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98"프로스퍼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그가 할 수도 있었을 어떤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트레버의 단편집 <그의 옛 연인>에는 총 열두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어느 한편 빠지는 작품이 없었다. 이 단편집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키워드는 죄책감과 후회. [9년 내내, 사랑이 있었다. 단순한 위안을 넘어서는,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기엔 너무 강렬한 사랑, 은밀함은 아직도 짜릿할까? 그 의문 역시 입 밖에 낸 적 없었다.] P.57 <방>이 책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어떤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데 누군가는 이를 털어버리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마음에 계속 담아두고 얽매여서 살아간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진심을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거기 간다 해도 그는 햇볕이 비치는 의자에 앉아 있지 않을것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슬롯머신에서 게임을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며, 맥도널드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눈을 감으니 거기에 그의 미소가 있었고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준 선물인 목걸이에 입을 맞췄다. 그것을 항상 고이 간직하겠다고 그녀는 다짐했다.] P.143 <오후>[아빠는 코니의 손을 잡았고 다 알고 있는 딸에게 달리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자신의 짐작과 다를 수도 있으니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짐작과 같다면 그 말은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묻지 않았다.] P.217 <아이들>어떤 건 자세히 설명을 해야만 이해가 되지만 어떤 건 단 한줄 만으로도 모든걸 말해주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트레버의 단편은 후자다. 트레버의 단편은 불친절하다. 절대로 감정을 자세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시점도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바뀐다. 하지만 책장이 한페이지씩 넘어갈 수록 감정은 조금씩 쌓이면서 서서히 진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 감정이 남기는 여운은 상당하다."어떤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어떤 슬픔은 잉크처럼 천천히 번지는 거야." <헤어질 결심> 중..."설명해 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해 줘도 모르는 거야." <1Q84> 중...역시 윌리엄 트레버는 좋다. 누군가 나에게 최고의 단편 작가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망설임없이 윌리엄 트레버라고 말하겠다.