전쟁만이 존재의 목적이었다. 주인공인 '타라스 불바'에게는 '오스타프'와 '안드라'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타라스 불바'는 아들들을 진정한 카자크인을 만들기 위해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쟁터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를 능욕했다는 핑계로 폴란드를 침공한다.

[여러분, 주정뱅이 여러분! 이제 맥주는 충분히 마셨습니다. 또 방바닥에 누워서 충분히 빈둥거렸습니다. 또 파리에게 여러분들의 통통한 살점도 충분히 먹였습니다. 이제는 기사의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 일어나야 합니다! 농부 여러분, 양치기 여러분! 그리고 호색가 여러분! 쟁기질을 하면서 누런 신발도 충분히 더럽혔습니다. 계집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기사의 힘을 헛되게 쓴 것도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제는 카자크의 명예를 드높일 때입니다.] P.18



카자크인들은 무자비하게 폴란드 마을을 학살하고, 타라스 불바와 아들들은 선두에 서서 대단한 활약을 한다. 결국 마지막 목적지인 두브노 도시로 항하지만, 이곳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그들은 성 외곽에서 포위작전을 펼친다. 그런데 이때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참아라, 카자크잖아. 그래야 아타만이 되지! 전투 시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군인이라고 할 수 없다. 할 일이 없을 때에도 지루해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꾹 참고, 어떠한 일을 당하더라도 자기주장을 꿋꿋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훌륭한 군인이다."] P.83



타라스 불바의 첫째 아들인 오스타프는 그의 아버지와 너무 닮아서 호전적이었고, 반면 둘째 아들 안드라는 감성적이었는데, 결국 전장에서 두사람의 성향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발산되게 된다. 둘째 아들은 어린시절 첫눈에 반했던 폴란드 여인이 두브노 성 안에 있는걸 알게 되고, 결국 가족과 조국을 버리고 폴란드 쪽으로 전향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둘째는 아버지와 형의 적이된다. 카자크중에서도 초강성인 타라스 불바는 과연 카자크인의 명예를 더럽힌 둘째 아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내 조국이 우크라이나라고 누가 말했소? 누가 내게 우크라이나를 조국으로 주었소? 조국이란 우리 영혼이 찾는 것이어야 하오. 그래야 무엇보다도 더 그리운 법이오. 내 조국은 당신이오! 나는 당신을, 내 조국을 가슴에 안고 내 삶이 끝날 때까지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가겠소. 카자크 중 누가 이 조국을 떼어 내려고 하는지 한번 봅시다!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팔거나 내주겠소. 내 그런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소!"] P.112



반면 첫째 아들인 오스타프는 동생의 변절은 동생의 잘못이 아닌 폴란드의 악행이라고 생각하고, 더 격렬하게 폴란드에 저항한다. 하지만 결국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고, 폴란드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지만, 오스타프는 끝까지 카자크인의 자존심을 지킨다.

[자기 아들 오스타프를 보았을 때, 늙은 불바가 무엇을 느꼈을까? 그때 그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군중 속에서 그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벌써 사형장 가까이까지 와 있었다. 오스타프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제일 먼저 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는 동지들을 돌아본 다음, 한 팔을 높이 쳐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하느님,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이 당하는 고통을 여기 서 있는 이단자들이 보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중 누구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게 해주소서!"] P.205



타라스 불바는 첫째의 비극적인 마지막을 몰래 목격하고, 이후 폴란드를 탈출한다. 폴란드에 대한 그의 적개심은 극대화 되면서 폴란드인에 대한 잔인한 복수를 계속 하게 된다. 민간인이든, 어린애든 상관없이. 과연 피에 피를 부르는 이 전쟁은 어떻게 끝나게 될까?





작품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고골의 카자크인에 대한 묘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카자크인은 실제로 저런 모습이었을까? 게다가 무작정 긍정적으로만 표현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카자크인을 까는(?) 것처럼 그리기도 한다. 특히 타라스 불바의 두 아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카차크인은 결국 몰락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잘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카자크인의 피에 흐르는 전투정신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서 빨리 러시아ㅡ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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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2-16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떡 하니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전쟁... 이 시국에 더욱 읽어봐야할 작품이네요.
그리고! 새파랑님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2-12-16 11:38   좋아요 2 | URL
저는 달인은 아닌것 같지안 어쨋든 뽑아주니 즐겁네요 ㅋ 저도 스콧님 리뷰 보고 읽어서요 ㅋ 요책은 화가님 스타일이실듯 합니다~!!

은하수 2022-12-16 1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우크라 전쟁은 저도 얼른 끝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추운 겨울을 어찌 나고 있을지...

새파랑 2022-12-16 11: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전쟁이 그래도 금방 끝날지 알았는데 안그러네요 ㅜㅜ 더이상 피해가 없이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ㅜㅜ

coolcat329 2022-12-16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크라이나 역사 책 보다보니 이 책 읽고 싶더라구요~고골의 카자크인 묘사 저도 궁금하네요 😊

새파랑 2022-12-16 13:40   좋아요 1 | URL
ㅋ 카자크인 완전 마쵸 입니다. 이런 거친 민족이 지금까지 있었나? 싶습니다 ㅋ 고골의 글이어서 완전 재미납니다~!!

그레이스 2022-12-16 1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합니다~~

새파랑 2022-12-16 13:4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ㅜㅜ
연초부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라니 ㅜㅜ

Falstaff 2022-12-16 16: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카자흐 인종들을 만나셨으면 기어이 돈강 까지 가시리라 믿습니다. ^^

새파랑 2022-12-16 19:19   좋아요 3 | URL
와우 추천 감사힙니다. 골드문트님 리뷰 보니 돈 강 꼭 읽어야 겠네요 ㅋ 검색들어가겠습니다~!!

scott 2022-12-16 21: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럽 대륙 최악의 싸움꾼 카자크!


고골의 묘사미는 쵝오죠!

문트님은 돈 강 추천

저는 이자크 바벨 작품 추천 ^0^

새파랑 2022-12-17 09:16   좋아요 3 | URL
이자크 바벨 첨 들어보지만 찾아보겠습니다~!! 카자크인은 정말 호전적인거 같더라구요 ㅋ 우크라이니가 다르게 보입니다 ^^

yamoo 2022-12-17 1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골의 작품은 모두 다 재미있는 것들 뿐이죠. 고골만큼 이야기꾼인 작가도 드뭅니다.

저는 고골의 단편선 추천!ㅎ

새파랑 2022-12-17 21:40   좋아요 2 | URL
고골 작품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읽었던건 다 좋더라구요 ㅋ 전 팽귄클래식 버젼으로 고골 단편집을 읽었습니다. 더 찾아봐야 겠습니다 ^^

북프리쿠키 2022-12-18 1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골 옹은 레전드죠 ^^

새파랑 2022-12-18 16:05   좋아요 2 | URL
레전드 오브 레전드 입니다 ㅋ 현실세계의 러시아는 좀 별로지만 고전의 러시아는 너무 좋습니다 ^^

희선 2022-12-19 0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고골 소설은 <외투>밖에 모를지도... 이 고골이 그 고골이 맞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네요 <외퉈>도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이 소설을 보면 우크라이나 더 생각하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12-19 12:08   좋아요 3 | URL
고골의 <코>도 유명합니다 ㅋ 이 고골이 그 고골 맞습니다 ^^

mini74 2022-12-21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초등학교 문고판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이해가 안갑니다. 왜 이 책이 어린이용으로 나왔었는지..표지에 마치 술에 취한듯 코가 빨간 남자들 그림이 기억나요.
저도 이 책 찜해봅니다. ^**^

새파랑 2022-12-21 16:27   좋아요 1 | URL
역시 초등학교때부터 독서천재였던 미니님~!! 이 책은 표지부터 너무 마음에 듭니다 ㅋ
 
친구들과의 대화
샐리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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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1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
몇 번이고 다시 정해야 한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노멀 피플>로 유명한 샐리 루니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올해의 젊은 작가로 선정되기도 하고 부커상 후보에도 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이 작품이 그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노멀 피플>과 비슷하긴 한데, 막 재미있지도 않고 인물들의 행동도 공감되지 않으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의 주요인물을 살펴보면,

1. 프랜시스(여) : 1인칭 주인공, 공산주의자
2. 보비(여) : 동성애자, 프랜시스의 과거 연인이자 현재는 친구
3. 멀리사(여) : 사진작가, 닉의 아내
4. 닉(남) : 배우, 멀리사의 남편


프랜시스와 보비는 시낭송 공연을 하는 친구사이인데, 어느날 작가인 멀리사를 알게 되고 셋은 친하게 된다. 보비는 멀리사에게 사랑을 느끼고 멀리사 역시 보비에게 호감을 갖는다. 이렇게 두사람이 가까워진데 대한 반작용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프랜시스는 닉과 가까워진다.



결국 네 사람은 사각관계가 된다. 다른점이 있다면 관계 초반에 보비와 멀리사의 관계는 공식(?)적인것처럼 보이지만 프랜시스와 닉의 관계는 둘만의 비밀로 유지된다.

[나는 닉과 함께하기 위해서 모두에게, 멀리사에게, 심지어는 보비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사실을 털어놓을 사람, 내 행동을 동정해 줄 사람 하나 남겨 두지 않았다. 그랬는데 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눈을 꼭 감고 베개에 얼굴을 꾹 눌렀다. 나는 전날 밤을, 닉이 나를 얼마나 원하는지 말해 주었던 때를,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떠올렸다. 인정해. 내가 생각했다. 그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넌 그래서 상처를 받은 거야.] P.185



마지막에 가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자의든 타의든 간에 밝혀지게 되고, 결국 헤어지게 되지만 재회를 암시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프랜시스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심리변화를 읽는것 말고는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다. 프랜시스도 공감이 안가고, 보비는 더 공감이 안갔다. 차라리 대외적으로 행복한 부부관계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멀리사와 아내의 외도를 알면서도 떠날수 없는 닉의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공감이 되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주변에서 사람과 사물 들이 움직이면서 모호한 계층에 따라 자리를 잡고 내가 지금도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었다. 물체와 개념의 복잡한 네트워크, 어떤 것들은 직접 겪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항상 분석적인 입장을 취할 수는 없다. 와서 날 데려가요. 내가 말했다.] P.432



그런데 책을 읽는 목적이 꼭 공감하기 위해서는 아니니까....
(개인적으론 책을 읽는 목적은 간접체험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강추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볍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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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2-13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데뷔작이라니
공감은 덜 가고, 재미있다니^^ 일단 새파랑님의 추천을 기억 서랍 속에 쏘옥!

새파랑 2022-12-13 07:42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다 읽었어요 ㅋ 한번 읽기 시작하면 술술 계속 읽게 되긴 합니다~!!

희선 2022-12-13 0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 제목은 몇 번 본 적 있어요 여러 사람 사이가 나와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이 많지요 공감하지 못해도 그런 사람도 있지 해도 괜찮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12-13 07:44   좋아요 1 | URL
그렇죠. 요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ㅋ 근데 20대 초반?의 주인공 심리변화를 공감하기는 힘들더라구요. 저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봅니다 😅

물감 2022-12-13 0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뭐든 재밌게 읽는 새파랑님의 보기 힘든 비평이... 이 책 저도 집에 있는데 큰일이네요ㅎㅎㅎ

새파랑 2022-12-13 07:46   좋아요 2 | URL
앗 ㅋ 저도 나름 별 셋 준 작품들이 있습니다 ㅋ 그래도 허접하더라도 리뷰는 남겨야 해서 급하게 썼어요. 아마 물감님은 좋아하실거 같아요~!

미미 2022-12-13 0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솔직한 리뷰 재밌어요ㅎㅎ 사각관계라니! 얼마전 뉴스에서도 불륜커플의 배우자들이 만났다가 눈이맞았는데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생각납니다ㅎ

새파랑 2022-12-13 11:15   좋아요 1 | URL
아일랜드식 불륜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ㅋ 좀 가벼운 책을 읽어보자고 선택했는데 만족합니다 ^^ 요새 시간이 없어서 리뷰를 너무 날림으로 쓰는거 같아요 ㅜ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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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0

"그리고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너나 내가 어떤 직책을 맡게 되든 간에, 또 우리의 형편이 어떻게 되든 간에, 네가 나를 진지하게 불러주고 필요로 하는 그런 순간에 내가 너에게 침묵하지는 않을 거야.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어떤 사람을 이성적이다, 또는 반대로 감성적이다 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쪽으로만 편향되어 있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다만 한쪽 끝에 이성을, 한족 끝에 감성을 놓는다면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는 쉽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감성에 더 가까운 ENFJ다 ㅋ)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정직한 제목의 작품이다. 이것 말고 더 좋은 제목을 떠올릴수는 없다. 나르치스는 이성의 극단을, 골드문트는 감성의 극단을 상징한다. 한 수도원에서 젊고 유능한 생도였던 나르치스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매력적인 소년 골드문트는 만난다.

[군계일학처럼 외로운 존재였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모든 면에서 자기와 상반된 존재인 듯하면서도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나르치스가 어두운 성격에 깡마른 체격이었다면 골드문트는 눈부시게 화사한 존재였다. 또 나르치스가 사변가요 분석가였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로서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의 그러한 대립적 측면보다는 공통점이 더 컸다. 둘은 훌륭한 인격자였고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재능과 개성은 다른 생도들에 비해 두드러졌으며, 또 둘은 숙명적으로 그 어떤 특별한 경고를 받으며 태어난 존재였던 것이다.] P.31



사람의 마음을 꽤뚫어 보는 능력이 있는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보자마자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임을 알아보았고, 그는 결코 수도사가 될 수 없음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끌린다. 결코 다다를 수 없다는걸 알지만, 서로는 같은 길을 갈수 없다는걸 알지만.

[그래,골드문트. 난 너와 같은 부류가 아냐. 네가 생각하는 그런 부류가 아냐. 물론 나도 말로는 하지 않은 서약을 간직하고 있지. 그건 맞아. 그렇지만 단연코 너와 같은 부류는 아냐. 오늘 너한테 해줄 말이 있는데, 언젠가는 이 말이 생각날 거야. 모름지기 우리의 우정에는 네가 얼마나 완벽하게 나와는 다른 존재인가를 너한테 보여주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목표도 의미도 없어.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야.] P.56



골드문트는 모든걸 아는것처럼, 모든걸 초월한것처럼 말하는 나르치스를 반박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에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나르치스를 통해 자신의 영혼, 자신의 성향을 알게 되고, 잊고 있어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수도원을 떠나서 기나긴 반랑을 시작하게 된다. 과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르치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마치 해와 달, 바다와 육지가 가까워질 수 없듯이 말이야. 이봐,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해서 서로가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P.70




책의 중반부는 골드문트의 기나긴 여행기를 그리고 있다. 잘생기고 외향적인 골드문트는 어느곳을 가더라도 사람들과 잘지내고 여성들의 마음을 마구마구 훔친다. 한량도 이런 한량이 없다. 그는 여행을 하는 동안 죽을 고비도 있었고, 흑사병이 창궐해서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예술가적 기질을 확인하고, 감옥에 갖히기도 한다.

[제가 원하는 것은 생생한 삶을 맛보고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여름과 겨울을 느끼고, 세상을 구경하고, 세상의 름다움과 혐오스러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겪고 싶고, 이곳 선생님 밑에서 생활하고 배운 모든 것을 다시 잊고 벗어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의 마리아 상처럼 아름답고 가슴 깊이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처럼 되어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P.281




하지만 이 모든 여정은 다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긴 여정의 끝에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르치스를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책의 결말부는 결코 만날수 없었던 이성과 감성의 진실한 대화가 펼쳐진다. 이성과 감성은 하나로 융합된다. 그들은 스승과 제자가 아니었다. 친구였다. 서로 대등한 관계로 함께 있지 않아도 의지가 되는 그런 사이였던 것이다.

[나르치스의 생각에는 이러한 의문들이 맴돌았다. 오래전에 그가 충격과 경고를 주면서 골드문트의 청춘에 개입하여 그의 인생을 새로운 영역으로 옮겨놓았듯이 이제 골드문트가 돌아온 후부터는 오히려 골드문트가 그에게 생각거리를 주고 충격을 주었으며, 자신이 믿던 것을 회의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골드문트는 그와 대등한 존재인 것이다. 나르치스가 그에게 무엇을 주었든 간에 나르치스는 그 모든 것을 다시 골드문트에게서 되돌려받은 것 같았다.] P.425




세상을 통일된 모습으로 바라보았던 나르치스의 생각도, 세상을 분열된 형태로 바라보았던 골드문트의 생각도 다 맞다고 본다. 세상의 모습과 모순에는 답이 없으니까. 동전은 양면이지만 그 양면은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오늘은 내가 자네를 얼마나 좋아하며, 자네가 늘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자네가 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털어놓아야겠네. 이런 이야기가 자네한테는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지. 자네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익숙해 있고, 자네한테는 사랑이라는 것이 진귀한 게 아닐테니까. 자네는 그토록 많은 여성들한테 귀찮을 정도로 사랑을 받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다르다네. 내가 살아온 인생에는 사랑이 빈곤하고, 나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랑일세.] P.469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그의 자전적인 작품이며, 종교와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모님이 바라던 헤세의 모습이 나르치스였다면, 헤세가 바라던 자신의 모습은 골드문트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네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지나쳐 보지 않고 거기에 자신을 바친단 말일세. 그렇게 스스로를 바침으로써 덧없는 것이 최고의 존재로, 영원을 닮은 존재로 숭고해진다네. 우리 같은 사상가들은 하느님의 존재에서 세속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쓰지. 그런데 자네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사랑하고 재창조함으로써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일세.] P.445


[세상에 등을 돌리고 손을 씻은 채 정결한 삶을 살면서 조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사상의 정원을 꾸며놓고 잘 가꾸어진 화단 사이로 죄를 모르고 거니는 것보다는 어쩌면 세상의 끔찍스런 흐름과 혼돈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러다가 죄를 짓기도 하고 죄의 쓰라린 결과를 감수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더 당당하고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P.457




너무나 극단적인 두 사람의 기구한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은 그냥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적당히 표현할 말이 없는것 같다. 헤세의 최고의 책을 꼽으라고 하면 난 이 책을 꼽겠다.




Ps 1.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의존적인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Ps 2. 이 책을 읽고나서 이 노래가 생각났다.
<전람회 - 이방인>
https://youtu.be/2HThbSD7DsM

"네 삶의 의미는 나이기에 보내는 거라며
그 언젠가 내 꿈을 찾을 때
그때 다시 돌아올 날 믿겠다 했지
수 많은 세월 헤매이다가
험한 세상 끝에서 숨이 끊어질때
그제야 나는 알게 될지 몰라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머물곳은 너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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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12-09 1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방인 가사와 올려주신 내용이 잘 어울리네요. 브로멘스같은 느낌인데
결말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성을 꿈꾸지만 감성에 더 가까운 ENFPㅎㅎ

새파랑 2022-12-09 10:48   좋아요 1 | URL
이 책은 미미님의 취향입니다 ㅋ 정말 좋아요 ^^ 시간이 없어서 좀 오랫동안 읽었지만 ㅋ 초반, 중반, 결말 다 완벽한데 특히 결말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12-09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F라 감성입니다!ㅎㅎㅎ 근데 인생 내내 이성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양 극단의 인물을 끌고 왔다는 것이 흥미롭네요. 헤세의 작품은 아직 끌리는 게 없는데 이것은 좀 읽어볼만하다 싶습니다.

새파랑 2022-12-09 10:50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는 <데미안> 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ㅋ 이 책은 어느 장을 펼쳐 읽어도 좋아요 ㅋ 재미 감동 교훈이 다 들어있습니다~!@

scott 2022-12-09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새파랑님의 진심은

전람회!
음률 시인 동률 킴의 찐 팬!

이제 부터 새로운 아뒤!
북플계 음률 리뷰인!
새🦜 방인으로^^

새파랑 2022-12-09 10:51   좋아요 1 | URL
저의 돌아갈곳은 역시 김동률 ㅋ 새앨범 안내주나요 ㅜㅜ 콘서트라도 ㅜㅜ

새방인으로 바꿀까요? ㅋ 근데 새방인은 좀... 😅

물감 2022-12-09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들의 마음을 마구 훔치는 한량이라...

새파랑 2022-12-09 10:52   좋아요 2 | URL
이런 한량(?)한 내용이 없었다면 아마 데미안처럼 청소년 권장도서가 되었을텐데, 한량 내용 때문에 19금 책이 된거 같아요 ㅋ

페넬로페 2022-12-09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리뷰 너무 좋아요.
나르치스같은 사람은 조금 피곤해요.
저는 i인데 감성적인 면도 많아요.
한쪽에 이성을 다른 쪽에 감성을 가지고 균형 맞춰 잘 살고 싶네요^^

새파랑 2022-12-09 12:40   좋아요 1 | URL
너무 나르치스 같은 사람도, 너무 골드문트 같은 사람도 피곤할거 같아요. 가장 좋은건 적당한 사람? ㅋ 이 책 너무 좋습니다. 저의 올해 책 탑 5에 들듯 ^^

공쟝쟝 2022-12-09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intj 와 esfp조합 맞죠??ㅋㅋㅋㅋ ㅋㅋㅋㅋ

ps 1번 공감하고 ㅋㅋ 저는 알라딘에서 종종 봅니다. 완존 다른데 서로 흠모하는 대등한 관계ㅋㅋㅋ 땡투로 맺어진 부장과 괭이 ㅋㅋㅋ

새파랑 2022-12-09 12:42   좋아요 0 | URL
제가 제 MBTI밖에 잘모르지만 공쟝쟝니이 intj랑 eafp라고 하니 맞겠죠? 앞으로 나르치스나 골드문드 같은 사람을 보면 저 MBTI를 검색해서 성향을 파악해야겠습니다 ㅋ

다부장님과 공쟝쟝님은 반대로 완전 같으면서 서로 흠모하는 관계? ㅋ

공쟝쟝 2022-12-09 12:48   좋아요 1 | URL
땡 잠자냥과 다부장입니다 ㅋㅋㅋ 저는 아닙니다 ㅋㅋㅋ 저는 아직 독서량과 자존감이 부족함 ㅋㅋㅋㅋㅋ

서니데이 2022-12-09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생시절에는 헤르만헤세를 읽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요즘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전에 읽었던 책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으면 번역도 다르고 느낌도 조금 다를 것 같긴 해요.
잘읽었습니다. 새파랑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12-10 08:51   좋아요 1 | URL
헤세 하면 <데미안>이 버젼도 많고 많이들 읽던데,

데미안도 좋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더좋네요. 데미안이 더 이해하기도 힘들고 ^^

희선 2022-12-13 0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두 가지 아니 여러 가지 면이 있지만 많고 적은 게 다르겠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면 좋을 텐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반반이면 가장 좋을 것 같네요 예전에 읽었지만 다 잊어버렸네요


희선

새파랑 2022-12-13 07:56   좋아요 1 | URL
반반이 아마 살아가기에는 가장 좋을거 같은데, 그래도 가끔은 극단(?)을ᆢ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ㅋ

희선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전 왜 이제 만났는지 아쉽습니다 ㅋ

음... 2022-12-17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연찮게 알라딘메일보다 들어왔는데요 첫문장 번역이 나르치스가 골트문트에게 전해준 그 말맞지요? 번역이 제가 알던것과 좀 달라서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해서 댓글 달아봅니다ㅎㅎ

제가 옛날책을 봐서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너무도 좋은문장이라 항상 기억해두고 있었거든요
˝설령 우리가 전혀 다른길을 걸을지라도 네가 진실로 나를 필요로 하게되면 나는 너를 외면하지 않을것이다˝ -이 문장이었는데,

˝그리고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너나 내가 어떤 직책을 맡게 되든 간에, 또 우리의 형편이 어떻게 되든 간에, 네가 나를 진지하게 불러주고 필요로 하는 그런 순간에 내가 너에게 침묵하지는 않을 거야.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 이렇게도 번역이 된걸보니 느낌이 묘하네요 또^^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헤세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ㅎㅎ
유려한문체와 자연묘사 평화로운 내용과 긴장감 넘치는 내용까지 정말 좋았었네요~

새파랑 2022-12-17 21:38   좋아요 0 | URL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한 말 맞습니다~!! 제가 읽은 책 버젼도 그렇게 최신판은 아닌거 같아요. 출판사랑 역자가 좀 달라서 그런가봅니다~!! 저도 저문장이 딱 좋더라구요. 전 민음사판 헤르만 헤세 작품은 <유리알 유희> 빼곤 다 읽었는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최고라는데 동의합니다 ^^

서니데이 2023-01-06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3-01-07 08:39   좋아요 1 | URL
벌써 나왔군요 ^^ 서니데이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새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희선 2023-01-08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축하합니다 헤세 소설에서 좋아하는 거고 이게 돼서 좋으시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3-01-08 09:02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게 당첨되면 더 좋더라구요~!! 희선님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